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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우리 님의 서재입니다.

나 혼자 100층 회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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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우리
작품등록일 :
2022.12.12 09:23
최근연재일 :
2023.01.28 2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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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283,832

작성
22.12.14 1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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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5
글자
13쪽

침몰하는 배에 승선하는 취미는 없거든요

DUMMY

4.


폐부가 익어버릴 것처럼 느껴지는 뜨거운 열기 속에서 남자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지려버린 바지는 축축했고 온몸은 누가 묶어놓은 것처럼 움직이질 않았다. 왜 그런지 이유는 잘 알았다.


[상태 이상 ‘공포’를 느끼고 있습니다.]


자신의 수준보다 훨씬 높은 몬스터를 마주했을 때에 느끼는 압박감.

멸망 이후의 세계는 이렇듯 완연한 약육강식의 구조가 자리 잡혔다.

그리고 회귀한 지 얼마 안 된 헌터들은 그 구조에서 최하단에 있는 무지렁이였다.

경험은 있어도 그에 걸맞은 무엇도 갖추질 못한 수준 낮은 인간들.


‘낭패다.’


그렇기에 느닷없이 나타난 레드 독을 보고 더더욱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적어도 이 저급한 시기를 견뎌낼 수 있도록 튜토리얼은 똑같을 줄 알았는데.


‘이럴 줄 알았으면 정신력 강화 스킬을 가져왔어야 했어.’


그에게 주어진 스킬 목록 중엔, 상태 이상을 저항하는 몇 개의 스킬도 있었다.

공사장을 전전하며 얻었던 [근성 강화] 스킬이나 군대에서 뺑이 친 경험이 녹아든 [군인 정신] 스킬.

이 스킬들을 가져왔더라면 전투 능력은 조금 떨어지더라도 상태 이상엔 약간의 면역을 쥐어준다.

만약 그 스킬만 갖고 있었더라면 지금처럼 대책 없이 몸이 굳진 않았을 거다.


‘근데 그게 무슨 소용이지.’


생각해보니 상태 이상 면역을 가졌다 해도 상황이 바뀔 것 같진 않았다.

이곳에 오른 헌터들이 전부 관련 스킬을 지급받을 수 있었는지도 모르고.

당장 굳어있는 걸보면 죄다 자신과 크게 다를 바 없는 상태였다.

그 혼자 상태 이상 면역이 된들, 강화석 다섯 개가 고스란히 남아있는 레드 독을 처치한다는 건 무리였다.

설령 홀로 도망쳐 나머지 층을 공략한다고 해도 방법은 마땅치 않았다.

저놈은 본래 수많은 헌터들이 합심하여 사냥하는 ‘보스 몬스터’니까.


‘으음?’


아마도 그렇기 때문인지 더더욱 남자의 눈이 동그랗게 변했는지 모른다.


‘저 사람은······.’


모두가 굳어서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을 때.

홀로 유유자적 레드 독을 향해 나아가는 한 사내가 보였다.

문득 시선을 마주쳤는데 가관인 것은 이 상황에 입 꼬리를 올려 웃고 있다는 점이었다.


‘대체······.’


그리고 놀라운 건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눈동자를 데룩 굴려 보게 된 남자가 보여주는 전투 장면.


‘미친, 퍼펙트 패링?’


온갖 장비를 갖추고 스킬로 확률을 높여야만 겨우 따라할까 말까하다는 시스템.

누군지 몰라도 사용하기 까다로운 극악의 기술을 튜토리얼에서 버젓이 쓰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 한 번이 아니야.’


두 눈을 의심하게 될 정도로 남자의 전투는 간결했지만 또 충격적이었다.

고작 조촐한 식칼로 퍼펙트 패링을 이용하여 그보다 큰 덩치의 괴물을 튕겨내는 것이다.

그걸 수번이나 반복하면서 차분하게 레드 독에게 대미지를 내고 있었다.

그게 가당키나 한 일일까.

남자는 확신할 수 있었다.


‘랭커다.’


훗날 헌터들은 서로의 실력을 가늠해 그 순위를 매겨뒀다.

랭킹은 누군가가 장난처럼 만들었지만 서로에 대한 척도가 되었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흔히 상위 헌터를 두고 랭커라 불렀다.

남자는 신음을 흘렸다.


‘저 정도 컨트롤이면 대체 몇 층까지 공략했을까.’


모를 일이다. 31층까지 올랐던 장래 유망하던 헌터였던 자신조차 전혀 짐작할 수 없는 수준의 컨트롤이었으니.


‘확실한 건 하나다.’


남자는 모르긴 몰라도 이 상황에 대해서 단 하나만은 확실히 정의를 내릴 수 있었다.


‘이 사람은 치트키야.’


번쩍─ 레드 독을 홀로 처치하고 유유자적 선 그의 앞으로 황금빛의 카드가 영롱하게 빛나고 있었다.


‘놓쳐선 안 돼.’


그리고 아마도 이곳에 선 헌터들 대다수는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


[골드 카드]는 신이 내려주는 은혜 중에서도 꽤 희귀한 편에 속하는 물건이었다.


‘운이 좋네.’


일반적으로 생존 보상은 브론즈, 실버, 골드 순으로 아이템 및 스킬이 주어진다.

시련을 수행해내기만 해도 얻을 수 있는 게 가장 보통의 보상인 브론즈.

앞선 임무와 동시에 선택 임무까지 모조리 해내야만 얻을 수 있는 게 실버.


‘숨겨져 있는 업적까지 달성해야만 얻을 수 있는 게 골드 카드.’


이후로도 오색빛깔로 빛나는 플래티넘이나 아예 투명한 다이아 카드도 있다.

하지만 그건 뭔 짓을 해도 작금의 시련으로는 얻을 수조차 없는 상위 보상들.


[스킬 목록을 불러옵니다.]


차도윤은 눈에 훤히 보이는 세 장의 금빛 카드를 내려다보며 씨익 웃었다.

튜토리얼 보상으로 이렇듯 골드 카드를 손에 쥘 수 있게 되다니.


[화염 지배 (F)]

[영혼 포식 (F)]

[신체 강화 (F)]


‘죄다 유용해 보이는데······.’


모르는 스킬은 없었다. 이름만 봐도 그 쓰임새까지 전부 떠올랐다.

단 하나만 고르기엔 유용하다 못해 사기적이기까지 했다.

고민이 될 수밖에 없었다.

한편 그 즈음.


“저기······.”


쭈뼛대는 몰골로 웬 사내가 차도윤을 향해 다가와 말을 걸어왔다.


“?”


그리고 어느덧 상태 이상에서 벗어난 헌터들이 이쪽으로 시선을 집중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랭커시죠?”


누군가가 포문을 열자 다른 헌터들은 기다렸다는 듯 말을 꺼내왔다.


“몇 층까지 올라가셨어요?”

“진짜 퍼펙트 패링 한 거예요? 그 식칼로?”

“스킬이 뭐예요? 무슨 스킬이길래······!”

“밀지 마요! 저기요! 제 말 좀 들어주세요!”

“저기요······!”


밀려오는 사람들의 행렬에 차도윤은 약간 난감한 기분을 삼켰다.

튜토리얼을 빨리 끝내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앞에 나선 일이건만.


‘아직 내 정체가 드러나선 안 돼.’


차도윤은 검성이라 불리던 회귀 전의 일정 시점부터 오랫동안 투구를 쓰고 다녔다.

그의 정체를 아는 사람은 결사대의 수뇌부, 혹은 그의 절친한 지인뿐.

그는 철저하게 자신을 숨겨왔다. 이건 반드시 해야만 하는 일이었다.


‘나만 회귀하는 게 아니니까.’


말했듯 이 세상에서 회귀를 하지 못하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 아군이든 적군이든 가릴 것 없이 죽었던 사람마저 모두 부활한다.

그중 차도윤이 우려하는 건 현 인류의 결함이라 불리는, 이른바 버그(Bug)라 일컫는 자들.


‘인간들 틈에 숨어 뒤통수만 노려대는 빌어먹을 벌레 새끼들.’


악인으로 분류되는 그놈들은 분명 지금 이 순간을 놓치지 않으려 할 것이다.


‘우리들이 가장 약할 때니까.’


검성이 검성이라 불리게 된 건 그만한 역사가 쌓였기에 가능했다.

그리고 오늘날 모든 게 리셋되어 검성으로 이룩한 것들은 허물어졌다.

시련을 통과해 얻어낸 신체 능력, 스킬, 각종 특성은 씻은 듯이 지워졌다.

지금의 그는 시력도 안 좋아 안경이 없으면 앞도 제대로 보지 못하던 학생.

공부만 하다 체력도 부족해진 대학생에 불과했다.


‘어지간해선 못 알아볼 것도 같지만······.’


새삼스럽지도 않은 사실은 그가 검성으로 활약하기도 전에 이미 수많은 사람들이 죽었다는 사실이다.

과연 눈앞에 있는 사람들 중 얼마나 검성을 알 정도로 오래 살아남았겠는가.


“훌륭합니다. 정말 훌륭했어요.”


그리고 대뜸 크게 박수를 치면서 차도윤의 앞까지 다가온 사람이 있었다.

양복 차림의 사내는 회귀 전에서도 꽤 잘 나갔던 사람인지 외투며 신발까지 명품이 아닌 게 없었다.


“당신이라면 저랑 함께할 자격이 충분하겠군요.”

“······?”

“반갑습니다. 전 이런 사람입니다.”


차도윤은 자신에게 내밀어진 명함을 말없이 내려다봤다.


[상진전자 기획 본부장 - 박명철]


하지만 차도윤은 명함을 바라만 볼뿐 아무런 리액션도 취하지 않았다.

명함을 아예 받아주질 않으니 박명철 본부장은 멋쩍게 명함을 도로 회수했다.

그는 뻔뻔하게도 다시 손을 앞으로 내밀며 입을 열었다.


“이렇게 말하면 알아들으시려나요. 전 파이오니어 길드의 3팀 팀장 박명철입니다.”

“파이오니어······?”

“역시 아시는군요. 네. 제가 대(大) 파이오니어 길드의 3팀의······.”


무엇이 그리 자랑스러운지 가슴을 앞으로 훤히 내밀고 씨익 웃는 사내의 표정은 자신감이 가득했다.

그는 자신의 말이 전혀 거절될 거라는 생각은 추호도 안 하는 눈치였다.

물론 그가 왜 저렇게까지 자신감을 가지는지 모를 바가 아니었다.


‘파이오니어 길드, 분명 개척자들은 꽤 유명했으니까.’


전 세계에서 벌어지는 일이니만큼 1회 차라고 해도 유난히 적응이 빠른 유형의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시련이 주어지는 상황에서도 살아남는 것만을 목표로 하질 않았다.

이 세상을 구원하고자 한다면 탑을 올라야 한다는 걸 누구보다 먼저 알아차렸다.


‘그리고 탑을 오르기 위해 각지에서 인재를 끌어 모으기 시작했지.’


운동선수와 군인 출신을 위주로 전투원을 구성했고, 각 기업의 사원들을 모집해서 전략부서를 따로 만들었다.

특히 게임을 유독 즐겨하던 사람들을 모아 새로운 팀을 만들어낸 건 개척자들의 업적이라 할만 했다.


‘그래, 말하자면 파이오니어 길드는······ 한국 길드의 시작점이나 다름없어.’


눈앞에 있는 박명철이 이토록 차도윤에게 거만한 표정을 지을 법도 한 일이었다.

차도윤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거절하죠.”

“네. 당연히······ 네?”

“못 들었어요? 거절한다고요.”


딱 자르는 말투에 박명철은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눈만 껌뻑였다. 마찬가지로 이쪽을 둘러보던 헌터들의 표정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들의 목적도 차도윤을 같은 길드로 포섭하거나 어떻게든 같은 파티를 이루고자 하는 것이었을 테니까.

잠시 말이 없던 박명철은 이내 얼굴을 화끈하게 물들이며 말했다.


“······제 말을 제대로 이해하신 게 맞습니까? 파이오니어 길드라니까요?”

“알아요.”

“제가 이런 말까지 하긴 뭣한데 저희 길드는 각지 최고의 헌터들만 선별해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최강의······.”


차도윤은 말이 길어지는 박명철을 향해 대수롭지 않은 얼굴로 답했다.


“그래서 어쩌라고요.”

“네?”

“파이오니어 길드, 확실히 좋은 길드입니다. 당신 말이 틀린 건 하나도 없어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최강의 길드였죠.”

“그런데 왜······.”


차도윤은 혀를 차며 답했다.


“초기엔 말이죠.”


안타까운 일이지만 차도윤이 기억하는 미래엔 파이오니어 길드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들은 초기에 바짝 타올라 선명하게 한국을 수호하던 빛이었으나. 결국 모조리 타들어간 심지처럼 별 볼일 없이 퇴장해버린 그룹이었다.

제아무리 최고를 선별해서 모아놓는다고 해도 신이 내린 시련은 호락호락하지 않았으니까.


“전 침몰하는 배에 승선하는 취미는 없거든요.”


매몰차게 거절 의사를 밝힌 차도윤은 박명철로부터 시선을 떼고 눈앞에 일렁이던 스킬 카드에 집중했다.

고민이 됐지만 몇 번을 생각해도 당장 골라야 할 게 무언지 그 답은 같았다.

바로 스킬 카드를 움켜 쥔 차도윤은 한쪽에 널브러진 레드 독의 시체로 다가갔다.


[스킬 ‘영혼 포식’을 발동합니다.]

[일정 수준 이하의 영혼을 포식합니다.]


차도윤의 손끝으로 스멀스멀 피어올라온 건 흉한 몰골을 한 영혼체였다.


“허업!”


누군가가 신음을 흘리는 사이 그 영혼체는 차도윤의 전신을 뒤덮었다.

효과는 바로 나타났다.


[힘이 1 상승했습니다.]

[화염 내성이 2% 상승했습니다.]


영혼 포식.

일정 수준 이하의 영혼에 한하여 그 힘을 흡수하는 능력.


‘고작 F급이라 효율도 많이 떨어지지만······.’


차도윤은 미묘하게 달라진 감각에 천천히 눈을 감았다 떴다.

머릿속엔 앞으로 해야 할 일이 수두룩하게 떠오르고 있었다.

서울의 인구는 천 만 명에 달한다. 주어진 땅은 좁았고 시간도 한정적이었다.

그리고 모두가 회귀해버려 이 세상엔 아직 주인을 찾지 못한 아이템이 차고 넘쳤다.


‘나 혼자 먹기도 아까워.’


차도윤의 시선은 깨진 창 너머로 향했다. 곳곳이 불꽃이 솟구치며 파괴된 서울. 노을이 비추어 빌어먹게도 아름다운 정경이었다.


‘다음은 신촌역이다.’


익숙하지만 낯설고, 낯익으면서 그리운 세계를 앞두고 차도윤은 계획을 세웠다.


작가의말

내일은 18시 15분에 연재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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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1분이면 됩니다 +1 22.12.26 3,190 72 13쪽
16 어차피 못 도망칩니다 +7 22.12.25 3,379 75 13쪽
15 원래 잔챙이는 그냥 무시하는 주의인데 +1 22.12.24 3,596 77 12쪽
14 너희들에게 악 감정은 없어 +1 22.12.24 3,740 79 12쪽
13 난이도가 아주 X같아졌거든 +2 22.12.23 3,887 87 12쪽
12 하여간 성질 급한 2회 차로군 +3 22.12.22 4,330 87 13쪽
11 이러니 내가 담배를 못 끊지 +2 22.12.21 4,401 95 12쪽
10 운이 좋다고 해야 하나 +3 22.12.20 4,684 87 13쪽
9 난 욕심이 많은 편인데 +2 22.12.19 4,775 98 13쪽
8 어떤 미친 새끼야! +4 22.12.18 4,872 98 13쪽
7 일단 코인 재벌부터 되어볼까 +2 22.12.17 5,046 104 12쪽
6 애초에 급이 다른데 +4 22.12.16 5,100 96 13쪽
5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6 22.12.15 5,281 97 13쪽
» 침몰하는 배에 승선하는 취미는 없거든요 +2 22.12.14 5,606 105 13쪽
3 일이 술술 풀릴 리가 없지 +4 22.12.13 6,343 109 12쪽
2 모두 예상했던 일이다 +5 22.12.13 7,925 115 13쪽
1 두 번의 기회 +5 22.12.13 9,783 129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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