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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ject.P

욕망 시대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판타지

완결

굴P
작품등록일 :
2022.05.11 10:32
최근연재일 :
2023.05.08 18:05
연재수 :
264 회
조회수 :
83,288
추천수 :
3,417
글자수 :
1,991,958

작성
22.05.23 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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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7
추천
28
글자
18쪽

공조 수사(1) - 만남은 사건 현장에서

DUMMY

#1


오도독.

과자를 씹으며 의자에 등을 기댄다.


고개를 들자 이젠 꽤 익숙해진 천장이 눈에 들어왔다.

바로 옆에는 수북하게 쌓인 만화책 너머 얼굴 없는 머스칼이 소파에 널브러진 상태.


딱 점심 직후 노곤한 오후의 졸음 속에서 난 눈꺼풀이 감기는 걸 겨우 참는 중이다.


‘이게 맞나?’


막판에 우여곡절이 좀 있었지만 어떻게든 끝난 미켈로 사건.

그 이후 일주일 넘게 지난 오늘까지, 공업의 야심 찬 새 사업팀 ‘노페이스’ 는 말 그대로 아무것도 안 하는 중이다.


결과만 보면 노페이스의 첫 업무 자체는 성공적이었다.

연방이 원했고 글라타가 내주기 싫어하던 에이전트가 꼴까닥 하셨으니 두 나라가 싸울 이유가 없어진 것이다.


외국 레베스타의 용병인 파스트라스도 공식적으론 ‘그곳에 없었다.’ 라는 식으로 처리됐는지 그쪽 관련해선 아무런 얘기도 없다.


이후로 연방과 글라타의 남은 분쟁이 몇 가지 있긴 했지만, 본격적으로 대표님이 생각하는 ‘전쟁’ 이라는 큰 규모의 싸움도 없었다.


즉, 노페이스는 제대로 임무를 완수했다는 얘기.


‘...실수로 찌른 건데.’


물론, 내가 ‘실수’로 글라타의 에이전트를 ‘조금 멀리’ 보내버리긴 했지만, 분쟁 원인이 사라진 탓에 전쟁이 끝났으니 내가 한 일은 틀리지 않았다.


오히려 독심술 같은 성가신 능력을 가진 감응자가 살아있다면 그건 그거대로 새로운 분쟁을 낳았을지도 모르잖아?

그래. 틀림없다.


그렇게 미켈로 일이 끝나고 대표님은 그 사후 처리를 위해 오늘도 어디론가 출장.


그리고 어떤 임무도 하달되지 않은 상태에서 요즘 노페이스의 일과는 과자와 만화책, 낮잠으로 이루어진 부지런한 나태함이 전부였다.


“저기요. 머스칼.”

“어엉?”

“우리 언제까지 이러고 있는 거죠?”

“헤이카가 일을 줄 때까지겠지.”

“....”


틀린 말도 아니라 대꾸할 생각도 들지 않았다.

노페이스의 일은 일단 분쟁 지역의 정보 입수가 먼저인데, 그건 회사의 몫이다. 목적지를 잡아줘야만 노페이스가 움직일 수 있다는 말이다.


정작 그 목적지를 잡아주는 회사에서 아무런 지시가 없다. 대표님도 ‘조금 쉬어.’ 라는 소리만 남기곤 사라져서 얼굴도 보기 어렵다.


“뭐 마실래요? 잠깐 바람 좀 쐬고 오게.”

“그럼 난 주스로 부탁한다. 음.. 레몬.”

“주문받았습니다.”

“아, 닭꼬치도. 매운맛.”

“옙.”


옥상 제외 30층 건물인 이 카시라트 공업 지부에서 노페이스의 사무실은 무려 대표 사무실 바로 아래인 29층.

높은 곳에서 세상을 내려다보는 기분은 나쁘지 않지만 그것도 일주일 째, 온종일 하고 있으니 슬슬 질린다.


“안녕하세요..”


엘리베이터에 오르며 인사를 하자 안에 있던 사람들이 화들짝 놀라며 내 눈을 피했다.

이 건물 자체가 공업 소유다. 그러니 만나는 사람은 전부 공업 직원이라는 뜻.


그러나 평범한 공업 직원들에게 나는 공포의 대상이다.


“아, 안녕하세요..?”

“아하하.. 히....”


누가 봐도 어색한 미소와 인사.

급하게 다음 층을 누르더니 죄다 문이 열리자마자 도망치듯 우르르 내렸다.


‘사람을 무슨 귀신 보듯이..’


일주일 쯤 지나서야 깨달은 건데, 공업 내부에서 그 얼굴 없는 머스칼은 꽤나 무시무시한 인물로 여겨지는 것 같다.


머스칼이 건물 내부를 돌아다니기만 해도 단숨에 다들 숨을 죽이고 자기 일에만 집중.

모니터에 들어갈 기세로 고개를 처박는 걸 몇 번이나 본 적 있다.


그런 머스칼을 상징하는 ‘노페이스’ 라는 팀명.

그리고 난 그 노페이스의 팀장.


머스칼과 붙어 다니는 데다가, 내가 미켈로에서 파스트라스 용병들을 썰고 다녔다는 소문은 대체 어떻게 퍼졌는지 이 건물 사람들은 죄다 알고 있다.


그것도 굉장히 무시무시한 소문으로 돌고 있었다..


‘노페이스의 신입 팀장이 사람으로 회를 떴대!’


시발..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회 뜨지 말고 깔끔하게 할 걸 그랬네.


저런 소문이 퍼져있으니 ‘저 무서운 사람 아니에요.’ 라고 해봤자 다들 어색하게 히죽거리다 서둘러 자리를 피하기 마련이다.


아리따운 여사원들까지 전부 나만 보면 기겁을 하고 도망가니.. 어쩔 수 없다지만 참 씁쓸하다.

사회에서 만나는 찐한 로맨스 따위는 내가 실수로 쑤셔버린 글라타 에이전트와 함께 돌아올 수 없는 강 너머로 가버린 것 같다.



...



“편의점이나 가자..”


대도시답게 이곳 카시라트는 으리으리한 빌딩 숲으로 가득하고 그만큼 직장인들의 편의를 위한 시설이 곳곳에 있다.

그 중에서도 내가 애용하는 건 당연하게도 편의점이다.


특히 집도 가깝고 회사와도 가까운 단골 편의점은 필라드에 있던 편의점과는 차원이 달랐다.

무려 ‘아포칼립스 편의점’ 이라는 별난 간판을 걸고 있긴 해도, 물건도 확실히 많고 가격도 싸다.

처음 보는 것들도 많아서 갈 때마다 구경하는 재미가 있다.


“응?”


그렇게 편의점에 도착했는데, 바로 옆 골목에 폴리스라인이 쳐져 있었다.

노란 테이프와 거기 적힌 ‘출입 금지’ 글자. 앞을 지키는 아저씨들을 보니 저기서 뭔가 있었나 보다.


‘별일이네.’


카시라트는 대도시이자 강철 도시로 분류되는 곳 중 하나다.

강철 도시는 도시 분류로 치면 최상급의 거주지로 통하고, 그만큼 치안도 확실하다.


원래 살던 필라드야 워낙 작고 다 쓰러져가는 건물 뿐이라 으슥한 골목에서 누구 하나 비명횡사해도 별 소문이 없다만 이 강철 도시 한복판에서 사건이 벌어지는 건 정말 드문 일이다.


그래도 나랑은 상관없는 일이다.

굳이 저런 뒤숭숭한 사건보단 당장의 닭꼬치가 더 중요했으니까.


“....”


편의점을 들어서자 이젠 얼굴도 익숙한 여자 알바가 고개만 살짝 숙여서 인사를 해왔다. 약간 달달한 향수 냄새가 풍긴다.

볼 때마다 느끼지만 참 괜찮은 얼굴인데, 어딘가 퀭하니 항상 피곤해 보이는 사람이다.


대강 물건을 집고 계산대에 늘어놓자 알바는 언제나처럼 느릿느릿하게 바코드를 하나씩 찍었다.


“옆에 골목에 무슨 일 났나 봐요?”

“.....”

“....”

“...네..”


두 박자는 늦은 대답. 생각해보니 처음으로 목소리를 들었다.


“사람이 죽었어요.. 손이 잘리고.. 괴상한 포즈로..”

“...진짜요? 엽기 살인이네.”

“감응자 범죄인 것 같아서.. 정부 소속 에이전트가 곧 온다네요...”


괜히 에이전트라는 단어에 움찔하게 됐다. 빌어먹을. 실수였다니까.


“무섭겠어요.”

“그냥 그랬어요.. 자주 보.. 아..”

“?”

“아무것도 아니에요..”

“근데 직접 보셨어요?”

“제가 신고했거든요..”


손이 잘리고 괴상한 포즈로 죽은 사람이라니.

내가 할 말은 아니지만 생각만 해도 썩 유쾌하진 않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그런 걸 직접 보면 여간 충격이 클 텐데.


“그런 거 봤으면 며칠 쉬어야 되는 거 아녜요? 사장님한테 말씀해보시지.”

“제가 사장이라서요..”

“아.. 알바인줄.. 알바 없어요? 사람 좀 구해서 시켜요. 맨날 혼자 일하시던데.”

“...괜찮아요.. 카드 주세요..”


평소라면 쪼들려서 샌드위치와 우유로 때웠겠지만 지난번 첫 업무의 성과금으로 지금 내 통장엔 살면서 처음으로 0이 엄청나게 붙었다.

그래서 이렇게 군것질도 하는 거다. 먹고 살려고 하는 일인데, 먹는 거라도 잘 먹어야지.


“고맙습니다.”


물건을 담은 봉투를 받고 인사하자 저쪽에선 다시 고개만 꾸벅 숙였다.

낯을 가리는 건지, 말하는 게 귀찮은 건지 모를 사람이다.


그렇게 편의점을 나왔더니 폴리스라인 앞에 익숙한 똥차 하나가 서 있었다.


앞이 000으로 시작하는 번호판.

이제 기억났는데, 코렌의 공무원들이 쓰는 번호판이다.


“응?”


차에서 내린 얼굴이 어째 익숙했다.


“아.”


전에 필라드에서 길 물어봤던 아저씨였다.



#2


“어서 오십쇼~! 본사에서 나오신 분들입니까?”

“수고하십니다.”

“별말씀을. 편히들 보고 가십쇼. 하하.”


감응자 범죄에 의한 현장은 극히 드물게 능력이 잔류하고 있을 위험성이 있다. 때문에 사건이 종결될 때까진 현장 보안이 꽤 확실하다.

에이전트인 우리에겐 그다지 상관없는 얘기지만 말이다.


“저희 옷 구경하러 온 거 아니거든요?”

“예?”

“여긴 살인 사건 현장이에요. 말조심하세요.”

“예.. 음.. 실례했습니다. 들어가시죠. ......쯧.”


보안팀이 무슨 잘못이겠냐마는, 이 양반들은 에이전트가 아니라 감응자가 어떻게 죽었든 그 사건 현장 자체는 그저 ‘일터’ 라고만 생각한다.


바꿔 말하면 사람이 죽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거다.

감응자를 사람으로조차 취급하지 않는, 무의식적인 그런 인식이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건 요즘 같은 시대엔 흔한 일이다.


그런데 이 깐깐한 후배께선 저런 것들에 상당히 민감하다.

본인도 감응자라 그러는 건지, 그냥 인간적인 면에서 그러는 건진 물어본 적 없지만, 솔직히 귀찮은 마찰만 없으면 난 신경 쓰지 않는다.


에이전트가 인식이 구리긴 해도 권한은 우리가 훨씬 높으니 저렇게 나오면 다들 꼬리는 내린다.

즉, 어지간해선 크게 터질 일도 없으니 땍땍거리는 건 그냥 내버려두는 편이다.


“사람이 죽었는데. 뭔 태도가 저래요? 성질나게.”


골목길로 들어선 후배는 여전히 씩씩거리며 화를 냈다.

‘쟤네는 감응자를 사람으로 안 보거든.’ 라고 말해주고 싶지만, 그랬다간 내가 귀찮아지겠지.


“역시 차장님한테 말해서 보안팀 교육 좀 시키라고 해야겠어요. 저런 사람 한 두 번 보는 것도 아니고.”

“..야. 그건 좀 귀찮아진다. 그냥 넘어가.”

“선배는 화도 안 나요? ‘편히들 보고 가십쇼?’ 여기가 무슨 백화점이냐고요. 살인 사건 현장. 사람이 죽은 곳이잖아요. 적어도 진지하게, 엄숙하게 대할 줄 알아야지. 그건 감응자와 비감응자를 떠나서 인간으로서 당연한 거예요.”

“그래. 네 말이 다 맞다.”

“또 건성건성. 선배는 그렇게 만사 귀찮아하면서 현장은 잘 돌아다니는 게 참 신기하네요.”

“이것도 안 하면 월급을 안 줘.”


진짜다. 그러니까 다니는 거지.

당연히 후배는 꽤 따가운 눈초리로 날 흘겨댔다. 더 잔소리 듣고 싶진 않았는데, 때마침 현장에 도착했다.


“여기다.”


시신이 있던 자리는 여전히 말라붙은 피가 잔뜩 있었다. 바닥에도, 벽에도.


이 현장 자체가 하나의 증거라서 함부로 건드리지 못한다.

그리고 이 마른 피에 무슨 능력이 잔류하고 있을지도 모르니 다들 조심스러워한다.


“이 정도 양이면 출혈로 인한 쇼크사가 맞겠네요. 손도 못 찾았다고 했죠?”

“그래. 이 근처를 아무리 뒤져봐도 없단다. 쓰레기차까지 뒤집어엎었다던데.”

“...범인이 손을 가져갔나?”


수집. 전리품. 그런 의미에서 피해자의 신체 부위를 가져가는 싸이코같은 놈들이 가끔 있다.

그게 이번 사건에서 사라진 양손이라고 볼 수도 있다.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고. 감응자 범죄인 건 확실해서, 능력으로 손을 날려버렸을지도 몰라.”

“근데 왜 굳이 손일까요? 손을 잘라낸다고 바로 죽진 않잖아요. 범인 입장에선 피해자가 날뛰면서 피가 튈 수도 있고, 의외의 역공을 당할 수도 있는데.”

“보복성, 증오에 의한 살인일 가능성이 있다.”


손.

굳이 없어진 게 손이라는 사실이 그 추론을 뒷받침한다.


“이놈의 능력은 인지 조작. 발동 조건은 ‘손으로’ 만질 것. 굴러다니던 돌을 다이아로 보이게 하려면 어찌 됐든 그 돌을 반드시 손으로 만질 필요가 있어.”

“손으로 만져야만 능력이 적용된다.. 게다가 그걸 이용한 사기꾼이었으니 사기를 당한 피해자가 보복 목적으로 손을 잘라내거나 자기 능력으로 없애버렸다? 음. 확실히 가능성은 있네요.”


하지만 맞지 않는 것도 있다. 바로 시신의 상태다.


“그런데 시신은 팔다리가 꺾여서 방치되어 있었지. 그리고 최초 목격자인 편의점주는 그걸 널브러졌다고 표현하진 않았어. 한눈에 봐도 뭔가의 형상을 만들려고 억지로 팔다리를 꺾어 놓은 거야. 보통 보복성 살인이라도 어지간해선 그런 식으로 공을 들여 방치하지 않아. 시신을 어떻게든 처리하려고 하는 게 당연하지. 현장과 시신 자체가 증거니까.”

“시신에선 뭐 나온 거 없고요?”

“부검 결과가 나와야겠지만 안타깝게도 없을 것 같다. 머리카락이나 지문 하나 안 나오고 있어. 현장에서도 가해자의 흔적은 전혀 없고.”


다시 정장 안주머니에 있던 사진을 꺼냈다. 시신이 찍힌 사진이다.

후배는 침을 꿀꺽 삼키더니 사진을 받아 살폈다.


“..문양? 뭔가 문양을 만들려고 했던 건 확실하네요. 이제 보니 피로 나머지를 그려서 완성했네요? 음.. 동그라미? 뭐래요? 이거?”

“그건 월교(月敎) 상징이다.”


후배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리는 게 보였다.

저런 반응은 당연하다.


월교(月敎).

사이비가 넘쳐나는 이 시대에서도 월교는 ‘달’을 신처럼 모시는 누가 봐도 완벽한 이단 사이비 종교다.


문제는 그 종교의 몸집이 상당히 크다는 것.

게다가 여러 음습한 쪽에 죄다 발을 들여놓고 있다는 점이다.


녀석들은 사이비 종교의 탈을 쓴 범죄 조직이자 조직 폭력배고, 저기 윗동네로 치면 마피아 같은 놈들이다.


이 나라에서도 뭔가 뒤가 구리고 돈 냄새가 나는 곳엔 항상 월교가 껴있다. 이제 와선 무시할래야 무시할 수 없는 놈들이란 소리다.


그렇다고 법으로 심판하자니 놈들은 절대 빈틈을 보여주지 않는다.

사이비 종교라곤 해도 신자가 엄청나게 많고, 겉으론 범죄의 ‘범’자도 안 보이는 지극히 평범한 종교 단체이기 때문이다.


기부도 많이 하고, 고아원을 여러 곳에다 세워 운영까지 한다.

어디서 나는 자금인지 정부 쪽 고위 인사나 도시 행정부, 경찰, 심지어는 우리 에이전트 부서의 윗대가리에도 살살 돈을 꽂아댄다.


덕분에 사실상 월교는 우리가 건들 수 있는 놈들이 아니다.

괜히 손댔다가 무슨 핑계로 불이익이 떨어질지 모르고 재수 없으면 쥐잡이한테 칼 맞는다.


“...이건 월교가 벌인 짓은 아닌 것 같아요.”


후배가 말했다. 나도 그 의견엔 전적으로 동의한다.

사건 현장에 피해자의 몸과 남은 피로 월교의 상징을 그려놓았다는 건 누가 봐도 월교를 저격한 거다.


애초에 월교의 철두철미함과는 차이가 너무 난다.

더러운 놈들이긴 해도 이렇게 눈에 띄게 ‘우리가 했소.’ 라는 식의 흔적은 절대 남기진 않는 녀석들이다.


“누군진 몰라도 배짱 하나는 인정해야겠다. 겁도 없이 월교 상징을 그려놓다니.”

“월교 측에선 따로 말 없어요? 아닌 건 알지만 일단은 가장 먼저 그쪽을 찔러봤을 것 같은데.”

“자기네들과 무관한 사건이라고만 했어.”

“대신 그쪽도 움직이고 있겠죠?”


당연하다.

자기네들의 상징을 이런 엽기적인 살인 사건 현장에 그려놨으니까.


월교가 사이비 종교라곤 했어도 달을 숭배한다는 종교관 자체는 진짜다.

수뇌부조차 거짓 숭배가 아니라, 진짜로 달을 신이라고 생각하는 정신 나간 놈들이다.


월교는 분명 이 사건에 개입하고 있다.

자기네들이 벌인 일이 아니라면 월교의 문양을 멋대로 그린 범인을 자기들끼리 쫓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바로 여기서 공조 수사 요청이지.”

“그러고 보니 어디서 온 거래요?”

“이클립스 공업.”


후배는 노골적으로 싫다는 표정을 했다.


“걔네 좀 그런데..”

“그래도 정보력에선 우리 본부보다 위다. 어지간한 일도 돈으로 후려칠 수 있고.”

“으음.. 그런데 공업에서 이 사건에 왜 관심을 둔대요?”

“메이든 퍼스를 살해한 범인에 대해 알고 있는 모양이다. 우리가 모르는 무언가를 알고 있어.”


당연하게도 후배는 휘둥그렇게 뜬 눈으로 날 쳐다보았다. 그리곤 곧바로 얼굴을 잔뜩 구겼다.


“그쪽은 범인을 아는데, 안 알려줘서 우린 이러고 있다는 거예요? 그러면서 공조 수사 요청? 뭐 하는 거래?”

“차장 지시다. 최대한 공업에 협력하라더군. 범인의 소재를 최대한 빨리 찾아내라. 단, 그 이상은 관여하지 말도록.”

“에이씨..”


그야 이 정의로운 후배의 성격상 이런 일이 맞지 않을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위에서 내려온 지시 사항이고 우린 지시대로 움직이는 정부의 도구일 뿐인데.


“참, 그거 아냐? 적의 적은 아군이라는 말.”

“...네? 아니, 싫은데요. 그거 선배 혼자 해요. 진짜 싫어? 나 말했다?”

“땡깡 부리지 마. 가자.”


후배는 사색이 된 얼굴로 내 팔을 잡아끌었다. 난 반대로 녀석의 팔을 잡아 질질 끌고 걸었다.


“으에에엑! 싫어!! 진짜 싫다고요!! 선배! 선배님! 월교는 미친 새끼들이에요! 네? 그만두죠? 제발요? 네? 사랑해요. 선배님!”

“웬일로 네가 그런 소릴 하냐. 진짜 싫긴 한가보다?”

“씨.. 당연하죠! 걔네랑 협력하자느니, 그딴 더러운 짓을 할 것 같아요!? 아무리 에이전트라지만 그건 선 넘었거든요!?”

“차장이 수단 방법 가리지 말랬어.”


괴상한 신음을 내며 후배는 뭔가 중얼거렸다.

조금 있으면 또 체념하고 얌전히 따라오겠지.


적의 적은 아군이다.


이 사건의 범인이 누군진 몰라도, ‘우리가 알아선 안 되는’ 인물임은 분명하다. 그러니 공업의 공조 수사 요청이 들어왔음에도 우린 들러리 역할이겠지.


그러니 이쪽은 이쪽대로 정보를 캐내면 된다.

그리고 이런 경우, 가장 정보가 많고 빠른 곳은 당연히 적의 적. 즉, 월교다.


그렇게 빠져나가려는데, 골목 바깥이 소란스러웠다.


“그냥 살짝 기웃거린 거뿐인데, 왜 지나가던 사람한테 시빕니까?”

“씁. 이 어린 놈의 새끼가..!”


누군가 보안팀과 다투고 있었다.


이제보니 아까 후배한테 한 소리 들은 그 보안팀 직원이었다.

감응자한테 한 소리 들은 게 싫다고 민간인한테 화풀이라니, 저쪽 군기도 참 빠질 대로 빠졌네.


“응?”


그런데 어째 다투고 있는 젊은 남자의 얼굴이 익숙했다.

어디서 본 것 같은데.


“아, 필라드.”


필라드에서 길 알려준 그 젊은 친구였다.

여기서 다시 보게 될 줄이야.


“아저씨. 내가 누군지 압니까? 예? 저 이클립스 소속 직원입니다. 그것도 팀장급이라고.”


공업 소속?


재밌겠는데.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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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노페이스(No-Face) +4 22.05.16 1,029 35 17쪽
5 이클립스 공업 +3 22.05.13 1,297 42 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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