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이 글은 가상의 이야기이며 등장인물,사건등 모든 내용은 실제와 관련없는 허구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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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피를 가득 머금은 체 번뜩이는 칼날이 그의 목에 닿았다.
저들이 천황이라 부르는 자, 일왕.
무수히 많은 자들의 피를 머금고도 아직 부족하다는 듯, 핏빛 혓바닥을 날름거리는 봉황의 칼이 그의 목을 희롱하고 있었다.
“너희의 총리, 우베라는 자는 아직 인가?”
“... 조 조금만 더 기다려 주시오.”
“비겁한 겁쟁이 같은 놈.”
그의 말에 한국어를 통역하는 자가 하얗게 질린 얼굴로 안절부절 어쩔 줄을 몰라 했다.
조금 전까지 이 자리에 앉아서 저들의 환호를 받던 일왕은 목에 드리운 날카로운 칼날의 차가움에, 떨리는 몸을 주체하지 못하고 늙은 몸을 휘청거렸다.
- 아아!
단상아래 수많은 참석자들이 울먹이며 탄식을 터뜨렸다.
행사 참석자들이 앉아있는 곳의 가운데 통로, 그가 걸어 온 피의 길이 펼쳐져 있었다. 비 오듯 쏟아지는 총탄을 뚫고, 앞을 막는 자 모두를 베어버리며 걸어온 시산혈해의 길이었다.
그 피의 바다에 빠진 참석자들이 올려다보는 단상 위.
일왕이 자신의 발아래 쓰러져있는 하얀 드레스의 가냘픈 여자를 안타까운 시선으로 내려다보았다. 목에 드리워진 칼날 때문에 그녀의 곁으로 다가갈 수조차 없는 자신의 처지가 비참하리라. 일평생을 같이 한 자신의 여자,
늙고 주름진 일왕의 얼굴에서 회한의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내가 조선의 호위무사다!
너희 간악한 왜놈들이, 잔악무도하게 살해한 조선 왕비의 호위무사, 내가 너희를 단죄하러 돌아왔다!“
분노로 가득 찬 그의 목소리가 일왕궁에 울려 퍼졌다.
행사를 중계하던 카메라들이 정신없이 움직였다.
그렇게 피를 뒤집어쓴 체 포효하는 그의 모습이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제1장. 1895년 그날
탕!
멀지 않은 곳에서 총소리가 들려온다. 흐려지던 정신이 다시 번쩍 돌아왔다.
‘또 몰려오는 것인가?’
기감을 펼쳐 볼 필요도 없이 무수한 발자국 소리와 고함소리가 이를 대신한다.
몇 일째 시달리고 상처 입은 몸은 이미 만신창이가 되어버렸지만 천천히 피 묻은 검을 다시 움켜쥐고 마음을 가다듬었다. 입고 있는 검은색의 무복은 수많은 자들이 흘린 피와 나의 피로 인해 더욱 검붉게 변해 있었고, 그 마저도 여기저기 자잘한 상처의 흔적들로 너덜너덜 헤져버렸다.
수십 해를 지내오는 동안 위험한 고비가 몇 차례나 있었다. 그녀를 홀로 업고 피신을 했던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이번엔 너무 위험하다. 습격하는 놈들의 능력도 능력이지만 저 총소리가 단신으로 막아내기에는 역부족이란 생각을 하게 만들며 점점 나를 두렵게 만들고 있었다. 내 한 몸 죽는 것은 두렵지 않으나 지켜주지 못할까 그게 두려웠다.
모든 것을 버리고 예전처럼 피신하는 것은 그녀가 원치 않았다. 상황이 다르다생각할 뿐 내가 나설 수는 없다.
그녀는 세월이 흐르며 많이 변해갔다. 처음 만났던 순간의 순수하고 가녀린 모습은, 왕의 여자로 바뀌며 조금씩 변해 갔다.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치는 과정에서 변해야만 했었는지, 자리가 사람을 그렇게 만들어갔는지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권력에 대한 집착과 탐욕, 암투 그리고 시기, 질투, 권모술수, 이 모든 것들이 그녀를 권력의 정상에 올려놓았지만 내가 탓할 일은 아무것도 없다. 오히려 적극적으로 나서서 그녀의 적들을 제거해 주지 못하는 나의 입장이 미안할 뿐이었다.
단 한번, 나의 등에 업혀 도망치던 그녀가 힘겹게 말을 꺼내며 내게 물었던 적이 있었다.
“제 곁으로 나와서 저를 도와주실 수는 없는지요?”
그러나 그렇게 물어보던 그녀도 알고 있었다.
내가 밝은 곳으로 나와 그녀의 옆에 나란히 선다는 것은 그녀 역시 가진 모든 것을 포기해야 하는 일이라는 것을, 심지어는 목숨까지도...... 포기하기엔 너무나 많은 것들을 그녀는 가지고 있었고 또 지켜야 했다.
그녀 외에는 나의 존재를 알고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예전 위기가 닥쳤을 때에도 그녀를 따르던 몸종만이 눈치를 챘을듯하지만 그녀가 알아서 처리할 일,
나는 그녀 앞에 당당히 나설 수도 그녀의 옆자리에 다가갈 수도 없다. 내가 그녀의 그림자 속으로 숨어든 순간부터 나는 지워진 존재였고 오직, 그녀를 지키는 숨겨진 칼일 뿐이다.
이미 상처들은 스스로의 치유력을 넘어 서 버렸다. 빨리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나의 목숨도 위태롭다는 것을 느낄 수 있지만 죽더라도 여기서 물러 설 수는 없는 노릇.
흐려져 있던 눈에서 잠시 한광이 번뜩였다.
-당신을 지켜 주겠소!
그렇게 약속을 했다. 죽어도 지켜야했다.
- 작가의말
오랜만에 돌아와 약간 수정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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