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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승달

황금사과를 문 뱀과 최후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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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승달
작품등록일 :
2021.03.17 22:34
최근연재일 :
2021.12.06 15:09
연재수 :
51 회
조회수 :
3,000
추천수 :
72
글자수 :
187,815

작성
21.06.09 23:39
조회
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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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글자
12쪽

이야기꾼을 만들어주는 꿀술 이야기(2)

DUMMY

오딘은 손 안에 쥔 황금동전을 위로 던졌다가, 다시 받는다.


흰 발코니 위의 아름다운 금발의 어린 소년의 손끝에서 반짝이는 금빛 물체를, 난간에 앉은 검은옷을 입은 두 소년들이 눈을 반짝이는채 보고있었다. 얼핏보면 높은 난간끝에 앉은 어린아이들의 모습이 위태로워 보일법도 하건만, 잔을 들고 안으로 걸어들어오던 시프도 그들을 힐끔 보기만 할 뿐 별말없이 다가와 난간에 기대어 선다.


"그래서 가만히 손놓고 있을거야?"


시프가 묻는다.


"뭘?"


오딘이 묻는다. 오딘이 열네살이 채 되어보이지않는 어린 소년의 모습을 하고있었기 때문에, 그의 뒤의 난간에 기대어 선 시프의 모습은 얼핏보면 어린 아들에게 묻는 어머니같다.

그것을 너무도 잘 아는 시프는 다시금 고개를 절레절레 저은뒤, 남편의 아름다운 금발의 뒤통수를 내려다본다.


"모르는척 하지마. 하이텔른 가문의 막내딸이 죽어간다는 소식을 이미 들었잖아? 그 가문의 현재 수장은 오비텔른이고, 그 아내 오비딜리아는 더더욱 무시무시하지. 프레이가 날고긴다고해도, 두 사람의 손에 들어간다면 무사하지 못할거야. 오비딜리아의 창끝은 재미삼아 볼만한게 아니니까."


시프가 말하고, 오딘은 어깨를 으쓱인다. 창술의 대가인 오비딜리아의 명성은 요정들 뿐 아니라 아스가르드의 주신들에게도 유명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 창끝을 다루는 오비딜리아의 매서운 성정도.


"오비텔른이 프레이를 만났어."


오딘이 말한다.


방금전까지는 모른척하더니, 역시 자신보다 많은 이야기를 알고있는 오딘에 시프는 가늘게 눈을 흘긴다.


"그래서? 벌써 프레이의 목이 떨어졌나?"


시프가 묻는다.


"오비텔른은 프레이의 목을 잘라갈 정당한 권리를 난쟁이들의 배와 맞바꾸자고 제안했다더군."


오딘이 말한다. 그 말에 시프의 얼굴이 찡그려진다.


"난쟁이들의 배? ... 아니, 그걸 프레이가 알아들었을까?"


오딘은 여전히 난간위에서 서로 발장난을 하며 아래의 까마득한 풍경을 내려다보고있는 두 아이들을 힐끔 본다.


"아니, 들리는 바에 따르면 프레이와 같이 있는 두 사람이 프레이에게 그게 뭔지 알려줬다던데."


오딘의 말에 시프는 알만하다는듯이 고개를 끄덕인다. 프레이가 난쟁이들의 배가 무엇인지 알거라는 기대는 없고, 절박해진 프레이가 찾아갔을 두 사람이라는건 아마도 그의 누이와 그가 졸졸 쫓아다니던 장난의 신이겠지.


"... 프레이가 죽으면 뇨르드가 가만있지 않을거야."


시프가 말한다. 손에 든 금잔을 홀짝이고, 잠시 뜸을 들인 뒤에 시프는 오딘을 힐끗 본다.


"저번에 뇨르드가 자식을 잃었을 때 무슨일이 일어났었는지는 알지?"


오딘은 눈을 감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알지."


열두번째의 대홍수. 인간계를 휩쓴 대홍수라면 지긋지긋하게 보아온 아스가르드에서도 그 홍수는 지겹게 기억하고 있었다. 그 홍수는 실제로 이천년이 넘게 지속되었고, 그동안 신들과 요정들, 난쟁이들은 너나할것없이 자신들의 세계에 갇혀 옴싹달싹하지 못하는 몸이 되어있었으니까.


... 육지를 뒤엎고 인간들의 세계를 덮치는 열세번째 대홍수는 라그나로크의 대전장에서 요르문간드가 그 거대한 몸을 이끌고 땅을 덮칠때 일어나지만, 그 이야기는 다음번에 하도록하자.


제아무리 대멸망 이전까지 영속하는 신들의 삶일지라도, 참기어려운 지루함은 견디기 힘든법이다. 신들과 열두세계는 열두번째의 대홍수 이후로 뇨르드를 건드릴만한 일은 다시 없게하자고 엄중히 서약했고, 따라서 프레이야와 프레이 형제들은 최고위 바니르 신족들이 가질 수 있는 안전 그 이상의 것을 보장받았다.


그럼에도 하이텔른 가문의 분노가 프레이를 향했을때, 시프는 물론 오딘조차도 감히 열두세계의 서약이 프레이를 지켜줄 수 있을지는 확신할 수 없는것이다.


"프레이가 어디있는지 확인해야하지 않겠어?"


시프가 두 아이들을 힐끗 보며 오딘에게 묻고, 오딘은 고개를 젓는다.


"괜찮아. 그 아이들이 나를 찾아올거야. 지금은 물건이 몇개 필요한데."


오딘은 의자위에서 일어나서 난간위의 두 아이들을 본다. 한명은 머리가 짧은 여자아이이고, 하나는 머리가 긴 남자아이다. 둘다 빛조차 반사되지않는 새까만 눈동자에, 장난기가 가득하면서도 묘하게 속을 알 수 없는 표정을 하고있다.


"튼튼한 낫 한개와 가장 잘 드는 숫돌이 필요해."


오딘이 아이들에게 말하고, 아이들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앉아있던 난간 위로 훌쩍 올라선다.


"더 필요한건 없어요, 아버지?"


검은머리의 여자아이가 묻고, 남자아이가 자신의 발을 걸어 넘어뜨리려는 장난을 치자 팔꿈치로 남자아이의 옆구리를 찌른다.


"아, 단단한 천공기도 필요해."


오딘이 말하고, 여자애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뒤를 돌아서며 망설임없이 난간 아래로 폴짝 뛰어내린다. 공중에서 깃털이 솟구치는 소리가 나고, 다음순간 두 검은옷의 아이들은 한쌍의 까마귀가 되어 벌써 발홀의 정원을 저만치 가로지르고있다.


"후긴과 무닌이 돌아오면 손님들을 맞을 준비를 해."


오딘이 말한다.


이미 미래를 보는 최고신의 행태에 익숙해진 시프는 그러냐는듯이 어깨를 으쓱이며 어깨위의 숄을 쥔채 발코니를 나선다.


오딘은 두 까마귀들이 날아간 발홀 너머의 먼 하늘을 본다.


곧 손님들이 부탁을 하러 그의 궁전으로 찾아올 것이다.


그리고 오딘은 그 손님들을 기쁘게 맞이할 준비가 되어있었다.






***







"그러니까 난쟁이들의 배가 난쟁이들이 만든 배가 아니라고?"


프레이가 묻는다.


그들은 오딘을 보러 가는 길이었다. 로키는 내내 자신이 왜 끌려가야하는지 모르겠다고 투덜댔고 프레이는 로키에게 매달려 제발 한번만 살려달라고 애원했다.


프레이야는 로키가 남아있는 이유가 프레이의 사정을 불쌍하게 여겨서라거나, 수천년동안 나름대로의 동료처럼 지내왔던 희미한 우정때문이 아님을 알았다. 로키는 프레이가 구구절절하게 자신에게 비는것을 즐기고 있었다.


'정말 성격 나쁘단 말이지.'


프레이야는 생각하지만, 곧 자신의 성격을 떠올리곤 어깨를 으쓱이며 두사람을 따라간다.


날은 화창하고 아름다움의 여신과 풍요의 신이 밟는 길마다 화창한 황금빛 햇살이 눈부시게 쏟아졌다.


"정확히는 신들이 만든 배지."


로키가 대답한다. 프레이는 로키를 쳐다본다.


"우리가 만들었다고? 나는 그런걸 만든 기억이 없는데?"


동생의 순진무구한 대답에 프레이야는 지나가던 나무의 가지를 딱 꺾는다. 프레이는 어릴때처럼 누나가 물푸레가지를 꺾어 자신을 쫓아오지 않을까 걱정하는 눈으로 슬쩍 뒤로 몸을 뺐다.


"그때 너는 없었으니까. 난쟁이들의 배를 만든건 태초신들과 주신들이었거든."


로키가 말한다. 프레이는 더욱 알쏭달쏭한 표정을 짓는다.


"내가 없었을때?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만들어진 배란 말이야?"


프레이가 묻고, 프레이야는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젓는다.


"이야기는 태초로 거슬러간단다, 동생아. 바니르 신족과 에시르 신족이 전쟁을 하던 시기였지."


"그땐 너도 없었잖아. 나랑 쌍둥이면서."


프레이가 말하고, 기어코 나뭇가지로 정수리를 맞는다. 백팔십이 넘는 장신의 남신의 정수리를 정확하게 가격한 프레이야의 재주에 감탄하며 로키는 깔깔 웃는다.


"역사 상식이라는거란다, 동생아. 상식이라고."


프레이야가 말한다. 프레이는 자신의 머리를 부여잡고 끙 소리를 낸다.


"아, 그래서 둘이 싸웠었다고? 우린 바니르 신족이지만 지금 아스가르드에서 살고있잖아. 그럼 결국 사이가 좋아졌단거네? 그냥 가볍게 싸운거 아냐?"


프레이가 말한다. 로키는 고개를 젓는다.


"전쟁이었어. 요툰헤임의 거대한 눈들과 무스펠하임의 불의 격랑들이 두려움에 떨 정도로. 신들의 피가 흘러넘쳐 이그드라실의 뿌리를 적시고 매일 새로운 별들이 추락할 정도로."


로키가 말한다. 순간 프레이와 프레이야가 조용해진다.


"... 너 마치 본것처럼 말한다?"


한참뒤의 정적 끝에 프레이가 묻고, 로키는 어깨를 으쓱인다.


"어쩌면 정말 봤을지도 모르지."


프레이의 잘생긴 눈이 휘둥그레진다.


"진짜??"


"어쩌면 내가 또 거짓말을 하고있을지도 모르고."


로키가 말한다.


프레이는 눈을 가늘게 뜨고 로키를 바라보고, 로키는 씩 웃는다. 프레이야는 조용히 그녀의 옆얼굴을 보고있다.


"전쟁은 길었지만 결국 끝이 났어. 우일리가 바니르 신족과 에시르 신족들의 중재자로 나섰고 태고의 양대 신들은 다시는 서로의 피로 자신의 무기를 적시지 않겠다는 맹약을 한 뒤 우일리가 내민 술통에 침을 뱉었어. 비에가 아우둠라가 녹였던 얼음을 저었던 스푼으로 술통을 저었고 미미르가 그 술통에 손을 넣어 인간을 빚어냈지."


로키가 프레이를 보며 말한다.


"그 인간의 이름은 크바시르였어."





***






난쟁이들이 사는 스바르트알프하임에서 떨어진곳, 난쟁이들의 세계보다는 불꽃의 세계인 무스펠에 가까운곳에, 추방당한 난쟁이들이 살고있었다. 그들은 죄를 짓고 쫓겨난 빛의 요정들과 어둠의 난쟁이들이었다. 본래의 세계에서 쫓겨났지만, 어두운 마법을 사용하는 물건을 제작하길 원하는 사람들의 의뢰를 받아 원래라면 만들수도, 만들어서도 안되는 물건들을 팔았다.


구불구불하게 이어지는 그 더러운 골목길의 가장 안쪽, 가장 위험하고 가장 정체를 알 수 없는 손님들이 드나드는 가게에는 어둠의 요정인 피얄라르와 갈라르 형제가 살았다.


갈라르의 얼굴을 처음 보는 사람들 중 놀라지않는 이는 없다. 어둠의 난쟁이의 얼굴 반쪽은 끔찍한 화상에 일그러져 있었다. 그는 낮의 신이자 불꽃의 신인 다그의 백염의 목걸이를 훔치려다 발각되어 신의 진노를 얼굴에 맞았다. 바나하임의 변두리에서 죽어가던 난쟁이를 발견하고 살핀것은 거인 에리노스였다. 남편과 아이들을 위한 과일을 따러 돌아다니던 에리노스는 죽어가던 낯선 난쟁이를 지나치지못하고 집에 데려와 살펴주었다.


난쟁이가 눈을 떴을때, 그는 따뜻한 모닥불과 맛있는 음식냄새가 가득한 집의 침대에 누워있었다. 그는 거듭 자신을 거두어준 에리노스와 자신을 지붕 아래 허락해준 그의 남편 길링에게 감사했다.


요정 갈라르가 은혜를 잊지 않겠다고 말하며 감사인사를 표하고 그 집 문간을 나섰을 때에는 길링과 그의 가족들이 챙겨준 음식바구니와 에리노스에 대한 연모를 가슴에 품은 채였다.


갈라르는 약삭빠르고 손익의 계산에 밝은 난쟁이였다. 강한 자 앞에서 웅크리고 어떻게 자신보다 더 약한자를 짓밟아야 하는지도 알았다. 그는 결혼하여 행복한 가정의 품에 있는 에리노스가 신의 진노를 사고 반불구가 된 난쟁이의 마음을 받아줄리 없다는것을 알고있었고, 그래서 조용히 때를 기다렸다. 그때가 언제가 될지는 갈라르도 몰랐지만, 거인 여자에 대한 난쟁이의 어두운 욕망은 끊임없이 타오르고 있었다.


그렇게 수십년의 세월이 흐르고, 재료로 쓸 철을 구하러 옆 마을에 갔던 피얄라르는 요즘 인간들의 세계를 떠들썩하게 만들고있는 어떤 인간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모든 신들의 지혜속에서 태어나 모든 신들의 지혜를 세치 혀의 말로 풀어낼 수 있는, 크바시르라는 인간에 대한 이야기였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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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이야기꾼을 만들어주는 꿀술 이야기(3) 21.06.12 40 2 13쪽
» 이야기꾼을 만들어주는 꿀술 이야기(2) 21.06.09 41 2 12쪽
16 이야기꾼을 만들어주는 꿀술 이야기(1) 21.05.31 61 2 12쪽
15 벽돌 쌓는 거인 (4) 21.05.24 45 2 11쪽
14 벽돌 쌓는 거인 (3) 21.05.23 60 2 10쪽
13 벽돌 쌓는 거인 (2) 21.05.12 51 2 16쪽
12 벽돌 쌓는 거인 (1) 21.05.09 57 2 12쪽
11 니다벨리르와 시프의 머리카락 10 21.03.21 69 2 14쪽
10 니다벨리르와 시프의 머리카락 9 21.03.21 52 2 10쪽
9 니다벨리르와 시프의 머리카락 8 21.03.21 51 2 11쪽
8 니다벨리르와 시프의 머리카락 7 21.03.21 53 2 13쪽
7 니다벨리르와 시프의 머리카락 6 21.03.21 48 2 19쪽
6 니다벨리르와 시프의 머리카락 5 21.03.20 63 2 16쪽
5 니다벨리르와 시프의 머리카락 4 21.03.20 68 1 17쪽
4 니다벨리르와 시프의 머리카락 3 21.03.20 66 2 13쪽
3 니다벨리르와 시프의 머리카락 2 21.03.18 79 2 14쪽
2 니다벨리르와 시프의 머리카락 1 21.03.17 101 2 12쪽
1 토르와 로키 21.03.17 242 3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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