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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rinn 님의 서재입니다.

이색 콤플렉스 (블루 - 레드)

웹소설 > 일반연재 > 일반소설, 전쟁·밀리터리

완결

Yourinn
작품등록일 :
2023.07.11 15:54
최근연재일 :
2023.08.28 18:12
연재수 :
36 회
조회수 :
1,424
추천수 :
4
글자수 :
171,436

작성
23.07.12 1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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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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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거만과 편견

DUMMY

원래 네 개였던 인도 카스트 제도의 신분은

다양한 인종이나 직업군들이 혼재해 있는 상황 속에서

시간이 흐르며 2천 개나 넘게 분화되었다고 한다.


놈과 다를 바 없는 인간들의 평소 사고방식으로 따지고 보면

대한민국은 대학들의 숫자만큼 인도의 카스트 같은 일일이 서열화된 계급이 존재해 있고,

진급 또한 그 계급에 따라 응당 정해져 있기 마련이어야 하는 것만 같다.


자신보다 낮다고 생각하는 신분이 자신보다 높은 직위를 차지했으니

이 얼마나 무도한 일이 아닐 수 있겠는가.

아니 그것을 넘어서서 놈이 신봉하는 종교적 표현으로는 말세가 도래한 것이었다.



그런데 자신이 어땠는지 돌아보는 것까지는 기대조차 않았고,

분명히 남 탓을 할 것이란 예상을 했지만 그 또한 가관이다.


대통령부터가 고등학교까지밖에 안 나온 인간이라서 이런 일이 벌어졌다고 욕하는 것은

대통령이 자신의 진급에까지 관심을 둘 정도로 한가한 사람이 아니기에

말도 안 되는 어불성설이라 하더라도,

원래 그러한 놈의 사고방식에서 볼 때 논리적으로는 납득이 간다.


그러나 난데없이 이게 다 좌파가 집권해서 벌어진 일이라며

빨갱이들 때문에 나라가 망한다고 이를 뿌드득 갈기까지 하는 것이 아닌가.


평소 놈의 생각이 나라에까지 미치는 적이 결코 없었던 것 같은데,

급기야 언제 이렇게 열렬한 이념 투사까지 되었단 말인가.



놈은 과거 학생 신분으로서 수업을 거부하고

불법적으로 집권한 부당하고 부패한 정권에 맞서 나가야 하느냐 말아야 하느냐로

학문의 전당인 상아탑 안에서 극한 대립을 보이고 있었던

그 치열하고 긴박한 시기에도 아예 그런 것과는 상관이 없었다.


반대편에 서서 이게 맞다 저게 틀리다 따지기라도 했으면

나중에 합의점이라도 찾거나 화해라도 할 수 있으련만,

놈은 전혀 별개의 세상에 살고 있었던 것이다.



심지어 양쪽에서 핏대 올리며 논쟁하고 있는 와중에서도

이어폰을 낀 채 토플책이나 꺼내놓고 뒤적이다가,

오죽했으면 학생 신분에 충실하자는 반대쪽 사람들이 그 무관심에 격노해 쫓아낼 정도였다.


그렇다고 해서 그리 학구적인 것도 아니었다.

이왕 일류대학에 들어왔으니 적당이 토플 점수나 학점 관리만 하면 문제될 것이 무엇이냐는 정도였고,

비슷한 놈들끼리 모여 세상 뭐가 어떻게 돌아가든 주변의 분위기 좋은 카페 같은 곳에서 희희낙락하며

그저 넉넉한 집안 출신에게 주어진 대학 생활의 안락함과 최고 학부를 다닌다는 우월감만을 누리며 보낼 뿐이었다.



그런데 아닌 밤중에 홍두깨라고 이전같이 이념적인 문제가 그다지 첨예하게 맞서지도 않은 이 마당에,

혹 정치하는 사람들과 근접한 정무직이야 그럴지도 모르겠으나,

생뚱맞게 국립공원 관리하는 부서에까지

죄파나 우파가 갈라져서 그렇게 치열한 투쟁을 할 것까지는,

그렇다고 해서 놈까지 탄압할 것까지는 없어 보인다.



그런 것 저런 것 다 떠나서 바로 얼마 전까지 취한 놈의 입장과도 180도 달랐다.

일반직과는 달리 전문직이라 할 수 있는 별정직에는

그 특성상 공무원과 같은 진급 제도가 적용되지 않는다.


그러나 그나마 이전보다 진보적이라고 할 수 있는 정권이 들어서며

좀 더 관료주의를 개혁하자는 차원에서

일반직만 허용되는 몇몇 부서장 직책에 전문직이라 할 수 있는 해당 부서의 별정직 요원도 선임될 수 있도록

일종의 진급과 유사한 제도를 실시하기로 한 것이다.


그러자 응당 제일 서열이 높다고 생각하는 학벌 출신인 자신이 부서장에 뽑힐 것으로 여겼는지,

그때는 또 건국 이래 최고의 개혁 정부라며 열렬히 지지 의사를 보내더니

지금 하는 태도를 보아서는 그새 정변이 일어나

전혀 다른 성격의 정권이 들어선 것만 같다.



그래도 동문이라고 이러한 망조가 든 상황을 개탄하며

이 나라를 바로 세우기 위해 빨갱이들을 몰아내고 정권을 바로 잡아야 한다고

다 죽어갈 듯 아픈 몸을 무릅쓰고 늘어놓는,

이제는 열렬한 애국자가 된 듯한

그러한 놈의 정신파탄성 궤변을 듣는 것은 그야말로 고문이었다.


때마침 간호사가 들르는 틈을 타 선약 핑계를 대며

싫은 내색이 드러내지 않게 적당히 자리를 뜰 수 있었던 것은

다행히 본인에게도 신의 은총이 있었던 같다.


아니다. 따지고 보면 그것도 놈에 대한 은총이다.

그렇게 조금만 더 있었으면,

아마 나 자신도 모르게 병상 위에 늘어져 있던 놈을

그대로 번쩍 들어서 창문 밖으로 집어 던졌을지도 모른다.


역시 신은 뺀질이를 좋아하시나 보다.



‘한심한 녀석. 얼마나 형편없이 굴었으면,

어떻게 지방대 나온 것들한테까지 밀려.’


병실을 나서며 단지 그 저급하게 인생을 사는 놈을 나무란 것일 뿐이었는데,

불현듯 자신에게도 은연중에 뭔가가 드리워진 것만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그러나 난 저런 류의 인간과 단지 상대적으로가 아니라 절대적으로 다르다.



<거만과 편견>


오로지 인간관계의 신조란 대학 서열을 인도의 카스트 제도나 조선 시대 반상제도처럼 생각하며 살아가는

저런 녀석이 빈둥거리면서 버젓이 자리를 지키는 것을 보면 아직 한국사회는 멀었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왠지 요즘 나 자신도 학벌이니 집안이니 하는,

이전에는 별로 상관치 않았던, 인간은 그냥 인간으로서 보고 판단해야 한다고 여기며

오히려 애써 외면했던 것들을 점점 더 따지게 된다는 점을 부인할 수 없었다.



놈의 통성 기도가 길어지는 덕분에 중요한 협상이 있는 회의 시간이 촉박하게 다가와

병원을 나서자마자 급하게 택시를 잡았다.

자가용이 있긴 했으나 오늘 같은 회의석상에 자가용을 몰고 가기는 아직도 좀 껄끄럽다.


다행히 차가 많이 밀리지 않아 제시간에 도착하는 것은 무난해 보이지만,

그렇다 해도 어느 정도 거리가 되기 때문에 시간이 걸린다.

요즘 세대들처럼 핸드폰에 쉴 새 없이 집중하는 것도 익숙하지 않은 데다,

혼자서가 아니라 택시 운전수와 남자들 둘이서 한동안 아무 말도 없이 있기가 좀 무료하다.


“요즘, 경기는 좀 어떠시구요.”

넌지시 지나가는 말투로 그렇게 언질을 주면,

대게 별로 신통치 않다는 답이 오기 마련이고

그럼 도착할 때까지 그렇게 된 것에 대해 제일 책임 소재를 돌리기 쉬운

정치하는 인간들이나 뒷돈 해 먹는 인간들 욕이나 슬슬 주고받으며

함께 무료함을 때우는 것이 보통이다.



“뭐, 잘 모르겠네요.”

그런데 이번에는 반응이 보통 사정과는 좀 다른 것이,

다소 퉁명스러운 답변에 말을 건넨 입장에서 조금 무안한 기분까지 든다.


“요즘 다들 어렵다는데 다행히 괜찮으신 모양이에요.”

그다지 대화를 달가워하지 않는 상대인 것 같아

적당한 인사치레로 관두려는 차원이었으나,

그것조차도 심히 불쾌하게 들린 모양이다.


“무슨 소리를 듣고 싶은 게요?”

“예?”

딱히 듣고 싶은 말은 없었는데 좀 이상한 기분이다.

요즘 갈수록 현장 경기가 좋지 않은 관계로

이렇게 고객들과 직접 대면하는 서비스에 종사하는 업종 사람들이 한 사람이라도 더 유치하기 위해

예전보다 많이 친절해지는 추세와는 좀 다른 것 같다.

그런 것을 떠나서라도 평소 접할 수 없는 많이 낯선 분위기에

잠시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었다.



“뭐, 우리 아들이 에무아이티를 나왔어요.”

단순한 대화 차원에서 요즘 경기가 어떠한가라는 질문에

난데없이 자신의 아들이 MIT를 나왔다는 답변이 무슨 관계가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강남에 아파트도 한 채 있고, 지금 말이죠.

해외 지사에 근무하고 있어요. 허허.”

급하게 잡느라 몰랐으나 가만히 보니 영업용이 아니라 개인용이었고,

나이도 지긋해 보이는 것이 그때서야 대충 감이 잡혔다.


자신은 아무나 함부로 말을 걸며 별로 잘 나가지 못한다는 차원에서

함께 논하기에는 레벨이 많이 다르다는 의미였다.



“아이구, 그러세요. MIT가 저기 미국 서부 캘리포니아 주에 있는 학교 아닙니까.”

이제는 대답도 않는 것이 거만해서 그런 것도 있지만,

MIT 공대는 미국 서부 남쪽 끝에 있는 학교가 아니라 동부 북쪽 끝부분에 있는 학교로,

영감은 도대체 그 학교가 어디 붙어 있는지도 모르는 것 같다.


“아니 그런데 아들이 그렇게 잘 나가시는데

힘들게 일하실 필요가 뭐 있으세요?”

그러자 조금 앞뒤가 맞지 않다는 것을 자신도 감지했는지

약간 멈칫하더니 ‘그 입 다물라’라는 듯이 갑자기 마구 성질을 부린다.


“용돈을 안 쥐서 그렇다니까요!

이거 봐요. 살만한데 뭘 자꾸 그래요!”

아니 자신은 그렇게 잘 나가면서 부모 생각은 전혀 하지 않는

불효막심한 아들이 있느냐며 더 따지고 들어 거짓말이 완전 들통이 나거나,

살만한데 내가 뭘 어쨌냐고 반문까지 하고 싶었으나

그랬다간 격한 싸움이 날까 싶어 더 이상 언급을 하지 않았다.



같은 운전대를 잡고 하는 일이라 매한가지인 것처럼 보이는데도,

다 같이 한솥밥 먹는 처지라고 생각하기보다는 노동자라고 할 수 있는 택시회사에 소속된 영업용 기사들과

직접 차량을 소유함에 따라 개인 자영업자라고 할 수 있는 자신을 차별화하며

혹시나 동일한 선상에서 취급받을까 싶어 여간 불쾌해하지 않는 사람들이 가끔씩 있다.


그냥 남자들 둘이서 얼마간의 시간 동안 아무 말도 않고 있는 것이 무료해

적당히 시간이나 때우려다 난데없이 봉변을 당할 것만 같아

이후로는 아무 말도 않은 채 먼 데만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침묵 상태였기에 방금 전 병실에서 놈의 궤변을 듣는 것까지는 아니었지만

대놓고 저렇게 거만 떠는 사람과 좁은 공간에 함께 있는 것도 꽤나 힘든 시간이었다.


물론 다 그런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비슷한 일을 하는 사람들끼리야 다들 그렇게 대단한 차이가 있는 것도,

요즘 같은 불경기에 다 같이 힘들게 일하는 것이야 별 다를 바 없는데도 불구하고,

딱히 어떤 특정 업종을 떠나 어디서나 꼭 저렇게 남들과 자신을 차별화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을 반추해 보면

계급에 따른 의식이니 연대니 뭐니 하는 것은 별 설득력이 없는 개념 같아 보인다.


그러한 고상한 개념은 오히려 개인적인 성향이 더 크게 작용하는 것 같다.


나아가 어쩌다 돈을 좀 모으면 보란 듯이 지저분한 짓을 하는 것은

원래 부자였던 사람이나 가난했던 사람이나 비슷한 것 같다.

가난했기 때문에 자신의 어려운 시절을 돌아보며 제대로 처신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오히려 그보다는 그에 대한 보상 심리로 더욱 가진 티를 내는 사람들도 부지기수이다.


그것도 개인적인 성향이 더 크게 작용하는 것 같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목적지에 도착하자 정중하게 인사까지 하면서

대꾸도 않는 상대에게 남은 거스름돈을 받지도 않고 거기다가 지폐 한 장을 더 얹어 주었다.


“덕분에 제 때 잘 도착했네요. 좋은 거라도 좀 사드세요.”

일부러 깍듯하게 행동하면서 불쾌한 내색을 드러내지는 않은 채로

본인 역시 돈으로 상대를 무시하며 거만을 부리는 것이었건만,

그것은 또 그냥 넙죽 받아 넣어 버린다.



‘하여튼 못 배워 쳐 먹은 것들이 쥐꼬리만큼이라도 벌면 꼭 티를 내요.’

택시에서 내리며 동료 의식이란 손톱만큼도 없어 보이는 듯

아무에게나 함부로 거만하게 구는 그 특정 인간을 나무란 것일 뿐이었는데,

불현듯 자신에게도 뭔가가 드리워진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난 저런 류의 인간과 단지 양적으로가 아니라 질적으로 다르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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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양떼들 / 고수와 해병대 23.07.17 49 1 13쪽
5 테러 / 루이 14세와 그 주구들 23.07.15 55 0 11쪽
4 협상 결렬 23.07.14 60 0 12쪽
3 선진형 관계 / 투쟁 23.07.13 91 1 14쪽
» 거만과 편견 23.07.12 142 0 12쪽
1 제1편 블루(훈장) : 신께서는 뺀질이를 좋아하시는가 23.07.11 226 1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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