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내일만은 님의 서재입니다.

Messorem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퓨전

내일만은
작품등록일 :
2016.10.03 09:08
최근연재일 :
2019.01.03 20:30
연재수 :
505 회
조회수 :
359,598
추천수 :
5,086
글자수 :
1,239,628

작성
18.04.05 12:02
조회
149
추천
5
글자
10쪽

ESP

DUMMY

결코 짧지 않은 설명에다, 서양인들이라면 절대 익숙하지 않은 동양권의 문화가 주르륵, 그것도 한자가 포함된 단어가 필터 없이 나열되었음에도, 존 위트니는 담서은의 말이 이어지는 내내 연신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정말 완벽하게 이해를 한 것인지, 아니면 그저 그런 척을 하는 건진 잘 구분이 되지 않았지만, 그다지 곤혹스러워 보이지 않는다는 점에서 적어도 존 위트니에겐 그렇게 어려운 이야기까진 아닌 것 같았다.

오히려 듣는 와중에 또 하나의 궁금증이 인 듯, 존 위트니는 가만히 입을 움직여 말했다.

"팔괘는 들어봤는데. 그런 건 또 처음 듣는군. 저 글자 하나당 일 년씩이라고? 달력 같은 건가?"

"그렇죠. 저도 달력이라고 알고 있어요."

"그럼 시계의 역할도 되나?"

"엄밀히 따지자면··· 그렇죠. 아무래도 시간과 관련이 있으니까요. 거기다 꼭 하나가 무조건 일 년이라 정해진 것도 아니에요. 아저씨 말처럼 시계와 비교하면 또 각자가 다른 시간대를 의미하고 있으니까요. 간단하게... 그냥 시계와 달력을 합친 것이라고 생각하시면 돼요. 물론 그 두 개가 가진 고유의 의미는 고스란히 놔둔 채로요. 그러니까... 시계의 '1'을 가리킨이 침이 초침인가, 분침인가, 시침인가에 따라 각자 제각기의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처럼요."

자신의 말에 드디어 제대로 된 반응을 해주는 이가 나타난 탓일까? 담서은이 신이 나서 대답했다. 앞좌석과 뒷좌석을 구분하는 까만 콘솔박스만 없었다면 아마 앞좌석으로 넘어가지 않았을까 싶을 만큼 담서은은 아예 몸을 앞으로 쭉 빼고 있었다.

타탸나 위트니가 얼른 받쳐주지 않았다면 그만 그대로 엎어질 뻔 했던 덜컥거림에도 전혀 자세를 고쳐잡지 않고, 어느새 앞좌석의 빈 공간까지 제 상체를 불쑥 내민 상태라는 소리였다.

그러는 동안 차는 어느덧 좁은 길을 지나 넓찍한 대로에 접어들고 있었다.

헌데 그 대로는 여태껏 지나왔던 맨해튼의 모습과는 사뭇 달랐다. 이젠 누구의 손길도 쉽게 허락하지 않는 고층 건물들로 둘러싸인 길이라는 점은 물론 지금까지와 변함이 없었지만, 그래도 가장 큰 변화가 이루어졌다라 할 수 있는 도로 위엔 일단 쓰레기들이 없었다. 그 흔한 고깃덩이나 돌덩어리, 심지어 지금껏 이어졌던 정체불명의 구덩이와 어긋난 지층과도 같았던 균열까지 아무것도 보이질 않았던 것이었다.

거기다 도로의 끝엔 누가 봐도 인위적으로 보이는 거대한 하얀색 벽이 건물, 도로를 세로로 가로질러 마치 맨해튼에 진입하기 직전 통과했던 벽과 매한가지의 모습으로 죽 지어져 있었다.

마치 '맨해튼'이란 이름의 공장 한쪽 구석에 존재하는 낡고 커다란 창고와도 같은 모습이었으나, 한서준은 곧장 그 길을 따라 차를 움직이는 존 위트니의 행동으로 그 정체불명의 벽이 그의 최종 목적지임을 그리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정지.]


약 10M 남짓 벽에 접근했을 때, 대뜸 벽 어디선가 확성기를 이용한 듯한 울림 있는 목소리가 커다랗게 퍼져 나왔다.

주변의 몬스터들은 이미 모두 싹 정리한 모양인지, 확성기를 이용하는 남자의 목소리 안엔 몬스터의 기습에 대한 두려움 같은 건 전혀 찾아볼 수가 없었다.

차가 멈춰서자, 기다렸다는 양 목소리가 이어졌다.


[탑승자 전원 하차해 주십시오. 신원을 확인하겠습니다.]


"기본적인 신원 확인 절차니까, 별 문제는 없습니다."

타탸나 위트니가 먼저 차에서 내리자, 이어 다나 클로에, 담서은이 뒤따라 바로 차에서 내렸다.

"임시 초소 비슷한 겁니다, 서준 씨. 맨해튼 수복 작전의 첫 단추 같은 장소지요."

안전벨트를 풀고, 존 위트니가 아직 꼼짝도 하지 않고 앉아 있는 한서준을 슬쩍 훔쳐보며 말했다.

"한국의 데드 존은 아직 수복 작전이 실행되지 않았지만, 맨해튼은 일단 초입 지역은 완벽하게 몬스터들을 몰아냈습니다."

여전히 아무런 대답도, 미동도 없는 한서준을 이번엔 상체를 비틀어 정면으로 마주본 존 위트니가 문득 씩, 검은색 피부 사이에서 유난히 돋보이는 하얀 이빨들을 드러내며 미소를 지었다.

"물론 가끔가다 몬스터들이 침입해 오기는 하지만요. 그것들도 저희들의 영역이 침범 당했다 생각하는 모양입니다. 어쩔땐 Juggernaut급의 몬스터를 대동하기도 하는 터라 엄밀히 말하면 좀 위험한 장소이긴 합니다."

똑똑.

그때, 누군가가 창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가만히 존 위트니의 말을 듣고 있던 한서준이 고개를 돌려 소리가 난 쪽, 그러니까 바로 옆의 창문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보는 사람까지 어색하게 만드는 정장 차림의 담서은이 어느덧 반대쪽에서 건너와 창문에 바짝 이마를 붙이고 있는 게 기습적으로 눈에 들어왔다.

담서은은 연신 뻐끔뻐끔 입을 움직이고 있었는데, 그게 '얼른 나와.'라는 단어였음은 굳이 귀로 듣지 않아도 알 수 있을 만큼 담서은의 입은 무척이나 정교하게 그 모양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존 위트니가 웃음기 섞인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아무래도, 저 아이는 당신이 마음이 드는 모양입니다. 쾌활해 보이긴 해도, 원래 낯을 잘 가리는 성격이거든요. 하긴··· 같은 국적의 사람을 만나는 건 정말 오랜만이니 그러겠지만 말입니다."

그에 한서준은 다시 고개를 돌려 존 위트니를 쳐다보았다.

그리곤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그래서··· 왜 이곳까지 데려온 겁니까?"

하지만 정작 그렇게 튀어 나온 말은 담서은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었다. 좀 더 근본적인 질문. 타탸나 위트니는 분명 ESP에 가입하지 않고서는 진입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말했던 맨해튼행이 왜 이렇게 갑자기 결정되었는지에 대한 의문점이었다.

똑똑.

창문이 다시 관심을 가져달란 특유의 소리를 내었지만, 한서준은 이를 무시했다.

미소를 지운 존 위트니가 말했다.

"당신의 능력을 확인하고 싶었습니다. 정말 네이쳐가 맞다면, 앞으로 있을 맨해튼 수복 작전에 끼어 넣기 위해서 말입니다. 물론 서준 씨가 ESP에 가입을 했을 때의 이야기입니다. 거기다 애초에 서준 씨가 원한 것도 맨해튼에 진입하는 것 아니었습니까?"

단순히 황금빛 종이가 안내해 준 대로 왔을 뿐이지만, 확실히 존 위트니의 말처럼 한서준, 정확히는 그의 머리가 원하는 건 맨해튼의 진입이었다. 그리고 그 증거로, 맨해튼에 진입하기 전까지 무슨 뻐꾸기 시계처럼 일정 간격으로 웅웅 뇌를 자극하던 '맨해튼'이란 단어는 어느샌가 흔적도 없이 사라져 있었다.

시끄럽게 머릿속을 쥐어뜯던 알람 소리를 멸절한 것같이, 순식간에 조용해져 버린 것이었다. 하지만 도리어 그게 그에겐 하나의 무거운 족쇄처럼 되어 버렸다. '맨해튼'이란 단어가 사라지면서 생긴 등골이 서늘해질 정도로 차가운 날선 정적.

이것이 말하는 또 하나의 진실이, 다름 아닌 이곳 맨해튼 전체를 하나하나 뒤져봐야 된다라는 지독히도 현실적인 문제를 던져주었던 까닭이었다.

어떤 특정한 목적지는 없었다. 단지 맨해튼 전체가 목적지라는 것만 알려 주었을 뿐, 머릿속에 존재하는 황금빛 종이의 글자는 침묵을 고수했다. 물론 단순히 잡힌 물고기를 먹는 법보다 낚시를 가리키는 법이 더 쓸모가 있고 경험이 된다라고는 하지만, 아쉽게도 이건 물고기도, 낚시도 없었다.

그저 망망대해의 무인도에 빈손으로 떨어뜨려 놓고 알아서 살아남으라고 말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었다.

낚시대와 미끼, 심지어 물고기가 많은 자리까지 스스로가 모두 준비해야 된다는 것이었다. 더더군다나 낚시대를 드리웠다 해서, 무조건 물고기가 낚이는 것 또한 아니었기에, 성급하게 결정짓고 움직이는 건 시간만 낭비하는 꼴이었다.

거기다 물고기가 아닌 상어가 나타나 낚시대를 끌고가는 최악의 상황까지 가능성에 넣어야 되는 만큼, 사실 맨해튼에 진입했다 해서 모든 게 헝클어지지 않은 실타래처럼 간단하게 해결되는 게 아니었다.

되레 이제부터가 시작이었다.

똑똑.

"그렇긴 하지만··· 아쉽게도 볼 일은 그게 끝이 아닙니다."

한서준이 미미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어차피 전체적인 윤곽, 즉 맨해튼에 거주하던 친구의 생존을 확인하러 왔다라는 권지아의 거짓말은 이미 다나 클로에에 의해 모두가 알고 있는 정보, 그러니까 하나의 '사실'로 변모된 지 오래였다.

똑똑.

이처럼 전체적인 윤곽이라 할 수 있는 부분을 서슴지 않고 말해도 지금은 아무 이상도 없다는 것이었다. 권지아같이 타인의 머릿속을 들여다볼 수 있는 능력자가 또 있지 않는 한, 한서준의 행동은 전혀 제재될 이유가 없었다.

"알고 있습니다. 친구가 이곳에 있다고 하더군요. 무사히 찾길 기원하겠습니다."

그 덕분에, 존 위트니는 별 의심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똑똑.

창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정확히 네 번이나 울리고 나자, 한서준이 다시 한 번 창문 너머를 내다보았다.

여전히 이마를 창문에 거의 찍어 누르다시피 한 담서은이 이번엔 손가락으로 무언가를 가리키며 연신 입을 뻐끔거리고 있었다.

손가락을 따라가니, 과연, 완전 무장을 한 군인 다섯 명이 거대한 벽을 등지고 성큼성큼 다가오는 게 보였다. 그리고 그 뒤론 ESP로 보이는 정장의 남성과 여성이 약 열 걸음 정도 떨어진 거리를 유지하며 유유자적 걸어오고 있는 게 눈에 잡혀들었다.

"아무튼 얼른 나갑시다. 계속 이곳에 있다간 오히려 의심을 받으니까."

마찬가지로 그들을 발견한 존 위트니가 '어이쿠', 꽤나 익살스런 어조로 말을 뱉어 내고는 곧 차에서 내렸다.

한서준도 어쩔 수 없이 그를 따라 차에서 내렸다.

그런 한서준의 머릿속을 순간 진하게 뒤흔드는 떨림은 바로 그 직후에 일어난 일이었다.


작가의말

1차 수정 와료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Messorem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297 ESP +1 18.04.06 190 3 7쪽
» ESP 18.04.05 150 5 10쪽
295 ESP 18.04.04 162 4 6쪽
294 ESP 18.04.03 168 3 7쪽
293 ESP 18.04.02 153 3 3쪽
292 ESP +1 18.04.01 169 4 3쪽
291 ESP 18.03.31 192 3 13쪽
290 ESP 18.03.30 186 3 6쪽
289 ESP 18.03.28 206 4 10쪽
288 ESP 18.03.27 203 4 8쪽
287 ESP 18.03.26 212 4 8쪽
286 ESP 18.03.25 195 4 16쪽
285 ESP 18.03.23 213 4 10쪽
284 ESP 18.03.22 187 4 5쪽
283 ESP +1 18.03.20 213 3 10쪽
282 ESP 18.03.19 237 4 7쪽
281 ESP 18.03.12 210 5 5쪽
280 ESP 18.03.11 250 4 25쪽
279 ESP 18.03.08 245 4 6쪽
278 ESP +2 18.03.07 249 4 17쪽
277 ESP 18.03.05 254 4 5쪽
276 ESP +1 18.03.04 253 5 10쪽
275 ESP 18.03.03 253 5 9쪽
274 습격 +1 18.03.02 257 5 6쪽
273 습격 18.03.01 266 6 7쪽
272 습격 18.02.28 222 6 7쪽
271 습격 +1 18.02.26 247 3 17쪽
270 습격 +1 18.02.24 242 4 4쪽
269 습격 18.02.23 238 5 8쪽
268 습격 18.02.22 227 4 3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