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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련하 님의 서재입니다.

삶의 위대함 - 한울 쥬맥

웹소설 > 작가연재 > 무협, 퓨전

완결

설련하
그림/삽화
설련하
작품등록일 :
2021.06.28 08:42
최근연재일 :
2022.10.17 08:20
연재수 :
290 회
조회수 :
378,277
추천수 :
7,321
글자수 :
2,467,752

작성
21.06.29 10:40
조회
1,503
추천
50
글자
18쪽

22화. 동굴 속의 기연(奇緣)

삶의 위대함 - 한울 쥬맥




DUMMY

쥬맥은 무섭지 않다고 반복하여 외치면서 스스로에게 최면(催眠)을 걸었다.


마침내 배를 단단히 채우고 화섭자와 관솔, 단검 등 필요한 물품을 챙긴 뒤에 동굴 앞의 노송에 새끼줄을 묶었다.


그리고, 새끼줄이 잘 풀리도록 뭉치를 앞에 놓은 뒤, 그 끝을 잡고 안으로 천천히 걸어서 들어가기 시작했고.


안이 깊거나 여러 갈래면 길을 잃을까 봐서 나름대로 대비를 한 것이다.


동굴 앞부분의 삼십 장(90m) 정도까지는 빛이 들어와서 그다지 어둡지 않았다. 그런데 새끼줄이 짧아서 거기서 끝나버리는 것이 아닌가?


어쩔 수 없이 돌을 찾아서 줄을 묶은 뒤, 되돌아 나가서 노송에 묶어 둔 줄 끝을 잡고 되돌아오니 다시 삼십 장을 안으로 들어갈 여유가 생겼다.


‘동굴이 이렇게 깊었나?’


그러면서 들어가는 동안에 벽면(壁面)을 유심히 살피니 붉고 푸른 이끼들이 잔뜩 자라 있고, 이름 모를 크고 작은 벌레들이 기어 다니고 있었다.


줄 끝을 잡고 화섭자로 관솔에 불을 붙여서 천천히 들어가는데, 갈수록 넓어지더니 이십 장(60m)쯤에서 굴이 두 갈래로 나뉘었다.


‘이제 어디로 가야 하지?’


한 번에 두 길을 모두 갈 수는 없으니 우선 왼쪽 길로 가 보기로 했다.


그런데 웬걸! 십 장(30m)쯤 들어가니 굴이 휘면서 아래로 완만하게 내려가는데 이상하게 어둡지가 않았다.


‘밖으로 구멍이 뚫린 것도 아닌데?’


어디선가 달빛처럼 빛이 비추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높은 천장에 어린애 주먹만 한 것이 몇 개가 박혀 있고, 그곳에서 빛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그래서 조금 더 들어가면 점점 어두워질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반대로 갑자기 더 밝아지는 것이 아닌가?


‘이상하다. 어두워져야 정상인데······. 뭣 때문이지?’


두리번거리며 주변을 살피니 여기저기에 빛을 내는 것들이 바닥을 뒹굴고 있었다. 그리고 벽에도 그런 것들이 많이 박혀 있었고 말이다.


신기하여 하나를 주워서 살피니 어린애 주먹만 한데, 그 속에서 안개처럼 뿌옇고 잔잔한 흰 빛이 마치 달빛처럼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마치 발광석처럼.


‘참 희한하구나. 빛나는 돌도 있네. 혹시 고향별에서 어른들이 말하던 월광석이 아닐까? 이거 하나만 있어도 부자가 된다고 하던데?’


이제는 횃불이 필요 없었다. 바닥에 여기저기 나뒹구는 월광석(月光石)이라고 생각되는 것들을 주워서, 우선 들어왔던 길에 하나씩 듬성듬성 놓으니 그 길 전체가 눈에 훤하게 밝아졌다.


어떤 곳은 그 빛을 받아 천장에서 보석인지 수정인지 밤하늘의 별처럼 수없이 반짝이는데, 환상적이고 매우 아름다웠다. 꼭 광활한 우주 같았다.


“우와! 꼭 밤하늘의 별 같애.”


그러면서 어두운 곳이 있으면 월광석을 놓으며 안으로 안으로 이백 장(600m)을 더 들어가니, 갑자기 커다란 공간이 나타나고 열기(熱氣)가 확 느껴졌다.


천장(天障)이 삼십 장(90m)이 넘고 사방(四方)이 칠십 장(210m)에 이르는 둥그런 공간.

천장에 여러 개의 작은 구멍들이 보이는데 그곳에서 빛이 들어오고, 월광석도 바닥의 여기저기에 떨어져 있어서 제법 밝았다.


가장 안쪽에는 시뻘건 용암이 마치 샘물처럼 끓고 있었고, 그 연기와 열기가 구름처럼 벽을 타고 천장으로 올라갔다.


앞쪽에는 뜨거운 물이 모락모락 김을 내뿜으며 바닥에서 뿜어져 나와 웅덩이를 이루고 돌 틈새로 흘러가는데, 처음 맡는 이상한 냄새를 풍겼다.


“으휴! 꼭 계란이 썩는 냄새야.”


용암천(鎔巖泉)의 연기와 온천수의 김이 어우러져서 전체가 조금 뿌옇게 보이지만, 천장을 통해 연무가 빠져나가니 그래도 숨은 쉴 만하다.


뿌연 내부를 자세히 살피니 오른쪽 벽에는 어른 키보다 몇 배쯤 되는 큰 굴이 또 하나 안쪽으로 뚫려 있었다.


그 굴에서 맑은 공기가 밀려 들어오는지 무덥고 탁한 공기가 왼쪽으로 밀리고 있었고, 굴 앞쪽은 맑은 공기가 모여 있어서 눈에 잘 보였다.


그 굴에 조심히 다가가서 살펴보니 중간 부분은 어두컴컴 하지만 반대편에는 밝은 빛이 보였다. 아마 이쪽처럼 밝은 공동이 있거나 빛이 들어오는 통로가 있는 모양이다.


그 굴에서 시원한 바람이 이쪽으로 불어오고 있었는데······.


큰 짐승의 목구멍처럼 으스스한 굴속에 월광석을 몇 개 주워서 던져 넣으니 마치 피칠갑을 한 것처럼 온통 붉은 동굴이 모습을 드러냈다.


“어이쿠! 이게 뭐야?”


깜짝 놀라서 살펴보니 벽면에는 손바닥 크기의 붉은 버섯 같은 것이 빽빽하게 밀집하여 자라고 있었다.


참으로 이상하다. 어떻게 이렇게 깊은 굴속에 버섯 같은 것이 자라고 있는 것일까? 볕도 들지 않는 데 말이다.


하나를 뜯어서 이리저리 살펴보니 앞쪽은 빨간데 뒤쪽은 청색이다. 그리고 줄기 밑동은 하얀색을 띠고 있었고.


이리저리 모양과 색을 보니 꼭 지난번 꿈속에서 형이 몸에 좋다고 먹였던 것과 거의 흡사했다.


‘정말 먹어도 되는 것일까?’


그런 생각에 끝을 조금 떼어서 입에 넣고 앞 이빨로 잘근잘근 씹어 보았다.


약간 단단한 식감에 매우 쓴맛이 나는데, 조금을 목구멍으로 넘기니 뜨거운 기운이 훅하고 밀려 올라온다.


몇 번을 망설이다가 결정을 내렸다.


‘에구! 죽기 아니면 살기다. 형이 먹인 것인데 설마 죽기야 하겠어?’


결국은 하나를 그대로 꼭꼭 씹어서 엄청나게 쓴 맛을 참고 꿀꺽 삼켜 버렸다. 꿈속의 형을 믿어 보는 것이다.


‘죽는 게 뭐 대수라고. 죽으면 엄마와 아빠를 보러 가는 거야.’


그런데 그때부터 쥬맥은 오랫동안 천당(天堂)과 지옥(地獄)을 오가야 했다.


뜨거운 기운이 목구멍을 타고 오르더니 급기야 전신으로 퍼져 나가면서 온몸이 불덩이처럼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스스로도 너무 뜨거워서 얼음 속으로 라도 들어가고 싶었고······.


“흐으으으~ 뜨거워!”


견디기 힘들어서 제자리에 가부좌를 하고 앉아 운공을 시작했다. 그러자 단전으로부터 시원한 기운이 타고 올라와 온몸이 날아갈 듯이 산뜻해졌다.


이제 되었구나 하는데 이제는 전보다 더 뜨거운 기운이 퍼지기 시작했고, 운공을 하는데도 그 열기가 가라앉지 않고 온몸을 불태울 듯이 휘몰아친다.


마치 불에 타 죽는 것 같았다. 얼음 구덩이에 뛰어들고 싶은데, 그러면 살 것 같은데······.


“으으으~ 정말 뜨거워 미치겠네.”


사방을 둘러보아도 용암천에 온천수(溫泉水)까지 온통 뜨거운 것 천지다. 그때 눈이 시원한 바람이 불어 나오는 큰 굴로 향했다. 본능이 저리로 가라 한다.


저 너머에는 시원한 것이 있을 것 같아서 앞뒤 가리지 않고 무조건 그쪽을 향해 뛰었다. 우선 이 견딜 수 없는 뜨거운 불을 꺼야 하니까.


큰 굴을 지나자 그쪽도 엄청나게 큰 원형 공간이 펼쳐져 있었고, 뒤쪽 끝에서는 땅속에서 새하얀 한기(寒氣)가 증기처럼 올라오고 있었다.


모든 벽이 두껍게 얼음으로 둘러싸여 있는데, 그 안에 여기저기 박혀 있는 월광석의 빛을 따라서 반짝이는 것이 마치 천체도(天體圖)를 보는 것 같았다.


그런데 그 아름다운 모습을 감상할 틈이 없었다. 우선은 이 뜨거운 불을 끄고 살아야 하니까! 얼음 벽에 몸을 비비며 열을 식히는데도 닿는 부분만 괜찮다.


‘이를 어쩌지?’


여기저기를 두리번거리니 한쪽 구석에 이 장 남짓한 샘이 보였다. 번개처럼 내달려서 그 샘으로 뛰어드니 온몸이 얼어붙는 듯한 한기가 치고 들어왔다.


차가운 물이 목까지 차는 데로 갑자기 뛰어드니 전신이 물에 젖어서 오들거렸고, 비로소 그 뜨겁던 열기가 서서히 식기 시작했다.


“아! 이제 살만 하네.”


참고 견디니 점점 몸이 식어서 뜨겁던 것이 따뜻하게, 이어서 시원해지더니 이번엔 추위가 몰려오기 시작했다.


조금 지나자 이제는 추워서 이빨이 달달달 하고 떨린다. 마치 한겨울 혹한(酷寒)에 맨몸으로 나간 것처럼······.


“으~ 추워! 몸이 얼 것 같애.”


이제는 온몸이 얼어붙을 것 같아서 참지 못하고 뛰쳐나왔다. 샘에서만 나오면 괜찮을 줄 알았는데 계속 전신이 얼어붙을 듯하다.


운공(運功)을 해도 참을 수가 없어서 이번엔 다시 반대편으로 돌아와 김이 무럭무럭 올라오는 온천으로 뛰어들었다. 그런데 살갗이 익을 것처럼 뜨거운데도 그것이 시원하게 느껴진다.


차가운 기운이 점차 물러가고 따뜻해지더니 좋은 기분도 잠시이고 다시 뜨거운 기운이 올라오면서, 전신 구석구석이 불 속에 들어앉은 것처럼 뜨거워졌다. 입안이 바짝 마르면서······.


정말 환장하고 미칠 지경이다.


"앗! 뜨거 뜨거!”


“악! 차거 차거!”


“으으으~ 뜨거워!”


“흐으으~ 추워!”


이렇게 양쪽을 오가기를 열댓 번 하고 나니 이제 조금 견딜 만한데 온몸에 힘이 빠져서 쓰러질 것만 같았다.


겨우 몸을 가누고 들어왔던 통로를 지나서 둥지 같은 잠자리로 돌아오니 밖은 벌써 어둠이 내리고 있었다.


그대로 쓰러져서 깊은 잠에 빠져드는데 그렇게 달콤할 수가 없었다. 낮게 코까지 골면서 곯아떨어졌다. 온 밤을 죽은 듯이 자고 나니 벌써 새벽의 시원한 바람이 살랑살랑 불어온다.


그때 뱃속에서 설사가 나오려는 듯이 요동을 치는 소리가 꾸루룩 나면서 자신의 귀에 천둥처럼 들려왔다.


평소에는 대소변을 동굴 밖에서 처리했는데 도저히 밖으로 나갈 시간적 여유가 없으니 이를 어쩌랴?


그래서 물이 흘러 들어왔다가 빠져나가는 돌 틈새로 잽싸게 달려갔다. 허겁지겁 옷을 내리고 앙상한 가지처럼 마른 엉덩이를 까 내렸다. 급하다 급해!


뿌~우~웅! 푸드두두두 푸두두!


주저앉자마자 주먹만 한 붉은 똥이 빠져나온 뒤로 새까맣고 물컹한 똥이 정신없이 쏟아져 나왔다.


“내 뱃속에 이렇게 똥이 많이 들어 있었나? 이상하네.”


이해가 안 되는데, 몇 사발은 될 것 같은 똥이 쏟아져 내리고 형언(形言)할 수 없이 심한 악취가 코를 찔렀다.


마치 뱃속에 들어 있는 모든 것이 다 빠져나온 듯했다. 냄새도 냄새지만 배가 쑥 들어가고 갑자기 허기가 몰려온다.


그렇지만 이런 악취 속에서 무엇을 먹을 수 있겠는가? 비록 어리지만 짐승이 아닌데.


어쩔 수 없이 마른 풀을 뜯어 와 똥을 싸서 큰 것은 밖에다 버리고 바닥에 묻은 것은 물로 씻고······.


허기가 지니 손을 깨끗이 씻은 뒤에 정신없이 과일이며 열매, 아직 남아 있는 육포 등을 먹기 시작했다.


그렇게 배를 채우자 한시름 놓였다. 밝아 오는 대협곡을 바라보며 동굴 앞에 있는 넓은 바위에 서는데···, 왠지 이상하게 전보다 몸이 너무 가뿐했다.


‘뱃속에 든 똥이 다 빠져서 그럴까?’


어제의 그 뜨겁고 춥던 고통은 어디로 갔는지 상쾌한 기분에 날아갈 것만 같았다. 양손과 팔을 살펴보니 부스럼에서 흐르던 진물이 멈춘 것 같고 부기도 빠진 듯하다. 어제 먹은 것이 효과가 있는 것일까?


‘햐! 요것 봐라. 그렇게 힘들게 하더니 몸에는 좋은 약인가? 형이 정말 나를 위해 꿈속에서 알려 준 것일까?’


아무리 그래도 고통이 너무 심해서 다시 먹고 싶은 생각은 들지 않았다.


대협곡을 바라보니 바닥에 있는 작은 호수들에서 물안개가 피어올라 낮게 깔리며 바람결에 퍼지고 있었다.


그리고, 낭떠러지 중턱 여기저기에 멋스럽게 자란 나무들에서는 이름 모를 새들이 먹이를 찾아서 날아오른다.


“쪼로롱 쬬로롱 쭁쭁”


“끼루~ 끼루~ 끼루루”


“피루루루~ 피루루루~”


동굴 앞에 있는 노송에서도 작은 새 몇 마리가 쫑쫑거렸다.


비록 혼자라 외롭지만 마음속의 모든 것을 버리거나 포기하니 의외로 몸과 마음이 평화롭고 편안(便安)했다.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마음 한구석이 비어 있는 것은 또 왜일까?


그때 멀리서 큰 짐승이 울부짖는 소리가 들렸다. 매우 귀에 익은 소리다.


“으허엉~ 으허어어엉!”


이제는 듣기만 해도 점박이의 소리를 알 것 같았다. 그런데 지금은 소리가 좀 이상하다. 평소와 어딘가 다르게.


‘점박이가 어디 아픈가?’


친구를 하기로 했으니 신경이 쓰였다. 산에 버려진 뒤에 유일하게 사귄 친구다. 비록 말은 통하지 않지만 먼빛으로라도 보면 반가워서 몇 번이나 소리쳐 부른 적도 있었다.


호가호위하는 덕분에 주변의 동물들이 자신을 건들지 못했고. 점박이가 이 근처의 왕이니까 말이다.


아무래도 가 봐야 할 것 같았다. 동굴에서 내려가 까마득한 낭떠러지의 틈새를 타고 오르는데 괜히 마음이 급했다. 혹시 무슨 일이 있는가 싶어서···.


점박이의 울음소리가 들려오는 곳을 향하여 부지런히 달려가니 어느덧 온몸이 땀에 흠뻑 젖었다. 점박이가 울고 있는 곳은 둘이 처음에 만났던 계곡의 하천가였다.


점박이도 멀리서 쥬맥이 달려오는 것을 보더니 더 크게 울부짖는다.


“크헝, 크헝엉~”


애타게 우는데 즐거운 소리가 아니다.


쥬맥이 다가가서 이마의 땀을 손등으로 닦아 내며 급하게 물었다.


“점박아! 왜 울어? 너 어디 아프니?”


“크르릉 크허어엉~(쥬맥앙! 내 목엥 가시가 방혀서 아팡)”


그러면서 얼른 보라는 듯이 큰 입을 쩍 벌리고 쥬맥의 얼굴로 들이밀었다.


“왜? 입 속에 뭐가 있어? 어이쿠~ 냄새야. 이빨 좀 닦아라 녀석아!”


구시렁거리며 입 속을 살피는데, 두 치가 넘는 뾰족한 가시가 목구멍에 박혀서 피가 흐르고 있었다. 억지로 목을 움직여 빼내려고 했는데, 빠지지 않고 더 깊이 박히면서 상처만 난 것이다.


입 속에 손을 넣어 아프지 않게 가만히 잡고서 뒤로 밀었다가 앞으로 살며시 제끼니 가시가 스르르 빠져나왔다.


점박이한테 가시를 보여 주고 옆으로 던져 버렸다. 그러자 점박이는 입을 다물고 몇 번 목을 움직여 보더니 정말로 가시가 빠졌다는 것을 알았다.


언제 그랬냐는 듯이 얼굴이 확 피어나며 달라진 목소리로 으르렁거린다.


“킁? 크러렁 크허엉엉(어? 정말 가시가 빠졌네. 아~ 살 것 같애.)”


목에 걸린 가시가 빠지니 기분이 좋아진 점박이가 쥬맥에게 다가와서 얼굴을 들이밀고 비벼 댔다.


낳아 주고 길러 준 엄마도 나와 형제들을 얘, 아가, 애야 하고 불렀지 이름을 지어서 불러 주지는 않았다.


처음에는 그 소리가 내 이름인 줄 알았다. 그런데 형제가 모두 부르는 이름이 같아서 그제야 알았다. 그냥 편하게 부르는 것이라는 것을!


그런데 이 볼품없는 어린 녀석이 말도 안 통하면서 내게 다가와 이름을 지어 주었다. 그리고 처음으로 그 이름을 불러 주었고.


‘나는 점박이! 그래 이 볼품없고 냄새나는 녀석이지만 내가 힘들 때 도와주고 이름을 불러 주는 너야 말로 정말 내 진정한 친구다.’


때로는 은혜를 잊지 않는 짐승이 은혜를 원수로 갚는 인간보다 더 나을 때가 있다고 했던가?


이렇게 점박이와 쥬맥의 우정은 점점 더 깊어졌다. 말이 통하지 않는다고 마음마저 통하지 말라는 것은 없는 법!


이렇게 홀로서기를 하면서 쥬맥은 많이 똘똘해졌고 또 용감해졌다.


모든 것을 스스로 결정하고 행해야 했으며, 그것을 옆에서 도와주거나 걱정해 줄 사람도 없었다. 힘들지만 마음은 편했다. 모든 걸 알아서 하니까.


천 장 낭떠러지를 틈새로 기어오르고 내려가고 하다 보니, 가냘펐던 몸매에도 여기저기에 근육이 생기고 힘도 세졌다. 체력 단련 효과가 나타난 것이다.


그런데 협곡 아래는 사시사철 꽃이 피고 풀이 푸르건만 의외로 과실수(果實樹)나 큰 나무는 별로 없었다.


그래도 기암절벽에는 수많은 세월 동안 모진 풍상을 견디어 온 듯한 고목들이 여기저기에 자라고 있어서 멋진 풍경을 연출(演出)했고······.


협곡을 벗어나서 서쪽 멀리에 있는 높은 산을 바라보니 산정에 쌓인 눈이 점점 아래로 내려온다. 기온이 떨어지고 계절이 바뀌고 있다는 의미다.


‘벌써 겨울이 오는 것일까?’


쥬맥은 푸르름이 퇴색되어 가는 산하(山下)를 바라보며 그리 생각했다.


아열대라서 협곡 밖에는 아직도 푸른 풀과 나무들이 있지만, 어떤 나무는 노랗게 물든 잎사귀들이 벌써 낙엽이 되어 떨어지고 있었다.


과실들도 대부분 떨어져 내렸으며, 누렇게 말라가는 풀들도 있었다.


쥬맥이 이곳에 자리를 잡은 지 벌써 몇 달이 흘렀다. 그런데 오늘따라 겨울을 재촉하는 비가 하루 종일 내린다.


동굴 안에 있으면 식량도 많이 쌓여 있겠다 비를 맞고 돌아다닐 일은 없지만, 그래도 가만히 있으려고 하니 너무 심심했다. 뭔가 하고 싶은데······.


‘무슨 재미있는 일이 없을까?’


그러면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협곡 아래쪽이라 춥지도 않고 아침저녁은 쌀쌀하지만 그래도 낮에는 따뜻했다.


몸도 근질거려서 씻고 싶은데 동굴 안에서 흐르는 물로 씻기에는 물의 양이 너무 적었다. 저 안쪽의 온천수는 뜨겁고, 반대쪽은 살을 에일 듯이 춥고.


“에잇! 심심해. 그럼 비도 오는데 비에 몸이나 씻을까?”


심심하던 쥬맥은 결국 옷을 모두 벗고 동굴 앞의 넓은 바위 위에 섰다. 빗줄기가 제법 세차다. 그래서 부스럼이 아물지 않은 곳은 제법 따가웠다.


“부스럼? 요즘 거의 가렵지 않았는데······. 내가 그걸 왜 몰랐지?”


전신을 여기저기 살펴보니 이제 진물은 흐르지 않고 부스럼도 아물고 있는 듯 보였다. 병이 차도가 있는 것일까?


“정말로 내 병이 낫고 있는 걸까?”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체감적으로 좋아지고 있다는 것만은 확실했다.


요즘은 토납술(단전호흡)을 하면 단전 부위에 따뜻한 기운이 모이고 숨을 따라서 전신으로 퍼져 나간다.


기(氣)라는 것이 무엇인지 이제는 몸속에서 확실하게 느껴지는 것 같았다.


빗줄기는 점점 거세어지는데 그 빗물에 몸 여기저기를 씻어 내며 암울한 하늘과 끝없는 계곡을 바라보았다.


그때 멀리서 천둥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머리 위에서 빛이 번쩍거리는데 하늘을 밝히며 번쩍거리는 저 번개가 마치 자신의 머리에 내리꽂힐 것만 같았다.




감사합니다. - 설련하(偰輦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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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1

  • 작성자
    Lv.28 철없는사과
    작성일
    21.10.17 13:57
    No. 1

    온탕과 냉탕 사이... 아들 거죽만 남을 뻔... ㅡㅡ
    어르신들에게나 가능한 일을 어린애가 큰일날 뻔 했군요.
    아직 어린 아이의 시점이니 다시는 먹고싶지 않은 마음이
    이해가 되면서 잔근육과 체력이 보강되고 아픈 것까지
    나아간다니 큰 전환점이 이어질 듯 아~ 갈래길에서 한 군데만
    따라가보았는데 가지 않은 다른 쪽도 한번 내려가보고 싶네요.

    찬성: 2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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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위대함 - 한울 쥬맥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23 23화. 무인을 꿈꾸다 +1 21.06.29 1,500 50 18쪽
» 22화. 동굴 속의 기연(奇緣) +1 21.06.29 1,504 50 18쪽
21 21화. 새 친구 점박이 +1 21.06.29 1,481 50 18쪽
20 20화. 새로운 안식처(安息處) +1 21.06.29 1,483 49 19쪽
19 19화. 우르표범과의 조우 21.06.29 1,462 47 19쪽
18 18화. 홀로 숲에 버려진 아이 +1 21.06.29 1,468 49 18쪽
17 17화. 풍토병(風土病) +2 21.06.29 1,462 48 18쪽
16 16화. 화해협상(和解協商) +1 21.06.29 1,462 49 19쪽
15 15화. 핏물은 강이 되어 흐르고 +2 21.06.29 1,473 50 18쪽
14 14화. 협상 결렬과 힘겨루기 +2 21.06.29 1,463 50 18쪽
13 13화. 울트의 읍참마속(泣斬馬謖) +2 21.06.29 1,499 50 17쪽
12 12화. 반인족 선발대와의 전투 +2 21.06.29 1,555 50 17쪽
11 11화. 대륙지도 작성 +2 21.06.29 1,605 49 21쪽
10 10화. 비월족과 검치범 +2 21.06.29 1,612 48 19쪽
9 9화. 들개 떼의 습격 +2 21.06.28 1,686 49 18쪽
8 8화. 반인족과의 격돌(激突) +2 21.06.28 1,751 48 19쪽
7 7화. 사건의 발단(發端) +2 21.06.28 1,857 50 19쪽
6 6화. 첫 주거지 +2 21.06.28 2,006 52 18쪽
5 5화. 선인과 거인(巨人) +3 21.06.28 2,158 50 18쪽
4 4화. 거인족과의 조우(遭遇) +2 21.06.28 2,380 53 18쪽
3 3화. 천인족의 대이동(大移動) +3 21.06.28 2,630 55 18쪽
2 2화. 서장(2) 탈출(脫出) +3 21.06.28 2,827 56 19쪽
1 1화. 서장(1) 탄생(誕生) +4 21.06.28 4,628 58 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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