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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ngsRoad 님의 서재입니다.

신의 장난 (Mischief of providence)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퓨전

KingsRoad
작품등록일 :
2015.08.23 00:08
최근연재일 :
2016.01.01 00:42
연재수 :
137 회
조회수 :
233,766
추천수 :
5,575
글자수 :
862,652

작성
15.08.23 00:16
조회
9,064
추천
189
글자
20쪽

우리는 패배했다

DUMMY

-뚝. 뚝. 뚝


뜯겨나간 왼쪽 하복부에서 흘러나오는 피가 패배를 암시한다.


‘진 건가? 그래...나는 패배한 것이구나.’


부서진 콘크리트 바닥. 당장이라도 무너질 듯 아슬아슬한 벽기둥으로 등을 밭인 채 거친 숨을 내쉬고 있는 남자는 하늘을 올려봤다.

오후 2시라 밝다 못해, 눈이 부셔야할 시간이지만 올려다본 하늘은 어두웠다.

태양을 가린 잿빛의 구름, 핵의 여파로 끊임없이 떨어지는 낙진가루가 점점 그의 얼굴을 덮는다.


분하다. 억울하다. 화가 난다. 그런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저 뭔가 허탈하고 또 한편으로는 개운했다. 2년에 걸쳐 종족의 운명을 짊어진 이 기나긴 이야기가 드디어 끝난 것이다.


아쉽지는 않은가?


분명 패배한 것은 그로써도 아쉬웠다. 그러나 그뿐 이었다. 가족? 친우? 동료? 자신보다 약했던 그들은 이미 이 세계에 없었다. 누군가는 도망치다가, 누군가는 자신을 구하려다. 점점, 조금씩, 한명의 죽음에 대한 슬픔이 채 가시기도 전, 다른 한명이 사라져 갔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기억나는 것은, 얼마 걸리지 않아 자신이 지키고 싶은 사람이 한명도 남지 않았다는 것이다. 최선을 다했다. 죽을힘을 다했다. 그것은 변명에 불과했다.


그저 자신이 약했기에 지키지 못한 것이다. 그렇다. 지금의 남자에겐 더 이상 싸울 이유가 없었다. 그럼에도 죽을 힘을 다해 그들과 마지막 대결을 한 이유는 아마 여태까지 자신을 대신해서 죽은 동료에 대한 죄책감과 얼마 남지 않은 같잖은 자존심 때문이 였을 터다.


하지만 그것도 오늘까지다.


‘그래.....이젠 정말 끝이야.’


-저벅 저벅 저벅


전현이 무미건조한 눈으로 무심히 고개만 돌려 발소리의 근원지를 바라봤다. 콘크리트와 모래바람이 흩날려 아직 시야에 잡히는 것은 없었다. 다만 전투상황임에도 여유롭게 울려퍼지는 발소리는 적 스스로도 자신의 승리를 예감하고 있는 듯 했다. 그렇게 점점 커지는 발소리는 움직이지 못하는 전현에게 천천히, 사형선고와 다름없이 다가오고 있었다.

마침내 모래폭풍 속에서 그림자가 드리우더니 여자 아니 여자처럼 보이는 생명체가 모습을 드러냈다.


폭격이라도 맞은 듯 그을린 얼굴과 갑주가 파손되어 그 사이로 드러난 흰 살결. 전투가 얼마나 치열했는지, 모습을 드러낸 여자의 겉모습은 전현보다 덜했을 뿐 썩 그리 상태가 좋아보이진 못했다.


그녀는 언제나처럼 감정하나 없는 인형같은 얼굴로, 언제나처럼 단호하게 대검을 쥔 채로 전현을 향해 걸어왔다.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자니 문득 전현의 입가에선 실소가 나왔다.


인류를 상대로 이토록 완벽한 승리를 하고도, 너는 뭐가 만족스럽지 못해서 여전히 그런 표정을 짓고 있는가? 너는 기쁘지 않다는 것인가.


전현은 어느새 자신의 앞까지 와있는 그녀를 바라봤다.


과도한 출혈 때문에 눈앞이 흐렸지만 자신이 올려다본 여자가 현대의 미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 눈부시게 아름답다는 것만큼은 알 수 있었다. 요즘에 들어와서는 3류 소설에서나 등장할만한 진홍의 머리카락과 태양빛처럼 밝게 타오르는 붉은 눈, 잡티 없는 우윳빛의 피부와 오똑한 코.

만약 그녀의 몸을 두르고 있는 것 이 부서진 갑옷이 아니라 평범한 옷 이였다면, 손에 쥐고 있는 것이 피 묻은 대검이 아니라 작은 핸드백 이였다면, 그녀는 분명 온 세상 남자가 한번쯤은 꿈꿔 봤을 로망 그 자체였다.


하지만 인간과는 유일하게 다른 뾰족한 귀를 가진 그녀는 인간이 아니란 것을 스스로 증명하듯 사람들을 학살했다.


이유가 무엇이냐고 누군가가 전현에게 묻는다면, 전현 스스로도 “알 수 없다.” 라고 밖에 답할 수 없다. 그들은 2013년 제3차 세계대전이 가까스로 막을 내린 직후 일본상공에 갑작스레 나타났다.


반경 50km가 넘는 타원형의 구조물은 우주에서 온 외계인의 비행접시를 연상시켰지만, 크기와 규모가 영화에서 나오는 자그마한 것과는 많이 달랐다. 이를 본 살아남은 과학자들은 현 상황과 자신의 과학적 지식, 능력자들의 능력을 상기시켜 몇 가지의 추론을 했다.


첫째. 말 그대로 갑작스레 나타났다.

둘째. 대기권을 통과한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

셋째. 지구침공이 목적이라면 세계가 반 붕괴한 지금, 왜 공격하지 않는가.

넷째. 아무런 추진력 없이 거대한 구조물이 상공에 떠있는 것은 과학의 법칙으로 불가능하다.


그 이외에도 몇 가지가 더 있었지만, 결국 과학자들은 능력 없이는 현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판명했다. 덕분에 사람들은 상공의 구조물을 능력자들의 쓸데없는 장난이라 생각하게 되었고, 전쟁의 복구가 시급한 사람들은 구조물을 잊기 시작했다. 물론 능력의 한계선을 알고 있는 몇몇의 능력자들은 이를 이상하게 여겨 자신의 능력을 이용하여 구조물을 탐색하려 했다. 그러나 구조물은 외부의 간섭을 일체 허락하지 않는 듯 그 누구도 내부로 들여보내주지 않았다.

짧은 장소를 연속적으로 순간이동 할 수 있는 점멸의 능력자나, 좌표만 알면 어디든 들어갈 수 있는 텔레포터조차 내부로 들어가는 것은 불가능!

결국 의심을 품었던 몇몇의 능력자들조차 능력의 간섭이 분명하다고 판명하며 스스로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그렇게 세계는 천천히 복구되며 안정을 찾는듯했다.

그러나 구조물이 나타난 지 반년 째 되는 날, 움직임을 멈춘 채 무엇으로부터도 침공을 허락하지 않았던 구조물이 천천히 이동하기 시작했다.


예상 목표지점은 한국!


덕분에 잊혀 졌던 구조물은 순식간에 세계의 이목을 끌었다. 어떤 목적으로 이런 거대한 건축물을 만든 것인가, 또한 이런 것을 지탱할 수 있는 힘을 가진 능력자는 누구일까. 그렇게 대단한 능력자다라면 혹시 이 전쟁 때문에 망가져버린 문명을 좀 더 빨리 복구 할 수 있지 않을까.


사람들은 움직이는 구조물을 보며 전율을 느꼈다.


물론 능력의 한계를 아는 전현은 그때까지만 해도 가까스로 지킨 자신의 가족, 동료들과 함께 자신의 보금자리를 재건하고 있었기에 별로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하지만 구조물이 나타난 지 6개월하고도 정확히 13일 되던

[2013년 7월 23일]

한국 상공에서 구조물의 입구가 열리면서 세계의 끝이 시작되었다.


우주복 비스 무리한 것을 입은 그들은 구조물에서 튀어나오자마자 도시를 재건하고 있는 한국인들을 공격했다. 갑작스레 공격당한 한국은 그 무엇도 할 수 없었다. 있는 것은 일방적인 학살뿐.


전현은 아직도 그 장면이 잊혀 지지 않았다. 전쟁에서 가까스로 지켜왔던 소중한 가족들이 눈앞에서 한순간에 사라지는 모습이. 하지만 그들의 만행은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그들은 동시다발적으로 각국에 공습을 가했다.

중국, 러시아, 일본 등등의 아시아 국가들은 머리위로 떨어지는 레이저에 대응한번 하지 못하고 한순간에 전력을 상실했다.

그나마 얼마 남지 않았던 능력자들도 한순간에 목숨을 잃었다.


간신히 살아남은 능력자들은 힘을 합쳤다.

그 수가 채 2000명이 되지 못했지만, 그들은 반격에 나섰다.

방어막을 깨부수고 모선을 파괴한다. 오직 한가지의 목적만을 위하여.


그렇게 기세가 조금씩 인류에게 기울기 시작할 어느 무렵. 어느 때와 같이 구조물의 문이 열렸다.


능력자들은 그 모습을 지켜보며 어느 때와 같이 그들이 우르르 튀어나올 그 순간만을 기다렸다. 이 세계의 법칙을 무시하는 능력만 잘 이용한다면, 모여 있는 그들을 한방에 처리 하는 것 도 불가능하지 않다 판명했기 때문! 그러나 이번에는 평소와 조금 달랐다.


-저벅 저벅 저벅


빛이 일렁거리는 구조물 안에서 나타난 것은 한명의 여자였다. 화력지원팀에 있던 전현은 그때 그녀를 처음 봤다. 일렁이는 붉은 머리카락과 태양을 담은 듯 한 붉은 홍채. 어찌나 아름답던지 잔뜩 긴장하고 있던 능력자들조차 잠시 동안 넋을 잃었다.


그녀는 입구에 서서 주위를 한번 둘러봤다. 그 모습은 마치 매가 먹잇감을 찾는 모습과 흡사해 보였다. 그리고 찰나의 순간, 그녀가 입구에서 모습을 감추었다.


그 후로 전현이 기억하는 것은 그 전투가 아비규환이나 다름이 없다는 것 뿐 이였다.

너무나 압도적 이였다. 정신력계열의 능력자들은 능력을 채 발휘하기도 전에 목이 날라 가고 그나마 몸으로 때운다는 시간계열의 육체강화 능력자들은 채 1분을 버티지 못했다.


그나마 전현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는 능력을 방어에만 돌리고 필사적으로 도망쳤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한번의 전투로 1000명 이상의 사상자들을 낸 능력자들의 수는 크게 줄어 결국 채 500명도 남지 않게 되었다.


그 이후로 전투는 암울의 연속이었다. 패배하고 패배했다. 인류는 지속되는 패배만을 하며 종말을 기다렸다. 그때였다.


[기발점]이 된 이 사건은 한명의 능력자에 의해서 일어났다.

유일하게 능력 Lv8을 찍은 시간계 육체강화 능력자.

[김태형]

그는 전현의 능력을 얻은 이래로 갖은 격정을 이겨내며 사귄 전우이자 친우였다.

비록 5분 동안밖에 유지할 수 없는 능력이었지만, 그 시간 동안 세계의 법칙을 무시하는 초월자가 된 김태형은 제일 선두에서 항상 그녀와 맞섰다.


처음은5분, 그 다음은6분.

점점 유지시간이 길어지고 김태형이 그녀의 발을 오래 묶을 수록 능력자들은 구조물을 공격하기 쉬워졌다. 전쟁은 점점 소모전 양상이 되어갔다. 죽어가는[그들]과 인류.

그렇게 1년이 지나고, 싸움의 끝이 있는 것일까 의문이 들 때 쯤에 살아남은 능력자의 수는 10명이였다.


김태형, 손소염, 미카엘 켈, 아이덴 하츠보크, 링 첸, 야마다 히사미, 크리스 헤덴, 다니엘 콘라드, 알퀸 자이제프 . 그리고 전현


이 이상 소모전을 계속하며 승산이 없음을 깨달은 그들은 최후의 공격에 나섰다.

히사미의 움직임이 그녀를 혼란시키고 미카엘의 광범위한 중력마법이 움직임을 더디게 한다. 마하의 속도로 움직이는 전현의 무수하게 많은 창이 그녀가 지나갈 수 있는 공간을 묶는다. 움직임 제한되어있는 그녀를 향해 다니엘의 전격이 그녀를 감싸주는 배리어를 중화시킨다. 연속적으로 아이덴의 빙결이 발을 얼리고, 알퀸이 지축을 흔들어 땅을 가른다. 비행능력으로 이곳을 벗어나려는 그녀를 향해 링이 전술핵을 폭격하고 크리스는 모두를 보호하는 방어막을 만든다. 마지막으로 갈라진 땅으로 떨어지는 그녀를 향해 손소염이 고입자의 레이저포를 날린다.


생명체라면 그 누구라고 해도 소멸이 확실한 연계라 할지라도 10명은 숨을 죽인채 구덩이를 응시했다. 혹시 실패이 불안감에 보험으로 남겨둔 김태형은 이미 능력을 발동해 둔 상태였다.


흙먼지가 거치기를 기다리는 1분이 그들에게는 1시간처럼 느껴졌다. 문득 지면을 바라보고 있던 전현이 몸이 움찔거렸다.


“이런 미친. 아직 살아있다.”


전현의 말과 동시에 흙먼지가 가라앉고 그녀가 모습을 드러냈다.


화력을 버티지 못하고 걸레조각이 된 갑주, 이가 나가고 그을린 대검, 그럼에도 그녀는 전현의 말처럼 살아 있었다. 그것도 전에는 한 번도 보지 못한 흉흉한 붉은 오로라를 내뿜으며. 김태형은 어느 때와 같이 전투준비를 했다.

9명의 능력자가 도망칠 때까지의 시간 끌기!


“하아... 정말 골 때리는 분이시네, 으~아~! 씨발!”


그는 이목을 끌기위해 고함을 외치며 그녀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녀도 언제나처럼 무심한 표정으로 달려오는 김태형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그녀의 주위에 머물고 있던 붉은 광명의 일부분이 검기에 실려 김태형을 향해 날아갔다. 그 모습을 지켜보며 전현은 불안했다.

그의 능력은 [물질 최소단위를 다루는 능력]이다. 그렇기에 기본적으로 물체를 보면 어떤 입자구조로 되어있는지 알 수 있다. 그러나 그녀의 곁에 있는 붉은 오로라의 입자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마치 그 오로라 자체가 최소입자처럼 느껴졌다.


문득 좋지 않은 기분을 느낀 전현이 다급하게 외쳤다.


“맞받아치지 말고 피해! 김태형!”


그 말에 김태형이 반사적으로 몸을 돌려 검기를 피했고 크리스가 재빨리 9명에게 배리어를 걸었다.

그러나.


“아,안돼! 피해! 맞아선 안돼!”


전현이 다급하게 외쳤으나 반응한 것 은 미카엘과 히사미, 알퀸 뿐이었다.


-서걱


서늘한 소리와 절대로 뚫리지 않을 것 같은 크리스의 배리어가 붉은 광명에 잘려나갔다. 동시에 5명도 지상으로 추락하기 시작했다. 너무도 허망하게, 5명의 전사들이 목숨을 잃었다.


전현은 상체와 하체가 나뉘어 지상으로 떨어지는 손소염을 보았다. 능력이 생긴 초기부터 티격태격 싸우며 능력을 상향시킨 같은 정신계 능력자. 이제는 그 누구보다 친한 친구였다. 가족이 죽은 후 삶의 이유였던 두 명중 한 명.


“소, 소염....”


입이 움찔거렸다. 심장이 벌렁거리고 몸이 뜨거웠다.


“으아아아!”


전현의 고함소리와 함께 창들이 고속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콰콰쾅


마하 1의 속도를 간단히 뛰어넘는 속도, 그 모습을 보고 있던 미카엘과 알퀸도 움직였다.


“shit the fuck!!”

“젠장 어쩌다가, 이런 일이...”


그러나 진형이 붕괴 된 그들에게 사실 승산이란 것은 존재하지 않았다.

제일먼저 살아남은 5명중 움직임이 가장 느린 알퀸이 당했다. 그 이후에는 연속 텔레포트로 간신히 피하던 미카엘이 그녀가 난 방향으로 쏘아낸 검기에 맞았다.


이제 남은 생존자는 3명 뿐 이었다.


“하아, 하아...”


그 중에서도 히사미는 체력이 다되었는지 거친 숨을 내쉬고 있었다.


‘이길 수 없어.’


상태를 파악한 전현은 눈을 질끔 감았다. 그리고는 곧 무엇을 결심했는지 눈을 버럭 뜨고 김태형의 곁으로 다가갔다.


“내가 막을게 히사미를 데리고 빠져나가 김태형.”

“무슨 소리야?”


김태형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전현은 조심스레 그의 어깨를 잡았다.


“김태형... 레벨9, 그래 네가 레벨9까지만 찍는다면 희망은 있어. 그러니깐 내 말대로 해 난 어차피 정신계 능력자. 그녀를 죽어도 이길 수 없어. 그러니 제발... 부탁이야, 내 말대로 해.”


전현이 입을 굳게 닫은 채 김태형의 눈을 응시했다. 김태형의 눈은 살짝 떨리고 있었다.

전현은 피식 웃으며 김태형의 몸을 돌리고는 등을 쳤다.


“가라!”

“.....”

“가라고 나도 마지막은 멋진 척 좀 해보자!”


전현이 장난스레 말하자 김태형이 알겠다는 듯 히사미의 곁으로 다가갔다.


‘좋아.’


죽음을 각오한 전현은 김태형을 보고 있던 눈을 돌려 붉은 머리의 여자를 응시했다. 수많은 창을 동시에 무리하게 다뤄 정신력이 바닥을 기어야 정상이것만, 왠지 싸우기 전보다 머리가 맑아 진 것 같았다.


‘3분, 딱 3분만 버틴다.’


전현은 기합을 넣고 창을 잡았다. 그리고 범의 아가리로 돌진을 하려는 직전.


-턱


갑자기 전현의 어깨가 무거워 졌다.


‘다, 당했나?’


당황한 전현이 옆을 바라보자 거친 숨을 내쉬며 자신이 어깨를 감싸 메고 있는 히사미가 보였다.


“무, 무슨...”


전현이 뭐라 하기도 전에 창이 다짜고짜 움직이기 시작했다. 전현은 이를 악물고 어지러움을 참은 채 앞을 바라봤다.

김태형이었다. 그가 자신의 창을 돌리고 있었다. 무슨 짓을 하는 것이지?


“전현, 사실 나는 레벨 업을 해도 승산이 없어”


입으로 뭐라 말하는 것 같은데 회전이 너무 빨라서 들리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너에게 걸어보려고 해.”


“뭐라고 하는 거야! 들리지 않아! 갑자기 왜 그러는 거야! 도대체 왜!!”


전현이 고래고래 외쳤지만 고속 회전에 먹혀 소리 없는 아우성에 불과했다.


“고마웠다. 너가 아니 였으면 난 아직도 극복하지 못했겠지. 지금의 내가 있는건 다 네 덕이야.”


“그만 말해!, 그만 말하라고! 들리지 않아! 그러니 일단 멈추고 말해!”


갑작스런 김태형의 행동에 이상함을 느낀 전현이 그를 향해 손을 뻗으려는 찰나.


“그럼, 내 몫까지 복수해줘. good bye.”


-휘이잉~


어느덧 자신의 몸은 매서운 바람 소리와 함께 전장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


그 이후 전현은 이기기 위해서 무슨 짓이든지 했다. 강해지기 위해 정신력을 수련했으며, 남은 재래식 무기들을 최대한 이용하고, 히사미와 함께 게릴라전을 펼쳤다. 그러나 그렇게 수많은 노력에도 그녀를 이길 순 없었다.


결국 간신히 버티던 히사미가 적들에게 전사하고, 전현 스스로도 심리적 한계에 달한 어느날 그는 마지막으로 총공격을 행했다.


-휘이잉


먼지가 휘날리는 대지. 그녀는 대검을 땅에 박은 채 양손을 손잡이에 올리고 죽어가고 있는 전현을 응시했다. 전현이 마지막 힘을 간신히 짜내며 손을 들었다.


“끝났어, 끝났다고. 너희가 이겼어. 그러니 웃어봐.”


전현이 입을 부르르 떨며 말했다. 그러나 그녀는 여전히 무표정 이였다. 당연한 말이지만 그녀가 전현의 언어를 이해할 수 있을 터가 없었다. 그럼에도 전현이 가만히 있을 수 없었던 이유는, 종족전의 승자임에도 불구하고도 승리에 대한 웃음조차 보이지 않는 적에게 져버린 자신의 비참함 때문이었다.


“뭐라고 말이라도 해봐!”

“.....”

“비웃기라도 해보라고! 으으으아아악~!”


전현이 몸을 부들부들 떨며 포효했다.


“쿨럭...”


역류한 피가 전현의 입가에서 튀어나왔다. 전현은 눈앞에 놓여있는 대검의 검신을 손으로 잡았다. 분명 예전 전투로 인해 이가 다 빠지고 당장 부서질 것 같았었는데 그새 새로 만들기라도 했는지 대검은 다시금 날카로운 예기를 지니고 있었다. 덕분에 전현의 손바닥이 베여 피가 흘렀다. 그럼에도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검신을 지지대 삼아 온 힘을 사용하여 떨리는 다리를 움직여 자리에서 일어났다.


일어난 전현은 과감히 그녀의 단단한 갑주를 잡아끌었다. 그 누구보다도 강인한 육체를 지닌 그녀이기에 당연히 움직이지 않는 것 이 당연할 터였지만 그녀가 스스로 힘을 빼기라도 했는지 몸은 쉽사리 움직였다.


-사르륵


어느새 전현과 그녀의 거리는 코가 닿을 정도로 순식간에 가까워졌다. 전현이 그녀의 눈을 쏘아봤다. 그녀는 전현의 응시를 피하지 않았다. 맨 처음 그녀를 멀리서 관찰할 때는 화려한 홍채라고 생각 했었지만 눈앞이 흐릿해진 지금 가까이서 보니 무엇인가 텅 빈 것만 같았다.


‘너는 정말로 기쁘지 않다는 거냐.’


문득 홍채 속에 노려보는 자신의 모습이 비쳐보였다. 전현은 온몸에서 힘이 쭉 빠져나가는 것을 느꼈다.


-털썩


그는 그대로 몸을 대자로 뻗었다. 무리를 해서 그런가 아까전보다 빠르게 흘러나오는 피가 바닥을 점점 메꾸기 시작했다. 이제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시간이 얼마 없는 것 같았다.


“죽여줘.”


알아들을 리가 없었지만, 전현은 그녀를 향해 말했다.


“죽여줘.”


전현이 다시 한 번 말했다. 그녀는 움직이지 않았다.


“죽여줘, 난 적에게 죽고 싶어.”


전현이 떨리는 손으로 목을 긋는 시늉을 하자 그제 서야 여자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녀는 땅에 곧게 꽂혀 있는 대검을 빼낸 뒤 치켜들었다.

전현은 눈을 감았다.


분명 죽기전에는 주마등이 스쳐 지간다고 들었건만, 단편적인 기억보다는 여러 가지의 잡념들이 떠올랐다. 만약 사후 세계가 있다면 친구들에게 뭐라고 사과해야 하는가. 근엄하게 머리를 숙인 채 “미안해...졌어” 라고 해야 하나?

아니면 게슴츠레 웃으며 “그 여자, 내가 코 닫는 거리에서 봤는데 걔가 예쁘긴 진짜 예쁘더라” 라고 해야 하나.

전부다 무의미한 잡념들에 불과했지만 떠올리면 떠올릴 수 록 점점 코끝이 찡했다.

자신이 왜 이런 일을 당해야 한단 말인가? 자신은 단지 개발시킨 능력으로 가족과 함께 한국에서 잘 먹고 잘 살고 싶었을 뿐이었다. 그런데 어쩌다가 이 지경까지 왔단 말인가?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고 싶어,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서 전쟁을 막고 재미있고, 잘 살고 싶어.’


마음속으로 애원하자 지끈거렸던 머릿속이 맑아지기 시작했다. 분명히 죽어가고 있을 몸은 아프다기 보단 하늘에 붕 뜨고, 바다에 누워있는 것처럼 시원하게만 느껴졌다. 그리고 그 순간 전현의 머릿속으로 희미한 기계음이 들려왔다.


[조건이 만족되었습니다. 능력이 발동됩니다.]


작가의말

안녕하세요, 잘부탁드립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2

  • 작성자
    Lv.78 하무린
    작성일
    15.08.24 11:57
    No. 1

    즐감하고 갑니다. 추천도 하고요. 좋은 하루 되세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6 Asyih309..
    작성일
    15.12.20 18:48
    No. 2

    하고 많은 땅중에 조그만 하고 꼬랑지같은 한반도 릴까요? 중국 대륙도 있고 아프리카, 아메리카도 있고 넗은 땅들이 얼마든지 있는데. . . 외게인들이 공항장애가 있나?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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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5 음모(5) +3 15.12.20 804 17 13쪽
124 음모(4) +7 15.12.19 841 18 12쪽
123 음모(3) +2 15.12.18 887 22 10쪽
122 음모(2) +6 15.12.17 659 18 12쪽
121 음모(1) +4 15.12.16 770 21 9쪽
120 각자의 길(8) +6 15.12.15 784 20 15쪽
119 각자의 길(7) +5 15.12.14 724 22 16쪽
118 각자의 길(6) +6 15.12.13 844 20 16쪽
117 각자의 길(5) +4 15.12.12 792 16 14쪽
116 각자의 길(4) +4 15.12.11 745 17 13쪽
115 각자의 길(3) +6 15.12.10 838 21 14쪽
114 각자의 길(2) +4 15.12.09 800 20 14쪽
113 각자의 길(1) +8 15.12.08 727 24 15쪽
112 움직이는 방관자(5) +4 15.12.07 781 20 15쪽
111 움직이는 방관자(4) +3 15.12.06 820 23 14쪽
110 움직이는 방관자(3) +3 15.12.05 877 19 13쪽
109 움직이는 방관자(2) +2 15.12.04 997 2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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