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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련하 님의 서재입니다.

삶의 위대함 - 한울 쥬맥

웹소설 > 작가연재 > 무협, 퓨전

완결

설련하
그림/삽화
설련하
작품등록일 :
2021.06.28 08:42
최근연재일 :
2022.10.17 08:20
연재수 :
290 회
조회수 :
379,591
추천수 :
7,321
글자수 :
2,467,752

작성
21.06.29 11:20
조회
1,438
추천
50
글자
19쪽

31화. 선인(仙人)의 연신기

삶의 위대함 - 한울 쥬맥




DUMMY

한편, 천령수 심은 곳을 떠난 태을 선인은 신수와 마수(魔獸), 요수(妖獸)들이 지내는 곳을 두루 살펴보았다.


대부분은 직접 만나 보았고, 특히 5대 신수(神獸)와는 현재의 상황을 설명하고 앞으로의 일들을 협의했다.


지금은 주작(朱雀)이 대협곡의 북쪽 끝에 있는 동굴에 살고 있어서 마지막으로 만나러 가는 길이다. 이 일이 끝나면 대협곡을 타고 내려가서 쥬맥을 찾아갈 생각이었다.


생각보다는 마수와 요수의 수가 많지 않았으나 번식력이 강하니 언제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날지 모른다.


강력한 마수와 요수에게는 인계(人界)를 침범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았지만, 믿을 수 없는 존재들의 약속은 언제 깨질지 모르는 것이고.


“허허 참! 여기까지 마수와 요수가 따라와서 귀찮게 구는구나. 신의를 밥 먹듯이 저버리는 놈들의 말을 다 믿을 수도 없고···. 신수들을 믿을 수밖에!”


선인은 혀를 차면서 발길을 재촉했다.


믿지 못할 존재들이라 지금 5대 신수가 그 주변에 자리잡고 지내면서 밖으로 나가지 못하도록 지키는 것이다.


그렇다고 그 넓은 지역을 어떻게 다 막을 수 있겠는가? 그저 무사하기만을 빌며 하늘에 맡길 뿐이지.


그래도 천인족과 친화력이 높은 5대 신수들이 도와주니 천만다행이다.



신수들은 워낙 몸체가 거대하기 때문에 본 모습대로는 주거지를 만들기도 힘들고 움직임도 불편하다.


그래서 평소에는 신통(神通)을 부려서 축소형 몸체로 지내거나, 변신하여 인간의 형태로 생활하고 꼭 필요할 때만 원래의 몸으로 현신했다.


그것을 잘 모르는 사람들은 변신한 몸만 보고 별 볼 일이 없다고 오해하는데, 잘못 건드렸다가는 큰코다치기 십상(十常)이다.


먼 거리에 있어도 오랜 수행을 쌓은 선인들과는 대부분 정신적인 감응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찾아가는 것은 별로 어렵지 않았다.


태을 선인도 지금 머릿속으로 전해져 오는, 태양처럼 뜨거운 불의 기운을 따라서 나아가고 있는 중이다.


아마 주작도 지금 태을 선인이 다가가고 있다는 것을 정신 감응을 통하여 느끼고 있을 것이다.



대협곡(大峽谷)의 북쪽 입구에 들어서니 그 모습이 아주 장관이었다.


“허어! 어떻게 자연이 이리도 장대할 수가 있단 말인가! 정말 대단하구나.”


어지간한 일에는 잘 놀라지 않는 태을 선인의 입이 쩍 벌어졌다.


대자연이 얼마나 위대한지 다시 한 번 깨달음을 주는 듯하다. 태을 선인은 까마득한 천 장(丈) 낭떠러지에 서서 그 장대함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수많은 세월 동안 도를 깨우치려고 조용히 수행하며 살아왔기 때문에 항상 평상심을 유지하며 살아왔다.


그러나 눈앞에 놓여 있는 대지의 틈새는 우리가 생각하는 인간의 상상을 넘어선 모습이었다.


끝없이 까마득한 낭떠러지도 그렇지만 기암절벽 중간중간에 수천 년을 비바람 속에서 자란 운치 있는 노송과 괴목들은 마치 한 폭의 산수화 같았다.


여기저기 바위 틈새에 피어 있는 기화요초는 또 얼마나 오랜 세월을 그곳에서 뿌리를 내리고 살아왔을까?


보이는 모든 것이 참으로 대단하다.


이렇게 대자연(大自然)은 수백 년, 수천 년, 수만 년을 그 자리에서 견디며, 저렇게 한 송이의 꽃과 하나의 생명을 싹 틔워 올리건만, 얼마 살지도 못하는 인간은 마치 천 년을 살 듯이 욕심을 부리지 않는가?


“모두 부질없는 것을!”


선인은 스스로의 부족함을 깨우치며 이제 천지만물(天地萬物)의 이치를 알 만하다고 자만했던 스스로를 다시 한 번 책망하였다.


이제 멀리 느껴지지 않으니 저 협곡 어디쯤에 주작의 거처가 있으리라.


선인은 절경에 도취되어 오늘은 이곳에서 하루를 야숙하리라 마음먹었다.


해가 서산마루로 뉘엿뉘엿 지고 있으니 둘레를 살펴 여기저기 새들과 작은 동물들이 먹던 과일이며 열매를 찾아서 식사 대용으로 요기(療飢)를 했다.


평소에도 별로 먹지 않고 선식을 주로 하기 때문에 먹는 것에는 큰 욕심이 없었다. 술을 조금 좋아할 뿐.


“에이, 그래도 술은 있어야지. 하하하하! 이게 유일한 낙인 것을!”


술 한 모금에 낭떠러지 위에서 봇짐을 베개 삼아 편안히 드러누우니 온 하늘이 마음과 눈에 꽉 차게 들어온다.


아직 달이 뜨지 않아서 어둠이 조금씩 짙어 가는 하늘에는, 창공을 가로질러 은하수(銀河水)가 첫눈이 내린 겨울 언덕처럼 하얗게 깔려 있다.


여기저기에서 셀 수 없이 많은 보석들이 영롱한 빛을 반짝이며 마치 나를 봐 달라고 손짓을 하는 것 같았다.


이렇게 혼자 드러누워서 하늘의 별들을 헤아려 본 것이 도대체 얼마만인가?


“와~ 정말 좋구나!”


이제는 어른이 되었다고, 이제는 선인이 되어 도를 깨우쳤다고 그렇게 자만하며 살았건만, 저 하늘의 별 하나도 제대로 알지 못한다.


그저 이렇게 한없이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너무 좋고 마치 어릴 때의 동심으로 돌아간 듯한 묘한 기분이 들었다.


대지를 침대 삼아 누워서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노라니···, 나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것일까? 내 삶의 의미는 무엇인가? 의문이 꼬리를 물었다.


궁극적인 내 존재와 천지의 법칙을 생각하며 깊고 또 깊은 생각에 점점 침잠(沈潛)해 들어가니, 숨은 점점 느려져서 쉬지 않은 듯하고 모습은 주변의 대지와 자연에 동화된 듯했다.


파앗!


그러는 어느 순간 선인의 몸에서 희미한 빛이 일어 주위를 밝히더니, 찬란한 보광처럼 칠채의 광휘(光輝)가 수장 높이로 둥그렇게 피어올랐다.


무의식에 빠져 스스로는 느끼지 못하지만, 태을 선인은 지금 선인의 수행 9단계 중에서 6단계인 연신기(鍊神期)에 접어들고 있었다.


새로운 깨달음에 천지의 영기가 반응하고 몰려들어서, 그동안 수행으로 쌓아온 영체(영신 또는 원영)의 영기(靈氣)가 신기(神氣)로 연화되는 것을 돕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 선인의 의식 세계는 심마와 치열한 다툼이 벌어지고 있었다.


“네 이놈 태을아! 네가 뭐 선인이라고? 웃긴 소리 하고 자빠졌네. 마음 속에는 똥만 들어찬 놈이 선인은 무슨 놈의 선인이란 말이냐?”


광활한 의식 공간에 간사한 눈빛을 지닌 회색빛 마귀 한 마리가 나타나더니 신랄한 어조로 비아냥거린다.


“네놈이 무엇이길래 청렴하게 살아온 나의 인생을 비판하는 것이냐?”


“으히히히! 뭐 청렴! 남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네 마음속에 꼭꼭 숨겨 둔 것들을 내가 모를 줄 알았더냐?”


“인간의 본성이란 모두 같은 것! 수도자라고 다를 줄 알았더냐? 그것을 자제하고 견디는 것과 숨기고 몰래 탐하는 것의 차이를 모른단 말이냐?”


“으히히히히히히! 네놈이 이제야 이실직고를 하는구나. 네놈도 야하고 못된 생각들을 했다는 뜻이렸다?”


흉악한 마귀가 입이 찢어지게 가가대소하며 통쾌하다는 듯이 웃어 제쳤다.


마귀의 조롱에 마음이 심란해지고 앞으로 나아가던 경지가 머뭇거리자 우선 심마(心魔)를 다스리기 위해서 청심결(淸心訣) 외우기 시작했다.


“음심은 심마에서 자라고, 사심은 헛된 망상에서 시작되나니······.”


그러자 마귀와 다투고 있는 광활한 의식 공간에 진기의 바람이 불며 푸른 초목이 자라나더니, 그 속에서 거대한 푸른 용 한 마리가 빠져나왔다.


“후후후! 마음 깊은 곳에 숨어서 세상을 어지럽히던 놈이 어디로 갔나 했더니 겨우 이곳에 있었구나.”


청심결의 기운을 타고 몸집을 불린 거대한 용이 입을 쩍 벌리자, 마치 지옥의 심화(深火) 같은 불길이 뿜어져 나와 마귀를 휩쓸었다.


“으아악! 내가 틀린 말을 했던가? 미사여구로 사탕발림을 한다고 너희 본색이 가려진다더냐? 이 비겁한 것들!”


발버둥치던 마귀는 마치 통닭구이처럼 검게 그을렸고, 그것을 용이 한입에 덥석 삼켜 버리자 의식 공간이 조용해지면서 평정심으로 돌아왔다.


그러자 찬란하게 피어올랐던 칠채 광휘가 더욱 색이 짙어지더니 점점 선인의 몸속으로 스며들었다.



이로써 지구의 천인족에는 오늘부로 천사장 돈문에 이어서 두 번째로 연신기에 오른 선인이 탄생하고 있었다.


천인족은 선인의 수행을 다음과 같이 9단계로 나누어 구분하였다.


1단계 연정기(硏精期)는 오욕 칠정을 참고 토납법을 통하여 자연지기를 받아들이는 훈련을 하는 시기이다.


2단계 감령기(感爧期)는 선법(仙法)의 토납술로 자연지기를 이용하여 영근이 생기도록 수행하는 시기이고.


3단계 축령기(蓄爧期)는 자연지기로 영근을 키우고 축기하며, 4단계 연선기(鍊仙期)에서는 영근을 영체화 하기 위해서 축적한 자연지기를 선기(仙氣)로 연화하였다.


5단계 허령기(許靈期)는 영체가 연화한 선기(仙氣)를 영기(靈氣)로 다시 연화시키는 단계이고, 6단계 연신기(鍊神期)는 영체의 영기(靈氣)를 다시 신기(神氣)로 연화시키는 시기인데, 지금 태을 선인이 바로 이 경지에 이른 것이다.


그리고 7단계 합신기(合神期)는 육체의 크기에 다다르도록 신기(神氣)화된 영체를 키우는 시기이다.


이때는 영체(靈體)가 육체와 거의 같은 크기까지 완전히 성장하고, 육구신통(六具神通) 중에 일부나 전부를 부릴 수 있었다. 대부분 천안통이나 천이통쯤은 깨달을 수 있었고······.


8단계 진신기(眞神期)는 영체를 육신처럼 현신할 수 있는 수준으로 수행하는 단계로, 그야말로 신선이 되기 일보 직전이다. 그리고 9단계 신선기(神仙期)는 정말로 신선이 되어 영체가 선계로 비승한다.


보통은 합신기에만 이르러도 천지의 이치를 많이 깨달아서 법술과 마법을 십이 성까지 익힐 수 있었다.


물론 연신기나 그 이하도 법력에 따라 그 성취가 다를 뿐 익힐 수 있었고.


그러나 선인은 생체(生體)을 가진 생명을 죽이는 것은 금기시하기 때문에 실제로 사용하는 일이 거의 없었다.


사용하더라도 주로 방어 개념의 법술을 많이 사용한다. 고의로 악의를 가지고 인간과 같은 동격의 생명을 죽이면 영생하기 어렵고, 경우에 따라서는 수행해야 할 시간이 대폭 늘어났다.


상대의 공격 때문에 피치 못할 사정으로 죽일 경우에도 사정에 따라 다르지만 그 수행(修行)이 깎이게 된다.


무엇보다 무서운 것은 바로 그로 인하여 스스로 심마에 빠지는 것이다.


선인들이 전투에 직접 나서지 않고 진법이나 지원 업무만 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었다.


지금은 선인 외에는 마법 수련이 금지되어 있었다. 그 이유는 아리별에서 마법 수련 중에 심마(心魔)에 빠진 고위 마법사들이, 무차별로 마법을 난사하여 수십만 명의 사람들을 죽이는 일이 여러 차례 발생했기 때문인 것.


마법(魔法)의 마(魔)자는 악마 또는 마계와 같은 魔자를 사용한다.


마법은 천지와 대자연의 기운 중에 패도적이고 거친 기운을 천지법칙에 맞추어 수식에 따라 이용하는 것이다.


누구는 이름 좋은 말로 마나라고 부르는데 이 기운이 곧 마기(魔氣)이다.


물론 마기 자체가 악마를 뜻하는 것이거나 나쁜 의미는 아니지만, 마음속에 악의(惡意)가 자라나면 심마에 빠져서, 이 마기와 결합하여 흑마법을 쓰는 등 악마처럼 변하기 쉬웠다.


선인은 깨우침을 중시하기 때문에 상단전을 중심으로 하여 중단전과 하단전을 수련한다. 이에 비해서 무인은 진기를 내공으로 바꾸어 외력으로 전환하여 쓰기 쉽도록 하단전을 중심으로 하여 상단전과 중단전을 수련했다.


그러나 마법이나 주술만을 익히는 술인들은 중단전을 중심으로 하여 상단전과 하단전을 수련한다. 그렇기 때문에 마음에 가까이 있는 중단전이, 마음속에 악의가 자라면 그 영향으로 심마에 빠지기 쉬운 까닭이었다.


어쨌든, 태을 선인이 6단계 연신기에 이른 것은 선인으로서 대단한 성취였다.


이제는 고계의 신통과 비기를 대성할 수 있는 대선인의 한 사람이 된 것이니 천인족에는 경사가 아닐 수 없었다.


그런데 이렇게 천 장 낭떠러지 위에 홀로 있으니 아무도 축하해 주는 사람이 없었다. 천지 자연의 기운과 밤을 나는 새, 창공의 별들만 아름다운 풀벌레 소리에 합창하며 경배를 드리는 듯했다.


곧이어 동녘 하늘에 달이 솟아오르고 세상이 달빛 아래 밝게 드러났다. 그러자 주변의 정취(情趣)는 한껏 무르익었고, 찬란히 빛났던 칠채 광휘는 어디로 갔는지 흔적 없이 사라졌다.


어느 순간 정신을 차리고 가만히 눈을 뜨는데, 눈에는 한 점의 사념(思念)도 없이 별빛 같은 현기가 빛났다.


“시간이 어찌 흘렀는지 모르겠구나.”


조용히 일어나서 자리에 앉으니 몸이 무게가 없는 듯 너무 가볍고, 기분은 마치 날아갈 것처럼 상쾌하다.


그때 갑자기 주변에서 들려오는 소리.


“우우우우우~”


온몸에 푸른 빛이 감도는 호랑이만 한 늑대 수십 마리가 선인을 둘러쌌다.


갑자기 어디에 몰려온 것일까?


흉측스럽게 벌린 입에는 날카로운 이빨이 번뜩이고, 마치 맛있는 먹이를 보는 것처럼 입에서는 침을 질질 흘렸다.


“크르르르르~”


마침내 몸을 낮추고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며 선인을 덮치려고 하는데···, 그것을 바라보던 선인이 아무런 두려움도 없는 듯이 가만히 일어섰다.


“하하하! 이놈들, 표정을 보니 배가 고픈 모양이구나. 내가 할 일이 없으면 몸 보시라도 하겠다만은 아직 할 일이 많아서 그건 어렵겠구나. 미안하지만 다른 데 가서 찾아보렴.”


그러면서 늑대의 무리 중에 우두머리로 보이는 가장 덩치가 큰 녀석의 앞으로 걸어가더니, 가만히 앉아서 아이를 다루듯이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러자 이게 무슨 일인가?


방금 전까지만 해도 잡아먹으려고 이빨을 드러내고 으르렁거리던 녀석이 꼬리를 흔들면서 선인의 손을 핥았다.


그러더니 하늘을 보며 크게 울었다.


“우우우우우우우~”


그러자 사나운 눈빛으로 둘러쌌던 늑대들이 갑자기 온순해지며 우두머리를 따라서 조용히 숲속으로 사라지는 것이 아닌가?


“허! 그 녀석들 참 온순하구나.”


혼자 중얼거리며 늑대들이 사라진 숲속을 바라보던 선인이 그제서야 현실로 돌아와서 주변을 살펴보았다.


그토록 오랜 세월을 이루고자 마주하던 벽이 하나 무너졌다. 그것을 깨달으니 마음이 한없이 기쁘기도 하지만 안색은 담담하기 그지없었다.


조용히 일어나서 달빛에 젖은 대협곡을 바라보다가 가만히 발을 들어 허공을 딛고 내려간다. 그 자연스러운 모습이 마치 허공에 계단이 있는 듯했다.


달빛 아래 사방에 펼쳐진 절경을 감상하며 아래로 향했다. 한참을 내려와서야 바닥에 닿았고, 거기에는 또 다른 별천지(別天地)가 펼쳐져 있었다.


달빛 아래 온갖 기화요초(琪花瑤草)가 향기와 자태를 뽐내고 있다. 기암괴석(奇巖怪石)의 사이에서는 이 달밤에 웬 손님이 왔나 하고, 귀여운 조그만 동물들이 호기심에 기웃거린다.


“경지가 오르니 마음이 달라지고, 마음이 달라지니 보이는 것과 생각하는 것마저 달라지는구나!”


선인은 가만히 주변을 둘러보며 경지가 올라 예전과 달라 보이는 것들을 만끽하면서 대자연을 살폈다.


대협곡의 틈새로 보이는 하늘은 까마득한데, 밤늦게 어디를 가는지 새들은 떼 지어 부지런히 날고 있다.


가만히 자리에 누워서 다시 별을 헤아리기 시작하니 선계가 따로 있으랴? 자신도 모르게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쪼르르~ 쫑쫑쫑!”


꽃향기와 새소리에 잠이 깨니, 높다란 틈새로 보이는 하늘이 마치 자신이 깊고 깊은 우물에 빠진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가만히 일어나서 주변에 흐르는 맑은 물에 얼굴을 닦고, 산딸기 몇 개를 따서 먹으니 그게 바로 아침이다.


“오늘은 주작을 만나 보고 쥬맥을 찾아 봐야지. 바쁘구나 바뻐.”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는데 발은 공중에 떠 있고, 의식하지 않아도 축지성촌(縮地成寸)을 쓰는 것처럼 한 걸음에 6~7장씩을 앞으로 나아간다.


저 멀리서 주작의 뜨거운 불의 숨결이 느껴진다. 한참을 가다 보니 어느덧 불의 숨결이 가까이서 느껴졌다.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찾으니 아득한 절벽 위쪽에 커다란 동굴이 뚫려 있고 거기에서 열기가 뿜어져 나온다.


밑에 다다라 가만히 발을 구르니 몸이 구름처럼 가볍게 둥실 떠올랐다.


동굴의 입구에 발을 디디니 참기 힘든 뜨거운 열풍이 불어닥쳤다. 아직 다 신기(神氣)로 연화되지 않은 푸른 영기(靈氣)를 몸에 두르니, 그제야 몸에 침투하던 열기가 견딜 만했다.


선안(仙眼)을 이용하여 아른거리는 열기 속을 바라보니 안으로 들어갈수록 굴이 넓어지는데, 백 장쯤 앞쪽에 시뻘건 불 같은 것이 보인다.


그것을 표적 삼아서 걸으니 점점 열기가 심해졌다. 옆에 다다라서 살펴보니 시뻘겋게 보이던 것은 오십 장쯤 되는 커다란 용암천이었다.


거기에서 붉은 용암이 마치 쇳물이 끓듯이 부글부글 끓고 있었다.


분명히 주작의 기운은 느껴지는데 정작 그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그러자 선인이 정신 감응을 통하여 선어로 가만히 주작을 불렀다.


[주작! 나 천인족의 선인 태을이요. 멀리서 오랜만에 찾아왔는데 모습이라도 보여 주세요.]


[아! 멀리서 기운이 느껴지더니 벌써 왔습니까? 한참은 걸릴 줄 알고 한숨 자려고 했더니 부지런도 하시네요. 그 사이에 신통이 더 느셨나 봅니다.]


그러면서 용암이 부글부글 끓는 속에서 불새처럼 전신이 불타는 커다란 봉황(鳳凰) 같은 새 한 마리가 나타났다.


전신에 불꽃이 일렁이는데 붉은 기가 서린 봉목이 서늘하게 느껴진다.


이것은 주작이 신통으로 변신한 몸인데 크기는 날개가 삼 장이요 몸체의 길이는 이 장 반쯤이었다.


현신하면 그 큰 몸을 쉴 곳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원래 남방을 지키는 이 신수의 크기는 양쪽 날개가 삼백삼십 장(990m), 몸통이 두께 오십 장(150m)에 길이는 이백삼십 장(690m)에 이른다. 그러니 본신의 크기로는 한 번 움직이는 것도 불편하기 마련이었다.


하늘 위로 떠올라야 비로소 현신하여 날개를 활짝 펼 수 있을 정도인 것이다.


주작이 분노하여 현신(現身)한 몸으로 불바람을 몰아치면, 일대 수백 리가 불에 타서 재밖에 남지 않는다고 하지 않던가?


신수가 된 뒤로는 거의 살생을 하지 않지만 마수나 요수는 주작의 꽁무니만 봐도 겁에 질려 내뺐다.


주작이 용암천에서 나와 태을 선인의 앞에 앉더니 붉은 눈으로 지그시 바라보았다. 아마도 예전과 느낌이 다른 모양이다.


기감에 무언가 이상하다는 듯이 고개를 이리저리 갸웃거리면서 선인의 기를 한참 동안 살펴보았다.

31화 5대 신수의 위치 지도.png

31화 5대 신수의 위치 지도




감사합니다. - 설련하(偰輦河)


작가의말

안녕하세요? 설 연하입니다.

31화부터 2권이 시작됩니다. 2권 중반부터 성인이 되어 천인족으로 복귀한 쥬맥의 활동상이 그려집니다. 기대하시고 많이 사랑해 주세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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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15화. 핏물은 강이 되어 흐르고 +2 21.06.29 1,482 50 18쪽
14 14화. 협상 결렬과 힘겨루기 +2 21.06.29 1,471 50 18쪽
13 13화. 울트의 읍참마속(泣斬馬謖) +2 21.06.29 1,507 50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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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11화. 대륙지도 작성 +2 21.06.29 1,612 49 2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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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9화. 들개 떼의 습격 +2 21.06.28 1,695 49 18쪽
8 8화. 반인족과의 격돌(激突) +2 21.06.28 1,761 48 19쪽
7 7화. 사건의 발단(發端) +2 21.06.28 1,868 50 19쪽
6 6화. 첫 주거지 +2 21.06.28 2,018 52 18쪽
5 5화. 선인과 거인(巨人) +3 21.06.28 2,175 50 18쪽
4 4화. 거인족과의 조우(遭遇) +2 21.06.28 2,398 53 18쪽
3 3화. 천인족의 대이동(大移動) +3 21.06.28 2,650 55 18쪽
2 2화. 서장(2) 탈출(脫出) +3 21.06.28 2,846 56 19쪽
1 1화. 서장(1) 탄생(誕生) +5 21.06.28 4,670 58 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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