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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은 대마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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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등록일 :
2023.12.03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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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1.06 2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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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1.04 2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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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28. 레나드 산맥으로 가는 길

DUMMY

식당은 넓었으나 감탄할 만큼은 아니었고 식사는 생각 외로 평범했다. 귀족의 화려한 식사를 기대했었는데 귀족이라고 항상 그런 식사를 하는 것은 아닌 모양이었다.


나는 그저 그랬지만, 아이들은 무척 좋아했다. 발부르가와 나흐트는 오랜만에 제대로 된 식사를 해서 그런 것이고 유니는 아무래도 원래 살던 곳에서는 이 정도의 식사도 해본 적이 없었을 테니 그런 것 같았다.


하르만 라이스칸 백작은 처음 만났을 때와 달리 식사 내내 그다지 말을 하지 않았다. 같이 나온 백작부인도 마찬가지였다.


주로 말을 하는 것은 멜버리였는데 귀찮게도 말을 거는 대상이 바로 나였다.


“스무살이시라고요? 대단하군요. 어떻게 그 나이에 그런 실력을 가지게 되신 건가요?”

“그냥 하다 보니 되었습니다.”

“그런 힘을 좀 더 좋은 곳에 써주면 좋을 텐데요.”


대충 대화는 이런 식이었다. 어떻게든 영지의 마법사 혹은 자기 사람이 되어주었으면 좋겠다는 의미를 밑에 깔아두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때마다 적당히 거절 의사를 밝혔다. 그런 피곤한 대화의 연속이었으니 맛있게 식사를 즐기지 못한 이유가 될 수도 있었다.


식사가 끝나고 후식으로 나온 차를 마시는 중에도 멜버리의 영입 제안은 멈추지 않았다. 집요한 구석이 있었다.


그러나 차를 모두 마실 때까지도 성공하지 못하자 한순간이었지만, 그 화려한 외모에 덧씌워진 완벽한 미소에 한줄기 금이 가는 것을 놓치지 않았다.


‘왜 이 자식은 내 말이 통하지 않지?’


같은 느낌이었다. 이멜다에게 들은 이야기로 영웅의 가호라고 해야 할까. 영웅의 권능 같은 모두에게 사랑받는 그 능력이 모두에게 통하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경계하고 있거나 정신력이 높은 사람은 걸리지 않는다고 했다. 그래서 그런 것인지 아이들은 모두 영웅 효과가 통하지 않는 것 같았다.


아무도 멜버리에게 관심이 없었으니까. 여전히 자기들끼리 조잘대기도 바쁘다. 이멜다는 굳이 말할 필요도 없다.


하지만 레인스에겐 통했다. 레인스가 딱히 정신력이 약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진 않았는데, 따르는 기사들도 그렇고 무인 쪽에게 좀 더 강한 효과를 내는 걸지도 모르겠다.


끝까지 목표를 이루지 못한 라이스칸 가문의 저녁 식사가 끝나고 방으로 돌아오자마자 레인스가 폭탄선언을 했다.


“나는 이곳에 남는 게 좋을지도 모르겠다.”


겉으로 보기에 레인스는 상당히 자연스러웠다. 그리고 딱히 눈빛이 흐리멍덩하다거나 하는 증상도 찾을 수 없었다. 영웅 효과 이것 생각보다 훨씬 무서운 능력이었다.


이것이 레인스의 진심이 아니라 영웅 효과에 취한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에 이멜다에게 시선을 돌렸다.


“든든한 마부가 계속 필요하지 않으십니까?”

“그렇네. 여기서 빠지면 곤란하지”


소파에 반쯤 드러누워 있던 이멜다가 몸을 일으켜 다가왔다.


“무슨 짓을 하려고 합니까?”


이미 이멜다에게 당한 것이 많은 레인스는 흠칫하며 이멜다를 경계했다. 영웅 효과에 당했어도 각인된 공포는 어쩌지 못하는 것 같다.


“가만히 있으렴”


마치 고양이 앞의 쥐처럼 산만 한 덩치를 가진 레인스가 이멜다의 앞에서는 마법에 걸린 것처럼 움직이지 못했다.


이멜다가 까치발을 세우면서 레인스의 머리를 한번 쓰다듬자 레인스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뒤로 물러섰다.


“뭐, 뭡니까!”


평소의 이멜다를 생각하면 확실히 소름 돋는 장면이기는 했다. 저럴 땐 보통 뭔가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어때? 아직도 여기 남고 싶니?”


이멜다의 물음에 레인스의 눈빛이 조금 흐려졌다.


“어?”


아무래도 영웅 효과를 풀어낸 것 같은데 오히려 효과가 풀리니 정신이 멍해진다니 구경하는 입장에서는 참 재미있었다. 마법사의 탐구 정신을 자극하는 장면이기도 했다.


당황하는 레인스를 내버려 두고 나는 이멜다에게 물었다.


“무엇을 하신 겁니까?”

“일종의 최면을 건 거지.”

“영웅의 능력을 풀어낸 것이 아니라요?”

“저건 마법이 아니니 풀어낼 수가 없어. 그러니 더 강한 효과를 내는 것으로 덮어씌우는 방법밖에 없지. 어차피 이곳에서 벗어나서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돌아올 거야.”


역시 영웅 효과 무서운 능력이다.


“다른 영웅들의 힘도 이 정도입니까?”

“더 강한 이도 있고 약한 이도 있고 그렇지. 이 정도면 대충 평균이라고 할까?”


멜버리가 물리적인 힘이 약해서 그렇지, 여기에 진짜 실력까지 더해진다면 어지간한 마물보다 상대하기가 까다로울 것 같았다. 


“지금 그거 가르쳐주십시오.”

“뭐를? 최면?”

“예, 모든 걸 가르쳐 주신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거래는 거래다. 이멜다와 언제까지 함께할지는 몰라도 그전까지 얻을 수 있는 것은 모두 얻어야 한다. 잠시 생각하던 이멜다는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마법을 배우는 방식이야 이멜다도 이미 알고 있으니 배우는 것 자체는 그리 어렵지 않았다. 다만 기술을 운용하는 방식까지 가르쳐준다는 것이 달랐다.


그렇게 라이스칸 백작가에서 하룻밤이 지나갔다. 아침 식사는 따로 제공해서 어제처럼 피곤한 식사가 되진 않았고 우리는 아침 일찍 출발하기로 했다.


미리 출발한다는 연락을 넣고 우리가 모두 마차에 탑승하여 막 출발하려고 할 때 저편에서 멜버리와 어제의 기사들이 달려오고 있었다.


‘무력으로라도 제압해보려는건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건 정말 최악의 상황이다. 상대가 강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죽이면 여러 가지로 곤란하다. 


“아직 출발하지 않으셨군요!”


멜버리는 여전히 그 화려한 외모와 미소로 무장하고 있었다. 어쩌면 검과 갑옷보다 저것이 더 큰 무기가 될 것 같았다.


“예, 그런데 하실 말씀이라도?”

“어제 큰 신세를 졌는데 그냥 보내드리기엔 너무 죄송해서요. 여기 작은 답례입니다.”


멜버리가 건네주는 작은 주머니를 받았다. 무게를 보아 대단한 금액은 아닌 것 같았지만, 돈이란 건 없는 것보다는 있는 것이 좋은 것이다.


“감사합니다. 요긴하게 사용하겠습니다.”

“영지 사정이 좋지 못해 많이 드리지 못해서 이쪽이 죄송하지요.”


생각해보면 멜버리가 나쁜 사람은 아니다. 다만 어쩌다 보니 대단한 능력을 가지고 태어났을 뿐이다. 적어도 아직까지는 그렇다. 이멜다의 말처럼 모든 영웅이 정의롭진 않을 것이다. 저 능력을 나쁜 방향으로 사용한다면 이야기 속에 나오는 마왕이 될지도 모른다.


영웅과 마왕은 한 페이지 차이라고 했던가. 마탑 에서 본 책 중에 그런 글귀를 본 적이 있는 것도 같았다.


“그럼 저희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마법사님과는 다시 뵙게 될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멜버리의 뜨거운 시선을 슬쩍 피하며 대답했다.


“그럴 운명이라면 그렇게 되겠지요.”


운명론자는 아니었지만, 비전을 보고 정해진 운명을 비틀다 보니 믿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그렇게 라이스칸 영지를 떠나게 되었다. 어쩌면 멜버리가 성장하여 진짜 영웅이 될지도 모른다. 그때가 된다면 멜버리를 적으로 만나게 될지 아군으로 만나게 될지 모르는 일이었다.


“이멜다님 이제 어디로 갈까요?”


행선지를 정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이멜다다.


“유니가 원래 살던 곳으로 가자꾸나.”


마차 안에서 대답이 들려왔다.


“정말요? 우리 집으로 가는 건가요?”


곧바로 유니의 목소리도 들렸다.

유니와 대마녀 옥타비아가 살던 곳이다. 이멜다의 원래 목적지 중 하나이기도 했다.


“그래, 너희 할머니가 남긴 짐을 챙겨와야 하지 않겠니?”


만물과 소통을 연구했다는 마녀일족의 자료들이 남아있는 곳이다. 그리고 미피라는 엄청난 인공생명체를 만들어낸 곳이기도 하다. 이것은 마법사로서 도저히 참을 수 없는 보물창고 같은 곳이다.

원래 무슨 산맥에서 살았었다고 했는데 정확히 어딘지는 듣지 못했다.


“그래서 거기가 어딥니까?”

“레나드 산맥이에요!”


유니의 힘찬 대답이 들려왔다.

레나드 산맥이라면 대충 들어본 적이 있다. 남부 제국에 가우스 산맥이 있다면 북부 제국에 레나드 산맥이 있다. 인간의 발길을 쉽게 허용하지 않는 마물의 천국 같은 곳 중의 하나다. 


그런데 방향을 모른다. 하지만 걱정할 것은 없다. 우리에게는 아주 좋은 길잡이가 있다. 그것도 하나가 추가되어 둘이나 된다.


“미피가 길을 알고 있겠지? 안내를 부탁해도 될까?”


어린 유니는 몰라도 미피가 유니를 데리고 이곳까지 왔을 테니 길을 알고 있을 것이다.


“네!”


다시 들려오는 힘찬 대답, 동시에 마차 위에 있던 털뭉치가 레인스와 나 사이로 폴짝 뛰어내렸다.


이렇게 가까이에서 보는 것은 처음인데 세눈마귀일때와 달리 은근히 귀여운 구석이 있었다.


“미피는 방향을 알려주렴.”

피~!


미피가 대답했다. 작을 때는 이런 소리를 내나보다. 털 뭉치 사이에서 작은 손이 튀어나오더니 방향을 가리켰다.


“고맙다. 미피”


일단 생체 나침반은 준비가 되었다. 지도가 있으면 더 좋았겠지만, 지역 지도도 아니고 전국 지도 같은 것은 쉽게 구할 수 있는 물건이 아니다.


“그런데 거리가 얼마나 되지?”

“미피랑 같이 한 달 정도 다니긴 했는데 잘 모르겠어요.”


직선으로 움직인 것은 아닐 테니 한 달까지야 걸리지 않을 것이다. 아쉬운 대로 방향을 잡고 가면서 사람들에게 물어보는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한가로운 여행이 다시 시작되었다. 이제는 도적도 없었고 습격해오는 마물 같은 것도 없었다. 


중간에 적당한 마을에 들려 보급하며 물어보니 레나드 산맥은 보름 정도 거리에 있다고 했다. 그래도 꽤나 먼 거리였다. 


방향으로만 보면 브렌노스에서 더 멀어지는 것 같긴 하지만 그곳에 있는 옥타비아 일족의 연구자료들을 생각하면 보름이 아니라 일 년을 허비한다고 해도 아쉬울 것이 없었다.


그렇게 오늘도 한가롭게 마차가 달리는 도중에 갑자기 달려 나와 마차 앞을 막아서는 사람이 있었다.


“살려주세요! 도와주세요!”


둘 중의 뭘 우선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갑자기 튀어나온 사람은 젊은 여자였다. 물론 근처 수풀에 사람이 있다는 것은 미리 감지하고 있었지만, 혼자이기에 크게 경계하고 있진 않았었다.


여성의 행색은 그다지 좋지 않았다. 입고 있는 옷도 허름한데 다 찢어져 반나체나 다름없었고 온몸이 상처투성이였다. 상처에서 나온 피가 말라붙은 것을 보면 금방 입은 상처는 아니었다.


“진정하시고 천천히 말씀해보세요. 도와드릴 수 있을지는 이야기를 듣고 나서 판단하겠습니다.”

“제발 도와주세요. 흑흑흑!”


여자는 울더니 탈진했는지 그대로 쓰러져버리고 말았다. 순간 연기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마차에서 내려 가까이 가보니 진짜 정신을 잃은 것이었다.


“곤란한데.”


나는 무작정 남을 돕는 그런 선한 사람은 아니다. 정확히는 그런 기회 자체가 없었다. 뒤를 돌아보니 마차를 몰고 있던 레인스도 어깨를 으쓱하며 자신도 모르겠다는 의견을 표시했다. 


역시 답은 대장이 내야 한다. 누가 뭐래도 우리 일행의 대장은 이멜다였다.


“어떻게 할까요?”


마차로 가까이 가서 이멜다의 의견을 묻자. 마차의 창문이 열리며 장난기가 가득한 이멜다의 얼굴이 튀어나왔다.


“네 마음대로 하렴”


최악의 결론이다. 저 여자가 어떤 사람인지도 모르고 무엇을 도와달라고 하는지도 모른다.

쉽게 결론 내지 못하고 있는 나에게 하늘에서 동아줄이 내려왔다.


“아저씨 도와주는 게 어때요?”

“그래요. 불쌍하잖아요.”


아이들이다. 아직 때 묻지 않은 아이들로서는 이것이 당연한 선택이었다. 그런데 나는 저 나이 때도 저렇게 순수하진 못했던 것 같다. 나는 떡잎부터 썩었던 걸까? 어쩌면 마나 사용자의 인성이 나쁜 것은 마나의 영향이 아니라 기본 교육이 잘못된 것일 수도 있다.


“그래, 일단 마차에 태울 테니 좀 보살펴주렴”

“네!”


아이들의 의견을 존중해서 정신을 잃은 여자를 마차에 태웠다. 딱히 별 능력이 있는 것도 아닌 것 갖고 있다고 해도 마차 안에 이멜다가 있으니 걱정할 것이 없었다.


다시 마차가 달리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여자가 정신을 차렸는지 마차 안이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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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27. 붕어가 되기로 했다. +15 24.01.03 11,238 444 13쪽
26 26. 마녀의 큰 그림 +15 24.01.02 12,146 477 13쪽
25 25. 모두에게 좋은 결과 +27 24.01.02 12,720 511 13쪽
24 24. 세눈마귀 +18 23.12.30 13,376 502 12쪽
23 23. 선택 +19 23.12.29 13,417 524 12쪽
22 22. 흙으로 돌아가다. +17 23.12.28 13,636 543 11쪽
21 21. 마녀의 비약 +20 23.12.27 13,468 575 12쪽
20 20. 마녀의 숲(2) +22 23.12.26 13,726 560 13쪽
19 19. 마녀의 숲 +11 23.12.25 14,095 533 13쪽
18 18. 숨은 강자 +21 23.12.23 14,155 581 13쪽
17 17. 평화의 끝 +11 23.12.22 13,925 519 13쪽
16 16. 마녀를 만나다. +9 23.12.21 13,900 525 13쪽
15 15. 최선의 선택 +6 23.12.20 13,928 466 12쪽
14 14. 천재 +9 23.12.19 14,010 444 13쪽
13 13. 마녀의 집 +11 23.12.18 14,069 469 13쪽
12 12. 보이지 않는 집 +13 23.12.16 14,220 501 12쪽
11 11. 불 원숭이 +5 23.12.15 14,661 498 13쪽
10 10. 작은 호의 +6 23.12.14 14,797 481 12쪽
9 9. 방향을 바꾸다. +9 23.12.13 15,188 491 12쪽
8 8. 강행군 +12 23.12.12 15,597 451 12쪽
7 7. 의뢰 +10 23.12.11 15,867 495 13쪽
6 6. 마탑을 나서다. +8 23.12.09 16,455 522 12쪽
5 5. 함정의 정체 +9 23.12.08 16,776 527 13쪽
4 4. 의외의 소득 +8 23.12.07 17,457 535 13쪽
3 3. 첫 임무 +15 23.12.06 21,016 603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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