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28. 가진 것, 그리고 가지고 싶은 것.
1.
‘진짜 대단하다니까.’
사람마다 재능이 다르다지만 형은 언제 봐도 신기함 그 자체다. 그리 대단할 것 없는 무력을 가지고 수백의 산채에 뛰어든 것도 모자라서, 혓바닥 하나만 가지고 산적들의 협조까지 얻어내다니.
로비안은 이제 걱정꺼리가 아주 없어진 듯 크게 기지개를 피고는 하품을 했다. 여유 있는 얼굴 표정에서 방금 전 상황이 눈에 그려지는 듯 했다.
산적이 두목이 불쌍해.
제린은 자신도 모르게 산적 두목을 동정하고 있었다. 아마 로비안의 본 모습을 보면 제일 억울할 사람이 그 두목일 것이다. 아니 애초에 그런 임기응변은 또 어디서 생각해 낸 건지.
로비안은 그럴듯하게 포장했지만 그 상처, 사실 자신과 대련을 하다가 생긴 상처다. 그것도 로비안이 자신에게 버프를 거는 바람에 생긴 상처. 그 외 자잘한 상처는 페르마경의 수련으로 생긴 거니 타타르는 그 상처에 조금의 지분도 없는 셈이다.
결과가 좋으면 그걸로 좋은 거다.
아마 형은 묻지 않아도 그렇게 대답할 것 같다. 물론 그 정도는 충분히 예상하고 있던 제린은 더는 추궁하지 않기로 했다. 칼의 귀에는 절대 들어가지 않게 해야겠다고 다짐하면서. 뭐, 그래도 그 거짓말 덕에 사람을 살렸으니 둘 다 만족할만한 결과라고 해야할지 모르지.
말이 마법보다 대단해 질 수 있는 기적.
그런게 어떻게 가능할 수 있는지 보면서도 신기했다. 더 신기한건 본인이 그렇게 대단하다는 걸 모르는 것이다. 스스로 사기꾼이라고 말했지만 진짜 저걸 사기라고 말할 수 있나?
“형은 진짜 연구대상이야.”
“이번에는 좀 그럴듯 했나보네.”
역광을 받은 로비안의 얼굴에 그림자가 졌다. 이렇게 보니 정말 악당으로 보인다. 할 수만 있다면 레이나에게 부탁해 그림으로 그려두고 싶을 정도로 명장면이다.
“그 정도가 아니었다고.”
“뭐야, 그 표정은?”
“그냥 그런 생각이 들어서.”
제린은 아쉽다는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형은 말 하나만 가지고도 이렇게 엄청난데 마법공부를 제대로 했으면 얼마나 대단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하긴 내가 지금까지 날로 먹긴 했지.”
“그런 의미가 아닌거 잘 알잖아.”
제린의 말에 로비안은 어깨를 으쓱했다. 제린이 무슨 생각으로 이런 말을 꺼냈는지도 잘 알 고 있었다. 한참의 정적이 지나고 로비안의 입이 떨어졌다.
“물론 나도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있긴 하지. 내가 너처럼 강했으면 저런 죽을 고비를 안 넘겼어도 됐을 텐데 하는. 근데 잘 생각해보면 다 쓸데없는 얘기야.”
“무슨 소리야?”
“생각해봐. 힘으로 해결하는 편한 방법이 있는데 굳이 복잡하게 입을 쓰겠어?”
“.......”
생각해보면 그랬다.
수도로 올라가기 전까지만 해도 세상에서 제일 편하게 살았던게 로비안이다. 아마 로비안이 정말 대단한 실력자라면 굳이 언변을 키우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그건 정말 귀찮은 일이니까.
그리고 당연한 일이지만, 그랬다면 로비안은 여기까지 결코 올 수 없었을 것이다.
“그 덕에 정말 피곤할 때가 있지. 그래도 지금에 와선 후회는 안 해. 잡을 수 없는 새를 평생 쳐다만 보는 것도 웃긴 일이니까.”
“그래서 아버지가 형은 그냥 놔두신 건가.”
“왜 그 덕에 혼자만 구른 거 같아서 억울하냐?”
반쯤 침울한 얼굴로 고개를 숙이고 있는 동생을 보며 로비안은 웃었다. 자신의 말은 제린에게도 정확히 해당되는 말이기도 했으니까.
“마찬가지로 그 덕에 너도 대단한 검사가 됐으니까 억울할 것 없지.”
“내가?”
제린은 황당한 소리를 들었다는 듯이 손가락으로 자신의 얼굴을 가리키며 물었다.
“수백의 산적에 맨몸으로 달려들어서 사망자 없이 제압한 게 대단한 게 아니면 대체 뭐가 대단한 거냐?”
“......”
“물론 말을 잘한다는 게 편리하긴 해. 하지만 세상엔 말 외의 일로 처리해야 하는게 더 많아.”
오늘 일만 봐도 그렇지.
만약 로비안이 상대를 제압하지 않은 상태로 설득에 나섰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아마 둘 중 하나가 벌어졌을 것이다. 산적들이 다 죽거나, 아니면 로비안이 죽거나.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은 건 제린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정확히는 제린의 검술능력이 있었기에 가능했었지.
“그러니까 좀 더 자신감을 가져도 돼. 오늘 일도 내가 한 건 다 끝나고 숟가락 얹은 것 뿐이라고.”
“.......”
로비안은 손등으로 동생의 가슴을 툭치 며 말했다.
“고맙다. 네 덕에 날로 먹었어.”
역시 형답다. 여유 있게 걸어가는 형의 그림자를 보며 제린은 머리를 긁적였다.
***
타타르는 축제 분위기였다.
로히다와의 무역로가 완전히 뚫리고 페르가논 가문의 재화가 쏟아 들어오기 시작하니 그럴 수밖에. 한동안 먹을 것조차 구경하기 어려웠던 타타르의 도시에 상인들이 북적거렸다.
돈. 그리고 식량.
영지를 유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들이다. 페르가논 가문의 지원은 그런 의미에서 중요했다. 다 말라죽어가는 식물에 물을 준 것과 마찬가지니까. 큰 고비를 넘기고 나니 이제야 조금 안심이 된다. 그리고 기뻤다.
좋은 소식을 들고 찾아간 게 얼마만이더라?
집무실로 올라가는 로비안의 걸음이 한층 경쾌해졌다. 한동안 산적들의 시커먼 얼굴만 보다가 정작 보고 싶은 얼굴들은 구경도 하지 못했었다. 그리운 얼굴들, 그리고 목소리들.
“다녀왔습니다.”
계속 생각해왔던 얼굴이 창가에 서 있었다. 크고 맑은 눈이 지진이 난 것처럼 흔들리더니, 이내 반달을 그리며 가늘어진다. 문득 로비안은 거울로 자신의 얼굴을 보고 싶어졌다.
자신도 저런 표정일까? 그도 아니면 평소와 같을까.
여전히 여유롭게, 그리고 여유 있는 목소리로 로비안은 파티마에게 다가섰다. 파티마의 얼굴에 붉은 노을이 비쳤다.
“기다리는 게 정말 어렵네요. 이젠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안타깝네요. 전 날로 먹어서 쉬웠거든요.”
얄밉게 웃는 로비안의 표정에 파티마는 피식 웃었다.
- 작가의말
날로 먹으면서 글써보고 싶다. ㅇㅂㅇ.
그러나저러나 정말 로비안 아부지는 드래곤일지도 모릅니다. 아부지께 직접 한번 물어봐야 겠습니다.
크와와 하고 아부지가 울부짖었다 ㅇㅂㅇ
notic, fenix11, 아르타나, 이내바람, 만월이, 백우, 제국의 황제님 댓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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