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유우리 님의 서재입니다.

나 혼자 100층 회귀자

무료웹소설 > 작가연재 > 판타지, 퓨전

유우리
작품등록일 :
2022.12.12 09:23
최근연재일 :
2023.01.28 21:15
연재수 :
50 회
조회수 :
146,605
추천수 :
3,321
글자수 :
283,832

작성
22.12.29 21:15
조회
3,013
추천
74
글자
13쪽

로또 맞은 건가

DUMMY

20.


차도윤은 눈앞에 나열된 메시지를 읽어 들이며 헛웃음을 지었다.

도통 문구를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포식할 수 있는 영혼이 너무 많습니다.]

[목록을 불러오는 중입니다.]


‘영혼이 많다고? 왜?’


잠시 로딩이 이어진 후로는 무수한 문자열이 눈앞을 장식했다.

분명 그가 포식하고자 한 건 오직 한 놈이었는데.

죽고서도 그 본능은 남아 공격을 감행해오던 움직이는 송장.

차도윤의 표적이 된 건 오직 발푸스 한 마리였다.

하지만 나열된 메시지의 행렬은 끝도 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그건 생각보다 너무나도 방대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영혼 포식’을 시도한 이후로 놈의 움직임이 완전히 정지됐다는 건데.


“이게 대체······?”


황망한 눈으로 메시지를 읽어 내리던 차도윤은 가설을 세울 수 있었다.

아무렴 광신도가 마인을 소환하고 유지하는 방식이 타인의 심장을 뜯어먹는 거라는 걸 모르지 않았으니까.


‘설마 여태 잡아먹은 심장의 영혼이 이 놈의 몸에 깃들어 있는 건가?’


하지만 그 또한 이상했다.

여태 마인의 영혼을 포식해본 적이 없는 게 아니니까.

일찍이 발푸스의 마인을 잡아먹었을 때도 이런 경우는 없었다.

녀석은 단일개체로 취급됐고, 눈앞의 발푸스만이 특별했다.

완성형에 이르렀기 때문일까?

그도 아닐 것이다.

이건 전생에서도 경험해본 적이 없는 다소 특별한 상황이었다.


‘무엇이 다른 거지?’


차도윤은 그 답을 바로 알 수 있었다.


‘회광반조(廻光返照)’


계약의 주체였던 인간은 죽었지만 그 대상이던 마인의 본능만은 살아 움직이는 상태.

적어도 눈앞의 발푸스는 죽었지만 또 죽은 것처럼 보이질 않는 괴이한 형태였다.

때문에 녀석에게 [영혼 포식]을 사용할 수 있다는 것도 뒤늦게 알아차리질 않았던가.


‘영혼 포식은 오직 죽은 영혼에게만 반응하는 스킬이니까.’


“흐음.”


잠시 침음을 흘리던 차도윤은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만 같은 천장을 올려다봤다.

별안간 발푸스 한 놈만 포식하고 금세 상황을 정리하려고 했을 뿐인데.

이걸 뭐라고 해야 하나.


‘······로또 맞은 건가.’


목록 중에는 유난히 익숙한 명칭도 몇 개 보였다.

자이언트 스톤피드, 샤프 모스키토, 트윈 스파이더······.

멸망 이후로 서울에 파생된 몇몇 던전의 보스급 몬스터들.


‘부지런히도 다녔네.’


인간의 심장을 파먹는 걸로 부족했는지 몬스터의 심장도 파먹고 다닌 모양이었다.

하기야 그런 짓을 했으니 발푸스를 온전히 서울로 꺼내올 수 있었겠지.

차도윤은 수많은 목록을 확인하며 침음을 흘렸다. 고민이 안 될 수가 없었다.


“차, 차도윤 씨······!”


하지만 백지현의 외침에 차도윤은 입술을 짓씹었다.

당연하게도 이 많은 영혼을 모조리 포식할 수는 없었다.

그가 가진 [영혼 포식]의 등급이 낮을뿐더러 시간을 필요로 했다.

이 순간에도 건물은 삽시간으로 무너지고 있었다.

곳곳에 생겨나는 싱크홀은 머지않아 그들이 설 땅조차 없게 만들겠지.


‘지금 필요한 건 선택과 집중.’


하지만 딱히 아쉬울 것도 없는 문제였다.

빠르게 목록을 훑어보는 그의 전생이 무엇이던가.

무얼 먹어야 잘 먹었다 소문이 날지는 누구보다 그가 제일 잘 안다.


“이제 나갑시다.”


떨어지는 돌가루를 맞으며 차도윤은 출구를 돌아보았다.

그의 손 안으로 다수의 영혼이 게걸스럽게 잡아먹히고 있었다.


*


연신 흔들려대던 건물은 순식간에 폭삭 주저앉았다.

그래도 견고하게 만들어졌는지 꽤 오래 버틴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본격적으로 무너지기 시작하니 건물더미가 되기까지 채 1분도 걸리지 않았다.

먼지 구름을 일으키며 무너져 내린 찜질방을 돌아보며 백지현이 가슴을 쓸어내렸다.


“······조금만 늦었으면. 으으.”


차도윤은 고개를 주억거리며 그녀의 말에 공감했다.

모르긴 몰라도 발푸스를 상대로 더 드잡이를 벌였더라면 어땠을까.

만약 [영혼 포식]이라는 변수를 생각해내질 못했더라면?

아니, 애초에 발푸스 놈을 쓰러트리질 못했다면 어찌 되었을까.

여러 갈래의 선택지 속에서 하나라도 실수했더라면 결과는 끔찍했을 거다.

하지만 차도윤은 어깨를 으쓱이는 걸로 생각을 정리했다.


‘이쯤이야······.’


생사를 넘나드는 위기는 익숙했고 선택을 해야 하는 순간도 수차례 겪어보았다.

쉽진 않았지만 당장 이곳에서 겪은 일들은 어렵다고도 하기엔 애매했다.


“어디 다친 데 없습니까?”


차도윤은 긴장으로 굳었던 어깨를 털어내고 손에 묻은 땀을 닦아내었다.

멍한 시선으로 무너져 내린 건물을 바라보던 백지현이 이쪽을 돌아보았다.


“아, 저는 괜찮은데······ 차도윤 씨야말로 괜찮아요?”


백지현은 차도윤의 안색을 살피더니 황급히 그녀의 스킬을 꺼내들었다.

황금빛 기류가 감돌더니 이내 차도윤의 몸을 한 순간에 뒤덮으려 했다.

하지만 차도윤은 그녀를 밀어냈다.


“전 괜찮습니다. 저한테 스킬을 쓰지 않아도 됩니다.”

“하지만 안색이 안 좋으신데······.”

“조금 어지러울 뿐입니다. 워낙 무리를 했잖아요.”


사실 조금이 아니라 많이 어지러웠다.

백지현이 두 개로 보이고 사방이 빙빙 돌아댔으니까.

아무렴 검성의 기술을 억지로 운용한데다가 가진 마력도 쥐뿔같은 상태였다.

그만큼 긴박한 순간이었고 위험천만한 상황을 겨우 견뎌낸 뒤였다.

발푸스 놈에게 긁히고 베인 상처도 회복되지 못한 채 아직 피를 줄줄 흘려대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차도윤은 한사코 백지현의 손을 거절했다.


“당신의 스킬은 제가 무리한 보람을 모조리 없애버릴 테니까요.”

“네?”

“새크리파이스는 상처를 회복시키는 게 아니라 복원하는 거잖아요. 아예 없던 일인 것처럼.”

“······음.”


잠시 말이 없던 백지현은 고개를 주억거리며 순순히 뒤로 물러났다.

대신 그녀는 가방에서 거즈나 붕대를 들고 오더니 차도윤의 앞에 섰다.


“스킬만 쓰지 않으면 되는 거죠?”

“······부탁합니다. 선생님. 아파 죽겠어요.”


차도윤은 거두절미하고 자신의 복부를 꾹 누르는 손길에 미간을 찌푸렸다.

칭칭 붕대가 감길 동안에도 정신이 아찔해질 정도로 통증이 따라왔다.

마취라도 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그래선 보람이 없겠죠?”

“아뇨, 마취는 하셔도 되는······.”

“이참에 인내 스텟도 올려보시죠.”

“그건 굳이 지금 안 올려도······ 흐읍!”


백지현은 얄궂게 웃으며 차도윤의 상처를 빠르게 치료하기 시작했다.

커다란 환부는 스테이플러로 박아버려서 터무니없게 아프기도 했다.

일찍이 온갖 고통을 겪어봤던 그가 아니었더라면 이걸 뜬 눈으로 버틸 수 있을까?


“이젠 됐어요. 상처가 벌어지지 않게······ 움직이는 것만 최대한 자제해주세요.”


손을 털고 일어난 백지현은 겨우 한숨을 몰아쉬었다.

그녀도 꽤 지친 모양인지 쓰러지듯 바닥에 주저앉았다.

차도윤이 다시 묻자 백지현은 멋쩍게 웃으며 답했다.


“저도 조금 지쳤을 뿐이에요. 설마······ 건물까지 무너트릴 줄 누가 알았겠어요.”


말없이 두 사람의 시선은 무너져 내린 건물로 향했다.

기껏해야 이 근방을 주름잡던 깡패 집단이나 처리하러 왔는데.

어쩌다 보니 생사를 오가는 순간을 넘나들어야 했다.

누군가 이 상황을 설명한다면 개막장 판타지 웹소설이라고 욕할 정도로 개연성이 보이질 않았다.

차도윤은 어깨를 으쓱이며 생각을 정리했다.

새삼스럽게 신이 이 세상을 멸망시키려는 세계관에서 개연성이 무슨 소용이람.


‘거기다 2회 차에 이르러 우연과 필연이 뒤엉키고 말았지.’


두 번 사는 인생에서 목적 없이 살아가는 사람은 드물다.

저마다 필요한 게 있고 그걸 구하고자 각자의 방식대로 움직인다.

강해지기 위해 히든 피스를 구하러 다니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누군가를 지키기 위해 발품을 팔고 세력을 확장하려는 이가 있기 마련이다.

전생에 실패했던 세계의 멸망을 꿰하는 벌레와, 또 그 목적을 저지하려는 헌터가 공존한다.

이 세계는 더없이 복잡해졌으며 필연적인 것들이 우연을 만들고, 또한 우연적인 것들이 필연을 만들어낸다.

애초에 과거와 미래가 모조리 뒤엉킨 세계에서 개연성처럼 인과를 따지는 일은 무의미하다.

백지현은 길게 숨을 내뱉었다. 목이 말랐는지 가방을 뒤져 생수를 하나 꺼내 벌컥벌컥 마셔댔다.

그녀는 반쯤은 물을 비워내고 나머지는 얼굴에 부어 먼지를 씻어내기도 했다.


“하나만 물어볼게요.”


백지현이 대뜸 입을 열었다.


“성모라는 사람······ 어떤 사람이죠?”

“네?”

“그 괴물······ 성모라는 사람이 만들었다면서요.”


느닷없는 질문에 차도윤은 잠시 대답을 고민했다. 하지만 이 한 마디만큼 그녀를 설명할 방법은 없었다.


“미친년이죠.”

“흠.”

“그리고 당신과 같은 스킬을 가진 헌터고요.”


어렴풋이 떠오르는 성모의 모습은 자애로운 미소가 자자한 얼굴이었다.

그리고 그 얼굴이 아이러니하게도 가면이나 가증스러운 연기가 아니라는 게 문제였다.

그녀는 진심으로 남을 위해 희생하길 두려워하질 않으며, 인류를 위해 제 목숨을 초개처럼 내던지는 위인이었으니까.

몬스터에게 잡아먹힐 위험에 빠진 사람을 구하다 제 팔이 뜯긴 일.

불타는 건물에 갇힌 아이를 구하기 위해 누구보다 빠르게 달려든 사건.

성모와 관련된 미담은 차고 넘쳤다.

그녀는 헌신적으로 인류를 위해 봉사하고 희생하는 성인(聖人)이었다.


“그런······.”

“하지만 말했듯 미친년입니다.”


남을 위해 희생하며 미담을 쌓아가던 성모는 한 기점으로 비틀린 욕망을 품게 된다.

그녀는 악마와 계약해 세계를 멸망시키는 대신 전 인류를 재건할 방법을 찾아낸 것이다.


“그게······ 가능해요?”

“이론적으로는요. 그놈이 가진 힘은 정교한 가짜를 만드는 데에 특화됐거든요.”

“정교한 가짜······.”

“당신이 가진 새크리파이스를 성모가 훔쳐서 쓰는 것처럼요.”


차도윤은 혀를 차며 말했다.


“아마 성모의 계획이 성공한다면 지구를 멸망 이전으로 되돌릴 수 있을 겁니다. 멸망을 기억하는 존재는 성모 혼자만이 될 거고······ 인류는 아무것도 모르는 채 다시 살아가게 되겠죠.”

“그럼 좋은 거 아니에요?”

“말했잖아요. 정교한 가짜라고.”


그녀가 말한 이상향에는 아이러니하게도 현 인류의 그 누구도 함께하질 못한다.

정교하게 꾸며진 거짓된 세계에 들어갈 수 있는 건 또한 정교하게 복제된 인류다.

말 그대로 ‘거짓된 낙원’이다.


“그렇기에 성모의 광신도가 만들어지는 겁니다. 어차피 그들이 떠나갈 이상향엔 그들의 복제품만이 함께할 테니까.”


멸망 이후로 죽어나간 모든 인류를 위해서 스스로의 영혼을 악마에게 내다 판 여자.

성모란 그런 존재였다.


“대답이 되셨습니까?”


차도윤의 말에 더 복잡해진 듯한 표정을 짓던 백지현은 한숨과 함께 말했다.


“하나만 더요. 왜 하필 절 필요로 하는 거죠?”


그녀는 자신감이 없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전 생각보다 뛰어난 헌터가 아니에요. 생명력을 위주로 사용하는 기술이라 오래 쓰지도 못하는 거 알잖아요.”

“······.”

“성모가 제 스킬의 복제품을 쓴다지만 글쎄요······ 전 성모처럼 악마를 소환하지도 못해요.”


마지못해 [새크리파이스]를 언급하는 백지현을 보며 차도윤은 침음을 흘렸다.


“혹시나 했는데 백지현 씨는 당신이 가진 스킬에 대해서 전혀 모르시는군요.”

“네?”

“하긴 저층 회귀자셨지.”


차도윤은 쓰게 웃으며 말했다.


“당신의 [새크리파이스]는 치료 스킬이 아닙니다.”

“네?”

“그건 부가적인 기능이죠. 백지현 씨가 가진 힘의 기원은 그런 게 아니라고요.”


오늘날 여러 히든 피스를 마다하고 먼저 백지현을 찾아온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그녀가 ‘백 선생’이라 불리는 희생적인 의사 출신의 헌터였기 때문에?

한정 조건으로 죽은 사람마저 되살리는 터무니없는 스킬을 가졌기 때문에?

아니다. 차도윤이 이곳까지 찾아와 얻고자 한 건 고작 그런 게 아니다.


‘내가 무너지는 건물에서 주워온 건 고작 발푸스의 영혼만이 아니야.’


영문을 몰라하는 백지현을 보면서 차도윤은 한 가지 그림을 상상할 수 있었다.

그녀가 가진 스킬 [새크리파이스]의 기원에 해당하는 용맹한 전사들.


‘발키리(Valkyrie).’


북유럽 신화에서 주신인 오딘을 위해 싸우던 전투 여신들을 일컫는 말.


“말하자면 백지현 씨의 포지션은 힐러가 아니라 딜러라는 겁니다.”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2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나 혼자 100층 회귀자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21 외상값은 이걸로 치르겠다던데요? 22.12.30 2,898 68 12쪽
» 로또 맞은 건가 +2 22.12.29 3,014 74 13쪽
19 이걸 왜 놓치고 있던 건지 +1 22.12.28 3,059 70 12쪽
18 이건... 진짜 미친 짓이야 +3 22.12.27 3,151 64 13쪽
17 1분이면 됩니다 +1 22.12.26 3,190 72 13쪽
16 어차피 못 도망칩니다 +7 22.12.25 3,379 75 13쪽
15 원래 잔챙이는 그냥 무시하는 주의인데 +1 22.12.24 3,596 77 12쪽
14 너희들에게 악 감정은 없어 +1 22.12.24 3,740 79 12쪽
13 난이도가 아주 X같아졌거든 +2 22.12.23 3,887 87 12쪽
12 하여간 성질 급한 2회 차로군 +3 22.12.22 4,330 87 13쪽
11 이러니 내가 담배를 못 끊지 +2 22.12.21 4,401 95 12쪽
10 운이 좋다고 해야 하나 +3 22.12.20 4,684 87 13쪽
9 난 욕심이 많은 편인데 +2 22.12.19 4,775 98 13쪽
8 어떤 미친 새끼야! +4 22.12.18 4,872 98 13쪽
7 일단 코인 재벌부터 되어볼까 +2 22.12.17 5,046 104 12쪽
6 애초에 급이 다른데 +4 22.12.16 5,100 96 13쪽
5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6 22.12.15 5,281 97 13쪽
4 침몰하는 배에 승선하는 취미는 없거든요 +2 22.12.14 5,605 105 13쪽
3 일이 술술 풀릴 리가 없지 +4 22.12.13 6,343 109 12쪽
2 모두 예상했던 일이다 +5 22.12.13 7,925 115 13쪽
1 두 번의 기회 +5 22.12.13 9,783 129 9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