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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우리 님의 서재입니다.

나 혼자 100층 회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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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우리
작품등록일 :
2022.12.12 09:23
최근연재일 :
2023.01.28 21:15
연재수 :
5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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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6,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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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283,832

작성
22.12.19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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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
글자
13쪽

난 욕심이 많은 편인데

DUMMY

9.


툭 튀어나온 이빨에 솜사탕처럼 하얀 털.

기다란 귀에 동그란 뿔테 안경을 써 앙증맞기까지 한 생김새.


“똥물에 튀겨 죽여도 시원찮게 생긴 놈이······ 감히 나를 귀찮게 하는 것이냐!”


하지만 생긴 것과는 다르게 거친 욕설을 난무하는 토끼를 보면서 차도윤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신촌 오락실의 주인이자, 이곳의 보스 몬스터를 담당하는 단 하나의 존재.

GM 래빗.


“바른대로 말하는 게 좋을 거야. 지금 남의 영업장에서 무슨 해괴한 짓을 벌이고 있는 거지?”

“······.”

“입이 킹 스파이더한테 꿰매이기라도 했나? 당장 왼쪽 귀부터 오른쪽 귀까지 친절히 잘라줄까? 시발 인간 새끼야?”


여전히 걸레를 씹어 물은 말투를 보며 차도윤은 생각을 정리할 수 있었다.


‘지금부터가 중요하다. 자칫 말실수 한 번이면 머리가 반쪽이 날 거야.’


실제로 눈앞의 토끼는 귀여운 얼굴로 씨익 웃더니 도끼를 툭 꺼내들었다.


“입 안 여냐? 정말 뒈지고 싶어서 환장했네. 그래, 조금만 기다려라. 머리부터 발끝까지 하나씩 똑똑 떼어줄 테니까.”


커다란 도끼를 바닥에 질질 끌고 오는 모습은 사뭇 기괴하기까지 했다.

생긴 건 무슨 인형 같으면서 그 눈빛엔 살기가 가득했다.

차도윤은 혀를 차며 답했다.


“제가 잘못한 건 없을 텐데요.”

“뭐?”

“규칙이라도 어긴 게 있습니까?”


녀석으로부터 보스 몬스터의 기운이 물씬 풍겨나 심장은 절로 쪼그라들었다.

하지만 차도윤은 녀석의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악바리 정신이 그나마 몸이 떨리는 걸 숨기도록 도와줬다.


“규칙이야······.”


그리고 걸걸하게 욕설을 퍼붓던 래빗은 그 작은 입을 꾹 닫아야 했다.

할 말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너무 잘한 것도 잘못입니까?”


차도윤은 코인 존에서 그저 정해진 규칙을 따라서 퍼펙트 패링을 성공시켰다.

중간에 특성을 얻은 건 딱히 룰에 위반되는 행동이 되기 어려웠다.

애초에 신이 제멋대로 쥐어주는 걸 그가 뭐라고 막을 수 있겠는가?

래빗은 빨간 눈을 치켜뜨며 말했다.


“하지만 해도 너무하잖아! 인간이 정도가 있어야지! 이러다 거덜 나면 네가 책임질 거냐?”

“글쎄, 그건 그쪽 문제죠.”

“어쨌든 난 용납 못해! 인간 주제에 왜 그렇게까지 게임을 잘하는 거냐고!”


길길이 날뛰는 래빗을 보면서 차도윤은 녀석이 어쩌다 이곳에 튀어나오게 됐는지도 이해했다.

뭐 그럴 줄 알고는 있었지만······.


‘성질 급한 건 여전하군.’


차도윤이 코인 존에서 무자비하게 퍼펙트 패링을 성공시키자 녀석의 발등엔 불이 떨어졌을 거다.

누가 뭐라 해도 오락실에서 사용되는 코인은 녀석의 지갑에서 빠져나올 예정이었으니까.


“아무리 생각해도 납득이 안 돼. 인간 주제에 그게 가능하다는 게······ 너 사실 상층 주민이지?”

“흐음.”

“바른 대로 말해. 동종업계 종사자라면 손가락 세 개만 자르는 걸로 용서해줄 테니까.”


성질 급한 토끼 녀석은 당장이라도 그의 손가락을 자르고 싶은지 도끼를 들썩였다.

그럴 때마다 살기가 넘실거려 심장이 터질 것처럼 쿵쾅대기도 했다.

하지만 차도윤은 모르쇠 답했다.


“상층 주민이라······ 그런 거 말해줘도 괜찮아요?”

“어?”

“탑의 규칙이 있을 텐데 참 겁도 없지요.”


살기가 넘실거리던 녀석의 머리맡으로 번개가 쾅, 하고 떨어져 내렸다.

탑의 규칙을 어긴 성질 급한 토끼를 향해 내려친 신의 철퇴.

전격에 감전당한 래빗은 온몸을 부르르 떨어대다 이내 검은 연기를 토해냈다.


“끄어······ 빌어먹을 인간 놈 때문에 이게 뭐람.”


래빗은 옷매무새를 다듬더니 말했다.


“방금 전 말은 잊어라, 인간.”

“······.”

“여튼 넌 진짜 외부인이란 거지?”


차도윤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러자 차도윤을 바라보던 래빗은 눈을 가늘게 떴다.


“좋아, 외부인······ 하나만 묻자.”

“뭡니까.”

“왜 외부인이란 작자의 상태창을 내가 확인조차 할 수 없는 거지?”


토끼는 도끼를 꽉 움켜쥐고 말했다.


“제아무리 2회 차의 인간이라 해도 상태창 자체가 가려질 수는 없을 텐데? 인간 대체 무슨 수작을······.”


그리고 래빗의 불량스런 얼굴을 바라보던 차도윤은 그제야 길게 한숨을 토해낼 수 있었다. 약간 구부려졌던 허리는 쭉 펴고 어깨도 당당하게 펼쳤다.


“토깽아.”

“뭐? 갑자기 왜 반말을······.”

“일단 꿇어.”


콰아아아앙!


터무니없게도 보스 몬스터 GM 래빗의 무릎이 바닥을 쾅 찍어 내리는 순간이었다.


*


일찍이 탑을 오른 헌터들은 이 세계에 대해서 각가지 연구를 해왔다.

과연 신은 왜 인간들에게 이런 시련을 내리고, 또 능력을 쥐어준 걸까.

나아가 ‘바벨의 탑’이란 어떤 곳이고, 층을 올라갈수록 만나는 다양한 세계는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17년을 걸친 연구는 나름의 성과가 있었다.


‘우선 탑의 주민은 일종의 NPC다.’


탑의 기록을 살펴본 결과로는, 탑의 주민 즉 NPC는 회귀에 대상에 속하지 않는다.

회귀는 오로지 외부인이자, 도전자인 지구인에게만 부여되는 은혜였다.

즉 눈앞에서 무릎을 꿇은 채 붉은 눈만 이글이글 뜬 토끼는 자신의 과거를 기억하지 못한다.


‘거기서 의문이 생겨났어.’


그렇다면 지구인은 어떻게 회귀를 하면서도 회귀 전의 세계를 기억할 수 있는 걸까.

단순히 외부인······ 도전자라서?

시간을 거슬러 신체마저도 어려지는 것이라면 인간의 기억도 모두 리셋되어야 하지 마땅한 게 아닐까?


‘기억이 기록되지도 않은 과거의 뇌로 돌아가 봤자 기억할 수 없는 게 정상이니까.’


뇌의 주름까지 과거로 함께 돌아가는 게 아니고서야, 솔직히 설명할 방법이 없었다.

그래도 이유를 찾자면······.


‘아마도 기억마저 리셋된다면 회귀를 하는 의미 자체가 사라지게 되기 때문이겠지.’


애초에 회귀라는 것 자체는 과학적으로 설명할 길이 없는 말 그대로 ‘신의 은혜’였다.

거기서 어떤 메커니즘이 자리 잡고 있는지는 신이 아니고서야 알 수가 없었다.

사실 기억 자체가 어디에 저장되는지는 현대 과학으로는 명백하게 밝혀지지 않은 미스터리기도 했고.


‘다만 무슨 일이 벌어지더라도 우리가 가진 기억만큼은 훼손당하지 않는다는 거야.’


결사대는 그 사실에 착안하여 한 가지 가설을 내릴 수 있었다.


‘만약 기억이 저장되는 게 신체에 국한되는 게 아니라······ 다른 무엇이 존재한다면?’


그게 무엇인지만 알아낼 수 있다면 2회 차까지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보존할 수 있지 않을까.


“눈 안 깔아?”


차도윤의 한마디에 신촌 오락실의 보스 몬스터이자, 감당할 수 없던 괴물인 GM 래빗이 머리를 아래로 박았다.

그도 왜 그러고 있는지 모르는 눈치면서 차도윤의 말을 따르는 수밖에 없었다.


“대체 이게 무슨······ 인간, 나한테 무슨 짓을 한 것이냐!”


눈을 깔라는 말에 더는 그를 쳐다보지도 못하는 애처로운 토끼였다.

차도윤은 녀석을 바라보며 이러한 일이 벌어지게 된 원인을 상기했다.


‘영혼이 유지되는 거야.’


신체가 어려지고도 기억을 저장할 수 있는 마땅한 외장 저장장치.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는 없지만 추론은 가능한 무형의 존재.

원래라면 52층의 주민인 GM 래빗이 이렇듯 차도윤의 말에 끔뻑 죽어나가는 걸보면 더욱 확신할 수 있었다.

영혼은 회귀 전의 세계와 달라지지 않았다. 그의 몸이 초라하고 빈약해지더라도 여전히.


‘즉 영혼에 엮인 무언가는······.’


회귀 후에도 유지된다.


“인간······ 바른대로 말하라니까! 인가아아아안!”


시끄럽게 떠들어대는 래빗을 흘깃 살펴본 차도윤은 혀를 차며 말했다.


“입 다물어.”

“??!!??!?”

“이제야 좀 조용해졌네.”


그러자 녀석은 입을 꾹 다문 채 어떤 소리도 꺼낼 수 없게 되었다.

분한 듯 쳐다보는 눈빛엔 여전히 살기가 가득했지만.

차도윤은 녀석을 내려다보며 생각을 정리했다.


‘이건 앨러니에게 감사해야겠군.’


앞서 말한 추론은 결사대에서도 최고의 연금술을 자랑하던 앨러니로부터 시작되었다.

그리고 그녀의 추론이 진짜인지 아닌지는 몰라도 만에 하나라도 이어질 걸 대비하여 마땅한 준비도 했다.

그게 바로 눈앞의 GM 래빗을 비롯한 탑의 주민에게 걸어둔 일종의 영혼 계약이었다.


“으읏······ 읍! 이, 인가아안!”


바동거리던 래빗은 용케 차도윤의 말을 무시하고 제 입을 여는 데에 성공했다.


‘아직 제약이 온전치 못하군.’


이유는 알 법했다. 영혼 계약의 주체인 자신의 수준이 한참은 미천하기 때문이겠지.

그럼에도 효력을 가지고 있는 건, 계약을 맺을 당시의 그가 너무나도 강력했던 탓이었다.


“가, 감히 나에게······ 이런 수모를!”


차도윤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


“귀로 물구나무 서.”

“으읏!?”

“아직도 주제 파악이 안 돼?”


하지만 제약이 온전치 못한 만큼 더욱 강하게 밀어붙여야 한다.

녀석이 다른 쪽으로 머리를 굴릴 수 없도록.

놈의 신경을 모조리 제압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내가 죽는다.’


자신의 영혼이 자신도 모르는 새에 덜미가 붙잡힌 상태였다.

만약 조금이라도 빌미가 보인다면 녀석은 탑의 규칙이고 뭐고 그의 목숨을 강탈할 것이다.

그건 차도윤이 원치 않는 결론이었다.


“크윽······ 인간 새끼··· 님아! 알겠으니까 날 좀 내버려 둬!”

“말이 짧군.”

“요!”


다행히 토끼 녀석은 제 성질만큼이나 주제 파악이 빨랐다.

차도윤도 더 이상의 압박은 쥐어주지 않기로 했다.

괜히 더 했다가 녀석이 폭주하면 그땐 또 답도 없으니까.


“오늘은 이 정도까지로 봐주도록 하지.”

“······거 더럽게 고마운 양반이네.”

“스읍.”

“요.”


차도윤은 살기가 가득한 래빗의 눈빛을 애써 무시하며 녀석을 향해 말했다.


“됐고 용건이 그거뿐이라면 이만 돌아가야겠는데.”

“뭐······ 요?”

“지금이 딱 물이 올랐단 말이야. 앞으로 300개는 더 할 수 있을 것 같아.”

“아니, 미친 인간 님아! 누구 거리에 나앉게 만드는 게 취미세요?”


래빗은 금방이라도 도끼로 내리치고 싶은지 작디작은 손가락을 꿈틀거렸다.

하지만 시선이 마주친 녀석은 이내 푹 어깨를 늘어트려야 했다.

저도 모르는 새에 덜미가 잡힌 영혼 계약이었다.

아직 제약이 효력을 발휘하는 동안엔 녀석의 목숨 줄은 차도윤의 손에 있다.

당장 녀석보고 자결하라고 해도 놈은 그 말을 따라야만 할 테니까.


‘뭐 죽기 전에 폭주해서 계약이고 뭐고 상관없게 되겠지만.’


성질 급한 토끼 녀석은 거기까지 생각할 정도로 똑똑한 편은 아니었다.

차도윤은 미간을 좁히며 녀석을 향해 말했다.


“그래서 뭘 어쩌려고? 내가 룰을 어기지 않았다는 건 이미 말해뒀을 텐데.”

“그거야······.”

“아마도 너도 생각이 있으니까 여기에 나온 거겠지.”

“그, 그렇지!”


당황하는 놈을 보며 확신했다. 이놈은 그조차 생각하지 않고 뛰쳐나왔다고.

하지만 성질도 급하고 주제 파악도 빠른 이놈은 눈치도 빨랐다.


“보상을 드릴게! 제발 그만해!”

“보상?”

“섭섭하지 않게 챙겨줄 거니까. 제발 좀 제 사업장에서 꺼져주시면 안 될까······ 요?”


반말인지 존대인지 어설프게 뒤엉킨 녀석의 말투에 차도윤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난 욕심이 많은 편인데.”


사실 차도윤의 현 몸 상태로는 퍼펙트 패링을 더 오랫동안 유지하기 힘들었다. 앞으로 더 해봐야 고작 150번이 한계였을 거다.

그조차도 15,000코인을 얻을 수 있는 놀라운 점수였지만 그게 또 엄청나게 대단한 건 아니었다.


“여기서 조금 쉬었으니 300······ 아니 , 400개는 더 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양아치 새끼.”

“뭐?”

“십니다.”


욕을 하면서 존대를 하면 무슨 소용인가.

차도윤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양아치라 치고 보상은 제대로 된 걸 챙겨줘야 할 거야.”

“······끙.”

“400개 더 할 수 있었으니까, 5만 코인어치 보상이어야 해.”


독기가 가득 오른 래빗은 연신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조막만 한 손을 움직였다.

허공에 드리운 건 일종의 카탈로그.


‘이렇게까지 잘 될 줄은 몰랐는데······.’


영혼 계약이 유지된 덕분인지 눈앞의 물건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대단했고.

보통 오락실에선 이런 경우를 두고 딱 한마디로 상황을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잭 팟이라고.


작가의말

내일은 13시 15분에 연재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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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로또 맞은 건가 +2 22.12.29 3,014 74 13쪽
19 이걸 왜 놓치고 있던 건지 +1 22.12.28 3,059 70 12쪽
18 이건... 진짜 미친 짓이야 +3 22.12.27 3,151 64 13쪽
17 1분이면 됩니다 +1 22.12.26 3,190 72 13쪽
16 어차피 못 도망칩니다 +7 22.12.25 3,380 75 13쪽
15 원래 잔챙이는 그냥 무시하는 주의인데 +1 22.12.24 3,596 77 12쪽
14 너희들에게 악 감정은 없어 +1 22.12.24 3,740 79 12쪽
13 난이도가 아주 X같아졌거든 +2 22.12.23 3,887 87 12쪽
12 하여간 성질 급한 2회 차로군 +3 22.12.22 4,330 87 13쪽
11 이러니 내가 담배를 못 끊지 +2 22.12.21 4,401 95 12쪽
10 운이 좋다고 해야 하나 +3 22.12.20 4,684 87 13쪽
» 난 욕심이 많은 편인데 +2 22.12.19 4,776 98 13쪽
8 어떤 미친 새끼야! +4 22.12.18 4,872 98 13쪽
7 일단 코인 재벌부터 되어볼까 +2 22.12.17 5,046 104 12쪽
6 애초에 급이 다른데 +4 22.12.16 5,100 96 13쪽
5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6 22.12.15 5,281 97 13쪽
4 침몰하는 배에 승선하는 취미는 없거든요 +2 22.12.14 5,606 105 13쪽
3 일이 술술 풀릴 리가 없지 +4 22.12.13 6,343 109 12쪽
2 모두 예상했던 일이다 +5 22.12.13 7,925 115 13쪽
1 두 번의 기회 +5 22.12.13 9,783 129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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