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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승달

황금사과를 문 뱀과 최후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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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승달
작품등록일 :
2021.03.17 22:34
최근연재일 :
2021.12.06 15:09
연재수 :
51 회
조회수 :
3,004
추천수 :
72
글자수 :
187,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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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5.23 2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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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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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벽돌 쌓는 거인 (3)

DUMMY

"이 도시는 아름답습니다. 아베스크가트르드처럼요."


토르는 로키의 뒷모습을 본다.


아홉세계의 가장 험준한 계곡과 가장 위험한 지평선을 건너본 토르로서도 그 이름은 처음 듣는것이다.


하지만 그 이름을 들었을 때의 로키의 표정은. 로키의 얼굴은.


".... ...."


뒤돌아선 토르는 눈을 깜박인다.


맞은편에는 발드르가 서있다.


발드르는 로키를 바라보다, 천천히 고개를 돌려 토르와 눈을 마주친다.


토르는 숨을 멈춘다.


발드르는 손을 들어올려 검지 끝을 천천히 자신의 입술에 갖다댄다.


시리도록 새파랗게 빛나는 하늘 아래로 발드르의 눈이 빛나고있다.
















가장 가벼운 풀잎조차도 신들의 입술보다는 가볍지 않다.


그런 신들의 입들이 아스가르드의 바람을 타고 새로운 이야기를 속삭이고 있었다. 이둔의 사과가 전해주는 불멸로 신들은 노화와 질병, 죽음으로부터 자유로웠기에 그 대가로 영원히 지속되는 지루함을 얻었다. 가장 호응이 좋은 벌이는 험담이었으며 가장 환호받는 이야기는 치정과 애정에 관한 이야기였다. 그 주인공이 유명하고 강력한 상대일수록 이야기는 더욱 인기를 얻었으며, 그런 의미에서 이번 소문은 꽤나 열렬한 환호를 얻었다.


"로키가 사랑에 빠졌다고?"


울레르가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그는 자신의 샌들끈을 고쳐신으며 알프하임 끄트머리의 풀요정들이 꼬아준 신발을 신고 언덕을 한 걸음에 뛰어넘을 수 있는지 시험해보는 중이었다.


"아서라. 그 악독한게?"


그랬다. 로키는 악독했기에 신들은 그 소문을 믿지 않으면서도 누구보다 그 소문의 진위여부에 대해 토론하기를 좋아했다.


로키가 해와 달과 아스가르드의 가장 아름다운 여신을 놓고 석공과 내기를 벌였다는 이야기는 이미 아홉세계에 퍼져있었다. 서리거인들조차 그들이 증오하는 신들의 도시를 감쌀 강력하고 높은 성벽의 존재보다도 그 이면에 놓인 내기와 거짓의 신에 대한 이야기에 더욱 정신이 팔려있었다.


로키는 강력하지 않았지만 누구도 적으로 돌리고 싶지 않아했고, 그 누구의 우군도 아니었지만 가장 강력한 존재들이라도 섣불리 적으로 만들고 싶어하지 않는 존재였다.


그런 존재는 어딜가든 불협화음을 만들어내고, 신들은 그들의 완벽한 세계에 나있는 흠집을 못견뎌하는척 하면서도 사실 누구보다 애타게 기다리고 있는 존재들이다. 로키가 에시르와 바니르 신족들을 통틀어 그들의 세계에서 지금껏 번성하는 모습이 그 증거가 되리라.


"... 아무튼 말도안되는 소리야."


발리가 말했다. 그는 용감한 소년으로, 싸움에서 승리할 때마다 작은 매듭을 꼬아 옷깃에 달았다. 언젠가 그는 자신의 옷깃을 매듭들로 채우겠다고 선언하고 다녔으며, 그의 형제인 비다르는 그런 발리를 장래희망이 수많은 매듭들로 뭉쳐진 거대한 양이라고 말했다.


"당연한 얘기지. 내기 때문이잖아."


울레르가 말했다.


"성벽을 지으면 로키는 오딘과 최고신들에게 왜 아스가르드가 정체모를 석공 한명에게 해와 달과 프레이야를 빼앗겼는지 설명해야해. 그리고 그 설명조차 필요없겠지. 프레이야는 자기가 뱉은 말을 지키는 여자니까."


그 말에 발리는 잠시 몸을 부르르 떨었다. 가장 아름다운 여신이 화가 나면 무슨일이 벌어질 수 있는지 아는듯한 모습이었다.


"그렇지 않아, 발드르?"


울레르의 말에 발리와 다른 신들은 나무옆에 기대어 서있던 발드르를 바라보았다.


가장 아름다운 신, 아스가르드의 가장 빛나는 신은 나무에 기대어있다가 고개를 으쓱인다.


"석공은 무슨 생각일까?"


발드르가 묻는다. 발리는 눈을 깜박인다.


"어?"


발드르는 팔짱을 낀 채로 고개를 기웃인다.


"저 석공은 아스가르드의 신들과 오딘을 상대로 가장 중요한 천체 두개와 가장 사랑받는 여신을 내기로 걸게하는데 성공했어. 그리고 우리 위에 그림자를 드리우고있는 저 성벽을 보면 지금까지는 그 내기에서도 거의 성공하는것처럼 보이는 셈이지."


발드르가 말한다.


"그런 자가 우리가 모두 뻔히 예상하고 있는 로키의 속셈을 모를까? 그런자가 그렇게 멍청할까?"


빛의 신의 말에 신들은 모두가 서로의 얼굴을 돌아본다.


"그럼 무슨소린데요?"


비다르가 묻는다.


"석공이 알면서 멍청하게 구는건지, 아니면 석공을 멍청하게 만든 사람이 있는건지 궁금하다는 소리야. 그리고 그런 사람이 있다면,"


발디르는 말을 멈춘다. 비다르와 발리는 궁금한 얼굴로 남신을 본다.


"있다면?"


발디르는 미소짓고, 나무에서 몸을 떼어 우거진 잎사귀 사이의 사과를 따서 반대편으로 걸어가버린다.


"있다면 뭐??"


울레르가 억울한 표정으로 비다르 형제를 돌아보지만, 어린 형제들이라고 빛의 신의 심중을 알 리는 없다.

빛의 신이 있었던 자리를 아쉬워하는 신들을 뒤로하고, 발리는 다시 일하고있는 석공이 있는 성벽위를 올려다본다.

가끔 발디르는 묘한 소리를 한단 말이지.










발디르는 손에 쥔 푸른 사과를 공중으로 던졌다 받으며 걸어간다.


'... 그리고 그런 사람이 있다면,'


발디르는 생각한다.


'... 내가 그걸 말릴만큼 좋은사람인지도 궁금하다는 소리고.'


발디르는 그 말은 뱉지 않았다.


로키가 석공에게 준 한 계절의 시간은 빠르게 지나가고 있었다. 신들의 수군거림과는 다르게, 로키와 무엇을 하고있든 석공과 그의 말은 빠르게 성벽을 완성시켜나가고 있었다.


이제 보름.







***






석공이 약속한 한 계절의 마지막 날의 해가 떠올랐다.


신들은 이제 모두 언덕위에 올라 성벽을 내려다보고있었다. 완공에 다가서는 성벽의 모습은 신들의 눈에도 압도적이다. 아스가르드를 감싸는 흰 성벽은 마치 땅 위로 그 일부만 드러난 거대한 물고기의 비늘같다.


신들은 그 앞에 모여 성벽을 올려다보고있다.


"이러다 정말 완공되는거 아냐?"


누군가 물었다.


"우리 해와 달을 빼앗긴다고?"


"프레이야는?"


시푸른 새벽 하늘이 제 색을 찾기도 전부터 신들의 물음이 공기를 가득 채웠다. 그 와중에도 성벽은 계속 올라가고 있었다.


정오가 되었을 때, 성벽은 오직 북쪽성벽의 마지막 부분만을 남겨두고 있었다. 신들은 이제 해와 달, 그리고 그들의 아스가르드를 밝혀줄 프레이야 없이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토론하고 있었다.


"뭘 하고있는거야?"


뇨르드가 물었고, 토르를 비롯한 신들은 바다의 신을 돌아보았다.


"삼촌은 바다의 신이라서 해와 달의 부재가 우리만큼 신경쓰이지 않을지도 모르죠."


발리가 말했다.


"하지만 프레이야가 없으면 아스가르드는 절대 예전같지 않을걸요."


"하지만 석공이 건설을 멈췄는걸."


뇨르드가 말했다. 토르는 눈썹을 올렸다.


"그게 무슨소리야?"


그리고 신들은 성벽을 돌아보았다. 놀랍게도, 뇨르드의 말이 맞았다. 성벽은 얼핏 거의 완성된것 같아 보였지만, 마지막 세 줄이 완성되지 않은채 멈춰있었다. 토르는 문득 성벽이 몇시간 째 그 모습이라는 것을 상기했다. 토르의 눈이 재빨리 성벽위와 숲을 훑었다. 천둥의 신의 눈이 석공을 찾은것과 석공의 목소리가 온 아스가르드를 쩌렁쩌렁 울린것은 거의 동시의 일이었다.


"스바딜파리!"


석공이 소리쳤다. 토르마저 부러워할만한 엄청난 목소리였다. 그러나 주인의 낮은 목소리에도 번개처럼 달려오던 명마는 보이지 않았다.


"스바딜파리!"


석공이 다시 소리쳤다. 몇몇 신들은 그 외침소리에 석공이 제가 쌓아올린 성벽이 무너지겠다며 시시껄렁한 농담을 던졌다. 하지만 토르는 석공의 목소리에 피가 맺혀있는것을 들었다.


말이 아침에 달려나갔던 성벽앞의 숲은 쥐죽은듯 고요했다. 그 숲을 관통하는것같은 석공의 외침소리가 이어질수록, 신들은 머뭇거리며 웃다가, 낄낄대다가, 점점 웃음소리가 커지기 시작했다. 마침내 그 웃음소리는 석공의 외침마저 덮어버릴만큼 거대한 파도가 되었다.


"로키가 성공한 모양이야."


영광의 신 울뤼르가 말했다. 어느새 해는 저물어가고, 말은 돌아오지 않았다. 말이 가져오는 산더미같은 바위와 풀, 아교를 만들 진흙 없이 석공은 아침보다 겨우 한줄도 채 더 올라가지 못했다.


석공은 자신의 눈앞에 떨어지는 궁니르의 하얀 가지 끝을 보았다.


신들은 그를 그가 쌓은 성벽 앞에 무릎꿇렸다. 오딘이 그 앞에 섰으며 그가 완성하지 못한 성벽의 머리위로 아스가르드의 별들이 눈부시게 반짝였다.


"... 내가 졌습니다."


석공 에탄바르가 말했다. 신들은 낄낄대며 웃었다. 오딘은 웃는것도 찡그린것도 아닌 묘한 표정을 지은채 석공을 내려다보았다. 시프가 그의 옆에 서 있었다. 토르는 어머니의 얼굴을 보고있었다. 시프는 넌더리가 난다는 표정이었다.


"성벽은 나의 최고의 실력을 발휘하여 지었습니다. 마지막 돌은 내 아들이 올려 완성하게 해주십시오."


석공이 오딘을 보며 말했고, 오딘은 고개를 옆으로 기웃였다. 그 신호에 따라 토르는 망치를 들어올렸다.


로키의 속임수에 넘어간 또 다른 멍청이의 결말이었다. 석공의 머리가 부서지고, 그 자리에 거대한 거인의 시체가 나타났을때 몇몇 신들은 놀랐지만 토르는 놀라지 않았다.


이미 알고있어서 놀라지 않은것이 아니라, 상황에 익숙한 것일 뿐이었다.


너라면 이미 이 석공이 서리거인인것을 알고있었겠지. 토르는 무던히 생각했다.


로키가 자신이 빚어낸 승전보의 축가를 부르며 신들의 얼굴에 자신의 영리함을 자랑하러 나타나지 않는다는것은 조금 이상한 일이었다. 로키의 꾀로 신들이 승리할때마다 로키는 그 사실을 신들이 절대 잊지 못하게했고, 신들은 조금은 귀찮고 조금은 경탄하는 마음으로 그 요란한 자축을 거들었던 것이다.


그러나 로키는 하루종일 보이지 않았다. 석공의 비참한 비명이 아스가르드와 온 숲을 쩌렁쩌렁 울렸을 때에도.


로키는 어디로 간 것인가?


토르는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그와 함께 궁금해했던 다른 신들과 마찬가지로, 신들 사이를 걸어오는 로키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로키의 얼굴은 새파란 분노로 하얗게 질려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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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이야기꾼을 만들어주는 꿀술 이야기(2) 21.06.09 41 2 12쪽
16 이야기꾼을 만들어주는 꿀술 이야기(1) 21.05.31 61 2 12쪽
15 벽돌 쌓는 거인 (4) 21.05.24 45 2 11쪽
» 벽돌 쌓는 거인 (3) 21.05.23 61 2 10쪽
13 벽돌 쌓는 거인 (2) 21.05.12 51 2 16쪽
12 벽돌 쌓는 거인 (1) 21.05.09 58 2 12쪽
11 니다벨리르와 시프의 머리카락 10 21.03.21 69 2 14쪽
10 니다벨리르와 시프의 머리카락 9 21.03.21 52 2 10쪽
9 니다벨리르와 시프의 머리카락 8 21.03.21 51 2 11쪽
8 니다벨리르와 시프의 머리카락 7 21.03.21 53 2 13쪽
7 니다벨리르와 시프의 머리카락 6 21.03.21 48 2 19쪽
6 니다벨리르와 시프의 머리카락 5 21.03.20 63 2 16쪽
5 니다벨리르와 시프의 머리카락 4 21.03.20 68 1 17쪽
4 니다벨리르와 시프의 머리카락 3 21.03.20 66 2 13쪽
3 니다벨리르와 시프의 머리카락 2 21.03.18 79 2 14쪽
2 니다벨리르와 시프의 머리카락 1 21.03.17 101 2 12쪽
1 토르와 로키 21.03.17 242 3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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