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생각 님의 서재입니다.

판타지에 핵이 떨어졌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완결

생각.
작품등록일 :
2020.05.16 10:33
최근연재일 :
2022.03.28 12:05
연재수 :
287 회
조회수 :
293,476
추천수 :
14,095
글자수 :
1,877,846

작성
21.01.20 20:05
조회
720
추천
43
글자
13쪽

드워프(2)

DUMMY

“관심이야 있지.”


말 한마디에 공동 전체에 서리가 내려앉는 듯하다. 싸늘한 대기 속, 시드는 저도 모르게 본능적으로 등 뒤 손으로 수인을 짚었다.


지저인 노아는 한 술 더 떠서 아직 놓지 않았던 검의 손잡이와 총의 방아쇠에 손가락을 올려놓는다.

그 전투태세를 유논이 몰라볼 리 없는지라,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 기계 정령···적들의 전투 데이터를 수집하고 그에 맞추어 행동을 보조하는 기능이 있는 것 같더군.”


정확한 분석이었다.

노아가 적들의 공격을 한끝 차이로 피하며 자신의 공세를 펼치는 최적의 기계적인 움직임을 보여준 것도 다 그 덕분이었다.


다만 한계는 있어서, 특정 대상에게 맞춘 움직임을 선보이려면 그 대상의 데이터가 충분히 쌓일 때까지 관찰해야만 했다.


지상의 미어캣들을 상대로 속수무책으로 당하다가, 일정 시간이 지난 뒤에 다시금 실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던 것도 그 때문이었다.

변종 미어캣은 지저에 존재하지 않으므로, 지상에 올라온 후 처음 만나는 괴수여서 전투 데이터가 수집되지 않았던 것이다.


지저의 새카만 괴수들 같은 경우에는 이미 옛적에 데이터 수집이 끝난 괴수인지라 쉽게 해치울 수 있었던 것이고.


유논이 이를 드러내며 말했다.


“그 전투 데이터···혹시 내 것도 수집했나? 그 정령이 말하길, 내 움직임에 맞춰서 적응할 수 있겠다 하던가.”


노아는 대답이 없었다.

아니, 그보다는 그의 ‘친구’가 대답이 없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정령이 대답하지 않았다.


언제나 적을 분석하고, 또 완전히 데이터를 수집할 때까지 특정 시간만큼 남았다 알려주었던 기계 정령이 이 순간만큼은 아무런 응답이 없었다.


흑색의 마법사 유논을 분석할 수 있는 것인지, 전부 분석하려면 얼마나 걸리는 것인지, 그의 전투 데이터를 수집하기는 한 것인지.

그 무엇도 알 수가 없었다.


얼마나 침묵이 흘렀을까.


돌연 가슴팍에서, 코어에서 스파크가 튀었다.


그의 친구가 공급받은 마력을 전부 소모하고 간신히 내놓은 대답, 단 세 글자.


‘불가해不可解.’


이해할 수 없다. 분석할 수도 없다. 그런 불가해의 존재라는 것.


분명 인조 정령과 소통할 수 있는 것은 그 계약자뿐임에도, 유논은 그 내용을 알아들었다는 듯 고개를 주억였다.


“네 정령이 나를 대신해 대답해준 것 같군.”

“······.”


대신 대답해 주었다니, 그게 무슨 뜻일까.

노아가 긴장해 외골격 속 땀 흐르는 주먹을 움켜쥐었을 때였다.


유논이 말했다.


“필요 없다.”

“······?”

“네 정령은 나에게 필요 없다. 내 움직임 하나 제대로 따라오지 못하는 위정령 따위, 쓸모 있을 리가. 아무짝에도 의미가 없고 그러므로 탐할 이유도 없으니, 그런 적의 보일 필요도 없다.”


노아는 그 말에 절반쯤은 안도하면서도, 나머지 절반은 발끈했다.

지저도시의 신물, 그의 친구이자 동반자인 마도의 정령을 그깟 위정령 따위라 폄하하다니.

그러나 정령이 유논의 움직임을 분석하는 데 실패한 것은 사실인지라 딱히 반박할 말도 떠오르지 않았다.


“하다못해 정령왕 급의 존재라면 모를까, 척 보아도 정령들 중에서도 아기 축에 속하는 것이 내 눈에 찰 리 없지.”

“···그렇다면 어찌하여 이 아기 정령에 관심이 있다고 말씀하신 겁니까.”


나름의 소심한 반항이었다.

내가 계약한 것이 당신 눈에는 하찮은 아기 정령에 불과하다면, 왜 관심이 있다고 말한 거냐고 따지고 드는 불손한 투.


그러나 이어진 대답에는 퉁명스레 반응할 수 없었다. 그러기에는 너무나도 매혹적이었다.


“그야, 나에게는 그 아기 정령을 성인으로 성장시킬 방법이 있으니까. 곧바로 정령왕으로 만들어주지는 못해도, 하급 귀족쯤으로는 만들어 줄 수 있지.”


별 일 아니라는 듯 심드렁히 말한 내용에 노아의 눈이 큼지막하게 커졌다.

그 확장된 동공을 향해, 유논이 툭 내뱉었다.


“마침 지저의 왕에게 부탁할 일도 있겠다, 그 방법을 거래의 조건으로 내세우려 했지. 그걸 왕에게 전달해줄 사람이 있다면 참 좋을 텐데 말이야.”


그 무심한 말에 노아의 두 눈이 사정없이 흔들렸다. 마치 들으라는 듯 말하고 있지 않은가.

애써 헛기침과 함께 모르는 체하며 말한다.


“크, 크흠.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지저의 대왕께 전하고자 하는 사안이 있으시다면 아마 도시에 들어간 후 합당한 방법을 찾아보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

“흠···그런가?”

“···예, 그렇습니다. 저한테 말해주셔도, 저는 도울 수 있는 게 없습니다.”


오묘하게 쳐다보는 유논의 눈빛.


네가 그리 아닌 척 해봐야, 나는 네 정체를 전부 알고 있다. 네가 누구인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알고 있다 말하고 있는 듯한···.


노아는 그 흑요석 같은 눈빛에 홀려 냉큼 거래에 관해 묻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을 다잡았다.


흑색의 마법사가 넌지시 꺼낸 ‘거래’는 정말 혹할 만한 내용이었지만, 그렇다고는 해도 이 자리에서 그것에 대해 마음대로 가타부타 말할 수는 없었다.

그에게는 그럴 권한도 자격도 없었다.


애써 굳은 목소리로 화제를 돌린다.


지저인 노아는 일부러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아, 아직 위험이 가시지 않았습니다. 그···거래에 대해서는 나중에 이야기하시고, 괴수들이 더 있을지도 모르니 일단 이동하시죠. 최대한 흔적 없이 죽이긴 했지만 그것들의 동족이 언제 어디서 나타날지도 모를 일입니다.”


시드에게도 어설픈 지상의 언어로 급하게 움직여야 한다고 내뱉은 뒤, 다시금 길을 인도하기 시작한다.


시드가 그 뒤를 따라가며 유논에게 귓속말로 도대체 둘이서 무슨 이야기를 했기에 저렇게 당황하는 거냐고 물었지만, 유논은 끝까지 대답해주지 않았다.


그저 뜻 모를 미소를 짓고 있을 뿐이었다.




* * *




지저도시로 가는 길.


“그러니까···그게 지저의 고블린들이었다고요?”


시드는 인상 찡그리며 유논에게 물었다.


노아가 전부 해치웠던 그 새카만 꼽추 괴물들을 떠올리자니,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그게 지저 고블린이라고?


“하지만, 아저씨는 지저 고블린이 대표적인 지저의 위험 괴수들 중 하나이고, 절대 방심해서는 안 되는 놈들이라고 말했었잖아요.”

“그랬었지.”

“그런데 왜···.”


말끝을 흐렸지만, 무엇을 묻고자 하는지는 알아차릴 수 있었다.

어째서 이렇게 약하냐고 말하고 싶은 것이겠지.


사실 엄밀히 말하자면, 지저 고블린이 약한 것은 아니었다.


방금 만난 개체만 해도, 평범한 성인 남성을 데려다 놓는다 해도 한 마리를 상대하기 버거워할 것이다. 하나하나가 독기의 골짜기의 칼날 개미 일반 개체와 비슷한 수준.


‘지저 고블린이 약한 게 아니라, 시드와 노아가 그만큼 규격 외의 존재들인 거다.’


특히 시드는 그간 폭발적인 성장을 거듭해 와, 이제는 황야의 가장 무시무시한 무리형 괴수라는 미어캣들조차 정면에서 상대할 수 있는 수준이 되었다.

사실상 홀로 황야를 돌아다닌다 하더라도 문제가 없을 지경까지 숙련된 것이다.


그래서인지 예상만 못한 지저 고블린의 위험성에 의아해하는 것 같지만···.


지저 고블린은 결코 만만한 변종 괴수가 아니었다.


유논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지금 네 모습을 보아라. 왜 내가 방심하지 말라고 경고했는지 이해하겠지.”

“······?”

“고블린은 방심할 수 없는 괴수라면서, 왜 이리 약한 거냐고? 그렇게 묻는 것에서 벌써부터 네 녀석이 방심하고 있다는 게 뻔히 보이지 않느냐.”

“···!”


시드는 부정하지 못했다. 저 정도면 나도 잡을 수 있겠는데 하는 마음에 경계를 낮추었던 것은 사실이었으니까.


“네 멋대로 처음 보는 괴수의 위험성을 판단하지 마라. 아직 충분한 경험도, 지식도 없으면서 적의 수준을 판별하려 드는 것은 자살행위나 다름없다. 지저의 괴수들은, 특히 고블린은 더더욱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다.”


단언컨대, 지저에서 만나는 변종 고블린은 지상에서 만나는 변종 미어캣들보다 훨씬 더 무시무시한 괴수종이다.


똑같이 무리형 괴수지만, 고블린과 미어캣은 격이 다르다.


‘미어캣이 3~40마리 정도가 함께 다닌다면, 고블린은 적게는 수십 마리에서부터···.’


많게는 수만 마리까지 함께 다닌다.


변종 미어캣이 ‘가족’을 이루는 괴수종이라면, 변종 고블린은 ‘왕국’을 이루는 괴수종이다.


이곳 지하세계에는 지저 도시만 있는 것이 아니다. 지저 고블린들의 왕국과 그들의 왕, 기사, 주술사 등이 이끄는 막대한 양의 침략자 괴물들 또한 존재한다.

그 지하 괴수들의 왕국이, 오히려 드워프와 인간 등 지성 종족들이 건설한 도시보다 훨씬 거대한 규모의 집단을 이루고 있을 지경.


그런 의미에서 지저 고블린들과 충돌하고서도 이 정도로 끝난 것은 천만다행이었다.


본래 고블린 부대는 수십에서 수백 단위로 움직이거늘.

이번에 만난 것들은 부대에서 낙오된 놈들인지 숫자도 그리 많지 않았을 뿐더러, 시기적절하게 기습에 성공해 동족들을 부를 틈도 주지 않았던 것이다.


지저 고블린 괴수종이 약한 것이 아니라, 그저 이쪽이 운이 좋았고 또 그 천운을 낚아챌 실력까지 있었던 덕분이었다.


그렇게 시드에게 설명해 줄 수도 있었으나, 유논은 멋대로 적을 판단하지 말라고 꾸지람한 뒤로 말을 아꼈다.


이런 종류의 지식은 말로 가르쳐 봐야 소용없기 때문이다.


‘직접 방심의 결과를 체험해 봐야 그 위험성을, 조심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지. 시드는 지금···너무 겁이 없다. 위기를 겪어봐야 할 필요가 있어.’


겁 없는 무모함은 전사의 자질이라지만, 그게 지나치면 문제가 되기 마련이다.


가끔 그런 때가 있다.

마법사와 기사를 가리지 않고 찾아오는 시기.


어린 나이에 지나치게 큰 힘을 얻은 나머지, 세상 무서울 것이 없게 되어버리고 모든 적들을 상대로 방심하게 되는 마음의 병病.


물론 시드의 경우에는 그 지경까지는 아니었다. 병 중에서도 따지자면 그저 환절기의 가벼운 감기 정도에 불과했다.

하지만 감기에도 죽을 수 있는 것이 사람이다.


‘아주 자그마한 가능성이라도, 그게 내 제자에게 해를 끼칠 수 있는 병이라면 미리 바로잡아야 한다.’


돌이켜보면, 여태껏 시드가 마주한 위협은 전부 지나치게 강대한 힘을 지닌 적들뿐이었다.


시라센 괴물둥지의 변종 오크 부족장이 그러했고, 자유도시에서의 방사능의 아이들이 그러했으며, 독기의 골짜기에서의 파빌리안 스트라우스가 그랬고, 또 쉘터를 공격하던 도플갱어가 그랬다.


그녀를 두려워하게 만든 것들은 전부 강적들뿐이었다.

그렇기에 시드는 반대로 약한 적들은 무서워하지 않게 되었다.


자극에는 역치가 있어서, 한 번 오크 부족장이나 도플갱어 같은 우두머리 괴수를 상대하고 나면 그 밑의 일반 개체들은 그저 잡스럽게 여겨지는 것이다.


그래서는 안 된다.


작금의 변종 괴수들이 세상을 지배하게 된 것은 하나하나의 개체가 강해서가 아니었다.


강해서가 아니라, 숫자가 많아서다.


하나하나는 약할지 몰라도, 그 수가 지적 생명체들이 세운 집단 따위는 우습게 여길 정도로 지나치게 방대해서였다.


시드는 아직 하나하나는 약하고 상대할 만한 지저의 변종 고블린 같은 괴수들이 얼마나 무서운 종인지, 약자들이 뭉쳐 만들어지는 대다수의 힘이 얼마나 강력한지 알지 못한다.


‘사실 따지고 보면 도플갱어가 이끌던 수십만 언데드들이 그런 부류에 속했다고도 볼 수 있겠지만···결국 내가 마법 한 번으로 해치우기도 했고, 또 시간마법의 결계 덕에 직접 그 위험을 마주하지도 않았으니.’


이제는 시드가 그 위험을 직접 마주할 차례도 되었다.


언제까지고 유논이 대신해줄 수는 없었다.


‘지난번에는 내 마법으로 도플갱어의 수십만 언데드들을 해치웠었지. 언젠가는 나 없이 시드 홀로 그 비슷한 수의 괴수들과 마주쳐야 할 날이 올지도 모른다.’


가능성이 그다지 높은 미래는 아니지만, 모르는 일이었다.


시드는 특별한 소녀이니까. 대마법사의 진전을 잇고 태양황가의 피를 이은 녀석에게 어떤 혹독한 시련이 닥칠지는 모를 일이었다.


그렇기에 지금부터라도 대비시켜 놓아야만 한다. 약자들을 경계하는 법을 가르쳐야 한다.


‘실전만큼 좋은 교육이 없지.’


유논이 속 깊은 눈으로 시무룩해 있는 시드를 바라보던 때였다.


“···도착했다. 검문소다.”


노아가 지상의 언어로 무뚝뚝하게 말했다. 유논은 이미 도착한 것을 알고 있었던지라 고개만 끄덕였지만, 시드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곳이, 지저도시로 통하는 검문소?


작가의말

항상 제가 유논을 이리저리 굴리는 위치였는데, 이제는 유논이 다 자라서 그 자리를 물려받아 저 대신 시드를 굴리고 있군요. 이런 걸 격세지감이라고 하는 걸까요...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8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판타지에 핵이 떨어졌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140 시장바닥의 대왕들(2) +12 21.01.24 743 46 25쪽
139 시장바닥의 대왕들(1) +11 21.01.23 744 37 13쪽
138 드워프(4) +12 21.01.22 738 43 17쪽
137 드워프(3) +13 21.01.21 729 40 14쪽
» 드워프(2) +8 21.01.20 721 43 13쪽
135 드워프(1) +12 21.01.19 751 45 14쪽
134 지저의 도시(7) +10 21.01.18 772 42 13쪽
133 지저의 도시(6) +15 21.01.17 774 48 16쪽
132 지저의 도시(5) +4 21.01.17 728 43 12쪽
131 지저의 도시(4) +12 21.01.16 748 45 15쪽
130 지저의 도시(3) +14 21.01.15 760 45 15쪽
129 지저의 도시(2) +19 21.01.14 796 43 17쪽
128 지저의 도시(1) +30 21.01.13 820 50 18쪽
127 막간-윌리엄 스왈로우(William Swallow)(3) +10 21.01.12 773 47 18쪽
126 막간-윌리엄 스왈로우(William Swallow)(2) +6 21.01.12 729 36 14쪽
125 막간-윌리엄 스왈로우(William Swallow)(1) +12 21.01.11 795 47 16쪽
124 막간-피오네(Fionne)(4) +20 21.01.10 806 48 20쪽
123 막간-피오네(Fionne)(3) +17 21.01.09 853 48 17쪽
122 막간-피오네(Fionne)(2) +6 21.01.09 786 37 18쪽
121 막간-피오네(Fionne)(1) +14 21.01.08 832 49 13쪽
120 흑색의 마법사(3) +27 21.01.07 901 57 20쪽
119 흑색의 마법사(2) +18 21.01.06 877 48 17쪽
118 흑색의 마법사(1) +18 21.01.05 879 53 14쪽
117 유논(12) +17 21.01.04 820 52 13쪽
116 유논(11) +9 21.01.04 761 44 16쪽
115 유논(10) +10 21.01.03 787 45 16쪽
114 유논(9) +12 21.01.02 764 40 12쪽
113 유논(8) +7 21.01.01 772 45 14쪽
112 유논(7) +9 20.12.31 799 46 17쪽
111 유논(6) +7 20.12.30 825 41 13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