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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승달

황금사과를 문 뱀과 최후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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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승달
작품등록일 :
2021.03.17 22:34
최근연재일 :
2021.12.06 15:09
연재수 :
5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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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2
추천수 :
72
글자수 :
187,815

작성
21.06.15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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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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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글자
12쪽

이야기꾼을 만들어주는 꿀술 이야기(4)

DUMMY

난쟁이들은 집으로 돌아갔다. 술에 취한 길링이 배를 탔고, 그들이 만류했지만 깊은 바다로 나가 파도속에 보트가 기울어 바다에 빠져버렸다고 했다. 에리노스는 눈물을 흘리며 바다로 들어가 파도가 목까지 차오르도록 남편을 찾았지만 그를 찾을 수 없었다.


검은 절벽이 시작되는 밤의 바닷가에서, 에리노스는 무릎을 꿇고 눈물을 흘렸다. 피얄라르는 에리노스를 위로했다.


"내 남편이 마지막으로 뭐라고 하던가요?"


에리노스가 물었다. 갈라르는 형을 쳐다보았다.


"슬픔은 당신의 일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피얄라르가 대답했다. 에리노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에리노스는 남아있는 꿀술의 힘으로 절망적인 바다를 향해 가장 아름다운 추도문을 읊었다.


추도문이 끝난 뒤, 피얄라르는 에리노스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다정하고 사려깊은 언어로 그는 남편을 잃은 거인을 위로했다. 그리고 에리노스는 눈물을 거두고 피얄라르의 목을 잡았다.


"이게 무슨...?"


피얄라르가 저항했지만 거인의 손은 난쟁이의 목을 더욱 강하게 옥죄였다.


"내 남편은 복수가 나의 일이 아니라고 했지만, 그건 내 미래를 봤기 때문이겠지."


에리노스가 말했다. 거인의 눈은 분노로 빛나고 있었다.


"나는 그래도 남편의 복수를 할 것이다. 이 사악한 난쟁이들아."


갈라르는 단검을 뽑아 에리노스의 다리를 찔렀다. 에리노스는 피를 흘리며 피얄라르를 놓쳤지마 갈라르의 팔을 붙잡고 던졌다. 갈라르는 생쥐같은 비명을 지르며 날아갔다. 피얄라르도 검을 뽑아 에리노스를 향해 덤벼들었다. 에리노스는 가볍게 공격을 피하고 피얄라르의 몸을 들어올렸다. 거인의 힘 앞에서 피얄라르는 속수무책으로 허공으로 몸이 들렸다.


피얄라르의 몸에서는 우둑우둑하고 나무 부러지는 소리가 났다. 검은 파도가 부서져라 치는 밤의 바닷가에서 에리노스는 한순간 마치 바닷가에 선 승리의 신의 모습이었다. 그리고 다음순간, 에리노스의 코에서 피가 후두둑 떨어진다.


"복수를 할 필요가 없다고 했지,"


에리노스가 중얼거린다.


"그건 에리노스가 할 일이 아니라고."


그리고 거인의 거대한 몸이 앞으로 쓰러졌다.


검은 절벽을 기어올라 거인의 머리위로 바위를 떨어뜨린 갈라르는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남편을 삼킨 검은 바닷물이 철썩이며 에리노스의 쓰러진 손끝을 닿을듯이 손을 뻗고 있었다.


"정말 멍청한 계획이었어."


갈라르가 거인의 시체 아래에서 빠져나온 형을 보며 말했다. 피얄라르는 한쪽팔과 한쪽 다리가 부러지고, 얼굴은 흉하게 일그러진 채였다. 피얄라르는 에리노스의 시체를 내려다보았다. 한때 그가 욕망했지만, 하마터면 죽임을 당할 뻔 했던 자가 누워있었다.


"... 귀한 술만 날렸네."


피얄라르가 말했다. 갈라르는 고개를 끄덕이고, 형을 도와 거인의 시체를 바다에 밀어넣기 시작했다.


검은 밤바다의 바람이 휘몰아치는 소리를 내며 사정없이 바람으로 몸을 때렸다.


난쟁이들의 밤이었다.






***







피얄라르와 갈라르 형제는 꿀술을 세 종류의 통에 나누어 담았다.


첫번째 금통 하나에는 처음 크바시르를 죽여서 만들었던 꿀술 그대로가 들어있었다.


두번째 은통 세개에는 바니르 신족들의 땅인 바나하임에서 구해온 꿀을 넣어 조금 희석시킨 꿀술을 담았다.


세번째 구리로 만든 통 아홉개에는 스바르트알프하임에서 사온 꿀을 넣어 대량으로 희석시킨 꿀술을 넣었다.


난쟁이 형제들은 금통과 은통들을 새로 산 저택의 지하실 깊은곳에 넣고 잠가두고, 커다란 구리통들에 들어있는 꿀술을 조금씩 나누어 팔았다.


희석시킨 꿀술도 효과는 대단해서, 꿀술을 찾는 사람들은 날이 갈수록 많아졌고 값은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난쟁이들은 금으로 저택을 올리고, 은으로 마차를 만들었다. 부귀와 영화가 난쟁이들을 찾아들었다. 어느날 그들의 집을 방문했다가 사라진 거인들의 이야기는 아무도 기억하지 못했다.




세월이 흐른 어느 날, 난쟁이들은 그날도 인간나라의 어느 왕의 초대를 받아 가는 중이었다. 금으로 테를 두른 바퀴가 달린 은으로 된 마차를 타고 숲길을 가던 그들은, 마차가 번쩍 들리는것을 느끼고 자리에서 일어나다가 바닥을 굴렀다.


말들과 마부가 도망치고, 흔들리는 마차의 창밖으로 형제가 고개를 내밀었을때 그들은 자신들이 거인에 의해 옮겨지고 있는것을 알았다. 그들이 태어나서 본 가장 거대한 거인이었다.


"뭐하는 짓이야?"


갈라르가 물었고, 거인은 난쟁이들을 힐끗 내려다보았지만 아무말도 하지않았다. 난쟁이들은 마차에서 뛰어내려 도망치려했지만, 거인이 워낙 컸기 때문에 뛰어내렸다간 목이 부러질것 같았다. 형제는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거인은 밤낮으로 걸었다. 거인의 걸음 한폭이 엄청나게 컸기때문에, 마차 안에서 그들은 풍경이 시시각각으로 변하는것을 볼 수 있었다. 몇번이고 다른 숲과 벌판을 지나, 마침내 밤이 되어 거인이 발을 멈추었을때 그들은 바다 앞에 서 있었다.


거인은 마침내 마차를 바닥에 내려놓았고, 난쟁이들은 헛구역질을 하며 바깥으로 기어나왔지만 감히 도망칠 엄두조차 낼 수 없었다.


손에는 차갑고 축축한 모래사장이 만져졌다. 귀에는 찬 바람이 불어오는 파도소리가 몰아쳤다.


피얄라르는 순간 이곳이 어디인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다음순간 달빛을 등지고 거인이 몸을 돌렸고, 그 모습에서 피얄라르는 저도모르게 숨을 삼키며 십여년동안 잊고있었던 이름을 뱉었다.


"에리노스?"


피얄라르가 물었다. 거인은 웃었다.


"역시 너희들이 어머니와 아버지를 죽였군."


거인이 말했다. 그리고 두 난쟁이들을 덥썩 쥐더니 밤바다로 걸어들어가기 시작했다.


바다는 고요했고, 파도소리와 거인의 거대한 몸체가 바다를 가르는 소리, 난쟁이들이 흐느끼며 애원하는 소리만이 들렸다.


거인은 자신의 허리춤에 바다가 차오를때까지 걸었고, 수면위에 떠올라있는 작은 산호초섬 위에 난쟁이들을 올려놓았다.


난쟁이들조차 서로를 껴안고 간신히 서있을 수 있을만한 조그만 섬 앞에서, 거인은 두 난쟁이들을 노려보며 말했다.


"내 이름은 주퉁, 길링과 에리노스의 첫째아들이다."


거인이 말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그날 이후로 집에 돌아오지 않았어. 나는 한달이나 어린 동생들과 함께 기다리다가 주인없는 땅에 쳐들어온 거인들을 피해 간신히 달아났지. 그 뒤로 우리는 다른 거인들과 신들에게 몇번이나 죽임당할뻔하며 살아남았다. 오년동안 우리 형제들은 살아남았고, 또 오년동안 나는 그날 부모님에게 일어난 일을 알아내기위해 찾아다녔지."


주퉁은 그가 서있는 바다를 둘러보았다.


피얄라르의 눈에도 그것이 바로 어제일처럼 보였다. 이 바다에서 이야기를 읊던 길링이 빠져죽었고, 이 바다가 피묻은 에리노스의 시체를 삼켰다. 그것이 바로 방금 일어난 일처럼 난쟁이의 등골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차가운 파도방울이 발에 튀며, 난쟁이들은 산호초를 시시각각 타고오르는 수면에 경악했다.


"그건 사고였어."


피얄라르가 덜덜 떨며 말했다.


"제발, 살려다오. 우린 네 부모님의 친구였어. 두사람이 죽은건 사고였어. 내 목숨에 걸고 맹세해."


갈라르가 말했다. 주퉁은 차가운 눈으로 난쟁이들을 내려다보았다.


"내 부모들은 이 바다에서 죽었어."


거인이 말했다.


"그 살인자들도 이 바다에 묻는것이 맞겠지."


주퉁이 말하고, 다시 해안가로 가기위해 몸을 돌렸다.


"잠깐, 제발!"


피얄라르가 소리쳤다.







***







"제발 살려줘! 우리가 잘못했어. 우리에겐 막대한 금은보화가 있어. 그걸 가지고 우릴 살려줘."


난쟁이들이 애원했다.


거인은 코웃음을 쳤다.


"나에겐 이미 동생들을 먹여살릴만한 산과 땅이 있어. 너희들의 더러운 금은 필요없어."


주퉁은 파도를 헤치고 육지를 향해 걸었다. 난쟁이들은 욕설을 하고 비명을 지르며 애원했다.


"꿀술! 우리의 꿀술을 줄게!"


피얄라르가 소리쳤다. 거인이 발을 멈췄다. 피얄라르는 황급히 말했다.


"이야기꾼을 만들어주는 꿀술이 있어. 너도 들어봤겠지? 이건 황금이나 보석들과는 비교할수도 없어. 한방울만 마셔도 혀 끝에 가장 아름다운 시와 선율이 고이는 마법의 꿀술이야. 수많은 인간세계의 왕들과 영웅들이 이 꿀술을 찾았지. 이게 있으면 너와 네 가족들은 그 어떤 황금보다 부유해질거야."


피얄라르가 말했다.


주퉁은 피얄라르를 돌아보았다.


... 그의 얼굴에 천천히 미소가 떠오른다.












"... 그래서 크바시르의 꿀술을 난쟁이들의 배라고 부르게 된거야."


프레이야가 말한다.


이야기를 듣고있던 프레이의 얼굴에 그제야 아-- 하는 경탄이 떠오른다.


"그게 난쟁이들을 그 산호초섬에서 구했으니까."


로키가 말한다.


프레이는 긴 이야기에 고개를 절레절레 젓다가--- 눈을 깜박인다.


"잠깐, 그럼 오비텔른은 지금 그걸 나한테 구해오라고 한거야? 거인 길링이 가져갔다는 그 꿀술을?"


프레이가 묻는다.


"길링은 요툰하임 동쪽에서 가장 사납고 큰 거인이잖아. 소문으로는 길링이 죽인 인간들로 사흘마다 강이 붉게 물든다던데? 그 길링 말이야?"


프레이가 말하고, 프레이야와 로키는 서로 시선을 교환한다.


"... 그러게 사고를 치지 말았어야지."


로키가 말하고, 프레이는 비명을 지른다.


동생의 품위없는 행동에 손으로 관자놀이를 짚은 프레이야가 고개를 돌린다. 저게 내 동생이라니 수만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믿기지가 않는다.


"어쩔건데? 오비딜리아의 창에 꿰여 죽으나 수십미터 거인에게 밟혀 죽으나 그게 그거 아니야? 그럴거면 오비딜리아 쪽이 차라리 자비롭겠지."


프레이가 말한다. 프레이야는 동생을 향해 눈을 흘기고, 어쩔 수 없이 로키를 돌아본다. 로키는 어꺠를 으쓱인다.


"나는 주로 남들을 구렁텅이에 빠뜨리는 쪽이지, 건져주는 쪽은 아니야."


로키가 말한다.


프레이는 이미 로키가 말을 끝내기도 전에 로키의 치맛자락을 붙들고 간절한 눈으로 로키를 올려다보고있다.


그 눈망울이 아주 천년묵은 강아지같아서, 로키는 저도모르게 헛웃음을 친다.


로키는 프레이와 프레이야가 태어날 때부터 이 쌍둥이 남매를 지켜보았었다.


바다의 신 뇨르드의 거품에서 거대한 산호초가 솟아났고, 그 양 끝에는 갓 태어난 풍요의 신 프레이와, 미와 사랑의 신 프레이야가 눈을 뜨고있었다.


로키는 모든 신들을 증오하기로 했었다. 그러나 처음 발을 떼고 아장아장 자신에게 걸어오는 프레이와 프레이야를 보았을때, 그 결심을 지키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 하지만 다행히 우린 그런 일에 최적인 사람을 한명 알고있지."


로키가 말한다.


프레이는 간절한 눈빛으로 로키를 올려다본다.


로키는 턱끝으로 그들이 막 헤치고 나온 숲 반대편의 풍경을 가리킨다. 프레이는 눈물을 훔치고 그쪽을 돌아본다.


경계와 크기를 무색하게하는 신들의 세계에서 가장 커다란 궁전,


하늘과 끝을 맞닿아 잇는 크고 아름다운 흰 기둥들이 수없이 지상에서 하늘까지 치솟아있는, 보는것만으로도 압도되는 어마어마한 전경 그자체인 하나의 왕국,


오딘의 궁전인 발홀의 거대한 전경이 펼쳐진다.


"모든것을 알고있는 최고신에게 물으면 알겠지."


로키가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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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이야기꾼을 만들어주는 꿀술 이야기(6) 21.08.22 22 1 13쪽
20 이야기꾼을 만들어주는 꿀술 이야기(5) 21.08.19 45 2 12쪽
» 이야기꾼을 만들어주는 꿀술 이야기(4) 21.06.15 49 2 12쪽
18 이야기꾼을 만들어주는 꿀술 이야기(3) 21.06.12 40 2 13쪽
17 이야기꾼을 만들어주는 꿀술 이야기(2) 21.06.09 41 2 12쪽
16 이야기꾼을 만들어주는 꿀술 이야기(1) 21.05.31 61 2 12쪽
15 벽돌 쌓는 거인 (4) 21.05.24 45 2 11쪽
14 벽돌 쌓는 거인 (3) 21.05.23 60 2 10쪽
13 벽돌 쌓는 거인 (2) 21.05.12 51 2 16쪽
12 벽돌 쌓는 거인 (1) 21.05.09 57 2 12쪽
11 니다벨리르와 시프의 머리카락 10 21.03.21 69 2 14쪽
10 니다벨리르와 시프의 머리카락 9 21.03.21 52 2 10쪽
9 니다벨리르와 시프의 머리카락 8 21.03.21 51 2 11쪽
8 니다벨리르와 시프의 머리카락 7 21.03.21 53 2 13쪽
7 니다벨리르와 시프의 머리카락 6 21.03.21 48 2 19쪽
6 니다벨리르와 시프의 머리카락 5 21.03.20 63 2 16쪽
5 니다벨리르와 시프의 머리카락 4 21.03.20 68 1 17쪽
4 니다벨리르와 시프의 머리카락 3 21.03.20 66 2 13쪽
3 니다벨리르와 시프의 머리카락 2 21.03.18 79 2 14쪽
2 니다벨리르와 시프의 머리카락 1 21.03.17 101 2 12쪽
1 토르와 로키 21.03.17 242 3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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