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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만은 님의 서재입니다.

나 혼자 게임에서 수면 라이프

웹소설 > 일반연재 > 게임, 판타지

내일만은
작품등록일 :
2019.01.13 22:48
최근연재일 :
2019.04.17 19:19
연재수 :
54 회
조회수 :
27,603
추천수 :
570
글자수 :
190,738

작성
19.01.13 22:50
조회
1,416
추천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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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현실에서 치이고 게임에서 힐링

DUMMY

"현실보다 8배가 빠르다라. 좋아."


난 16년 동안 한 번도 낮잠을 잔 적이 없다. 그게 무슨 대수냐고 생각하겠지만 내 인생은 여태껏 휴식이란 게 없었다.

고아라는 문제와 남들보다 빨리 사회 생활을 시작했다는 문제가 겹쳐 도저히 쉴 틈이 없었다. 먼저 살 집을 구해야 했고, 고아원에 남은 녀석들을 돌봐야 했다. 실컷 잠을 자 본 기억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

그렇게 흐른 시간이 16년이었다.

낮잠이란 걸 자 본 기억은 그나마도 없는 학창 시절 때의 흐릿한 기억이 전부였다.


-사용자 445354 님. 환영합니다. 꿈과 모험이 있는 라이프. 접속하시겠습니까?


"그래."


그렇기에 이 게임의 존재 유무는 오직 한 가지였다.


-그럼 먼저 캐릭터를 설정하겠습니다. 캐릭터는···.


"됐어. 이대로 가."


-이름을···.


"난 이제 잠만 잔다."


게임은 그저 잠을 자기 위한 도구다.

나는 질문들을 모조리 스킵하고 눈앞에 떠오른 맵을 아무 곳이나 눌렀다.


-그럼 메리안 마을로 워프됩니다. 즐거운 라이프 되십시오.


기계음이 멀어지고 나는 눈을 가리는 밝은 빛에 미간을 찌푸렸다. 잠시 후 주변이 시끌해지자 나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판타지 영화에서 자주보던 건물들이 수두룩하게 깔려 있었다. 도로는 모두 돌이었고 사이사이에 이끼가 껴 조금 비릿한 냄새가 났다.

나는 손을 한 번 내려다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평범하고 투박한, 주름이 가득한 손이었지만 손등에는 날개형 문양이 초록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드디어."


게임에 들어왔다.

나는 다시 한 번 주위를 쓸어보았다. 광장엔 문양이 있는 사람들과 아무런 문양도 없는 사람들이 섞여 있었다.

그 사이로 곳곳에 뚫인 길들이 보였다. 너머로는 다시 여러 풍경이 보였고 나는 그중에서 성문이 보이는 길로 걸어갔다.

거리 위의 사람들은 전혀 줄어들질 않았다.

성문은 문양을 가진 사람들로 북적북적했다.

경비병은 보이지 않았고 단지 경비병이 있을 거라 추정되는 인파의 끝에서 휘청대는 창끝이 조금 보였다.


"허이고. 인간들 좀 보소."


나는 혀를 차고 걸음을 멈췄다.


이거야 원, 교통 체증이 너무 심각한데. 저러다 깔려 죽는 거 아냐?


나는 경비병에게 자그마한 애도를 표하고 주변을 살펴보았다. 주위엔 아무것도 없었고 입구는 오직 사람들이 바글바글하게 몰린 성문뿐이었다. 착실히 줄어들고 있기는 했지만 사람들은 계속해서 유입되는 중이었다.


이거, 나가지도 못하겠네.


나는 다시 광장으로 돌아와 분수대 앞에 앉았다. 벤치는 의외로 편안했고 나는 바로 등을 기대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하늘은 맑았다. 구름도 높았고 벤치엔 적당히 그늘까지 져 있어 기분도 좋았다.


그래, 굳이 나가야 될 필요가 있나?


"어차피 난 잠을 자러 온 거니까 말이야."


이곳은 현실보다 시간이 8배나 빠르게 가는 세상이다. 게임의 현실감을 높이기 위해 사람의 몸에 최면 같은 전기적 자극을 준다고 했으니 이곳에서 잠을 자면 현실의 몸은 정말로 잠을 잘 수 있을 것이다.

거기다 여기선 하루 종일 자도 현실에선 세 시간밖에 지나지 않는다.


이렇게 훌륭한 수면 시스템을 놔두고 굳이 사람들과 부대낄 필요가 있나?


나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크게 숨을 들이쉬니 비릿한 이끼 냄새가 났다.

고아원의 앞뜰이 생각나는 냄새였고 뭔가 어렸을 때로 돌아간 느낌이었다.

거기다 게임이라 그런지 몸도 가벼운 게 기분도 좋았다.

나는 미소를 지었다. 몸이 둥실둥실 떠오르는 것 같았다. 분수대의 시원함과 이따금씩 불어오는 바람이 포근하고 좋았다.

난 벤치에 좀 더 편안하게 몸을 기댔다.

현실은 저녁이었지만, 게임은 한창 낮이었다. 비록 게임이지만 이게 그토록 바라던 낮잠이었다.

나는 몸의 힘을 전부 풀었다.

잠시 후 정신이 옅어져 갔고 주변의 소음은 TV 소리처럼 작아졌다. 바람의 감촉도 사라졌다.

사람들이 없어진 것도 아닐 텐데, 순식간에 나 혼자만의 공간이 되었다.

공간은 무척이나 편안했다. 꼭 뭔가가 감싸안은 듯 부드러웠다. 푹신한 요람에 누운 기분이었고 뭔가가 나를 끌어당기는 느낌도 났다. 하지만 그건 너무나도 행복한 끌림이었다. 된다면 평생 이곳에 있고 싶었다.


이곳은 아무 것도 신경 쓸 필요가 없는··· 오직 나만의 공간이니까.


그러니··· 만약··· 된다면··· 말이야···.


나는 곧 잠에 빠져들었다.


* * *


"강 차장!"


거지 같은 자식의 외침이 들려왔다.

나는 최대한 미소를 짓기 위해 노력하며 소리가 난 쪽을 돌아보았다.

제 3 영업팀 부장 최준성이 잔뜩 화가 난 얼굴로 나에게 손짓했다. 최 부장의 손엔 어제, 내가 준 서류 파일이 들려 있었다.


또 까였군. 지겨운 새끼. 벌써 열 번은 넘은 것 같은데.


나는 작게 욕지거리를 내뱉고 급히 최 부장에게 다가갔다.


"또 시작이다. 저 앵그리 피그."


"우리 착한 차장님 또 혼나겠네."


"자기가 이상한 짓을 시켜서 실적이 없는 걸 우리보고 어쩌라고? 진짜 이상하지 않아?"


"···그만 둬. 그러다 들리겠다. 저 돼지는 함부로 건들면 모가지가 날아간다고."


부하 직원들의 수군거림이 들렸지만, 어차피 그뿐이다. 그 이상은 없다. 하지만 이해한다. 이 회사에서 사원의 목소리는 거의 없는 거나 마찬가지니까.

땅딸막한 돼지 앞에 당도한 나는 숨을 가다듬고 입을 열었다.

아니, 입을 열려고 했다.

갑자기 날라온 서류 파일에 얼굴을 얻어맞지만 않았다면 말이다.

나는 사방으로 흩어진 서류 뭉치를 한 번 쓸어보았다.


기분이 나쁘진 않았다. 이 정도에서 기분이 나빴다면 이미 일은 집어치우고도 남았겠지.


이건 거의 연례행사나 마찬가지였다.

나는 다시 최 부장을 보았다. 원형 프레임을 가진 검은색 안경이 그의 살찐 관자놀이에 파묻혀 하얗게 변색돼 있었다.


"무슨 일이십니까?"


서류 뭉치에 막혔던 입을 열고 물었다. 그러자 최 부장은 어처구니가 없다는 얼굴로 나를 쏘아보았다.


"무슨 일? 무슨 일이냐고? 강 차장은 무슨 일인지 꼭 내가 말해 줘야 아나?"


"3 영업부의 실적이 떨어진 걸 말씀하시는 거라면 그건 부장님이 제안하신···."


"그게 왜? 대체 뭐가 문제야, 응? 드론이잖아. 그것도 못 팔아? 요즘 잘 나가는 인기 상품이잖아"


"맞긴 합니다."


드론은 미래 산업으로 각광 받는 기술이다.


그래, 인정한다. 하지만.


"저희 3 영업팀의 외근자는 애초에 B2B 전문가들입니다. 그런데 갑자기 B2C 영업을 하라 하면 당연히 실적이 떨어질 수밖에 없지요. 애초에 둘은 영업 방법과 취급 물품 자체가 다릅니다, 부장님. 이 정도는 기초적인 지식 아닙니까?"


기업을 상대로만 하는 장기적 영업에 익숙한 사람들에게 갑자기 1회성이나 다름없는 소비자를 상대하라 그러면 당연히 갈피를 못 잡는다.

당연한 것이다. 하지만··· 뭐, 윗사람들을 어떻게 설득했는지는 눈에 선하다.


"뭐라고?"


잔뜩 화가 난 최 부장의 볼살이 바르르 떨렸다. 그러자 뒤룩뒤룩한 뱃살에 밀려 쫙 늘어져 있던 정장 단추가 힘겨운 숨을 토했고 안경도 더욱더 살에 파묻혔다.


불쌍한 것들.


나는 둘에게 애도를 표하고 최 부장에게 미소를 지어보였다. 억지 미소였다. 하지만 이건 필수였다.


꽤 몰아붙였어.


이 돼지는 적당히 간을 봐야 한다.


살결이 약해 칼만 살짝 닿아도 피가 철철 나는 돼지니까. 그리고 그 피가 거의 맹독이나 다름없으니까. 대부분이 닿기만 하면 죽는다.


원래 몸 담고 있는 회사의 사장의 아들은 함부로 건드리는 게 아니다.


"물론 부장님의 생각을 부정할 생각은 없습니다. 그냥 알아두셨으면 해서 하는 말입니다."


"입 닥쳐!"


최 부장이 소리쳤다. 나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물론 최준성이 화난 모습을 본 횟수는 많다. 하지만 저렇게 크게 소리친 적은 없었기에 나는 조금 긴장된 마음을 다잡고 최준성을 보았다.

조금 어수선했던 주위가 조용해졌다.

부하들이 숨을 죽이는 소리가 들렸고 나는 살짝 커다래진 눈으로 최 부장을 보았다.

최 부장의 몸은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그는 입술을 깨물며 내 멱살을 붙잡고 똑바로 나를 노려보았다.


"강 차장. 아니, 강 산."


최 부장이 씹어먹을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요즘 나한테 설교가 많아졌다? 어? 네가 내 상관이냐, 새끼야? 내가 너 같은 고아 새끼 친구냐? 그리고, 너나 네 쫄따구들이 예전부터 날 병신 취급한다는 거. 내가 모를 줄 알았어? 내가 그렇게 만만해 보여?"


"그런 건 아닙니다."


나는 재빨리 고개를 숙여보였다. 멱살이 잡혀 힘들었지만 그럭저럭 숙이는 건 가능했다.

나는 괜한 직원들까지 엮이게 할 생각이 없었다.


"어디까지나 부장님이 더 잘 되시라고 하는···."

"그래? 내가 잘 됐으면 한다고? 이것 참 우연이군."


최 부장은 손을 놓고 한쪽 입꼬리를 올려보였다.


"나도 네가 잘 됐으면 좋겠어, 강 산. 그래서 말인데, 차라리 이런 걸 해 보는 게 어때?"


최 부장은 내 뒤통수를 누르며 귓가에 속삭였다.


"이번에 아버지가 해외 진출을 크게 계획 중이거든. 그 초석으로 내가 널 추천할게, 강 산. 우리가 어디로 가야 수익을 낼 수 있는지, 어떤 바이어에게 잘 보여야 하는지 알아내란 말이야. 할 수 있겠지?"




오타나 기타 수정 사항, 혹은 거슬리거나 이상한 부분은 지적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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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어떻게 해야 광고를 잘 할까? 19.02.10 668 13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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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어떻게 해야 광고를 잘 할까? 19.02.04 744 14 10쪽
13 어떻게 해야 광고를 잘 할까? +2 19.02.03 799 13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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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어떻게 해야 광고를 잘 할까? 19.01.23 908 15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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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그냥 잠만 자고 싶었다 +1 19.01.13 1,210 21 9쪽
5 그냥 잠만 자고 싶었다 +1 19.01.13 1,303 27 8쪽
4 현실에서 치이고 게임에서 힐링 +1 19.01.13 1,275 23 8쪽
3 현실에서 치이고 게임에서 힐링 +2 19.01.13 1,328 24 8쪽
» 현실에서 치이고 게임에서 힐링 +1 19.01.13 1,417 20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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