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Yourinn 님의 서재입니다.

이색 콤플렉스 (블루 - 레드)

웹소설 > 일반연재 > 일반소설, 전쟁·밀리터리

완결

Yourinn
작품등록일 :
2023.07.11 15:54
최근연재일 :
2023.08.28 18:12
연재수 :
36 회
조회수 :
1,425
추천수 :
4
글자수 :
171,436

작성
23.07.13 18:33
조회
91
추천
1
글자
14쪽

선진형 관계 / 투쟁

DUMMY

<선진형 관계>


어젯밤에 좋은 꿈을 꾸었는데,

오늘은 어째 만나는 인간들마다 다 이 모양인지 모르겠다.

그러나 지금까지는 오늘 일어날 일의 곁가지일 뿐이니

그냥 액땜을 한 셈 치기로 했다.


회의실로 올라가려는데 지역단체에 속해 있는 후배로부터 전화가 왔다.

“너가 갑자기 웬일이냐?”

일부러 모른 척했지만,

곧 협상이 시작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던 후배가 전화를 한 이유는 대충 짐작이 간다.


“선배님. 오늘 좀 잘 처리해 줘요.”

“뭘 말이냐.”

지금 협상을 하고 있는 상대 조직은 지역단체에서도 가장 큰 위치를 점하고 있다.


“아 뭐긴요. 오늘 회의하는 거 말이죠.”

“아니, 근데 이 자식이... 야 임마, 너 이거 3자 개입이야. 조심해.”

“3자 개입은요, 이런 게 다 화합이죠.

선배님 같은 분이 좀 이해해 주셔야지, 누가 하겠어요.”

이런 대화를 길게 가져가 봐야 별로 좋을 것이 없었고,

후배 녀석도 그것을 잘 알기에 일부러 전화를 걸어 부담을 주는 것이다.


“그건 내가 알아서 하는거구,

오늘 동창회 모임이나 빠지지 말고 참석해 짜식아.

안 그래도 요즘 너 안 보인다고 말 많아.”

“여부가 있겠어요. 아무튼 전 선배님만 믿고 있겠습니다. 그럼 그 때 봐요.”


회의실로 들어가니 벌써 다들 출석해 있었다.

원래 이런 성격의 모임은 살벌하기 마련이나 지금은 예전만큼은 아니다.

다들 알아서 잘 해결해 줄 것이라고 믿었건만,

꼭 이렇게 자신이 바쁜 시간을 쪼개서 나서야 한다.


자신이 모습을 보이니 상대편이나 이쪽이나 다들 분위기가 조금 누그러지는 것 같다.

자신이 투입된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리라.



논의는 몇 시간째 격렬하게 계속 이어지고 있는 중이었다.

그러나 각기 속한 편에서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야

자신들의 입지가 제대로 선다는 차원이었지,

애초부터 결렬될 위기까지는 가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다들 예상하고 있었다.


변수는 아직도 내심 현장 직원들을 동등하게 대하지 못하는

몇몇 시대착오적인 사람들 때문에 돌발적으로 벌어질 수 있는 감정 문제였다.

그러나 강부장이 회의석상에 있는 한 그런 문제는 희석된 것 같다.


정회 시간에 자판기 커피를 한 잔 뽑아 마시고 있으려니

상대 쪽 사람 중 한명이 다가온다.


“강부장, 오랜 만이야.”

“안녕하세요. 부위원장님.”

자신이 마시려던 커피를 뽐아 부위원장에게 건네고

자판기에서 커피를 한 잔 더 뽑았다.


아주 오래 전부터 현장에서 근무해 온 부위원장은

타성에 빠진 기존 노조의 개혁을 주장하던 현 노조위원장을 당선시키는데 제일 앞장섰고,

새 노조가 꾸려지자마자 조금도 타협하지 않고 이전 노조 집행부의 부패를 청산한 후

한층 청렴한 노조 운영과 더불어 사원복지에 최선을 다하고 있는 훌륭한 분이셨다.



“늦었지만 진급 축하해, 다음번엔 이제 중역이네.”

“중역은 무슨, 어떻게 요즘은 근무하시기가 예전보다 괜찮으신지 모르겠네요.”

중역이란 낯설기도 하고 자신에게는 별로 어울리지 않는

뭔가 권위적인 것 같은 어감을 주는 용어라, 에둘러 상대의 안부를 물었다.


“우리야 뭐, 강부장 같은 사람이 있으니, 그래도 일할 맛이 나지.”

“무슨 말씀을요. 현장에 계신 분들이 잘 해주시니 저희 일도 잘 돌아가는 거죠.”

전혀 가식적이거나 입에 발린 말이 아님을 상대도 잘 알고 있었기에

협상 결과에 관계 없이 강부장에게 만큼은 인간적인 믿음이 간다.


“참, 강부장은 예나 지금이나 여전하구만.

우리 언제 소주나 같이 한 잔 해.”

“그럼요. 한번 불러 주세요. 다들 잘 계시지요.”



사측과 노조 측에서 다 한발 양보해 극적으로 타협이 이루어지며,

기자들이 보는 앞에서 단체 사진을 찍었다.


내일이면 본인들의 이러한 협상 타결과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신문 지상에 등장하며,

올해 노사 화합의 모범적인 사례로 남을 것이다.


역시 오늘 여기 오기 전에 두 번이나 액땜을 한 것이 주효한 것 같다.


상대측 임원들과 일일이 인사를 나누고, 회의장을 나서며

이전에는 서로 죽기 살기로 버틸 때까지 버티며 절대 타협 같은 것은 없어 보이던 사람들이

올해도 이렇게 어려운 경기 상황을 감안해 서로의 양보를 이끌어 낸 것이 뿌듯했다.



도심과 멀리 떨어진 공단에는 거의 사내 버스나 자가용으로 출퇴근이 이루어져서 택시가 잘 다니지 않는다.

일반 버스도 배차 간격이 길어서 좀처럼 나타나지 않은 것도 있었지만,

때가 되면 골머리를 앓던 협상이 이번에도 무난히 타결되어

회합한 일단의 무리들과 작별한 후 가뿐해진 마음으로 공단 거리를 혼자 천천히 걸어 보았다.



자본주의는 자본의 주의이다.

그러나 아무리 그러한 자본주의라 하더라도

인간간의 관계를 무시하고는 절대 온전하게 돌아갈 수 없다.


어떤 사람들은 자본주의에 다 맡겨 두면 인간관계도 알아서 잘 조절되니

그냥 내버려 두라고 한다.


그러나 그것은 학자니 기자니 하는 별로 현장을 접하지 않았거나,

현장을 접했다 하더라도 이미 자기 논리에 빠져 제대로 된 시각을 상실한 채

그것마저 자신이 추종하는 이론의 합리화 수단으로 활용하는 지식인들의 놀음일 뿐이다.


자기 논리에 갇혀 지나친 비약으로 나아가다

결국에는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누구나 감지하는 명백한 사실도 외면한 채

궤변에까지 이르게 되는 지식인만큼 우스꽝스러운 존재는 없을 것이다.


소위 지식인들이 갖고 있는 자기 논리도 부자가 재물을 갖고 있는 것만큼 양보할 수 없는 일종의 기득권이다.

그래서인지 요즘은 통계나 실제 사례까지 조작하는 부도덕한 짓까지도 서슴없이 나아가는 것 같다.


그렇게 자본이 만유인력의 법칙 같이 알아서 다 해준다면

그렇지 않다고 하는 사람들이 아무리 나서본들 결국 알아서 될 수 밖에 없는 것이고,

자신들도 굳이 나설 필요까지 없이 자본에 그냥 충실하게 사는 편이

스스로의 논리에도 맞고 신봉하는 그 주의를 위해 오히려 더 나을지도 모른다.



그 옳고 그름을 떠나서 신봉하는 그 주의가 인간관계를 잘 알아서 조절할 수 있도록

또 무슨 대단한 역할이나 하는 양 자신들이 손수 나서는 것도 하나의 인간관계라고 볼 수 있는 바,

어디에서나 인간이 해야 할 일은 있는 법이다.


자신들이 열렬히 신봉하는 그 자본 속에도

엄연히 인간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어떻게 부정할 것인가.


체제와 인간은 함께 굴러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버스나 택시가 몇 대 지나쳤어도 개의치 않고 흐뭇한 기분으로 이런저런 생각,

오랜만에 일상과는 별 상관없는 인문학적 사고까지 하다 보니

꽤나 많이 걸어 나와 어느덧 회사의 이전 공장 부지가 있었던

구공단 구역까지 오게 되었다.


공단이 신 구역으로 확장되며

자신의 회사도 원래 있던 부지를 처분하고 잘 나가는 첨단 기업들이 새로 운집하고 있던 곳으로 확장해서 옮긴 후

이전 지역에는 협력업체들이 입주해 있었다.


예전에는 동료들과 무던히도 발바닥이 닳도록 다녔던 이곳이

그리 많은 세월이 흐르지 않았음에도 이제는 까마득하게 느껴졌다.



그러나 자신의 그런 느낌과는 달리 시간이 웬만큼 흘렀는데도

그 거리는 별로 달라진 것이 없어 보였다.

일부 보수한다고는 손을 본 흔적이 있었으나

오래된 담벼락과 건물들이 여전히 긁히거나 그을린 자국들이 여기저기 드러나 있었고,

깔끔한 자신의 회사와는 달리 먼지가 쌓여 있는 트럭과 함께 자재들이 마당 한 편에 지저분하게 놓여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어디선가 떠나갈 듯한 여러 사람들의 함성과 박수 소리가 들리는 것이 아닌가.



이제는 아련한 듯 느껴지는 뭔가 귀에 익은 구호 소리가 이어지며

자신도 모르게 그 쪽으로 발길이 갈 수밖에 없었고,

길모퉁이를 돌아서자마자 곧 건널목 한 편에

해고 노동자가 농성 끝에 투신 사망했다는 현수막이 걸린 아래로

한 회사의 사옥 앞 보도블록과 도로까지 점거한 채 꽤나 많은 사람들이 운집해 있었다.


방금 전 다소 여유 있고 화기애애했던 자신의 회사와는 전혀 다른

여전히 살벌한 분위기가 맴돌고 있는 것만 같았고,

사람들은 다들 분노한 표정이었다.


세월이 흘렀건만 이곳은 예전 모습 그대로였던 것이다!



도로를 점거한 채 앉아 있던 사람들 앞에서

마이크를 잡고 있던 이의 목소리가 최고조에 달하고 있었다.

그는 구호가 적인 붉은 머리띠를 두른 채, 결의에 찬 표정이었다.


“우리도! 인간답게 살 권리가 있습니다!”


그 순간 불현듯 바로 그 자리에 있었던,

그러나 지금은 아득하게 잊히어졌던 또 다른 누군가의 모습이 강부장의 머릿속에 떠올랐다.




<투쟁>


“형, 큰일 났어요.”

“뭐가?”

후배 녀석이 격앙된 얼굴로 나타났다.

“위원장이 사측하고 합의해 버렸대요.”


“뭐? 아니 그 양반이 도대체 정신이 나갔나!”

충격이긴 했으나 곧 어떻게 일이 벌어졌는지 눈에 선했다.


누가 어용노조라고 그러지 않을까봐 하는 짓이 뻔했기 때문이다.

노조 위원장이라고 혜택은 혜택대로 다 받더니 겨우 한다는 짓이

노조원들 의향도 제대로 묻지도 않고 마음대로 사측 손을 들어줘 버린 것이다.


그리고 뒤로는 은근슬쩍 돈이라도 몇 푼 받아 챙기겠지.

조합원들이 죽어라 일해서 내는 조합비인데

그것도 어떻게 쓰이는지 도무지 모를 지경이었다.



사내에서 점차로 노조에 대한 불만이 많아지고 있는 것을 넘어서서

요즘은 자신들 입장을 대변할 수 있도록 노조 집행부를 바꿔야 한다는 기류가

점차 커지고 있는 것을 감지하고 미리 선수를 친 것이다.


일단 사측과 합의해 버리면 그것을 돌이키기가 쉽지 않을 것이란 계산이었고,

시간이 지나면 또 유야무야될 것이고,

다음 노조 집행부 선거 때면 적당히 회사 지원받아서 그렇게 지금처럼 계속 이어질 것이란 심산일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는 이판사판이다.

“야, 여기서도 모일 테니까. 너도 할 수 있는 데까지 해봐. 다들 모이자.”

“알았어요. 형.”

저들이 한 가지 간과한 사실이 있다.

그것은 바로 자신들이다.


현장에서 근무한지 2년이 다 되어 가며, 소통하게 된 동료들과 만든 친목회가

이제는 점차 자신들의 처우에 대한 문제까지 논의하게 되어 이를 개선하는 것에 함께 하고 있었다.


그리고 꼭 자신들과 친분이 있지는 않더라도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공감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또한 그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이번 처사만큼은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일 것이다.


누가 봐도 현 노조 집행부의 행태들은 바로 그 구성원인 자신들을 위하는 것이라고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보게 강군, 이제 어떻게 하면 좋은가.”

바로 옆에서 일하고 있던 김씨 아저씨가 걱정스런 얼굴로 찾아왔다.


“어떻게 하긴요, 아저씨. 저 사람들한테 잘못하고 있다고 알려 줘야죠.”

김씨 아저씨는 실제 그 정도까지는 아니었지만

연배에 비해 나이가 많이 들어 보이는 관계로 다들 아저씨라고 불렀다.



중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술에 절어 지내다 일찍 돌아가신 아버지를 대신해서

가계를 책임지게 되었던 김씨 아저씨는 이곳 공단에 발을 들여 놓은 이후

지금까지 시키는 대로 일하고 주는 대로 받으며 살아온 인생이었다.


이런 일은 근처에도 가본 적이 없었던 김씨 아저씨의 얼굴빛이 두려움으로 변하고 있었다.


“아저씨, 걱정 마세요.

저희가 앞장설 테니까, 그냥 따라와 주시기만 하면 되요.”

공장에 발을 들여 놓은 햇수로 따지면

새까만 신참이었기에 한참 위세를 부려도 되었건만,

김씨 아저씨는 전혀 그렇지 않았고,

오히려 서툰 현장 일로 힘들어하던 자신에게 잘 적응할 수 있도록

오랜 경험으로 습득한 요령까지 가르쳐 주곤 했다.


모임 같은 것에 낯설어서인지 친목회에 가입은 않았으나,

사실 자신이 이곳에서 힘든 노동 외에 달리 뭐라도 할 수 있었던 것은

알게 모르게 김씨 아저씨의 그런 눈에 보이지 않는 배려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벌써 소식을 듣고 격앙된 같은 구역에서 일하던 친목회 동료들부터 모여들었고,

그들이 중심이 되어 스크럼을 짜자,

모임 소속은 아니었지만 전적으로 공감하는 사람들까지 주위에 한데 어울리며

차츰 많은 사람들이 합세하고 있었다.


그동안 힘든 노동에 지친 몸을 이끌면서도 친목회도 만들고,

아끼고 아낀 돈으로 같이 소주도 한잔 하며

공감대를 형성하려고 노력한 보람이 있었다.



꽤나 많은 사람들이 합세해 공장 밖을 나서자,

뒤늦게 현장에 합류하긴 했으나 그동안 서로 간에 손발이 잘 맞았던 후배 녀석 역시

자신의 구역에서 스크럼을 짠 일단의 무리들과 함께 공장 밖을 나서고 있었다.


공장 바로 앞 사내 공터에서 모여든 사람들이

열을 짜고 그대로 바닥에 착석해 구호를 외치기 시작하자

점차 다른 공장 안에 있던 사람들이 나오고 있었다.


열을 지어 않아 있던 사람들 주변에 서 있는 사람들까지

차츰 열을 지으며 함께 않기 시작하며 이제 일정한 대오가 갖추어졌다.

이러한 기류에 전적으로 가담치는 않았더라도

어찌 되었던 이번 일만큼은 불만을 가진 미온적인 동조자들도 뒤늦게나마 얼굴을 비추며

그 주위를 둘러싼 채 팔짱을 끼거나 담배를 물고 서서 앞으로의 추이를 주시하고 있었고,

이제 공장에 있던 사람들은 거의 다 모인 정도가 되었다.



지금부터가 중요하다.

이렇게 모두 모인 상황에서 결사항전의 의지를 고조시키며

더욱 연대를 다져야만 한다.

확성기를 어깨에 둘러 매고 결의에 찬 표정으로 한 손을 들어 올렸다.


“우리도! 인간답게 살 권리가 있습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이색 콤플렉스 (블루 - 레드)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6 양떼들 / 고수와 해병대 23.07.17 49 1 13쪽
5 테러 / 루이 14세와 그 주구들 23.07.15 55 0 11쪽
4 협상 결렬 23.07.14 60 0 12쪽
» 선진형 관계 / 투쟁 23.07.13 92 1 14쪽
2 거만과 편견 23.07.12 142 0 12쪽
1 제1편 블루(훈장) : 신께서는 뺀질이를 좋아하시는가 23.07.11 226 1 10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