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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의(子儀)의 서재입니다.

대표님의 향기로운 경제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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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의(子儀)
작품등록일 :
2023.10.10 12:49
최근연재일 :
2023.11.08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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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0.25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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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므두셀라

DUMMY

다양한 향기 중에서도 최상층에 아른거리는 이 향기.

이건 호르헤에게도 맡아본 적 있는, 냉철한 이성을 상징하는 시나몬 향이다.

소시오패스적인 성향대로 S급이네.

이어지는 향기 역시 호르헤에게서 맡아본 적 있는 호두 향이다.

강인한 정신을 상징하는 호두 향의 농도는 A급.

호르헤가 말이 안 될 정도로 향기가 짙은 거지, A급 정도면 어지간한 역경은 그냥 뚫고 나갈 정도로 불굴의 정신력이라 볼 수 있다.

그 뒤를 잇는 향기는······ 커민.

나의 친우 무함마드에게서 맡아본 향기다.

이 역시 S급.

그리고 예술적 창의성을 상징하는 유칼립투스라.

이렇게 놓고 보니 무함마드와 거의 같네.

동류라는 뜻인가?

둘 다 뛰어난 사업가의 자질을 타고난 거겠지.

자, 여기까지 왔으니 그럼 스티브 잡스의 자아를 확인해 봐야겠다.

정신을 집중해 그가 풍기는 향기의 바다 깊숙이 침잠해 들어갔다.

이건······ 병원에서 흔히 맡을 수 있는 향기.

약품 향이다.

약품 향은 히스테릭함을 의미하지.

이 부분에서 정확히 무함마드와 갈린다.

무함마드는 그 대범함에 어울리는, 야망의 상징 송로버섯 향이었는데.

이게 비슷하면서도 전혀 다른 두 남자의 결정적 차이일 것이다.

너무 재밌는데.

나는 스티브 잡스의 노트를 확인하고 크게 감탄했다.

S급 3개에 A급 하나.

능력만 놓고 본다면 당대 최고 수준의 경영자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거기에 S급 유칼립투스 향은 스티브 잡스가 시대를 뛰어넘은 창의적 발상도 가능하다는 걸 의미했다.

한 마디로 크리에이티브한 업무에 특화됐단 말씀!

약품 향이 나는 걸 보면 밑에서 일하는 사람 정신 나가도록 들들 볶겠지만, 뭐 내 알 바 아니고.

나한테는 바닐라 향을 풍기며 묘한 호감을 드러내고 있잖아.

그나저나 역시 센트다.

스티브 잡스는 고성능 소시오패스답게 겉으론 일절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지 않았다.

허나 내 코엔 스티브 잡스의 속내가 훤히 읽혔다.

이를 통해 협상에서 우위를 차지할 수 있겠지.

물론 센트만으로는 부족했다.

내 제안을 거부할 수 없도록 ‘게임체인저’ 역시 준비했지.

자, 그럼 대어를 한번 낚아 볼까?

나와 스티브 잡스는 미팅룸에 앉아 서로를 바라보며 잠깐의 탐색전을 가졌다.

그가 먼저 입을 열었다.


“애플에 투자하고 싶다고요?”

“그렇습니다.”


스티브는 팔짱을 끼며 말했다.


“어느 정도 투자를 생각하고 있는지?”


나는 손을 쫙 펴며 말했다.


“애플 지분의 5%를 원합니다. 물론 유상증자 시 최우선 분배 옵션도 포함해서요.”


이게 지분 인수를 위해 꾸린 태스크포스에서 도출한, 애플이 받아들일 수 있는 마지노선이었다.

나 역시 이 정도면 내가 원하는 수준의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다고 판단해 동의했고.

스티브 잡스가 낮게 중얼거렸다.


“5%라······.”


그의 향기가 일변한다.

이번이 큰 건임을 직감했나 보군.

하긴, 현재 애플 시가총액은 1,000억 불에 육박한다.

그중 5%면 대략 50억 불.

한화 5조에 달하는 거금이다.

선물 투자와 월스트리트 큰손들의 투자 러쉬로 GB그룹 자본금이 엄청난 속도로 불었지만, 이 정도면 상당한 출혈이라고 할 수 있겠지.

애플로서도 나쁜 제안은 아니었다.

이 정도 자금을 수혈받으면 스마트폰 프로젝트 자금이 해결되고, 현재 준비 중인 공장 건설과 스마트폰 런칭 글로벌 마케팅을 더욱 광범위하게 펼칠 수 있을 테니까.

이 부분 역시 프리실라가 가져온 정보니, 확실하다.

문제는······ 그거지.

이 제안이 ‘고작’ 나쁘지 않은 수준이라는 거.

고성능 소시오패스를 만족시키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예상대로 스티브 잡스는 바로 고개를 저었다.


“그걸로는 어림도 없습니다.”

“어째서죠?”

“너무 싸기 때문입니다.”


그 순간.

코끝에 향기가 아른거린다.

이건······ 흑후추?

흑후추 향이 의미하는 건 확신.

강한 후추 향에 코가 매울 지경이다.

이 정도로 강한 확신이라고?

스티브 잡스는 애플의 현재 주가가 엄청 싸다고 확신하고 있었다.

······어쩐지 알 것 같다.

그는 스마트폰이 세상을 바꿀 거라고 생각하고 있다.

스마트폰이 세상을 바꾸면 애플의 주가는 당연히 미친 듯이 오르겠지.

그걸 꿰뚫어 본 거다.

역시 고성능 소시오패스.

더더욱 마음에 든다.

나는 웃으며 손가락 두 개를 들어 올렸다.


“2배. 현재 시가의 2배 프리미엄인 100억 불에 지분 5%를 인수하는 걸로 하죠.”


스티브 잡스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이번엔 손가락 한 개를 들어 올렸다.


“한 가지 더. 계약서에 GB그룹이 보유한 주식 5%는 CEO인 미스터 잡스의 우호 지분임을 명시하도록 하죠.”


내 말에 스티브 잡스의 눈이 살짝 커졌다.

나는 웃으며 말을 이었다.


“미스터 잡스. 과거 본인이 임명한 CEO에 의해 애플에서 퇴출된 적이 있다고 들었습니다만.”

“으음······.”


코끝을 간질이는 좀약 냄새.

좀약 냄새는 불쾌감을 상징한다.

스티브 잡스가 내 말에 강한 반감을 느끼고 있다는 증거다.

사실 일부러 도발했다.

스티브 잡스는 과거 그 더러운 성질머리 때문에 자신이 설립한 애플에서 퇴출당한 적이 있지.

그 후 여러 회사를 거치고 창업을 하기도 했다가 애플에 다시 돌아온 거지만.

나야 평행세계를 넘어와서 전혀 모르던 사실이지만, 프리실라의 말에 따르면 꽤나 유명한 사건이더라고.

이를 통해 한 가지 사실을 유추할 수 있다.

스티브 잡스가 애플 경영권에 굉장히 신경 쓰고 있다는 사실 말이다.

주식 5%를 보유한 대주주가 경영권 분쟁 시 백기사가 돼주겠다는 제안은 굉장히 달콤할 것이다.


“나쁘지 않은 조건이라고 생각합니다만.”

“······.”


냄새가 난다, 냄새가 나.

비릿한 건어물 향기가.

이젠 건어물 냄새가 반가울 지경이다.

이 향기를 풍긴다는 건 내 제안에 휘둘리고 있다는 증거니까.

게임 ㅈ같이 한다는 뜻 아니겠어?

극찬이란 소리다.

하지만 내가 한 가지 놓친 게 있었다.

예상 이상으로.

스티브 잡스는 고성능 소시오패스였다.


“미안하지만 안 되겠습니다.”

“······어째서죠?”


스티브 잡스는 입가에 의미심장한 미소를 머금은 채 입을 열었다.


“너무 싸기 때문입니다.”


동어반복.

하지만 그 뉘앙스는 조금 전과 전혀 달랐다.

흑후추 향이 훨씬 진해진 것이다.

코끝이 따갑다 못해 눈물이 찔끔 나올 지경.

스티브 잡스 이 인간.

정말로 2배 프리미엄을 싸다고 생각하고 있어.

한화 10조 원에 달하는 천문학적인 금액을 말이야.

그 돈이면 R&D 비용과 글로벌 프로모션을 무리 없이 추진할 수 있고, 또 해외 공장 증설까지 가능한데도.

본래 세계선의 나라면 눈도 깜짝 안 하겠지만, 여기선 100억 불 부른 것도 제법 무리한 건데 말이야.

그렇다는 건······ 지금이 체스판을 뒤집을 때라는 거겠지.

나는 팔짱을 낀 채 입을 열었다.


“도비.”

“어, 으응?”

“잠깐 밖에 나가 있어.”

“갑자기?”

“어. 빨리.”

“아, 알았어.”


나는 스티브 잡스에게 말했다.


“미스터 잡스. 당신과 독대하고 싶군요. 그쪽도 수행원을 내보내 줬으면 좋겠습니다.”


스티브 잡스는 어깨를 으쓱였다.


“독대한다고 해도 딱히 바뀔 건 없겠지만. 뭐 그러죠.”


그렇게 미팅룸은 나와 스티브 잡스, 단둘이 남게 되었다.

스티브 잡스가 입을 열었다.


“자, 모두 나갔으니 하고 싶은 말을 해보시죠. 참고로 마지막 기회입니다. 제안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투자 건은 거절하는 걸로 하죠.”


생강 향기가 미팅룸을 가득 채운다.

저 말에 한 치의 거짓도 없다는 거겠지.

시간 낭비 따위 용납하지 않는다는 건가.

뭐 상관없다.

이걸로도 딜이 성사되지 않으면 깨끗이 포기할 생각이니까.

하지만 과연······ 거부할 수 있을까?


“미스터 잡스. 제안을 하기 전에 한 가지 약속을 받아두고 싶습니다.”

“······약속이라면?”

“지금부터 내가 하는 제안은 나와 미스터 잡스, 우리 둘 사이의 비밀인 겁니다. 약속하시겠습니까?”

“어째서 내가 약속을 지켜야 하는 거죠?”

“비밀을 지킬 생각이 없으면 제안을 듣지 않으면 됩니다. 하지만 훗날 미스터 잡스는 제안을 듣지 않을 걸 뼈저리게 후회하게 되겠죠.”

“······.”


동공이 크게 흔들린다.

그와 함께 다시 한번 건어물 향기가 미팅룸 안에 확 퍼졌다.

상대의 감정을 모조리 꿰뚫는다는 건 참으로 즐거운 일이다.

완벽한 심리적 우위를 바탕으로 선택을 강요할 수 있으니까.

니체가 말한 초인, 위버멘쉬가 된 듯한 짜릿함은 오직 서씨 가문의 가주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겠지.

자, 과연 스티브 잡스는 어떤 선택을 할까?

내 제안을 들을까?

아니면 듣지 않을까?

마치 손바닥 안의 손오공을 내려다보는 석가여래가 된 기분이다.

아무튼, 인간이란 동물은 도저히 호기심을 참을 수 없는 모양이다.


“······제안을 듣겠습니다.”

“그럼 비밀 엄수를 서약한 걸로 알겠습니다.”

“흠, 그런데 내가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어쩔 생각입니까?”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고?

나 서씨 가문의 가주, 서준경 님과 나눈 신성한 약속을?

네까짓 게 감히?

스티브 잡스의 얼굴색이 살짝 변한다.

흠, 내 얼굴에 뭐라도 묻었나?

귀신이라도 본 얼굴이네.

그래도 물어보니 답은 해줘야겠지?


“걱정할 필요 없습니다.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면 내가 알아서 대가를 받아낼 테니까요.”


나 서준경 님과 나눈 약속의 가치만큼 말이야.


“······비밀은 반드시 지키겠습니다.”

“좋습니다.”


나는 품에 손을 집어넣었다.

그리고 무언가를 꺼내 탁자 위에 올려 놓았다.

스티브 잡스의 눈이 살짝 커졌다.


“그건······ 앰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스티브 잡스는 의구심 가득한 눈으로 앰플을 바라봤다.


“그 앰플은 대체 뭡니까?”


나는 손으로 턱을 괴며 좀 더 여유 있는 자세로 말을 이어 나갔다.


“미스터 잡스. 췌장암 투병 중이라고 들었습니다만.”

“?!”


스티브 잡스는 눈을 크게 떴다.


“그건······.”


프리실라의 말에 따르면 이 역시 꽤나 유명한 이야기였다.

스티브 잡스는 몇 년 전 췌장암으로 시한부 선고를 받았다.

다행히 수술이 성공해 목숨을 건졌다고 한다.


“······췌장암을 앓았지만, 수술은 성공적이었고 지금은 완치 상탭니다.”

“내가 아는 사실과 다르군요. 재발 증후가 있어 주치의 쪽에서 항암 치료를 권한 걸로 압니다만.”


프리실라가 준 정보에 따르면 췌장암 재발이 의심된다고 한다.

주치의는 항암 요법을 적극 권하고 있지만, 스티브 잡스가 이를 거부하고 민간요법으로 치료 중이라고 한다.

예를 들면 채식을 한다던가, 아침마다 명상을 한다거나.

솔직히 제정신인가 싶다.

이 정보를 얻으려고 서드아이에 100만 불을 지불했지만, 이번 딜을 성사시킬 수만 있다면 거저나 다름없지.

흔쾌히 지불 했단 말씀!

아무튼 스티브 잡스가 항암 치료를 거부하는 이유가 이해는 간다.

항암 치료가 시작되면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 치료에 전념할 수밖에 없다.

지금 진행 중인 스마트폰 프로젝트는 물 건너가는 거지.

그걸 도저히 용납할 수 없을 거다.

스티브 잡스, 저 고성능 소시오패스의 목적은 자신의 손으로 인류의 라이프스타일을 영원히 바꿔 놓는 거니까.

아니, 인간의 사고 체계를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완전히 다른 차원으로 진화시킨다고 보는 게 옳겠지.

이 역사적인 대전환을 온전히 자신의 손으로 이룩하고 싶은 거다.

그는 혁명가다.

인류를 문명의 새로운 프론티어로 이끌어 나갈.

그러니 이 중요한 시점에 어찌 항암 치료를 받을 수 있겠어.

오직 자신만이 가능하다는 자기 확신으로 가득 찬 인간인데.

내 말에 정곡이 찔렸는지 표정이 급속도로 일그러진다.

히스테릭한 성격을 참지 못하고 폭발하려는 순간.

나는 손가락으로 앰플을 툭툭 건드렸다.


“미스터 잡스. 이게 당신을 구원해줄 겁니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이 앰플에 들어있는 약의 명칭은 므두셀라. 미스터 잡스, 당신의 췌장암이 재발하지 않도록 막아줄 수 있는 최고의 항암제라고 할 수 있겠죠.”


나는 볼 수 있었다.

마치 예수의 승천을 두 눈으로 목격한 11명의 제자와 같은 얼굴을 한, 스티브 잡스를 말이다.


작가의말

재밌게 보셨으면 선작과 추천 코멘트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ps. 위내시경 수면 마취 안 하고 하니까 죽을 맛이네요 ㄷㄷ;;;; 독자님들은 꼭 수면마취하고 하세요 ㅠㅠ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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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믿고 있었어 +12 23.10.27 1,031 33 13쪽
17 파국의 향기 +16 23.10.26 1,074 34 14쪽
» 므두셀라 +6 23.10.25 1,101 38 12쪽
15 사과 한 입만 +11 23.10.24 1,151 37 11쪽
14 감미로운 향기로 채우고 싶다 +9 23.10.23 1,157 41 12쪽
13 칼을 준비해야겠지 +5 23.10.21 1,206 38 11쪽
12 레이어링 +6 23.10.20 1,206 43 12쪽
11 유니콘 사냥꾼 +11 23.10.19 1,199 42 12쪽
10 검머······ +5 23.10.18 1,226 36 14쪽
9 권력의 법칙 +8 23.10.17 1,248 37 13쪽
8 주유소집 막내손자 +5 23.10.16 1,262 35 14쪽
7 슈퍼클래스 +9 23.10.15 1,287 34 14쪽
6 서드아이 +6 23.10.14 1,287 36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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