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 25. 경치와 품격.
3.
카냐의 모래 폭풍은 그 끔찍함이 상상을 초월한다. 어지간한 집을 삼켜버릴 듯한 모래 바람이 일주일간 계속되니까. 인간을 압도하는 자연의 힘이 있다면 이 모래 폭풍이 유일할 것이다.
그런 모래 폭풍 사이를 두 명의 마법사가 걷고 있었다. 인간에게 패배만을 안겨준 모래 폭풍. 하지만 그 모래 폭풍은 두 사람 한 발자국 앞에서 정확하게 갈라 사라졌다.
‘확실히 대현자쯤 되면 뭐가 달라도 다르군.’
염력만큼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고 생각했지만 그건 자신의 착각에 불과했다.
자신은 고작해야 화살 몇 개를 가지고 노는 수준이지만 이 늙은이는 말 그대로 바람을 갈라버리는 수준이니. 그는 진심으로 이 노인이 자신의 적이 아님에 감사했다.
파티마가 처음으로 황제의 인정을 받은 그 순간, 자신을 처음으로 찾아온 건 이 마법사였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마드라사의 전면적인 지지를 표현했었다.
그것도 자신 앞에서만 하는 지지 선언 수준이 아닌, 대신을 모두 앞에서 두고서 말이다. 그게 어느 정도의 위력을 발휘하는 지는 굳이 말 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게다가 이 정도로 실력 발휘를 하는 상황이니.’
이게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는 마법사가 아니라도 알 수 있다. 그리고 그게 갖는 상징적인 의미는 말을 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
지금껏 로비안은 말도 안 되는 상황을 허세로 해결하며 살아왔다. 만약 자신이 4서클 마법사였어도 그런 말도 안 되는 허세와 거짓말이 먹혔을까?
그건 솔직히 회의적이었다.
사람들은 강한 사람을 환상화 시킨다.
그리고 그 말도 안 되는 생각을 이용해 자신의 성공을 만들어 온 것이다. 일개 병사부터 페르가논같은 고위 귀족까지. 그런 가면을 쓰고 성공해 온 로비안이 이제는 더 큰 패를 얻은 것이다.
그것도 가짜가 아닌 진짜 패를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라도 지금 부터의 일이 중요하다. 그는 잠시 숨을 고르고 쉴레이만의 말을 기다렸다.
“그래서 앞으로 어떻게 할 생각인가? 여전히 카림의 병력은 세배가 넘고 가신의 숫자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수준인데.”
“숫자가 많다고 꼭 이기는 건 아니죠.”
“기대했던 대답이 아니군.”
“그럼 그렇게 만들어 드려야겠군요. 카림이 없는 우리 쪽의 강점이 뭔지.”
로비안은 설명했다.
확실히 이쪽의 머릿수는 압도적으로 부족하다. 하지만 그 압도적인 머릿수가 반드시 유리하리란 법은 어디에도 없다.
안전함, 그리고 이익.
바보들은 하루 앞만 보고 산다. 지금 당장만 하더라도 얼마나 많은 가신이 카림에게 줄을 대고 있나. 하지만 카림에게 유리하게 일이 굴러가기 시작하면 그 바보들도 생각하기 시작할 것이다. 내가 얼마나 이 일에 기여했는가. 그리고 내가 이 조직에서 필요한 사람인가.
그 의심은 필연적으로 이 질문을 하게 만든다.
내가 이 일이 끝나고 나서도 살아남을 수 있을까?
그 의심이 카림의 고삐를 약하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쉴레이만이 나서서 그 균열을 계속 넓혀 나갈 수만 있다면? 게다가 쉴레이만에게는 그걸 가능하게 할 강점이 있다.
“바로 로히다 출신이라는 것이죠.”
“......”
“아시다시피 폐하의 인재 수집욕은 광적입니다. 덕분에 로히다 출신의 인재들이 요직을 차지하고 있지요. 당장 다섯의 최고 지휘자들 중 둘이 로히다 출신입니다.”
“과연.”
“그 사람들은 지금 당장 카림에게 줄을 대고 있지만 항상 불안할 겁니다. 저 도도하고 건방진 놈이 황제가 되고 나면 우리를 차별하지 않을까하고요.”
“확실히 카림 황자는 지나치게 귀족적이고 보수적이지.”
“반면에 이쪽은 어떻습니까? 당장 나서서 선전하고 있는 떠벌이에, 전력의 반인 쉴레이만님이 로히다 출신이죠. 아마 비 카냐 출신들에겐 상당한 매력으로 느껴질 겁니다.”
로비안의 눈이 반짝거렸다.
“여기에 쉴레이만님이 등장합니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을 설득해 하나의 세력으로 묶는 것이죠. 대현자라는 간판은 의외로 큰 힘을 발휘합니다. 아마 솔깃하게 되겠죠.”
“만약 설득하지 못한다면?”
“그건 그것대로 괜찮습니다.”
로비안은 웃으며 말했다.
“그 마음속에 의심을 심어 놓는 것만으로 큰 독이 될 테니까요. 아마 카림을 위해 움직일 때, 한 번 더 생각하게 될 겁니다. 마지막 순간에 그 망설임이 우리에겐 구원의 빛이 될지도 모르는 거고요.”
“......자네 정말 마법사 맞나? 이런 사람이 7서클이라니 세상이 참 불공평하군.”
“전 대현자님 앞에서 마법사라고 칭할 만큼 뻔뻔함 사람은 아닙니다. 그냥 모자란 사기꾼이라고 해두죠.”
로비안은 웃고 말았다.
쉴레이만은 농담으로 듣고 있겠지만 반쯤 진심으로 한 말이었으니까. 쉴레이만은 질렸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물론 여기까지만 해서도 안 되지.’
이 모든 일은 파티마와 로비안이 변방지역을 안정화 시켰을 때에 비로소 의미가 생기는 것이니까. 만약 로비안과 파티마가 실패한다면 잃는 건 황제의 신뢰뿐만이 아니다.
파티마는 아직 영지와 영지민을 거느리고 있지 못하다. 그 말은 세력이 약하다는 말 뿐만 아니라, 군주로서의 기능도 하고 있지 못한다는 말이니까.
그러니까 변방 지역을 확보해서 정치적 기반으로 삼을 필요가 있다는 거다. 그렇기에 로비안이 이 일을 자청해서 맡은 것이었고.
그렇기에 카림이 파티마의 임무를 결사적으로 반대했던 것이다. 그게 어떤 의미인지 잘 아니까.
‘하지만 돈과 물자가 너무 부족하니.’
로비안은 고개를 절래 흔드는 쉴레이만을 뒤로하고 생각했다. 자신과 파티마가 배정 받은 지역은 가장 가난하고, 또 가장 민란이 자주 일어나는 곳이다.
그런 곳을 안정화시키기 위해선, 따듯한 말이나 다정한 군주 그 이상의 것이 필요하다. 당장 입을 옷과 식량, 그리고 집.
어느 하나 자신이 해줄 수 없는 것들이다. 그리고 그건 쉴레이만도 마찬 가지 일터. 로비안은 말을 계속했다.
“그렇기 때문에 쉴레이만님은 수도에 남아 주셔야 합니다. 그래야 저도 안심하고 일을 할 수 있으니까요.”
“그래도 혼자서 가능하겠나? 필요하면 마드라사에서 마도사 몇 명쯤은 붙여 줄 수 있네.”
“아뇨, 마드라사의 간판이 클수록 쉴레이만님의 일이 쉬워질 겁니다.”
자신이 편하자고 쉴레이만의 발을 붙잡을 수는 없는 일이다. 게다가 이쪽은 자신을 도와줄 수 있는 비장의 무기가 있기도 하고.
‘나같은 얼치기 보다야 훨씬 나을 테고.’
로비안은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웃었다. 그분에 비하면 자신은 진짜 얼치기다. 아마, 로히다도 놀랄만한 일이 벌어지고 있겠지.
‘몸이 하나인 게 아쉽군.’
할 수 있다면 로히다로 날아가 보고 싶을 지경이다. 어떤 놀라운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말이다.
- 작가의말
연재가 늦어진 이유는 무려 7천자를 날려 버렸기 때문입니다. ㅇㅂㅇ... 연재를 오래 쉬니까 쓸데없이 눈만 높아지더군요. 다행이 다음편은 목요일이나 금요일쯤 올라갈 예정입니다.
그나저나 잊어 버리신줄 알았던 분들이 많이 돌아오셔서 다행입니다. 코멘 읽는 재미도 쏠쏠하군요. 이런맛에 글을 쓰는 거겠죠.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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