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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승달

황금사과를 문 뱀과 최후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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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승달
작품등록일 :
2021.03.17 22:34
최근연재일 :
2021.12.06 15:09
연재수 :
5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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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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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
글자수 :
187,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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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5.09 2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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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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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벽돌 쌓는 거인 (1)

DUMMY

“뭘 보고 있어?"


프레이야가 물었다. 그들은 아스가르드를 감싸는 오랜 성벽을 내려다 볼 수 있는 구릉 위에 서있었다. 미의 여신의 아름다운 금발은 아직 검푸른 새벽하늘 빛에 마치 날을 감춘 비수처럼 조용히 물결쳤다. 로키는 어깨를 으쓱였다.


“... 성벽을 보고있네."


로키가 대답했다. 그 말에 잠시 의아한듯 얼굴을 찡그린 프레이야는 곧 로키가 성벽 아래에 선 오딘을 보고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어깨를 으쓱였다. 20대 초반의 어린 외모를 유지하고 있는 최고신의 모습에 프레이야는 코웃음을 쳤다.


“무슨 악취미람."


프레이야가 말했고, 로키는 바로 알아들었다. 태초수이자 생명수인 이그드라실이 처음 뿌리를 내리는 모습도 보았던 고대의 존재인 오딘이 그런 어린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는것이 가당찮다는 비웃음이다. 로키와 프레이야는 많은 부분에서 부딪혔지만, 로키는 프레이야의 심정에 동감하며 웃을 수 있었다.


“악취미지."


로키가 말했다.


“... 악취미가 하나 뿐은 아니지만."


프레이야는 로키의 목소리에 신을 돌아보았다. 구릉 위를 뒤덮을만한 거대한 검은 구름이 지나가고 있었기 때문에, 장난의 여신의 표정은 잘 보이지 않았다.

구름이 걷혔을때, 로키는 얼굴을 찡그린채 자신의 표정을 유심히 살피는 미의 여신을 향해 방긋 미소지어보였다.


“저기봐, 우리의 최고신께서 곧 우릴 소환할 것 같은데."


로키가 말했다.

누나를 발견하고 다가오던 프레이가 로키의 옆에 서며 그 어깨 너머로 오딘이 선 벽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로키의 말대로 오딘은 마지막으로 성벽을 올려다보고, 자연스럽게 고개를 돌려 마치 처음부터 그들이 지켜보고있다는걸 알고있었다는 듯 구릉위의 신들을 바라보았다.

그 장난스러운 황금색 눈에, 프레이야는 저도모르게 조금 몸서리친다. 그 눈이 로키의 눈과 마주치고, 남자는 싱긋 웃는다.

아름다운 입술이 떨어지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전 아스가르드에 걸쳐 모든 신들은 최고신의 지령을 머릿속에서 듣는다.


‘성벽이 필요해.’


프레이야는 한숨을 쉬고, 로키는 수백미터 아래에 있는 오딘의 시선에서 눈을 떼지 않으면서 빙긋 웃어보인다.


아무렴 네가 원하지 않는것이 있겠니.







***








“성벽이 마음에 안들어."


오딘이 말했다.

그날도 최고신의 변덕에 의해 모일만큼 성실한 신들의 대부분은 모두 같은것을 생각했다. ...도대체 그게 수만년의 날들중에 왜 갑자기 오늘 거슬리게 된것인데?

하지만 그걸 소리내서 말할만큼 간덩이가 큰 신도, 괜히 오늘따라 기분이 좋아보이는 오딘과 (아마 시작되면 얼마나 길어질지 모르는) 말싸움을 하고싶어하는 신도 없었다. 그래서 신들은 누군가 적당히 이 순간을 넘겨주길 서로 바라면서, 그들의 옆에 서있는 그 성벽을 올려다보았다.


아마도 아스가르드의 역사만큼이나 오래되었을 이 성벽은 그러나 신들의 성채를 감싸기에는 터무니없이 낮고, 군데군데 세월의 흔적이 보이도록 바람과 그밖의 자연물들이 할퀴고 간 크고작은 상처들로 가득했다.

신들은 새 성벽이 필요하다는 말에는 동의할 수 있었다.


“밤에 서리거인들이 쳐들어온다면 거인 다섯명씩이라도 어깨를 나란히하고 저 구멍 사이로 들어올 수 있을거야."


오딘이 말했고, 토르는 자신의 망치를 만지작거리며 성벽을 바라보았다. 로키는 토르가 오딘이 말한 성벽의 그 구멍에서 서리거인들이 당장이라도 달려들어오는 모습을 상상하고 있다는것을 알았다. 그리고 자신이 망치로 그 가상의 거인들의 머리를 때려부수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는것도.


“하지만 이 커다란 성벽을 어느세월에 만들겠어요? 그리고 누가?"


프레이야가 물었다.


“우리들중엔 쓸만한 목수가 없고, 괜히 나서겠답시고 프레이가 어설프게 성벽을 건드렸다간 우린 정말 성벽없이 살게될거예요."

“야."


프레이가 얼굴을 찡그리며 말했고, 프레이야는 어깨를 으쓱였다. 신들은 킬킬대며 웃었다.


“난쟁이들의 도움을 받는건 어때?"


토르가 말했다.


“그놈들은 망치를 잘 쓰잖아. 보수를 두둑이 주고 우리 성벽을 맡기자고. 그놈들은 니다벨리르의 태양과 달도 직접 만들었다면서. 성벽을 쌓는것은 문제도 아니겠지."

“난쟁이들에게 우리 성벽을 맡길수는 없어."


뇨르드가 말했다. 그녀는 바다의 신으로, 다섯번째 바다에서 일어난 돌고래와 어부의 싸움을 판결하는데 골머리를 앓다가 잠시 불려나온것을 다행스럽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녀석들은 손안에 들어오는 작고 아름다운것이나 신들이 서로 피를 흘리게 만들 무기를 만드는데나 정신이 팔린 족속들이야. 난쟁이 세계를 비출 해나 달을 두 손으로 만들어 짓겠다는 미친 생각이나 그걸 실행할만한 능력을 가진 난쟁이는 역사상 통틀어 이실레이아정도 밖에는 없었어."


뇨르드가 말했다. 그 말에 토르는 로키를 돌아보았다. 로키는 살짝 얼굴을 찡그린채 마치 입이 아픈것처럼 자신의 입술위에 손을 가져다대고있었다.


“좋아, 그럼 어떻게 할 셈이야?“


신 헤르모드가 물었다.


“제가 도와드리면 어떨까요?"


낯선 목소리가 대답했고, 신들은 모두 돌아보았다.

무너져가는 담장같은 성벽의 낮은 틈 사이로, 말 한필과 함께 걸어들어오는 남자의 모습이 보였다.

오랜시간 방랑을 한것처럼 낡은 옷에 자기 키만한 가죽가방을 메고있지만, 몸이 듬직하고 성실해보이는 청년이었다.


“넌 누구야?“


토르가 물었고, 남자는 수더분하게 웃었다.


“저는 에탄바르라고하는 석공입니다. 저라면 여러분들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것 같은데요."


프레이와 토르는 의심스러운 눈으로 석공을 바라보았다. 프레이가 팔짱을 끼고 석공을 위아래로 내려다보았다.


“이 성벽은 신들의 둥지인 아스가르드 전부를 둘러싸고있고 그 길이는 이그드라실의 둘레만큼이나 길죠. 그걸 당신 혼자서 고칠 수 있다고요?"


프레이의 옆에 있던 프레이야가 물었다. 쉰소리 하지 말고 어서 썩 꺼지라는 태도였으나 석공은 미소를 지우지 않고있었다.


“저라면 세 계절 안에 이 성벽을 더 크고 높고 단단하게 완성시켜드릴 수 있습니다. 신들의 왕국에 어울리는 아름답고 흰 성벽을 만들어드리죠. 저와 제 말 스바딜파리는 이런 작업에 아주 익숙하거든요."


석공이 말했다.


“대가로 원하는게 뭔가?“


그때까지 잠자코 있던 오딘이 물었다. 석공은 어깨를 으쓱였다.


“저는 사실 신붓감을 찾아 다섯 세계를 거쳐 여행중이었습니다. 그러던 중 미의 여신 프레이야님의 미모와 덕에 대해서 듣게되었지요. 제가 아스가르드와 그 안의 위대하신 신들을 보호할 성벽을 만들고나면 저는 그 대가로 프레이야님과 해와 달을 받고 싶습니다."


성벽아래에는 정적이 떨어졌다. 신들은 아무도 소리를 낼 수 없었고, 눈을 굴려 모두가 시선을 향하고 있는곳으로 눈길을 던졌다.

그곳에는 프레이의 옆에서, 그 눈이 무시무시하게 분노로 번쩍이며 창백해진 프레이야의 얼굴이 있었다.


“지금 이 미친놈이 뭐라고 하는거야?“


토르가 묠니르를 만지작거리면서 앞으로 나섰다. 아까 성벽의 구멍으로 달려들어오는 서리거인들의 모습을 상상한 뒤로 토르는 어서 자신의 망치를 휘두르고싶어 손이 근질거리는 상태였다.

프레이야는 이 멍청한 허풍쟁이를 빨리 쫓아내자는 표정으로 오딘을 돌아보았으나 오딘은 미소지은채 로키를 돌아보고있었다. 그 시선을 받은 로키는 눈썹을 올렸다.


너는 어떻게 생각해, 로키?


로키는 그 시선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오딘의 눈은 장난스럽게 반짝이고 있었고, 로키는 어깨를 으쓱였다. 장단을 치라니, 쳐줄수밖에.


“잠깐 얘기좀 하지."


로키가 동료 신들을 향해 고갯짓을 했다. 그 말에 신들은 의아하게 서로를 쳐다보면서도 로키를 따라 성벽 구석으로 갔다. 석공은 신들의 태도에도 스바딜파리의 목 위에 손을 얹은채 침착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저 녀석에게 성벽을 맡기자."


로키가 말했다. 뇨르드가 눈썹을 올렸다.


“저 허풍쟁이의 말을 정말 믿는거야? 혼자서 이 성벽을 다 쌓는건 이실레이아가 아니라 이실레이아의 선조가 와도 불가능해."


로키는 어깨를 으쓱였다.


“우린 손해볼 거 없잖아?“


로키가 말했다.


“성공한다면 우리에게 좋은거고, 못한다면 저놈의 엉덩이를 걷어차서 쫓아내면 그만이야. 어느쪽이든 우리한테 해될건 없지."

“해될 게 없다고?“


프레이야가 이를 으득 갈며 말했다. 로키는 빙긋 미소지으며 미의 여신을 돌아보았다.


“물론 우리의 미의 여신이 성벽 하나에 정말 팔려가게 하는 일은 없어야겠지."


로키가 능청스럽게 대꾸했다. 프레이야는 니플헤임의 가장 깊은 빙원이 부러워할정도로 차가운 시선으로 로키를 노려보았다.


“대답을 잘 해야할거야 로키, 이번에도 네 세치 혀가 널 구해주지 못하면 난 석공에게 팔려가기 전에 니다벨리르의 그 난쟁이들이 완수하지 못한일을 해낼테니까."


프레이야가 말했고, 로키는 반사적으로 자신의 입술을 매만지며 불안하게 미소지었다. 그러나 그 미소에서 불안감은 곧 사라졌고, 그 자리에는 수천년동안 재미와 악함, 그리고 때로의 약간의 선함을 위해 사용하곤 했던 재치가 번뜩거렸다.


“어쨌든 다들 동의한거지?“


로키는 신들을 돌아보았고, 토르를 비롯한 신들은 서로를 돌아보며 어깨를 으쓱였다. 로키가 무슨 생각인진 몰라도, 그리고 에시르의 세계에서 일어나는 사건과 사고들의 대다수가 로키에 의해 벌어졌을지라도, 아주 가끔씩 로키가 신들을 위해 자신의 꾀를 쓸 때에는 그건 대부분 신들이 생각해내지 못한 도움을 가져다주었다.

토르는 동료들과 시선을 교환하고, 다시 로키를 바라보았다.


“좋아. 하지만 프레이야가 정말 팔려가게 된다면 나는 프레이야의 옆에서 쟤의 맹세가 지켜지도록 도와줄거야."


토르가 말했고, 로키는 고개를 흔들었다.


“언제나 다정하기도 하지, 토르."


그리고 로키는 자신을 바라보는 신들을 지나쳐 석공에게로 향했다. 그 뒤로는 신들이 이제 어떤일이 벌어지려나하는 기대를 안고 따랐다.


“우리 얘기가 끝났어."


로키가 말했다. 석공은 기대감을 가지고 로키를 바라보았다. 로키는 순간 그 눈에서, 처음 나타났을때 순진한척 했던 그 맑은 갈색눈에 이채가 띠는것을 보았다. 그 빛은 아주 순식간에 사라졌지만, 로키는 그것을 놓치지 않았다.

이것봐라? 로키는 생각했지만, 다음순간 아무것도 보지 못한척하며 미소지으며 입을 열었다.


“우리는 당신의 제안을 받아들이기로했어, 에탄바르."


로키가 말했다. 석공의 눈이 빛났다. 그가 웃으며 대답하기전에, 로키가 재빨리 말했다.


“하지만 세 계절은 너무 길어. 네가 대가로 요구한건 해와 달과 프레이야인데, 프레이야은 아홉세계를 전부 뒤져도 하나밖에 없지. 아스가르드를 빛내주는 미의 여신이 사라진다면 신들의 도시는 정말 어두침침하고 재미없는 공간이 될거야."


로키는 뒤에서 팔짱을 낀 채 그녀를 노려보는 프레이야가 있는 힘껏 눈을 굴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있었다. 하지만 로키의 미소는 아랑곳않고 더욱 눈부시게 빛났다.


“그러니 조건을 높여야겠어. 한 계절 안에 우리 성벽을 완성시켜줘. 그러면 우린 슬픔을 누르고 네게 네가 요구한 대가들을 기꺼이 지불하지."


로키가 말했고, 신들은 숨을 죽인채 석공의 반응을 기다렸다.

에탄바르는 고개를 들어 머리위의 해를 보고, 보이지 않는 달이 있는곳을 본 다음, 로키를 노려보고있다가 자신에게 힐긋 시선을 던지는 프레이야를 바라본 뒤 다시 로키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토르는 석공이 웃으며 로키를 훑는 시선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아름답고 비수같은 신이여, 나는 그 조건을 수락하겠습니다.“


작가의말

이걸 드디어 이어서 쓰네요ㅋㅋㅋ 하도 오랜만에 써서 처음부터 다시 읽고 장르와 등장인물들을 조금씩 수정했습니다. 이번엔 완결까지 무사히 달릴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ㅠㅠㅋㅋㅋ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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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이야기꾼을 만들어주는 꿀술 이야기(2) 21.06.09 41 2 12쪽
16 이야기꾼을 만들어주는 꿀술 이야기(1) 21.05.31 61 2 12쪽
15 벽돌 쌓는 거인 (4) 21.05.24 45 2 11쪽
14 벽돌 쌓는 거인 (3) 21.05.23 60 2 10쪽
13 벽돌 쌓는 거인 (2) 21.05.12 51 2 16쪽
» 벽돌 쌓는 거인 (1) 21.05.09 58 2 12쪽
11 니다벨리르와 시프의 머리카락 10 21.03.21 69 2 14쪽
10 니다벨리르와 시프의 머리카락 9 21.03.21 52 2 10쪽
9 니다벨리르와 시프의 머리카락 8 21.03.21 51 2 11쪽
8 니다벨리르와 시프의 머리카락 7 21.03.21 53 2 13쪽
7 니다벨리르와 시프의 머리카락 6 21.03.21 48 2 19쪽
6 니다벨리르와 시프의 머리카락 5 21.03.20 63 2 16쪽
5 니다벨리르와 시프의 머리카락 4 21.03.20 68 1 17쪽
4 니다벨리르와 시프의 머리카락 3 21.03.20 66 2 13쪽
3 니다벨리르와 시프의 머리카락 2 21.03.18 79 2 14쪽
2 니다벨리르와 시프의 머리카락 1 21.03.17 101 2 12쪽
1 토르와 로키 21.03.17 242 3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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