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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사로의 서재입니다.

오디션(Audition) 2

웹소설 > 일반연재 > 로맨스, 일반소설

완결

진사로
작품등록일 :
2020.03.15 00:30
최근연재일 :
2021.09.08 01:39
연재수 :
54 회
조회수 :
13,615
추천수 :
623
글자수 :
659,060

작성
20.06.16 01:13
조회
170
추천
10
글자
21쪽

Aphrodite. 풀밭, 꽃, 그리고 꿀

DUMMY

이제 여우비의 심사는 지노만 남았다.


“시간 없는 거 아는데 길 겁니다. 양해해 주세요.”


스튜디오가 조용해졌다.


“이게 생방송 전 경연이고 여우비가 노래로 이야기하는 팀이니 제가 가사 쪽을 좀 타이트하게 봤습니다.”

“감사합니다.”


서희의 말에 지노는 고개를 끄덕이며 심호흡을 한 후 말을 이었다.


“심사위원님들 말씀이 크게 세 가지였죠. 곡이 아주 좋았다, 특유의 감성으로 잘 소화했다. 그런데 힘이 부족했다.”

“네.”

“저 역시 그렇게 느꼈는데 원인이 뭘까, 다른 분들 말씀하실 때 계속 고민했습니다. 결론 말씀드리죠.”


서희와 은별뿐 아니라 여원도 귀를 쫑긋하고 지노를 보았다.


“여우비의 <여우비>, 이 가사는 은별 양도 같이 썼다고 되어 있네요.”

“네.”

“은별 양이 쓴 가사를 그대로 노래에 넣은 건가요?”

“그렇습니다.”


지노는 또 고개를 끄덕이다 본격적으로 심사에 들어갔다.


“가사를 보니까 서희 양과 은별 양의 이야기가 달라요. 이건 ‘여기’라는 같은 공간에서 가졌던 두 사람의 마음에 대한 이야기니까, 감성이 제대로 나오도록 하기 위해서 자기 파트의 가사는 자기가 쓰는 게 맞죠.”

“네.”

“여우비의 자작곡이 <비 오는 아침>부터 <나의 아리랑>, <망한 하루>, 그리고 저는 <그대에게 옮은 감기>도 들어봤는데, 이 네 곡과 <여우비>에 차이점이 단 하나 있었습니다.”


지노는 자신이 태블릿 PC에 적어놓았던 부분에 밑줄을 그으며 말했다.


“디테일. 에너지의 차이가 거기서 나온 거예요.”


서희와 은별은 고개를 끄덕였고, 여원은 마이크를 들려다가 내려놓고 고개를 돌린 후 한숨을 쉬었다.


“서희 양이 작사를 전담했던 다른 노래엔 다 있었던 생동감이 이 노래에는 없었어요. 특히 상황이 명징하게 그려질 만한 단서가 보이지 않습니다. 수휘 심사위원은 노래할 때 은별 양이 서희 양에게 맞추었다고 했는데, 가사 쓸 때는 서희 양이 은별 양에게 맞추었던 거로 보여요. 그러니까 저는 컨디션 문제보다는, 서희 양이 은별 양을 고려하여 조절한 가사에 자기 감성을 완전히 맞추지 못해서 노래의 에너지가 떨어졌다고 봅니다.”

“아!”

“그렇군요.”


지노의 말에 수휘와 인길이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서희 양은 지금까지 디테일한 이야기를 가사에 넣어서 생동감을 살리고 노래 속 상황을 머릿속에 그려지게 했어요. 이를테면 <비 오는 아침>에는 첫사랑이 우산을 씌워주는 순간 그 사람 숨소리가 들리고 동생이 쓸 때는 몰랐던 비누 향기가 맡아져서 가슴이 뛴다, 이런 게 있었고, <나의 아리랑>에는 한숨 꺼진 땅에 묻힌 내가 나무가 되어 내 마음에 박힌 화살이 가지로 자라나 사랑하는 사람에게 닿았으면 한다, 이런 문장이 있었어요. <망한 하루>는 의도적으로 맥 빠진 노래로 만들었는데도 ‘아프리카 사자 교미’ 같은 포인트에 라임을 넣어서 에너지가 느껴지고 듣는 사람의 공감을 얻은 거예요. 그리고 <그대에게 옮은 감기>, 좋아하는 사람이 감기에 걸렸는데 그걸 본 나는 마음에 감기가 걸렸다. 사랑에 빠지는 과정을 감기라고 비틀어 표현해서 듣는 분들이 좋아한 겁니다.”

“네.”

“자작곡 <여우비>에서 은별 양의 ‘여기’는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언젠가 떠나야 하는 공간이고, 서희 양의 ‘여기’는 설렘을 느끼는 따뜻한 공간이에요. 단 하나, 어떻게 해서 그런 마음을 갖게 되었는지를 가사에 넣었다면 에너지 지적은 없었을 거고 시청자 분들 역시 깊이 공감할 수 있었을 겁니다. 은별 양은 어느 노래도 자기만의 감성으로 소화할 수 있지만 서희 양은 가사가 완전히 자기 이야기여야 노래를 제대로 부를 수 있다고 보입니다. 이건 장점일 수도 있고 단점일 수도 있어요.”


은별이 고개를 끄덕였다.

서희는 자기 파트의 가사에 대해 디테일이 부족하다며 고민하다가 은별이 쓴 가사를 본 후 별다른 말없이 그대로 반영하면서 자기 가사를 고쳤다.

그런데 서희가 자기 파트의 가사에 넣으려고 썼던 토막글 중에는 ‘오선지를 쳐다보는 무심한 눈빛과 더없이 잘 어울리는 오뚝한 콧날. 거기 찔린 내 가슴’이라는 문장이 있었고, 은별은 이걸 가사에 넣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다만 서희가 이 문장을 가사에 넣지 못한 것은 은별이 쓴 가사와의 균형 때문은 아니었다.


“<Someday> 역시 여우비만의 분위기가 전만큼 크게 두드러지지 않았던 게 자작곡 <여우비> 뒤에 나와서일 겁니다. 두 곡의 순서를 바꿨으면 어땠을까 싶어요. 이번 무대를 계기로 두 사람은 앞으로 가사에 대해 더 많이 소통하고 고민하길 바랍니다. 곡이 좋은 만큼 아쉬움이 큽니다. 잘 들었어요.”

“감사합니다.”

“여우비 수고 많았습니다. 이제 솔베이지 올라오세요.”


영기의 말에 서희와 은별은 심사위원석과 영기 쪽을 향해 인사한 후 돌아섰다.

혼성 듀엣 솔베이지 멤버인 김성윤과 소희아가 나오고 있었다.


“언니들 잘했어요.”

“고마워. 너희들은 더 잘할 거야. 응원할게.”

“네.”

“감사합니다.”


서희와 은별은 희아와 눈빛을 주고받은 후 무대 안쪽의 자리에 앉았다.


“미안해.”

“아니요. 제가 미안하죠. 제가 쓴 가사가 부족하다는 말씀이었잖아요. 제가 언니만큼 가사에 신경 쓰지 않았던 건 맞으니까.”

“내가 힘을 조금만 더 냈어도 이런 소리는 안 들었을 거야.”

“아니에요. 힘이 있을 수가 없었잖아요.”

“···.”

“저도 언니한테 맞춰서 그런 게 아니라 그냥 힘이 없었어요. 선생님들이 못 알아봐서 다행이지.”


서희는 땅을 바라보고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있는 힘을 빼고 부르는 거랑 힘없이 부르는 게 이렇게 다르네.”

“그러게요. 근데 저 좀 억울해요.”

“뭐가?”

“우리한테 소통 문제 같은 건 없잖아요.”

“그렇지.”

“언니, 그 사람 찾아요.”


눈이 마주치자 은별이 방긋 웃었다.


“오디션 끝나기 전까지는 지금 아니면 시간 없을 거예요. 찾아내서 언니가 원하는 거 이뤄내요. 이룰 수 있을 거예요.”

“···.”

“이건 그냥 서희 언니를 좋아하는 동생으로서 하는 얘기예요. 언니는 이제부터 여우비 팀보다 강서희 개인을 제일 먼저 생각해요.”

“···.”

“그래도 돼요. 아니, 제발 그렇게 해요. 여우비 한 뒤로 언니는 항상 팀이랑 저만 생각했잖아요.”


서희는 묵묵히 무대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은별은 전에도 이런 얘기를 했다. 은별은 왠지 자신에게 없는 확신을 가진 것 같았고, 그래서 그 말을 믿고 싶었다.


솔베이지는 지노로부터 받은 미션곡을 마치고 자작곡 <하늘 속 너>를 부르고 있었다.

은별은 서희에게 답을 들을 생각이 없었기에 다른 말을 꺼냈다.


“쟤들 조금 전에 불렀던 노래, 언니 혹시 알아요?”

“모노그램이 부른 <그 아이>라는 노래야.”

“언제 나왔어요?”

“작년이었을 걸?”

“저 노래 카페에서 되게 많이 들었어요. 노래 경쾌하고 좋아서 찾아본다고 하다가 깜빡했어요.”


서희는 고개를 끄덕이며 조그맣게 미소 지었다.

은별은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인디음악을 많이 들었지만, 음원 차트에 올라오는 노래와 좋아하는 가수들의 노래만 찾아 듣는 서희는 인디음악을 접할 계기가 없었다. 그녀가 이 노래를 아는 건 트레이닝할 때 은별이 자리를 비운 사이에 심심해서 순정남녀의 <그 해 여름>을 부르다가 정완에게 학창시절 추억 관련된 노래로 추천받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그 말을 하면 심각한 분위기에서 표정을 관리하기 어려울 것 같았다.

그래서 서희는 화제를 바꾸었다.


“쟤들 자작곡은 어때?”


이 말에 은별이 서희에게 귀를 가까이하고 조그맣게 말했다.


“나쁘진 않은데 솔직히 우리 노래보다 못해요.”

“그렇지? 곡도 그렇고 성윤이 파트에서 말이 너무 빨라. 발음이 딱딱 떨어지는 게 아니라서 뭐라고 노래하는 건지 잘 모르겠어. 노래도 아니고 싱잉 랩도 아니고···. 여기가 무대 뒤라 그런가?”

“그건 아닌 것 같아요. 좀 울리는 거 감안해도 들릴 건 다 들리잖아요. 그리고 희아는 보컬이 사전대결 때랑 달라진 게 없어요. 저음에 호흡 짧은 것도 그대로고.”

“그렇지? 쟤 이따 여원쌤한테 한소리 듣는 거 아닐까?”

“제 생각엔 그럴 것 같아요. 봐요. 여원쌤 얼굴 굳어가지고 지노쌤이 눈치 보고 있잖아요.”


여원은 솔로 보컬리스트나 팀의 메인보컬을 유난히 혹독하게 대했고 휘하 트레이너들 역시 그랬다. 그래서 은별은 보컬트레이너들에게 돌아가며 지적을 받곤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은별은 꿋꿋하게 연습했고, 최근에는 지적보다 칭찬을 많이 받으며 마음고생을 극복할 수 있었다.


한편 서희와 은별은 경연 때 다른 참가자들에 대한 심사평 및 각자의 의견을 충실히 적어 왔다.

이런 과정을 통해 이들에게는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다른 이들을 평가할 수 있는 안목이 생겨나고 있었다.


솔베이지의 심사는 지노의 격려부터 시작됐지만 이후에는 서희와 은별의 생각과 비슷했다.


“솔베이지 고생했습니다. 준비 기간 동안 열심히 노력한 건 누구보다도 제가 잘 알아요. 헌데 이 무대에서 그 노력의 절반밖에 나오지 않은 것 같아 아쉽습니다. 가사를 덧붙이는 것도 좋지만 곡의 템포나 분위기와의 조화를 고려해야지요. 그래서 제가 일주일 전에 <하늘빛 너> 가사에서 불필요한 단어 몇 개 알려주고 빼라고 했는데, 그걸 다 뺐는데도 가사의 전달이 불충분한 곳이 있었어요. 곡의 긴장감을 유도하기 위한 전략이 아니라 단순히 가사 내용을 전달하기 위해서 조사나 어미 등에서 글자 수를 줄이도록 했는데, 무대에서 들으니까 그것만으로는 부족했고 더 정리했어야 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건 제 불찰입니다.”

“다른 심사위원이 트레이닝하는 팀이라 말하기 조심스럽지만 이건 짚고 가야겠어요. 사전대결에서 제가 희아 양의 저음을 지적했는데 <하늘빛 너>도 희아 양 파트에 저음이 많았죠. 저음에서 짧게 끊어져서 불안하게 들렸던 게 오늘도 전혀 개선되지 않았어요. 자작곡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많이 준비했지만 노래로 제대로 표현하지 못했습니다. <그 아이>는 잘했어요. 저는 여기까지 할게요.”

“성윤 군의 노래가 웅얼거리는 것같이 들렸던 게 가사를 너무 많이 넣어서였군요. <하늘빛 너>, 강약 좋고 기승전결 있어서 저는 재미있게 들었고 이 노래 꼭 음원으로 출시되었으면 합니다. 가사야말로 지노 심사위원의 전문 분야이니까 확실히 조정해서 녹음했으면 합니다. 다른 부분은 좋았어요.”

“다른 부분은 다들 말씀하셨으니까 저는 <그 아이>에 대해서만 이야기할게요. 편곡을 상당히 많이 했는데 좋았어요. 멜로디 라인은 원곡과 같았지만 그 외의 화음은 전부 달랐고, 두 사람 모두 모노그램 멤버들보다 보이스가 굵은데 분위기도 거기 맞게 가져갔죠. 특히 희아 양이 아주 잘 불렀는데 아무래도 저음이 없어서 그랬나보네요. 어쨌든 기분 좋게 잘 들었습니다. 수고했어요.”

“솔베이지 수고했습니다. 이제 태평성대 올라오세요.”

“감사합니다.”


솔베이지의 성윤과 희아는 객석을 향해 여러 번 인사한 후 후련한 표정으로 돌아섰다.


4조의 마지막으로 나선 태평성대는 보컬 및 베이스를 맡은 리더 유태림과 키보드 양성환, 기타 곽정대, 드럼 문진평으로 구성된 4인조 메탈밴드로 부산 대학가에서 활동하며 이미 두 장의 앨범을 냈다.

이들은 자작곡 <어지러움>에 이어 수휘로부터 받은 미션곡 <심의위원>(왓!)을 불렀다.


“내가 헤비메탈을 라이브로 듣는 날이 있네?”

“언니 헤비메탈 좋아해요?”

“그건 아닌데 한번쯤은 공연 보고 싶었어. 친구들 보니까 메탈밴드 공연 갔다 오면 다들 좋았다고 하더라고. 며칠 목도 못 움직이면서 또 가고 싶다는 거 있지?”

“근데 쟤들 노래가 솔베이지보다 좋지 않아요?”

“자작곡이 더 낫긴 하네. 가사에 메시지도 있고, 잘 들리고.”

“태림이 노래 잘하네요. 의외로 저런 노래랑 잘 어울리고, 고음에서 실수도 없었어요.”

“그러니까. 잘하긴 잘한다.”

“하소연 빼고 우리 조 애들 다 자작곡 불러서 시청자들이 더 많이 비교하겠는데요?”

“근데 쟤들이 1등 하는 거 아닐까? 노래도 좋고 에너지도 넘치고.”

“우리가 할 거예요.”

“내가 너무 못했잖아. 쟤들은 하필 내가 못한 데서 완벽하고. 아유.”


서희와 은별이 긴장 풀린 얼굴로 대화를 나누는 사이에 태평성대의 노래가 모두 끝났다.


“태평성대 잘했습니다. 저 팀은 제가 한 마디만 해도 두 마디를 알아듣고 실천에 옮겼어요. 사흘 전 점검하면서 들었을 때보다 지금이 더 좋았습니다. 그때 제가 태림 양의 고음이 좋아서 극대화할 방법을 찾아보라고 했는데, <어지러움>의 곡조를 몇 군데 바꿔서 그렇게 했죠. 곡 자체도 사흘 전보다 좋았고 오늘도 고음이 깔끔했습니다. 메탈밴드로 보여줄 수 있는 걸 다 보여줬다고 봐요. 그거면 됐죠. 수고했어요.”

“수휘 심사위원이 말씀하셨듯이 태림 양의 고음이 확실히 좋아졌어요. 거기 하나가 더 있는데, 화음을 맡은 성환 군이에요. 성환 군은 필요한 부분에만 딱딱 들어가서 화음을 넣었는데 이게 악기처럼 자연스럽게 섞였어요. 그래서 보컬 면에서는 지적할 게 없습니다. <심의위원>은 원래 센 노래고 원곡자인 왓 역시 메탈밴드죠. 왓 보컬인 이상훈 씨랑 전혀 다르게 소화했지만 그래도 태림 양과 성환 군이 아주 잘 살렸습니다. 여기까지 할게요.”

“이번 <어지러움>을 들으면서 정대 군과 진평 군이 고3이라는 사실을 생각해 봤습니다. 미래에 대한 고민이 많아질 나이죠. 그런 고민이 노래에 잘 반영됐고, 태림 양은 이미 그 나이를 거친 누나로서 두 사람과 함께 고민을 나누며 가겠다는 의지를 노래에 잘 드러냈습니다. 고민의 결론이 나오지 않은 건 이 고민이 현재진행형이어서라고 해석할게요. 잘 들었습니다.”

“자! 이렇게 해서 4조 네 팀의 경연을 모두 마쳤습니다. 심사위원들께서는 의견 종합해주시고, 4조 참가자들은 무대로 나오세요.”


영기의 말에 4조 참가자들이 무대 중앙에 섰고, 심사가 진행되는 동안 네 팀은 서로를 격려했다.

인길 주위로 모여들었던 심사위원들이 자리에 앉자 영기가 말했다.


“심사 끝났으면 바로 발표해주시죠.”

“예.”


인길의 말에 참가자들이 모두 긴장했다.


“4조 경연 결과를 발표하겠습니다. 4조에서는 태평성대가 생방송에 진출하겠습니다. 축하합니다.”

“감사합니다.”

“와아!”


태평성대 멤버들은 심사위원석을 향해 인사했고, 서희와 은별은 그들을 향해 박수를 치다 태림과 환한 얼굴로 눈인사해 주었다.


“그리고, 안타깝지만 솔베이지는 여기서 최종 탈락하게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솔베이지 팀, 수고 많았어요.”


솔베이지의 희아는 심사위원석을 향해 인사한 후 고개를 들며 눈물을 흘렸고, 성윤은 허리를 숙인 채 펴지 못했다.

은별이 희아에게 다가갔다.


“안타깝다. 고생 많았어.”

“고마워요.”

“성윤이 오빠도 고생했어요.”

“후우. 고맙다. 다음에 잘해. 응원할게.”

“네.”


은별의 말에 성윤은 굳은 표정을 애써 펴고 고개를 들어 심사위원석을 향해 다시 인사했다.


“하소연과 여우비는 재대결에서 다시 보죠.”

“2시 반에 5조 경연 시작하겠습니다.”


영기의 말과 제작진의 사인이 있은 후 녹화가 잠시 끊겼다.

태평성대 멤버들은 흥분된 표정을 지우지 못한 채 서둘러 퇴장했고 다른 팀은 천천히 무대를 내려갔다.

서희와 은별 역시 복도에 나올 때까지 말이 없었다.


은별이 커피를 사오는 동안 서희는 복도 옆 의자에 앉아 창밖을 보았다.

이윽고 두 사람이 마주앉았다.


“재대결은 어떻게 할까요?”

“내가 걸리겠지.”

“작년엔 메인보컬들이 자유곡 불렀잖아요.”

“재작년엔 그 반대였어. 작년엔 우열을 가리기가 힘들었고.”


서희의 말에 은별은 고개를 끄덕였다.


“취약한 멤버한테 취약한 노래를 시키는 게 합격자 가려내는 데 좋긴 할 거야.”

“PD님이 그랬죠? 재대결은 확인사살이라고.”

“응. 전체 순위는 이미 어느 정도 정해져 있다고 하셨지.”


정완은 4라운드 재대결을 가리켜 ‘티 나지 않는 요식행위’라고 말하며, 추가 합격할 다섯 팀 중 서너 팀은 재대결 전에 이미 정해져 있을 거라고 말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재대결에서 경천동지할 정도의 임팩트를 보이지 못하는 한 순위는 변동이 없을 것이다.


“경천동지할 임팩트는 어떡해야 하지?”

“전 그런 거 못해요. 저는 걸려도 그냥 편하게 할 거예요.”

“응. 내가 걸려서 떨어져도 미안해하지 않을게. 우리가 여기까지 오는데 내 지분이 없진 않았으니까.”

“제 지분도 있죠?”

“많지.”

“그럼 저도 안 미안해할게요.”


두 사람은 서로를 향해 생긋 웃어주고 객석으로 올라왔고, 이내 5조 경연이 시작되었다.


뮤컬트 팀에서 마지막으로 경연에 나선 팀은 하트헤르였다.

여원은 앞의 네 팀이 모두 재대결로 갔기에 자존심이 조금 상해 있었지만, 5조에서 세 번째로 나선 하트헤르가 지정곡 <Give Love>(악동뮤지션)을 마치고 자작곡 <풀밭에서>를 시작하자마자 표정을 펼 수 있었다.

그것은 서희와 은별도 마찬가지였다.


“끝났네.”

“그죠? 윤명이도 잘하긴 했는데 이번엔 쟤들이 이기겠어요.”

“지난번에도 좋았는데 그것보다 더 좋아.”

“여원쌤 한시름 놓으셨겠어요. 유찬이 저번에도 잘했는데 오늘 더 잘해버리니까.”

“그러게. 다행이다.”


지혜와 유찬은 <풀밭에서>를 불과 나흘 전 만들었는데, 여원을 비롯한 뮤컬트 사람들은 이 노래를 듣자마자 입을 떡 벌렸다.

노래가 굉장히 좋을 뿐 아니라, 이전까지 가창력이 떨어진다고 여겨졌던 유찬이 자기 단점을 모두 보완하여 이 노래의 대부분을 주도하여 불렀는데 매우 좋았다.


“쟤들 팀 이름이 이집트 신화의 사랑의 여신에서 딴 거지?”

“네.”

“유찬이가 술에 취해 널브러져 있다가 여신의 부름에 홀려 간 풀밭에 여신을 닮은 꽃이 있었다. 술에 취했는지 향기에 취했는지, 꿈인지 생시인지도 모른 채 온몸으로 꽃향기를 느끼고 꿀을 빨면서 풀밭에서 뛰놀았다···.”


서희는 스마트폰을 켜고 유찬이 술 취한 듯 부른 이 부분의 가사를 다시 보며 여러 번 곱씹었다.

그녀도 가사를 쓰기에 <풀밭에서>의 이 부분이 노래의 핵심이며 유찬이 가장 많이 공들인 곳임을 알았다. 특히 지금 이 순간 유찬이 느꼈던 신기하고 환상적인 감성이 함께 느껴진 듯했다.

문득 그녀는 당장이라도 정완에게 달려가고 싶어졌다.


‘내가 당장 그 사람한테 가고 싶은 게 이런 마음일까?’


서희는 깊이 생각에 잠긴 표정으로 <풀밭에서>를 들었다.

은별이 그녀를 찬찬히 보다가 조그맣게 말했다.


“저기요, 언니.”

“응?”

“지혜한테 들었는데, 저 노래 얘기요···.”


은별이 서희의 귀에 얼굴을 가까이하고 목소리를 더 낮췄다.


“우리가 애들한테 잡채랑 해물찜 해줬던 날 밤에 있었던 일이래요.”

“아. 쟤들 그날 만땅 취했잖아. 걸음도 제대로 못 걸었고.”

“네.”

“근데 우리 숙소 근처에 풀밭 같은 게 있나? 있었다고 해도 엄청 취해가지고 갈 수도 없었을 텐데.”

“그게요, 이거 다른 사람한테 얘기하면 안 돼요.”

“어? 어.”

“그날 밤에 잤대요. 둘이.”

“···!”


은별의 귓속말에 서희의 눈이 대번에 커졌다.


“지혜는 팀 만들던 날보다 더 많이 놀랐다고 하더라고요. 유찬이 숨소리가 순간순간 다르게 들리는 게 노랫소리 같아서 하나하나가 전부 충격이었는데 행복인지 뭔지도 모르겠고, 아무튼 좋았대요.”

“뭐?”

“미쳐버리는 줄 알았다고.”

“그···.”


서희는 회식 다음 날 아침 ‘새벽까지 얘랑 작업했어요. 미쳤었죠.’라던 지혜의 말을 떠올렸다.


“그, 그러니까, 그 작업이란 게 곡 작업이 아니라 그···.”

“곡 작업이라고 할 수도 있죠. 지혜는 유찬이를 연주했고 자기 몸에서도 저절로 음악이 나왔다고 했어요.”


풀밭, 꽃, 그리고 꿀.

풀밭에 돋은 샐비어 꽃을 뽑아 꿀을 빨아먹으며 뛰놀았다고 해석할 수도 있을 텐데, 상황을 알고 나니 이 단어들이 그렇게 낯 뜨거울 수가 없었다.

서희뿐 아니라 은별도 얼굴이 벌게져 있었다.


“곡 작업 때문에 그, 그걸 했다고?”

“그렇다기보다는 곡이 안 풀리는데 내려온 계시라고 생각했대요. 막혔던 실마리가 풀렸으니까.”

“이 가사를 지혜가 오케이 했어?”

“네. 가사 보자마자 잘했다고, 진짜 최고라고 그랬대요.”

“근데 이거 방송 나가면 사람들이 알지 않을까? 그리고 넌 이걸 나한테 얘기해도 돼?”

“지혜는 사람들이 다 알아도 상관없대요. 미자도 아닌데 뭐 어떠냐고.”

“하아.”

“언니한테는 얘기해도 된다고 했어요. 언니는 제가 아는 건 다 알아야 한다고.”


여원의 격려에 이어 수휘가 <풀밭에서>에 대해 하트헤르의 최고의 노래라고 극찬했고, 지노는 자작곡으로는 <나의 아리랑>과 비견될 만한 좋은 노래로 몽환적인 분위기가 가사와 일치하여 아주 듣기 좋았다고 평했다.


하트헤르는 서희와 은별의 예상대로 5조 1위로 생방송에 직행하게 되었다.


작가의말

제 다섯 번째 작품 <마지막 선물>을 완결했습니다.

감정이 복잡하네요..


이제 다시 <오디션2>에 집중할 때인데...

다음 연재분이 2권 기준 마지막입니다.

그래서 그 연재분을 올린 후 일주일간 휴재하고자 합니다.

공지 올릴테니 양해를 부탁드릴게요.


날씨 덥고 비 오고 코로나는 사라질 줄 모릅니다.

모두들 건강 조심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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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Tears. 한계가 아닌 줄 알았는데 +6 20.05.28 183 11 23쪽
19 Abyss. 눈물조차 사치라고 느껴질 때 +6 20.05.24 179 9 22쪽
18 Restart. 욕심이 되어버린 밤 +2 20.05.21 196 9 27쪽
17 Separation. 신데렐라처럼 +4 20.05.17 185 11 24쪽
16 Friendship. 내일 일어날 일 +4 20.05.14 195 8 23쪽
15 Limitation. 임무를 마친 자의 여유 +2 20.05.10 192 11 21쪽
14 Round 3. 자신과의 싸움 +4 20.05.07 200 11 23쪽
13 Preparation. 조금 덜 치열해도 괜찮은 곳 20.04.30 211 10 29쪽
12 Wedding. 순정남녀가 순정부부로 20.04.23 228 9 29쪽
11 Goodness. 이럴 줄 알았으면 +2 20.04.21 225 8 23쪽
10 Round 2. 치열하게 따분한 날 +2 20.04.12 204 8 23쪽
9 Deeper. 녹음이 잘 되지 않는 이유 +8 20.04.09 238 11 22쪽
8 Fangs. 그녀의 실수 +8 20.04.07 234 12 28쪽
7 Round 1. 화살은 누가 쏜 걸까 +4 20.04.02 228 11 29쪽
6 Reoccurrence. 묻고 싶었던 말 +4 20.03.31 244 11 31쪽
5 Suggest. 좋은 제안이지만 +2 20.03.29 242 13 29쪽
4 Preliminary 2. 비 오는 아침 +2 20.03.24 270 11 29쪽
3 Preliminary 1. 저 사람들 또 +2 20.03.22 269 10 30쪽
2 Making. 만들어야 할 게 노래만은 아닌 팀 +4 20.03.15 356 13 28쪽
1 Prologue. 오래 전 약속 +4 20.03.15 715 16 2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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