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B둘기의 서재

모험따윈 하고 싶지 않았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B둘기
작품등록일 :
2020.07.27 19:58
최근연재일 :
2021.05.31 01:01
연재수 :
121 회
조회수 :
14,143
추천수 :
264
글자수 :
658,374

작성
20.08.07 03:31
조회
411
추천
5
글자
11쪽

간병

DUMMY

작고 가녀린 손이 다가온다.


푸른빛의 눈동자는 구원을 바라며 바라본다.


도와달라며 부르짖는 목소리가 들려온다.


눈을 감고, 귀를 막고, 등을 돌린다.


한 발자국 내딛는 순간, 멈출 수가 없어서.


보고 싶지 않아서.


듣고 싶지 않아서.


기억하고 싶지 않아서.




외면했다.




살아서 돌아왔다.

기뻐하며 달려와 나를 껴안는 부모님의 품은 따스했다.


포근하고, 부드럽고, 듬직해서.


목을 놓아 울어도 괜찮다고 생각해서.


그렇게 했다.


이대로 있으면 동정 받을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었으니까.


사람들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며 납득할 테니까.


어린아이는 어린아이답게 부모의 품에 안겨서 살아가면 되는 거니까.


그게 평범한 거니까.



『엘리스···!』


평범하다.


나는 평범하다.


그래, 평범하다.


평범하니까.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게 당연하다.


무서우면 도망치는 게 당연하다.


당연한 거다.


평범하니까.



『리시스는 특별해.』


아니, 나는 평범하다.


평범하다.


평범하다.


그러니까···


'나를 원망하지 말아줘.'


...



묘한 향기가 풍겨왔다. 그것은 나의 코를 타고 들어와 폐에 깊게 스며들었다. 어딘지 모르게 차분한 느낌이 들었다.


덕분에 찬찬히 현실을 받아들이는 게 가능했다.


한순간의 충동을 밀어내고, 나를 고쳐나갔다.


평범한 사람에게도 잊고 싶은 과거가 하나쯤은 있기 마련이다.


그런 면에서 보자면.


아니, 그렇지 않은 면에서도 그렇지만.


나는 평범한 사람임이 틀림없다.


이제와서 하나가 둘로 늘어난다고 해도 크게 달라지는 건 없다. 잊고 싶은 과거가 하나 더 늘었을 뿐이다. 그게 전부다. 그걸로 끝이다.


잠깐의 시련이 찾아왔을 뿐이다. 귀향을 하던 도중 마물에게 습격받은 민간인의 이야기는 드물지 않은 이야기다.


손을 가슴에 가져갔다. 심장의 박동이 느껴졌다.


괜찮다. 아직 살아있다. 죽지 않았다. 왼팔은 어떨지 잘 모르겠지만, 이 이상 악화되지는 않을 거라고 믿자.


분명 어떻게든 될 거다. 나는 평범하니까.


세상에서 가장 행복해질 수는 없지만, 그렇기 때문에 세상에서 가장 불행해지지도 않는다.


이 숲을 빠져나가서, 고향으로 돌아간 다음, 어머니를 간병한다.

거기서부터 다시 일상을 시작하는 거다.



"후우···"


길게 숨을 내뱉으며 할 수 있다고 불안정한 나를 다독였다.


나는 나의 결심이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도 훨씬 쉽게 무너져버린다는 걸 알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결심이 무너지지 않도록 스스로를 주기적으로 격려하는 거다.



"저어, 그러니까, 안녕히, 주무셨나요···?"


불쑥 옆에서 소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깨어나자마자 어렴풋이 그녀의 존재를 눈치채고 있어서 별 탈 없이 인사를 받아줄 수 있었다.



"응, 덕분에."


나의 오른손에 포개어진 그녀의 손이 손가락들을 쓰다듬으며 스르르 떠나갔다. 잠결 때문에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왜 나의 손을 잡고 있던 걸까.


물어보려 했으나, 그럴 필요는 없었다.



"죄송해요, 편히 잠들지 못하시는 것 같아서···."


초조함이 섞인 목소리였다.


아마, 나를 무서워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걱정하고 있다.

왼팔을 바라봤다. 정성스럽게 묶인 붕대가 상처를 감싸고 있다.


침대 옆에 놓인 의자. 그 위에 앉은 그녀의 눈가에 진 주름을 보아하니, 밤까지 새가면서 간호를 한 모양이다.


나는 이렇게나 성심성의껏 보살펴준 은인에게 뭐라고 할 정도로 염치없는 사람은 아니다.



"사과할 필요 없어. 고마워."


꾸었던 꿈은 악몽이었지만, 깨어난 지금 느끼는 감정은 기쁨이었다.


그거면 된다. 꿈은 한순간이고, 지금이란 것은 시간이 지나면 과거가 되어서 나의 안에 남을 테니까. 기쁨이란 감정을 느낀 과거가 생겼다는 것. 그거면 되는 거다.



"맞아, 그러고 보니 자기소개를 안했었구나. 내 이름은 리시스야. 구해줘서 고마워."


갑작스러웠던 걸까.


나의 이름을 들은 그녀는 두 손을 공손하게 가슴으로 끌어안았다. 그리고는 "어, 그러니까아··· 저기···"하고 좀처럼 말을 잇지 못했다.


그녀가 자신의 이름을 쭈뼛쭈뼛 말할 수 있을 때까지는 인내심을 가지고 한참을 기다려야만 했다.



"아루아, 라고 해요···."


입을 닫은 그녀는 나에게서 몸을 돌리고 고개를 떨구었다. 불안하게 흔들리는 숨결과, 희미하게 떨리는 어깨. 그저 자신의 이름을 말하는 것만으로도 큰 불안을 느끼고 있다는 게 눈에 보였다.



"예쁜 이름이네."


떠오른 감상은 오로지 그거 하나였다. 한치의 배려도, 의도도 담겨있지 않은 솔직한 감상. 그것이 그녀를 안심시킬 거라는 생각은 없었다.

때문에 그녀가 숨을 멈춰버릴 정도로 놀랄 거라는 예상도 없었다.



"흐윽···!"


물론, 그녀가 괴롭게 신음하며 쓰러질 거라는 가정도.


존재하지 않았다.



우당탕.


그런 소리가 났다.


의자가 무너져내리고, 아루아의 어깨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이어서 머리가 부딪혔다.

그녀를 붙잡기 위해 일어났을 때는 이미 늦은 뒤여서,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없었다.


동화 속의 왕자님처럼 멋지게 받아준다는 건 어디까지나 동화 속 이야기에 불과하다는 걸 실감했다.


너무나도 갑작스럽고, 때문에 당황스럽다.



"아루아! 아루아!"


그녀의 이름을 불러보았다. 몇 번을 불렀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그러나 부를 때마다 차츰 깨달았다. 이대로는 안 된다고. 뭐라도 해봐야겠다고.


심호흡을 반복하며 진정했다.


진정한 뒤에는 그녀의 생사를 확인했다. 그녀의 가슴이 가쁘게 오르내리는 게 보였다.



"하아···"


그제서야 안심하고 다음을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


아루아의 이마에 손을 가져갔다. 뜨겁다. 보통 사람의 체온이 아니다. 엘프는 인간보다 체온이 낮을 텐데. 나보다 높다는 건 상당히 위험하단 소리다.


이렇게나 열이 나는데도 앓는 소리조차 내지 않고 나를 간병했던 건가.



"사람이 얼마나 착하면···!"


모르는 게 당연하지만, 모르고 있던 내가 원망스러웠다.



"크아악···!"


아루아를 안아들었다. 왼팔이 찢어지는 것처럼 아파왔다. 그래도 움직일 수는 있어서 악으로 버티며 들어올렸다.


힘겹게 침대 위로 눕혔다. 살포시, 라는 단어는 도저히 사용할 수가 없었다.


억지로 움직인 왼팔에서 멈췄던 피가 다시 흘러나오고 있었다. 안중에도 없었다고는 할 수 없으나, 되도록 무시하며 몸을 움직였다.



...



이른 새벽. 누구도 지나가지 않는 흙길의 근처.


그곳에는 모험가들의 시체가 널브러져 있었다. 내장과 피를 모두 파먹인 시체는 창백하고 끔찍한 몰골이었다. 개중에는 인간이라는 형체를 유지하지 못한 것도 있었다.



푹. 푹푹.



마차에서 내린 남자들은 능숙하게 내장사냥꾼들을 찔렀다. 발성기관이 없는 그것들은 소리없이 발버둥치다 이내 움직임을 멈추었다.


죽인 내장사냥꾼의 수를 확인하고, 더는 남아있지 않다는 걸 확인한 남자들이 이어서 시체들을 회수하기 시작했다.



"이런···"


한 남자가 땅을 구르던 살덩어리를 주워들었다. 그것이 무엇인지 깨닫자, 그의 얼굴은 확연하게 구겨졌다.


내장사냥꾼의 새끼. 그리고 인간의 살점이 뒤섞인 기괴한 덩어리였다.



"대장! 생존자가 있는 것 같지 말입니다!"


소리치자, 멀리서 다른 남자가 달려왔다. 그는 살덩어리를 받아들더니 허 하고 헛웃음과 함께 똑같이 얼굴을 구겼다.



"그 난장판에서 살아남다니, 대단한 녀석이군. 하지만 새끼한테 당했을 정도니 위험한 녀석은 아니야. 독 때문에 멀리 도망치지도 못했을 테고."

"그냥 놔두면 조만간 굶어죽거나 하지 않겠습니까?"

"대부분의 경우는 그렇겠지.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꼴깍. 대장은 초조하게 침을 삼켰다.



"우리 모가지가 날아간다."

"하, 하하··· 이거, 무조건 찾아서 족쳐놔야겠군요."

"그래, 한시라도 빨리 붙잡아야지. 블러드 하운드를 데려와라."


...



아루아는 꼬박 하루나 잠들어있었다. 그동안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젖은 수건을 머리에 올려주는 게 고작이었다. 이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숲에서 식량을 구하는 법을 알았더라면, 깨어난 그녀가 먹을 음식을 만들어줄 수 있었을 텐데.


나의 무식함이 원망스러워서 나중에 여건이 되면 공부해두자고 마음 먹었다.



"어머니보다도 다른 사람을 먼저 간병하게 될 줄은···"


오늘로 며칠째더라.


편지를 받은 다음 떠날 준비를 하느라 하루, 마차를 타고 오다가 괴물들의 습격을 받고서 하루, 아루아를 만나고 정신을 잃고서 하루. 오늘로 대략 사흘째인가.


편지에는 약 2주간 전문 간병인이 와서 어머니를 돌봐주신다고 했었으니, 남은 기간은 열흘 정도겠지.


여유롭다고는 못하지만 아루아가 일어날 때까지 보살펴도 문제는 없을 시간이다. 조마조마하지 말고 얌전히 기다리자.


특별한 증상도 보이지 않고, 열도 많이 내렸다. 숨소리도 비교적 차분해졌다. 내일 아침이면 다시 그녀와 이야기할 수 있을 거다.


기대감을 품고 점자로 쓰인 책을 읽어나갔다.


읽는다, 라는 표현을 쓰기에는 여러모로 이상하지만.


사실 점자를 읽지 못해서 그럴싸한 내용을 지어내고 있는 게 고작이다. 재미는 없지만 시간을 보내기에는 이보다 적절한 유흥거리가 따로 없다.


현재 나의 상상속에서는 심술궂은 용에게 잡혀간 왕자를 구하기 위해 모험을 떠난 공주가 용을 쓰러뜨릴 마검을 얻는 장면이 재생되고 있다.


나는 혹시 소설가에 재능이 있던게 아닐까, 하고 고민해보다가 책을 써낼 정도로 부유한 경제사정이 아니라는 현실에 부딪혔다.


카페를 팔아서 얻은 돈을 마차에 두고온게 후회되었다. 그걸 챙겼다면 어떻게 됐을까. 처참히 살해당했을까.


···분명 그랬겠지.


포기하고 도망친 건 좋은 선택이었다고 납득하자.



"하우으으···!"


정적으로 가득하던 오두막 안에 아루아의 목소리가 나지막이 울려퍼졌다.


나는 곧바로 책을 덮어놓고, 몸을 일으키는 그녀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아루아, 괜찮아?"

"죄송해요···."

"일어나자마자 사과라니···"


이제는 부정하는 것도 딴지를 거는 것도 지쳐서 쓴웃음만 지었다. 하루종일 아무것도 먹지 못한 채로 있다보니 정신이 멍했다.



"저, 얼마나 잠들어있었죠?"

"하루종일."

"우으으··· 죄송해요···."


괜찮다는 말을 서너번 반복하며, 나는 억지로 일어서려는 그녀를 다시 침대에 눕혔다.



"나도 하루종일 잠들어있었으니까. 불만을 말할 생각은 없어."

"그런가요··· 그래도 죄송해요···. 고작 사흘이었는데···."

"뭐라고···?"


그녀의 입에서 나온 말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혹시나 잘못들은 건 아닐까.


기억을 더듬으며 차근차근 곱씹어보았다.


그러나 바뀌는 건 없었다.



고작 사흘.


그것은 고작이라고 표현하기엔 과분하게 긴 시간이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1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모험따윈 하고 싶지 않았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3 거짓된 행복 +1 20.08.01 755 8 17쪽
2 일상 20.07.28 1,373 13 15쪽
1 프롤로그 +2 20.07.27 1,631 8 1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