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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님의 서재입니다.

판타지에 핵이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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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생각.
작품등록일 :
2020.05.16 10:33
최근연재일 :
2022.03.28 12:05
연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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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877,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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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1.02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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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유논(9)

DUMMY

「나는 전쟁의 향방을, 그 열쇠를 쥐고 있었다.」


「나는 환상세계의 인간, 엘프, 드워프, 수인, 오크···심지어는 용과도 친분이 있는 모든 종족들의 교집합이었다.」


「나는 혁명왕국의 은인이자, 흑색의 마법사라는 신분을 내세워 그전까지는 오합지졸이었던 환상세계의 인간들을 한데 모아 연합군을 만들었다.」


「본래라면 결코 한 세력으로 뭉칠 수 없었을, 이해관계 다르고 믿는 종교도 다르며 문화도, 언어도 달랐던 이들.」


「그들이 지구인이라는 공통의 적과 나라는 구심점 아래 하나로 뭉치기 시작했다.」


「불타는 숲의 복수를 하고 싶어 하던 엘프들을 설득해 연합군으로 끌어들였다.」


「지구인에 대한 증오만큼이나 인간에 대한 증오도 함께 키워나가던 오크들과도 무예로서 대화를 나누어 그들과 일시적인 동맹관계를 나누었다.」


「드워프들에게는 지구의 군대를 물리친 후 그들의 기술과 기계장치들에 대한 우선적인 권리를 약속함으로써 그들의 전폭적인 원조를 받았다.」


「나는 모든 종족을 한데 묶는 정치적 연결고리이자, 동시에 존재만으로도 전장을 지배하는 철인이었다.」


「환상세계 권력자들의 견제를 받지 않기 위해 연합군 사령관이나 장군의 직위는 거절하고 일개 참모이자 마법사로만 남았으나, 누구도 나를 일개 참모나 마법사 따위로 보지 않았다.」


「나는 전쟁에 얽힌 모든 이해관계와 정치적 협상을 당근과 채찍을 오가며 적절히 조율했기에 외교의 달인이라 불렸다.」


「내가 이끄는 거대한 규모의 전쟁은 책략과 대마법의 힘을 입어 결코 지는 일이 없었기에, 또한 불패의 명장이라 불렸다.」


「그렇게 모든 전쟁에 얽힌 국가와 지역, 전장을 하루에 수백 곳도 넘게 돌아다니며 이곳저곳 신출귀몰하게 나타났기에 모두가 나를 환상세계의 수호자라 불렀다.」


「내가 지닌 이 어마어마한 영향력은 환상세계의 사람들에게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었다. 지구인들마저 나를 무시하지 못했다.」


「어쩌면 환상세계 사람들보다 더더욱, 그들은 나의 존재를 거대하다 느꼈을 것이다.」


「승기를 잡았다 생각한 전투의 현장에서는 항상 내가 나타난다. 빛이 번쩍이며 나타나, 사라질 때쯤이면 그들이 자랑하던 기계장치와 열병기들이 전부 고장 나 있다.」


「그때부터는 검과 창, 활을 들고 싸우는 백병전이 시작된다. 환상세계의 사람들이 결코 질 일이 없는 싸움이.」


「내가 직접 갈 수 없는 전장에는 마력으로 만든 공중의 길을 이용해 오크들로 이루어진 특공부대와, 엘프 게릴라 부대를 파견한다.」


「그렇게 나라는 개인의 힘으로 하루에만 수천 번씩 전쟁의 판도를 바꾼다.」


「1초 간격으로 북쪽의 전장에, 그리고 동쪽의 전장에, 그리고 서쪽의 전장에 번갈아 나타나는 나의 모습만 봐도 지구인들은 공포에 질려 기지 속에 몸을 숨긴다.」


「뿐만 아니라 전투가 잠시나마 소강상태에 빠지는 일이 있더라도, 나는 결코 쉬지 않는다.」


「지구군과의 협상자리에서 나는 늘 빠지지 않는다. 환상세계 연합군 참모의 직위로 모든 협상자리에 참여해 환상세계의 언어뿐 아니라 지구의 모든 언어까지 섭렵한 구사능력으로 협상을 무조건 유리하게 만든다.」


「그런 내 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면 필시 지구군의 군수시설, 공장이나 보급품, 무기들에 은밀히 공작을 가할 때뿐이다.」


「이런 나를 모든 지구인들이 두려워한다. 그들의 눈에 나는 옛 칭기즈 칸이나 알렉산드로스 대왕, 나폴레옹쯤 되는 역사적 거인으로 보일 것이다.」


「지구의 군대는 하나로 똘똘 뭉치지 않는다. 정확히는 그럴 수가 없다.」


「그러기에는 자기 국가의 이익만을 중요시하는 이들이 너무나도 많고, 또 지구의 본토에서는 환상세계를 그렇게까지 큰 위협으로 여기지 않는다.」


「이쪽 세상에서 아무리 치열한 전쟁이 벌어진다 한들, 지구 본토에서 느끼기에는 그래봤자 다른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에 불과한 것이다.」


「절대 하나로 뭉칠 수 없는, 그러기에는 기준점도 없으며, 직면한 위협 또한 명확하지 않은 그들의 눈에는 내가 괴물로 보일 것이다.」


「나라는 구심점 아래, 지구라는 거대한 위협 아래 집결한 환상세계의 총력이 너무나도 두렵고 또 위험하게 느껴질 것이다.」


「그렇기에 내 경로를 미리 예측하여 암살하려고 하는 저격수들의 수만 기백이 넘는다.」


「물론 세계 모든 전황을 시야에 두고 있는, 흑색마법을 잃어버린 뒤에도 웬만한 대마법사들 못지않은 무력을 지닌 나에게는 무의미한 수작들에 불과했다.」


「다만 안타까운 점은 그리하여 자리 잡은 암살자들 중 환상세계의 군주들이 보낸 이들도 상당하다는 것이다.」


「내가 전심전력을 다해 전황을 어느 정도 반전시키자, 상황이 유리하게 돌아가자 그들은 벌써부터 전쟁 이후를 걱정하기 시작한 것이다. 내가 너무나도 큰 권력을 가지고 있다고, 나를 죽여야만 한다고 생각하게 된 것.」


「나는 침묵했다. 그런 이들의 병력 또한 현재로서는 전쟁에 크게 도움이 되는 전력이니.」


「오히려 이 일을 통해 더 단단한 올가미를 만들어 그들의 병력을 더 뽑아낼 수도 있겠다고, 그렇게 기계적으로 생각했다.」


「전쟁을 시작한 지 3년, 나는 어느새 차가운 눈과 심장으로 사람들의 목숨을 수치화하고 있었다.」


「더는 병사들이 흘리는 피가 피로 느껴지지 않았다. 전쟁 시뮬레이션 게임의 유닛들처럼 그저 승리를 위한 자원으로만 느껴졌다.」


「예전이었다면 한참을 고민했을 결정, 과감하게 아군 일부를 미끼로 내던진다거나 정찰대원들에게 무리한 임무를 시킨다거나 하는 잔혹한 명령도 서슴없이 내리게 되었다.」


「그러나 그 누구도 나의 그러한 잔혹한 명령과 행동, 판단을 비난하거나 반대하고 나서지 못했다.」


「나의 엄격하고 인정 없는 선택, 전략과 전술에 가장 혹사당하는 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나 자신이었으니까.」


「24시간 중 단 일분일초도 쉬지 않고 전장에 온몸을 바치고, 무조건 패배하거나 죽을 수밖에 없는 전장에 수천 번씩 몸을 던지고도.」


「그러고도 폭격과 총알이 빗발치는 곳에서 만신창이로 돌아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다음 전략을 수립하는 것이 나였으니까.」


「잔혹한 결정에 목숨 바쳐야 하는 이들을 가장 앞서서 최전선에서 이끄는 것이 바로 나였으니까.」


「그렇기 때문에 내가 그들의 구심점이 될 수 있었다. 내가 아니라면 다른 누구도 해낼 수 없을 일이었다.」


「그런 나의 인도 아래, 단 한 자루 칼날로 벼려진 환상세계의 연합 아래.」


「환상세계와 지구간의 대전쟁에도 서서히 끝이 다가오고 있었다.」


···

···

···

···

···

···


「처음으로, 대전쟁이 시작된 이래 처음으로 환상세계가 역공을 가했다.」


「단순히 지구군을 환상세계 바깥, 게이트를 통해 지구로 되돌려 보내는 수준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게이트 바깥으로 넘어가 지구의 땅을 점령하기까지 한 것이다.」


「나는 지구군을 과하게 자극하는 일이 없도록 그런 보복성 공격을 엄격하게 금지했으나, 광기와 증오로 가득 찬 병사들, 드디어 승리를 거머쥐었다 기뻐하는 그들 중 말을 듣는 이들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


「하나로 뭉치지 못한 지구인들, 마법사와 검사들의 방해공작으로 제대로 보급을 받지도 못하고 기반시설까지 무너진 그들은 황급하게 본래 세계로 돌아갔다.」


「그리고 그리 도망치는 이들을 환상세계의 사냥꾼들이 뒤쫓았다.」


「지구의 본토까지 환상세계에 공격당하는 심각한 위험에 처하자, 지구의 권력자들은 마침내 그들의 턱 끝에 칼을 들이미는 환상의 강자들에게 위협을 느끼게 된 것 같았다.」


「나의 본래 계획은 그들과의 종전 협상을 잘 마무리 지어 마땅한 배상금과 지원을 얻어내는 것이었으며, 그리하여 환상세계에 평화를 되돌리려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이제는 저 지구의 권력자들도 환상세계가 얼마나 무서운 세계인지, 어째서 함부로 건드려서는 아니 되는 것인지 깨닫고 협상에 응할 것이라는 희망적인 기대를 품었다.」


「당연히 환상세계의 사람들을 더 열 받게 하지 않기 위해, 지금보다 더 큰 피해를 입지 않기 위해 협상의 자리를 마련하는 것이 이성적인 선택일 것이라 보았다.」


「그러나 내 예상보다도 훨씬 더, 그들은 비이성적인 자들이었다.」


「그들은 환상세계에 겁을 먹었다. 내가 의도한 그대로였다.」


「그러나 결과물은 내 의도와 달랐다. 그들은 그 겁을 협상을 통해 해소하려 하지 않고, 겁을 주는 원인 자체를 제거함으로써 두려움을 없애려 했다.」


「그들은 대량학살무기들의 발사를 준비했다.」


「흔히 핵이라고 불리는 원자폭탄과 수소폭탄···.」


「환상세계와의 전쟁을 멈출 것을 주장하는 지구의 각종 시민단체들과, 핵무기 사용에 대한 우려와 걱정, 반대를 보내는 수많은 의견들을 무시하고 강행한 것이다.」


「아직까지 환상세계의 주요 전장에서 물러나지 않고 있던 지구의 군대들이 핵무기의 영향권 바깥으로 슬그머니 물러서고, 또 각종 지구군들이 숨겨놓았던 발사 플랫폼들이 다시 가동되는 것을 보며 단번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나는 그 즉시 핵무기들이 탑재된 지구의 미사일들을 제거하기 시작했다. 나 혼자서만 움직인 것이 아니라 수많은 환상세계의 군대들이 함께 움직이면서 핵무기들을 근간부터 지우기 시작했다.」


「그러나 지구인들은 너무 많았고, 십만 개의 게이트에서 반출되는 모든 핵무기들을 전부 처리할 수는 없었다.」


「아마 몇몇 곳에서는 미사일이 발사되고 말 것이요, 거기서 갈라져 나오는 핵무기들의 대부분은 마법사들의 연합 결계와 대마법사들의 방위로 막아내겠지만···.」


「그래도 세계 전체를 막을 수는 없으니 결국은 핵이 어딘가에는 떨어질 터였다.」


「그러나 나는 그 정도 손해는 어쩔 수 없이 감안해야 한다고 보았다.」


「그 악명이 대단히 높을 뿐, 사실 핵무기는 파괴력 자체만 놓고 보면 겨우 도시 하나를 무너뜨릴 수 있는 수준에 불과하다.」


「아마 많은 이들이 단숨에 죽고 또 방사능 낙진에 고통을 받겠지만, 어쩔 수 없는 손실이었다. 동시에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의 손실이었다.」


「이미 핵이 떨어지는 것은 기정사실이다. 최선을 다해 막겠지만, 전부 다 막아낼 수는 없었다.」


「그렇다면 어차피 막기에는 그른 것, 반대로 이 핵을 통해 얻어낼 수 있는 이익들을 생각해야 했다.」


「나는 지구에서 날리게 될 핵, 분명 잔인하고 또 무시무시한 무기이지만 끝내 환상세계를 무너뜨리지는 못할 그 예정된 미래를 떠올렸다.」


「핵무기까지 사용했다는 것은 달리 말하자면 그래야만 할 정도로 위태로운 상황이라는 뜻이니, 그 실패할 핵무기의 잔혹성을 이용해 정치적으로 지구의 권력자들을 벼랑까지 몰아붙인 후, 매우 유리한 조건에서 맺을 종전협상을 머릿속에서 그렸다.」


「핵무기 그 자체보다는 핵을 얻어맞고 난 뒤에 잔뜩 분노할 환상세계의 사람들, 지구에 복수를 해야 한다 외칠 그들을 어떻게 달랠지를 생각했다.」


「드워프들은 지구의 기술이면 쉽게 넘어올 것이고, 엘프들은 애초에 그다지 오래 화를 내는 이들이 아니다.」


「인간들 또한 적절한 배상과 이득이 주어지면 발을 뺄 것이고. 오크가 문제이긴 하나···다 나름대로 설득할 방법이 있었다.」


「나는 마침내 맞이하게 될 환상세계의 평화를 생각했다.」


「상상만으로도 달콤했다. 이것이야말로 내 불행의 종결이자, 행복의 시작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환상세계의 평화를 이룩한 이후 조용히 어디 시골이나 산골짜기에 들어가 한적한 삶을 즐기는 꿈을 꾸었다.」


「지긋지긋한 전쟁이 드디어 끝난 뒤, 마법으로 낙원을 만들어 그곳에서 자연을 가꾸며, 가끔 싹수가 보이는 이들을 마법사로 기르기도 하며···그렇게 사는 꿈을.」


「수년간 한시도 쉬지 못하고 혹사당한 나의 몸과 정신을 잠시 쉬게 해주는, 잠깐이나마 숙면을 취하는 상상만으로도 들떴다.」


「나의 행복으로 가는 길이 그곳에 있을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나는 평화가 곧 나의 행복이 아닐까 하는 희망에 빠져 있었다.」


「그리고 그 평화 위로, 희망 위로, 행복 위로.」


「핵이 떨어졌다.」


작가의말

요즘 제가 유논을 많이 괴롭히는 쪽으로 글을 쓰다 보니, 저까지 덩달아 피폐해지는 듯한 기분이 듭니다.

판타지에 핵이 떨어졌다를 완결내고 나면 차기작은 굉장히 행복하고 유머러스한 글을 써보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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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 시장바닥의 대왕들(1) +11 21.01.23 745 37 13쪽
138 드워프(4) +12 21.01.22 738 43 17쪽
137 드워프(3) +13 21.01.21 729 40 14쪽
136 드워프(2) +8 21.01.20 721 43 13쪽
135 드워프(1) +12 21.01.19 751 45 14쪽
134 지저의 도시(7) +10 21.01.18 772 42 13쪽
133 지저의 도시(6) +15 21.01.17 775 48 16쪽
132 지저의 도시(5) +4 21.01.17 728 43 12쪽
131 지저의 도시(4) +12 21.01.16 749 45 15쪽
130 지저의 도시(3) +14 21.01.15 760 45 15쪽
129 지저의 도시(2) +19 21.01.14 796 43 17쪽
128 지저의 도시(1) +30 21.01.13 820 50 18쪽
127 막간-윌리엄 스왈로우(William Swallow)(3) +10 21.01.12 773 47 18쪽
126 막간-윌리엄 스왈로우(William Swallow)(2) +6 21.01.12 729 36 14쪽
125 막간-윌리엄 스왈로우(William Swallow)(1) +12 21.01.11 795 47 16쪽
124 막간-피오네(Fionne)(4) +20 21.01.10 806 48 20쪽
123 막간-피오네(Fionne)(3) +17 21.01.09 853 48 17쪽
122 막간-피오네(Fionne)(2) +6 21.01.09 786 37 18쪽
121 막간-피오네(Fionne)(1) +14 21.01.08 832 49 13쪽
120 흑색의 마법사(3) +27 21.01.07 901 57 20쪽
119 흑색의 마법사(2) +18 21.01.06 877 48 17쪽
118 흑색의 마법사(1) +18 21.01.05 879 53 14쪽
117 유논(12) +17 21.01.04 820 52 13쪽
116 유논(11) +9 21.01.04 761 44 16쪽
115 유논(10) +10 21.01.03 787 45 16쪽
» 유논(9) +12 21.01.02 765 40 12쪽
113 유논(8) +7 21.01.01 772 45 14쪽
112 유논(7) +9 20.12.31 799 46 17쪽
111 유논(6) +7 20.12.30 825 41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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