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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의(子儀)의 서재입니다.

대표님의 향기로운 경제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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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의(子儀)
작품등록일 :
2023.10.10 12:49
최근연재일 :
2023.11.08 18:10
연재수 :
3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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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207
추천수 :
1,108
글자수 :
169,450

작성
23.10.19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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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유니콘 사냥꾼

DUMMY

전 세계 경제의 중심지, 맨해튼.

맨해튼에는 수많은 투자은행, 헤지펀드 오피스가 존재했다.

그야말로 세계의 자본이 집중되는 자본주의의 심장.

오늘도 넥타이를 맨 오피스 전사들이 혈관에 커피를 수혈해가며 피 튀기는 혈전을 벌이고 있었다.

그런 맨해튼 한가운데 차유진이 서 있었다.


“끄응.”


차유진은 당황스러웠다.

도비서(a.k.a 도비)에게 오늘부터 출근하란 메일을 받고 주소대로 오긴 했는데······.


‘왜 하필 사무실이 전 직장 맞은편이냐고!’


자신의 보스, 준경은 헤지펀드를 등록하며 리먼 브라더스가 위치한 745 Seventh Avenue 맞은편 건물 오피스 한 층을 임대했다.

앞으로 출근할 때마다 전 직장에서 잘나가던 시절을 떠올릴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된 것이다.

차유진은 가만히 서서 리먼 브라더스 간판을 응시했다.


“하아.”


한숨을 절로 나온다.


‘고작 도로 하나 차인데.’


신분이 몇 단계 강등된 기분이다.

차유진은 애써 마음을 다잡았다.


‘아, 안 돼! 대표님께서 날 받아주셨으니 최선을 다하자!’


기본적으로 성실한 성격인 차유진은 그렇게 다짐하며 엘리베이터를 탔다.


-띵!


헤지펀드가 임대한 층에 내리자 차유진은 눈을 크게 떴다.


‘어, 뭐지?’


오피스 내부는 그가 근무했던 리먼브라더스 오피스보다 더욱 화려하게 꾸며져 있었다.

금융업계 특성상 사무실을 화려하게 꾸미는 게 제법 중요했다.

자본주의의 총아인 미국 금융업계에선 비즈니스 파트너의 오피스가 화려하면 화려할수록 신뢰한다.

헌데 미국 4대 투자은행 중 하나인 리먼 브라더스 사무실보다 화려하다니.

아니, 화려한 걸 떠나 품격 자체가 한 단계 높은 느낌이었다.

고급스러운 장식품은 물론이고 인테리어 역시 돈으로 해결되지 않는 센스가 돋보였다.

당연히 서씨 가문의 가주로 최고 중의 최고만 누린 준경의 취향이 고스란히 담겨 있기 때문이다.

살짝 기분이 좋아진 차유진은 비서의 안내를 받아 사무실 중앙 회의실로 들어갔다.

그곳에 정장을 빼입은 남녀 십여 명이 앉아 있었다.

차유진은 빠르게 면면을 훑어봤다.

좁은 업계인 만큼 대부분 아는 얼굴.

능력은 출중한데 정치력이 떨어져 줄을 잘 못 타 쫓겨난 사람이 태반이다.


‘용케도 이런 인재들을 모았네?’


고용주의 안목이 꽤나 놀라웠다.

자리에 앉아서 10분 정도 기다리자 준경과 도비가 사무실에 들어왔다.

준경은 CEO 전용의 화려한 윙체어에 털썩 앉았다.

도비는 말없이 옆에 가서 섰다.

준경은 가타부타 의자를 돌려 거리를 내려다봤다.


“······?”

“무슨?”


당황하는 펀드매니저들.

준경의 침묵은 계속됐다.

얼마나 지났을까.

준경이 입을 열었다.


“느껴지나?”

“······예?”


갑작스러운 말에 다들 의문을 표했다.

준경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거리 전체에 풍기는 파이프 담배 향기가 느껴지지 않느냔 말이다.”

“타코 트럭 향기는 알겠는데 파이프 담배 향은 대체 무슨 말씀이신지······.”


도비를 비롯해 차유진과 펀드매니저 모두 준경의 말에 갈피를 잡지 못했다.

차유진은 속으로 생각했다.


‘조졌나?’


아무래도 이번 이직은 조진 거 같다.

다른 직장을 알아봐야 하나 생각하고 있는데.


-쾅!


준경이 대뜸 손으로 책상을 내리치며 소리쳤다.


“아직도 모르겠어? 이 도시에는 길에 돈이 굴러다닌다고!”

‘······맨해튼 한가운데니 당연한 거 아닌가?’


다들 이런 생각을 했지만, 또 준경의 묘한 카리스마와 밑도 끝도 없는 자신감에 조금씩 빠져들고 있었다.

준경은 주먹을 꽉 쥐며 외쳤다.


“너희는 사냥개다! 나 서준경이 직접 선택한 사냥개!”

“사, 사냥개? 하운드?”


준경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아, 나 서준경의 명령을 받아 유니콘을 사냥할 사냥개 말이다!”


순간 펀드매니저 모두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리고 깨달았다.

준경의 말에 숨겨진 메타포를 말이다.

유니콘은 업계에서 시가총액 10억 달러 이상의 비상장기업을 일컫는 은어였다.

하루에도 수백, 수천 개의 스타트업이 개업하고, 또 폐업한다.

개중에 정말 극소수의 스타트업이 시가총액 10억 달러를 달성하게 된다.

그만큼 희귀한, 신비로운 존재일 수밖에 없었다.

스타트업에 투자해 유니콘 기업으로 성장시켜 IPO에 성공하면 그야말로 어마어마한 수익을 얻을 수 있었다.

이에 관여한 펀드매니저 역시 막대한 성과급과 명성이 따라올 테고.

준경은 오만하게 턱을 치켜들었다.


“찾아와. 세상을 바꿀 기업을.”

“알겠습니다, 보스!”

“물론 너희에게만 맡기지 않을 거야. 나 역시 열심히 냄새를 맡도록 하지.”


펀드매니저들은 자꾸 냄새를 강조하는 준경이 말버릇이 신기하다고 생각했다.


‘특이한 보스네.’


하지만 그들은 몰랐다.

준경은 순도 100% 진심이라는 것을.

정말로 냄새, 센트로 유니콘 기업을 찾아낼 작정이었으니까.

아니, 고작 유니콘 기업으로 끝낼 생각 따위 없었다.

유니콘 기업을 데카콘(100억 달러 기업), 나아가 헥토콘(1,000억 달러 기업)으로 성장시킬 작정이다.

존경해 마지않는 서씨 가문의 선조들이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그렇게 훈시를 마치고 업무에 돌입했다.

차유진 역시 자리에서 일어나는데.


“차유진.”

“부르셨습니까, 보스.”

“어. 잠깐 이리 와 봐.”

“예.”


차유진이 다가오자 준경이 그를 보며 말했다.


“리먼 브라더스에 있을 때 담당했던 게 선물옵션이지?”

“그렇습니다. 그건 왜······.”


준경은 씨익 웃으며 말했다.


“차유진. 당신이 나 좀 도와줘야겠어.”


***


첫 회의가 끝나고 며칠 후.

나는 도비를 대동하고 헤지펀드 오피스 한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암막으로 가려진 사무실 문을 열었다.


“오.”


제법 잘 꾸며놨는데?

차유진은 내 지시에 따라 사무실 하나를 통째로 선물 트레이딩룸으로 개조했다.

그는 트레이딩룸에 설치할 수십 대의 모니터와 각종 장비를 자신의 스타일로 주문 제작했다.

또 리먼브라더스 시절 손발을 맞춘 트레이더 중 현재 구직 중인 사람을 고용해 달라기에 그렇게 했고.

사무실은 만반의 준비를 갖췄다.

내가 안으로 들어오자 바쁘게 지시하고 있던 차유진이 벌떡 일어섰다.

다른 트레이더들 역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보스, 오셨습니까?”

“나는 신경 쓰지 말고 하던 일 계속하도록.”

“예.”


차유진은 두말하지 않고 다시 일에 집중했다.

역시 검머외 맞네.

생긴 건 한국인인데 사고방식은 철저히 효율을 중시하는 아메리칸이야.

그래서 더 마음에 든다.

나는 트레이딩룸 한가운데 자리 잡은 호화로운 내 전용 윙체어에 앉았다.

그때 차유진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저, 근데 정말로 대표님께서 리딩 하실 생각이십니까?”

“당연하지. 그러라고 트레이딩룸을 준비한 건데.”

“아······.”


차유진의 표정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내가 그렇게 못 미덥나?

생각해 보면 당연했다.

차유진은 와튼 스쿨을 졸업하고 리먼브라더스에 입사해 거의 5년간 최고의 엘리트들과 호흡을 맞춰 선물 트레이딩에 매진한 프로였으니까.

그런데 이제 겨우 20대 중반 정도로 보이는 초심자가 리딩을 하겠다고 나서니 어이가 없을 수밖에.

현재 헤지펀드 자본금은 3억 5천만 달러.

신생 펀드치고 적지 않은 금액이지만, 그렇다고 많은 것도 아니다.

마진콜 한 방에 순식간에 녹아내릴 금액이지.

물론 나 서준경 님에겐 해당 사항 없는 일이지만.


“응?”


코끝을 스치고 이 향기는······ 크레용?

차유진에게서 크레용 특유의 기름지고 묵직한 향기가 풀풀 풍긴다.

크레용 향이 의미하는 건 ‘체념.’


“크큭.”


나도 모르게 입에서 웃음이 흘러나온다.

자아에 호박 향을 품고 있어서 그런가?

쓸데없이 토를 안 달아서 좋네.

불만을 드러내지 않고 빠르게 체념하는 게 딱 차유진에게 기대했던 부분이다.

하나하나 입으로 설명하기 너무 귀찮거든.

그냥 결과를 보여주면 알아서 납득할 텐데 입 아프게 떠들어야 할 이유가 대체 뭐냐고.

나는 손가락을 튕겼다.


-딱!


“곧 장이 열린다. 시작하도록 하지.”

“예.”


트레이딩룸 모니터에는 주가지수, 금리, 각국의 통화, 농산물, 축산물, 원유와 같은 각종 에너지, 비철금속, 귀금속 등 각종 금융 선물과 상품 선물.

그리고 속보를 듣기 위해 여러 뉴스 채널이 켜져 있었다.

나는 가볍게 코로 숨을 들이켰다.


“흐읍.”


모니터에서 각종 향기가 미친 듯이 흘러나온다.

흐음, 파이프 담배 향은 언제 맡아도 감미롭군.

이 향기가 얼마나 좋냐면, 본래 세계선에서 입에 달고 살던 담배 생각이 1도 안 날 정도다.

당연하잖아.

쿠바산 최고급 시가도 센트에는 비할 바가 아니었으니까.

아니, 담배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다.

이 향기를 계속 맡을 수 있다면······ 코카인도 필요 없어.

센트가 자아내는 향기에 취한 나는 홀린 듯 종목을 골랐다.

그리고 각 종목에 콜옵션과 풋옵션을 지정하고 레버리지까지 걸었다.

차유진을 비롯해 트레이너들은 당연히 이런 내 지시를 이해하지 못했다.

어쩔 수 없지.

여기엔 그 어떤 논리도 없이, 그저 센트에 의한 직관이 지배하는 영역이니까.

허나 며칠에 걸쳐 내 지시를 즉각 따르라고 교육받았기 때문에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지정한 매수 계약을 체결했다.

잠깐의 시간이 흐르고.

트레이딩룸에 파이프 담배 향이 미친 듯이 소용돌이친다.

그 농도가 극에 이른 순간!


“차유진! 내가 지정하는 계약의 포지션을 정리해!”

“예!”


차유진은 지시대로 포지션을 정리하는 트레이더들.

그리고 그들은 경악했다.


“헉! 뭐야!”

“수익률 보소?!”


경악할 만하지.

하지만 내 리딩은 이제 시작일 뿐이다.


“계속한다! 바로 따라붙어!”

“예!”


콧속으로 빨려 들어오는 파이프 담배 향.

곧바로 다음 매수에 들어갔다.

빠르게 포지션을 지정.

트레이너들은 차유진의 지시에 따라 다시 콜업션과 풋옵션 포지션을 잡았다.

포지션을 구축하자마자 다시 일부 포지션을 정리하라고 지시했다.

트레이너들은 내 강압적인 요구를 묵묵히 따랐다.

어, 뭐지.

향기가······ 너무 좋아.

코카인을 했을 때처럼 High한 기분.

뿅간다는 뜻이다.

아니, 코카인조차 이 정도는 아니야.

마치 내 영혼이 허공에 둥둥 떠서 나 자신을 내려다보는······ 메타인지적인 느낌이랄까.

그 정도로 엄청난 쾌감이 몰려온다.


“크크큭!”


그럼 즐겨줘야지!

나는 완전히 쾌감에 취해 미친 듯이 지시를 내렸다.


***


준경의 리딩에 따라 트레이더들을 진두지휘하던 차유진은 이마에서 흘러내리는 식은땀을 닦았다.

그는 지금 상황이 믿기지 않았다.


‘이게 말이 돼?’


선물 트레이딩을 하다 보면 잃기도 하고 따기도 한다.

이를 손해 보지 않는 선에서 리스크 헷지 하는 게 트레이더만의 노하우였다.

자신 역시 리먼브라더스에서 일할 때 그렇게 했다.

하지만 준경의 신들린 듯한 리딩은 일체의 손실을 용납지 않았다.

준경은 마치 결과를 알고 있는 것만 같았다.

말도 안 되지만 정말로 그렇게 느껴졌다.

차유진의 상식선에선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한편으론 이런 생각도 들었다.


‘······항상 이긴다는 게 이렇게 좋은 거였어?’


전신의 세포 하나하나 살아 숨 쉬는 이 느낌.

짜릿했다.

지지 않는다.

엉덩이턱이 매력적인 보스를 따르면 절대 지지 않는다.

차유진의 가슴 속에 점점 그런 확신이 생기고 있었다.


작가의말

재밌게 보셨으면 선작과 추천 코멘트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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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믿고 있었어 +12 23.10.27 1,031 33 13쪽
17 파국의 향기 +16 23.10.26 1,074 34 14쪽
16 므두셀라 +6 23.10.25 1,101 38 12쪽
15 사과 한 입만 +11 23.10.24 1,151 37 11쪽
14 감미로운 향기로 채우고 싶다 +9 23.10.23 1,157 41 12쪽
13 칼을 준비해야겠지 +5 23.10.21 1,206 38 11쪽
12 레이어링 +6 23.10.20 1,206 43 12쪽
» 유니콘 사냥꾼 +11 23.10.19 1,200 42 12쪽
10 검머······ +5 23.10.18 1,226 36 14쪽
9 권력의 법칙 +8 23.10.17 1,248 37 13쪽
8 주유소집 막내손자 +5 23.10.16 1,262 35 14쪽
7 슈퍼클래스 +9 23.10.15 1,287 34 14쪽
6 서드아이 +6 23.10.14 1,287 36 12쪽
5 월드컵을 즐길 준비 됐어? +6 23.10.13 1,301 38 13쪽
4 시드머니를 만들자! +4 23.10.12 1,385 36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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