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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우리 님의 서재입니다.

나 혼자 100층 회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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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우리
작품등록일 :
2022.12.12 09:23
최근연재일 :
2023.01.28 21:15
연재수 :
5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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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6,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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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283,832

작성
22.12.23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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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
글자
12쪽

난이도가 아주 X같아졌거든

DUMMY

13.


‘한가을이 말한 게 이런 거였나.’


지금 셀브란스 병원으로 가면 후회하지 않을 거라고 하더니만.

차도윤은 쓰게 웃으며 강지석과 시선을 마주했다.

이걸 운이 좋다고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바쁘게 움직여야 할 거야. 조금이라도 늦으면 잡아먹히는 건 우리가 될 테니까.”


강지석의 말에 차도윤은 고개를 주억거리며 동조했다.

광신도는 하고자 하는 목표가 명확한 그룹이다.

그것도 목적을 이루기 위해선 수단과 방법도 가리질 않는다.

수천 명을 죽여도 눈 한 번 깜빡이지 않을 미친놈들.

이미 한 차례 토벌했던 상대라고 방심할 수 없었다.

차도윤은 눈살을 찌푸렸다.


‘좀 더 빡세게 움직여야겠는데.’


물론 놈들이 생각하는 대로 끌려가진 않을 거다.

광신도 놈들이 회귀 후에 이런 빌어먹을 짓을 준비했듯······.

결사대 또한 그에 마땅한 대처법을 마련해뒀다.

놈들이 개수작을 꾸미고 있다면 우리가 먼저 뒤통수를 쳐주면 될 일이다.


“알고 있겠지만 한두 명이 움직인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야. 정부기관은 물론 각 길드 간의 협업은 필수야. 특히 차도윤, 네가 해줘야 할 건······.”


연이어 계획을 말하는 강지석을 보며 차도윤은 그나마 안도할 수 있었다.

어쨌든 다행이라고 할 건 이 상황을 가장 먼저 알아차린 사내가 강지석이란 거겠지.

불현듯 그를 향해 물었다.


“할 수 있겠지?”


밑도 끝도 없는 차도윤의 질문에 강지석은 어깨를 으쓱이며 짜증 섞인 목소리로 답했다.


“해야지. 어쩌겠냐.”


썩어도 준치라고.

회귀를 했어도 변하지 않는 게 있다.

강지석.

그는 결사대의 일원이었으면서 인류를 하나로 통합해낸 당사자였다.

대한민국 최후의 제독이자 세계 정부로 수립된 어스(US)의 센터장.

비록 76층에서 죽어버렸다지만······.


‘자신의 죽음마저도 계획한 녀석이다.’


그는 대한민국의 위대한 별 중에서도 가장 똑똑하기로 유명했으니까.


*


[셀브란스 병원─코인 상점을 방문하신 걸 환영합니다!]


본래라면 환자의 차트나 살펴볼 요량인 중환자실의 컴퓨터.


+

[초급 회복 물약 : 100코인]

[초급 힘의 알약 : 100코인]

[초급 민첩의 알약 : 100코인]

[초급 체력의 알약 : 100코인]

······(중략)······.

+


오늘날에 이르러 전혀 다른 걸 보여주는 화면을 바라보며 차도윤은 고민했다.


‘언제 봐도 가성비는 참······.’


마시는 걸로 상처를 회복시켜주는 마법 같은 기능의 회복 물약이 고작 100코인이다.

스텟을 영구적으로 1씩 올려주는 각 스텟 알약도 기껏해야 100코인이다.

별개로 상태 이상 저항력이나, 물리 저항력, 마법 저항력을 올려주는 알약도 100코인이다.

상점 창 어딜 둘러봐도 100코인 이상으로 값이 나가는 물건은 보이지 않았다.

말 그대로 극가성비의 상점!


‘단점은 딱 하나.’


가격은 미친 가성비를 자랑해도 구매할 수 있는 수량이 오직 하루에 하나로 제한된다.

이 병원에 주구장창 머물 여유는 없었으니 실질적으로 구매할 수 있는 건 단 하나였다.


‘뭘 고르는지가 중요해.’


잠시 화면을 둘러보던 차도윤은 이내 망설임을 끝내고 목록의 끝자락을 확인했다.

사실 고민할 것도 없는 일이다.

셀브란스 병원에서 구하고자 계획했던 것들은 이미 정해져 있었으니까.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강지석이 눈을 동그랗게 뜬 채 물었다.


“살모사의 독액? 뭐에 쓰려고?”


코인 상점엔 여러 가지 물약을 판매했고 그중엔 상대를 해할 독액도 포함된다.

이독제독(以毒制毒)이라고, 독조차 어떤 질병에 한하여 영약이 될 수도 있는 법.

하지만 이 시점에서 독액을 구태여 구매하는 이유를 납득하긴 어려웠나보다.

차도윤은 피식 웃으며 답했다.


“다 쓸데가 있어.”


차도윤은 그렇게 말하고는 강지석을 데리고 임시 거점인 중환자실을 벗어났다.

확신 어린 걸음걸이로 곧바로 향한 곳은 셀브란스 병원의 옥상 정원.

아직 멸망의 여파가 닿질 않았는지 깨진 타일 하나 없이 말끔한 장소였다.


“······그래서 여긴 왜 온 건데?”


강지석은 고개를 들어 별이 쏟아질 것만 같은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새벽녘이 조금씩 드리우고 있어 묘하게 밝으면서도 어두운 분위기였다.

차도윤은 나지막이 말했다.


“어둡네.”


이젠 기억 속에서도 흐릿하게 남은 풍경이었지만 서울은 본래 불야성이 부를 정도로 밤을 잊은 도시였다.

네온사인이 번쩍이는 서울은 어쩌면 한낮의 풍경보다도 밝은 곳이 가득했다.

젊음의 거리라 불렸던 신촌은 서울에서도 밝으면 밝았지 이다지도 어둡진 않았다.


“뭘 새삼스레.”


시선을 아래로 향하면 침묵이 내려앉은 도심이 보였다. 불길이 치솟고 어디선가 아스라이 비명도 들려왔다.

하지만 멸망한 세계에서 못해도 17년 이상을 살아온 둘에겐 이쪽이 더 익숙했다.

사람들의 떠들썩한 웃음소리보다 괴물이 짖어대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울음이 더욱 귀에 익었다.

모두가 회귀해버린 세계에서 여전히 변하지 않은 현실은, 빌어먹을 멸망은 여전히 끝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차도윤은 한숨을 쉬며 난간에 등을 기대었다. 다시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니 촘촘히 박힌 별무리가 보였다.

오래 전, 1회 차의 차도윤도 기꺼이 저 밤하늘을 보려고 이 옥상까지 올라온 적이 있었다.

차도윤은 쓰게 웃으며 말했다.


“원래 난 여기서 죽을 생각이었어.”

“뭐?”

“1회 차의 나는 여기서 밤하늘을 이불삼아 독을 먹고 죽는 게 계획이었지.”


아스라이 떠오르는 과거의 기억 속에선 패닉에 빠진 한 청년이 손을 덜덜 떨고 있었다.

우연히 찾은 병원에서 또 우연히 발견하게 됐던 코인 상점.

그는 거기서 회복 물약과 스텟 알약을 선택하지 않았다.

살아봤자 지옥이었고, 죽어야 모든 게 편해지리란 생각이 들었으니까.

뭔 소리를 하는 건지 모르겠다는 얼굴로 강지석이 미간을 찌푸린 채 말했다.


“너 안 죽었잖아?”


차도윤은 고개를 주억거리며 쓰게 웃었다.

자기 묘 자리를 찾아서 병원의 옥상을 찾았던 그였다.

독액마저 구했으니 삼키기만 하면 될 일이다.

하지만 그는 죽지 않고 살아남았다.

그렇게 살아서 탑을 올랐고 19년이나 되는 삶을 살았다.

차도윤은 어깨를 으쓱이며 답했다.


“막상 죽으려니 무섭더라고.”


아이러니하게도 죽는 데엔 그만한 용기가 필요한 법이다.

누가 자기 자신을 간절하게 해하고 싶을까.

독액을 삼키길 한참을 망설였다. 몇 번은 난간에서 뛰어내리길 고민했다.

하지만 그는 단 한 번도 죽는다는 선택을 행동으로 이을 수 없었다.


“생각해보니 억울했거든.”


그는 이제 막 스무 살이 된 학생이었다.

하고 싶은 일, 해야 하는 일, 이루지 못한 꿈이 가득했다.

뭣도 해보지 못한 채로 죽기엔 너무나도 어린 나이였다.

왜, 그는 여기서 혼자 허망하게 죽어야만 하는가.

어쩌다 이런 처지에 놓이게 된 거지?


“그러다 보니 화가 났어.”


무슨 잘못을 했기에 이런 시련을 받게 된 걸까.

인간이 대체 어떤 죄를 저질렀다고 이 모양이 된 걸까.

몇 번을 생각해도 그 사실은 납득할 수 없었다.


“그래서 결심했어. X같아도 한 번 살아보자고.”

“······.”

“죽어도 이딴 일을 계획한 놈의 얼굴은 한 번 봐야 덜 억울하잖냐.”


차도윤은 피식 웃으며 말을 이었다.


“결과적으론 맞는 선택이었지. 거기서 죽어봐야 회귀해서 지옥을 다시 경험하는 것밖에 더 돼?”


물론 당시엔 죽으면 회귀한다는 사실은 알지 못했다.

죽음이 회귀로 이어진다는 확신은 탑에 오르고 나서야 가지게 된다.

강지석은 한숨과 함께 담배 연기를 뿜어냈다.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뭔데?”


하얀 담배 연기가 어둡고 밝은 새벽녘의 하늘로 솟구쳤다.

분위기는 고요했지만 그 풍경은 얼핏 기억과 닮아 있었다.

담배 연기를 피어 올리며 피를 토하던 강지석의 모습이다.

76층에서 스스로의 선택으로 죽음에 이른 강지석이 그의 앞에 있었다.


“너 눈이 죽어 있어.”


차도윤은 계속해서 말했다.


“전부터 느낀 거지만 넌 살고 싶은 생각이 단 하나도 없어. 어쩌면 그렇기에 네 계획에 너의 죽음 따위가 들어갔는지도 모르지.”


몇 번이고 징조가 있었는지는 모른다.

그의 목적은 오로지 탑을 올라 100층에 이르는 것.

그리고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스스로 위험에 내몰았다.

정녕 그 결과가 자신의 죽음으로 이어지더라도 전혀 아쉽지 않은 듯.


“딱히 너에게 설교를 늘어놓고자 꺼낸 말이 아니야.”


뻑뻑 담배를 피어대는 그를 돌아보며 차도윤은 미간을 구긴 채 말을 이었다.


“다만 또 네 혼자 뒈지는 계획 따위는 세우지 마라.”

“그건······.”

“네가 없으니까 난이도가 아주 X같아졌거든.”


그리고 그 어려워진 난이도는 결국 81층의 결사대가 전멸하는 미래를 초래했다.

차도윤만이 살아남았고, 모두가 죽어버렸다.

76층에서 강지석이 스스로 죽어버린 데에서 기인한 문제다.


“구질구질하더라도 살아남아라. 내가 해줄 말은 그게 전부야.”


차도윤은 강지석을 뒤로 하고 옥상정원의 한쪽 화단으로 향했다.

새벽녘이 드리운 밤하늘 아래로 휘휘 바람이 불어왔다.

그리고 잔잔하던 바람은 이내 폭풍이 되었다.

주변 풍경이 변화했는데도 차도윤은 아랑곳하질 않았다.

그는 가방에서 독액을 꺼내들었다.


“때로는 구질구질하게 살아남으려는 사람이 기회를 잡는 법이거든.”


차도윤이 화단에 살모사의 독액을 그대로 쏟아버렸다.


[이벤트가 발생했습니다!]

[‘만드라고라’를 처치하시오.]


해가 뜰 무렵, 차가운지 뜨거운지 모를 바람이 불어올 때.

하늘과 땅이 맞닿는 가장 가까운 경계면.

잠이 들었던 ‘비명의 식물’은 일어나 큰 소리를 질러댄다.

듣는다면 귀청이 떨어져나가고 고막이 터져 목숨을 위태롭게 만들 괴물.


“키헥!”


만드라고라는 거침없이 쏟아진 독액을 삼키고 혼자 꺽꺽 대다 눈이 뒤집혔다.


[‘만드라고라’를 처치했습니다.]


차도윤은 허무하게 기지개를 켜지도 못한 채 죽어버린 이벤트 몬스터를 보았다.

1회 차의 시점에서도 어이없게 찾아냈던 셀브란스 병원의 아주 특이한 히든 피스.


[아이템 ‘만드라고라의 뿌리’를 습득했습니다.]


덩그러니 떨어진 아이템을 내려다보며 차도윤이 말했다.


“또 어디 가서 개복치처럼 뒈지려 하지 말고 감사히 받아야 할 거야.”

“······이걸 나한테 주겠다고?”


‘만드라고라의 뿌리’는 삼킨 자로 하여금 물리 저항력을 대폭 올려준다.

대신 ‘살모사의 독액’에 쉽게 당했던 것처럼 독 저항력이 크게 줄어든다.


“그거야 네 스킬이라면 어느 정도 상쇄할 수 있겠지.”


아직 얻질 못한 스킬일지라도 그라면 과거에 가졌던 스킬 정도야 복구해낼 거다.

또한 당장 상쇄할 스킬이 없더라도 만드라고라의 뿌리는 큰 도움이 된다.

탑에 오르기도 전인 지금은 ‘물리 저항력’이 높은 게 백만 배는 이득이었다.

막말로 만드라고라의 뿌리를 삼킨 사람은 칼에 베여도 쉽게 죽질 않는다.

아니, 잘 베이지도 않는다.


“거기다 나중에 특성만 잘 조합하면 수시로 피부가 재생하잖아. 인간 트롤이 되는 거라고. 이거 진짜 구하기 힘든 히든 피스란 말이지.”


속사포처럼 말을 이어 나간 차도윤은 강지석을 향해 만드라고라를 건네며 말했다.


“너니까 특별히 외상으로 달아둔다.”

“······뭐?”

“할인은 없어. 양심이 있으면 제값 내고 사. 이게 코인으로 치면 한 30만 코인은 한다는 건 너도 잘 알고 있겠지?”


잠시 고민하던 차도윤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에잇, 기분이다. 우리 진짜 오랜만에 재회했는데 할인도 없으면 좀 그렇지. 특별히 너에겐 29만 코인에 준다.”


그리고 마치 선심이라도 쓰듯 생색을 내는 차도윤의 앞으로 강지석은 떨떠름한 얼굴로 답했다.


“······사기꾼이냐. 이거 탑에서 3만 코인이잖아.”


작가의말

내일은 9시 15분에 연재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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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이건... 진짜 미친 짓이야 +3 22.12.27 3,153 64 13쪽
17 1분이면 됩니다 +1 22.12.26 3,190 72 13쪽
16 어차피 못 도망칩니다 +7 22.12.25 3,380 75 13쪽
15 원래 잔챙이는 그냥 무시하는 주의인데 +1 22.12.24 3,596 77 12쪽
14 너희들에게 악 감정은 없어 +1 22.12.24 3,740 79 12쪽
» 난이도가 아주 X같아졌거든 +2 22.12.23 3,888 87 12쪽
12 하여간 성질 급한 2회 차로군 +3 22.12.22 4,330 87 13쪽
11 이러니 내가 담배를 못 끊지 +2 22.12.21 4,401 95 12쪽
10 운이 좋다고 해야 하나 +3 22.12.20 4,684 87 13쪽
9 난 욕심이 많은 편인데 +2 22.12.19 4,776 98 13쪽
8 어떤 미친 새끼야! +4 22.12.18 4,872 98 13쪽
7 일단 코인 재벌부터 되어볼까 +2 22.12.17 5,046 104 12쪽
6 애초에 급이 다른데 +4 22.12.16 5,100 96 13쪽
5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6 22.12.15 5,281 97 13쪽
4 침몰하는 배에 승선하는 취미는 없거든요 +2 22.12.14 5,606 105 13쪽
3 일이 술술 풀릴 리가 없지 +4 22.12.13 6,343 109 12쪽
2 모두 예상했던 일이다 +5 22.12.13 7,925 115 13쪽
1 두 번의 기회 +5 22.12.13 9,783 129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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