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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둘기의 서재

모험따윈 하고 싶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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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둘기
작품등록일 :
2020.07.27 19:58
최근연재일 :
2021.05.31 01:01
연재수 :
121 회
조회수 :
14,135
추천수 :
264
글자수 :
658,374

작성
20.08.05 03:05
조회
492
추천
8
글자
11쪽

만남

DUMMY

죽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도 눈이 뜨여졌다.


누군가가 뇌를 송곳으로 마구 찔러대는 것 같았다.


마비가 풀린 탓인지 왼팔의 감각이 돌아왔다. 그리고 동시에 살점이 뜯겨나간 통증이 한꺼번에 밀어닥쳤다.



"아악!"


상처를 감싸쥐었다.


존재하지 않는 살점의 공허함과 새까맣게 변색된 피의 질척함이 소름 끼쳤다.


땅에 떨어진 피를 보자마자 나는 직감했다.


이건 절대로 내 몸에 있어선 안 되는 것이라고.


살이 뜯겨나가는 것만 같은 고통을 감수하고 상처 부위를 쥐어짰다.



"으, 으윽!"


드러난 혈관에서 검은 젤리 같은 게 쏟아져나왔다.


툭. 투둑.



땅에 떨어지자, 몸을 꿈틀거린다.

그것들이 모두 떨어진 다음에야 붉은 혈액이 떨어졌다.



"뭐야, 이거···!"


의식을 가진 생명체처럼 움직인다.


밖으로 나온 것이 괴로운지, 몸을 뒤틀고 있다.


이윽고 땅에 고인 피웅덩이로 기어간다.


그리고는 빨아들이며 몸의 크기를 키워나간다.


섬뜩하다. 저것들이 내 몸속에서 크기를 키웠다면···


"우욱···!"


구역질이 나왔다.


이제는 신물조차도 잘 나오질 않았다.


차마 보고 있을 수가 없었다.


그럼에도 이대로 놔둬선 안 된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몸을 일으켰다.


짓밟았다.


밟아도 잘 터지지를 않아서 밟은 다음 몇 번이고 짓이겨야만 했다.

한 번 밟을 때마다 그것의 꿈틀거림이 발끝을 타고 전해져왔다.



"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


중간부터는 생각하기를 관두었다.


마지막을 죽인 다음에는 숲속을 향해서 도망쳤다.


그것들의 부모가 나를 쫓아오는 것만 같았다.


소루스와 세리카의 내장을 파먹은 '그것'들이.


'그것'의 등에서 쏟아져 나온 인간의 내장이.


자꾸만 떠올랐다.



"우욱, 우우욱···!"


헛구역질이 자꾸만 뛰쳐나왔다.


그럼에도 발을 멈출 수가 없어서 달렸다.


발밑조차 제대로 보지 못한 채로 도망치다가, 나무뿌리에 걸려 넘어졌다.


새벽의 이슬에 젖은 땅바닥 위로 턱을 찧으니 그제서야 정신이 들었다.


몸을 일으켜서 뒤를 돌아봤다.


그곳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보이는 것은 나무와 바위.


그것들을 뒤덮은 녹색의 이끼와 쓰러진 나무의 위로 자라난 버섯.


나뭇잎의 그림자가 드리우지 않은 곳에서 자라난 이름 모를 꽃들.


숲속의 모든 존재들을 따스하게 비추는 햇빛까지.


방금 전까지의 일들이 모두 악몽이지는 않았을까, 하고 의심하게 되어버리는 평화로운 풍경이었다.


하지만 왼팔의 상처만큼은 여전했다.



"하, 하하···"


허탈하고 허탈한 나머지 웃음이 나올 지경이었다.



"뭐냐고, 이거··· 하하하···."


시야가 일그러졌다. 이윽고 뜨거운 무언가가 볼을 따라 흘러내렸다. 그것은 무언가라고 가정할 필요도 없는, 확실한 눈물이었다.


이상하다.


나의 입가에는 미소가 가득하다. 얼굴의 근육들이 모두 웃음을 짓고 있다.


그런데도 눈물이 흘러나온다.


둘 중에서 뭐가 이상한 걸까.


이상한 건 알겠으나, 뭐가 이상한 건지를 모르겠다.


허탈함에 흘러나오는 웃음일까, 아니면 의미 없이 흘러내리는 눈물일까.


어느 쪽을 택해야 할지 고민하다가 문득 깨달아버렸다.


이상한 건, 바로 나라고.


그렇다. 내가 이상한 거였다.


살아남아서 기뻐하는 것도 아니다. 나를 위해 희생해준 사람들을 위해 슬퍼하는 것도 아니다.


그저 모든 것이 허탈하다.


내 삶도 저런 식으로 끝나는 게 가능하다고 생각하니까. 모든 것이 허탈하다.


이렇게 살아봤자 의미란 존재하지 않는다.


죽으면 모든 것이 끝이다.


열심히 살아가려고 노력하는 이상, 그 죽음이 어떤 죽음일지는 죽는 그 순간까지 누구도 알지 못한다.


허나, 한 가지. 자신의 죽음을 알 수 있는 방법이 있다.


그건 바로 스스로가 죽음을 결정하는 거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자살이다.


자신이 언제 어디서 어떻게 죽을지.


모두 자신이 결정할 수 있다.


자신이 생각했을 때에 가장 덜 아픈 수단으로, 혹은 가장 이상적인 형태로 죽음을 맞이할 수 있다.


아아, 그렇다. 어차피 살아봤자 의미라곤 없다.


좋은 사람도, 나쁜 사람도, 평민도, 영웅도, 죽는 순간 모든 게 끝이니까.


어릴 적의 꿈을 이뤄도, 좋은 동료를 만나도, 멋지고 아름다운 모험을 해도.


그건 어디까지나 한순간의 행복에 불과하고, 죽는 순간 의미를 잃어버린다.


그러니까, 똑같이 의미를 잃는 것이라면, 고통스럽고 추악하게 죽을지도 모른다는 걱정을 안고 사는 것보다 자신이 생각하는 가장 이상적인 형태로 목숨을 끊는 것이 훨씬 낫다.



'···죽어버리자.'


...



죽고 싶었다.


하지만 자살에 필요한 도구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죽지 못했다.


스스로의 손으로 목을 졸라 죽을 수 있을 정도로 나의 의지는 강하지 않았으니까.


이대로 걷다보면 언젠가 굶어죽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정처없이 숲속을 걸어갔다.


어디를 바라보건 한결같이 평온한 숲이었다.


한참을 걷다보니 멀리서 유난히 반짝이는 곳이 보였다.


그곳은 작은 호수인듯했다.


주위에는 색색의 꽃들이 한가득 피어있었고, 새의 지저귐이 들려왔다.


아름답다.


그런 생각이 들어서 무의식적으로 호수를 향해 다가갔다.


그러다가 이곳에 있는 건 나 혼자만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호수의 한편에 자리잡은 커다란 나무.


그곳에서 한 소녀의 모습이 엿보였다.


맑고도 옅은 하늘색을 가진 머리카락, 길쭉한 귀.


하지만 그녀의 손에 쥐여진 날붙이와 그녀가 하려는 행동이 지나치게 인상깊었던 탓인지, 그녀의 겉모습은 잠시 뒤에야 들어왔다.


이름 모를 소녀가 쥐고 있는 날붙이의 끝은 명백하게 그녀의 목에 맞닿아있었다.


그것이 마치 익숙한 행동인 듯, 감겨있는 두 눈에는 어떠한 불안도 드러나지 않았다.


손의 떨림도 일절 보이지 않았다.


눈을 씻고 다시 보아도, 망설임의 편린이라고는 손톱만큼도 엿보이지 않았다.

그래서였을까.


작은 피 한방울이 날붙이를 따라 떨어져내렸을 때에는 저도 모르게 소리를 내버렸다.



"엇···!"


무척이나 작은 소리였다.


단지 숨을 크게 들이킬 뿐인 소리였다.


들키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생각은 멋드러지게 빗나가버렸다.



"거기 누구시죠?!"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이대로 숨어있을까.


그래봤자 들키는 건 시간문제겠지.


그녀가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다.


마치 나의 위치를 꿰뚫어보고 있는 느낌이다.


발소리가 다가온다.


다가오고, 다가온다.


끝내 참지 못하고, 나는 모습을 드러냈다.



"어, 그러니까···"


이런 상황에서는 무슨 말을 꺼내야 할까.


일단은 사과부터 해야하지 않을까.



"훔쳐봐서 미안···."


나는 좀처럼 고개를 들지 못했다.


나의 시선은 나의 발끝에 고정되어 있었다.


때문에 그녀가 무슨 표정을 짓고 있는지, 알 도리가 없었다.


그녀가 무슨 행동을 할지도 예측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녀가 나에게 한 행동에는 적잖이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어, 어어어···?"


차근차근 설명하자면, 일단 그녀의 두 손이 내 볼을 감쌌다.


한 손은 내 이마로 올라가고, 다른 한 손은 내 입술을 어루만졌다.


거기서 다시 두 손을 한곳으로 모으며 내 얼굴 전체를 쓰다듬었다.


마지막으로 비슷한 동작을 서너 번 반복했다.


어안이 벙벙해진 나는 그녀의 손이 떠나가자마자 설명을 요구했다.



"저, 저기, 그러니까, 이게 무슨···"


대화를 하기 위해서 고개를 들었다.


그건 실수였다.


나는 그녀의 얼굴을 본 순간 숨이 멎어버렸다.


결단코 그녀의 미모가 아름다웠기 때문만은 아니다.


변함없이 감겨있는 두 눈을 보고서 생겨난 말로는 표현하지 못하는, 그러면서도 처음 느껴보는 감정 때문이었다.


동정심과 동질감 그 어디에도 속하지 않으며, 그로부터 다가오는 감정은 사랑이라기엔 턱없이 부족하고, 기대라고는 상상조차 되질 않는 복잡한 수수께끼였다.



"죄송해요, 저는 앞을 보질 못해요."


그녀의 말보다도 먼저 알아차린 탓에 나는 놀라지 않고 반응할 수 있었다.



"그래, 그렇구나. 그래서 내 얼굴은 어떻게 생겼어?"

"죄송해요, 잘··· 모르겠어요···. 사람의 얼굴을 만져본 경험은 많지 않아서요."


두 번밖에 대화가 오고가질 않았는데, 그곳에는 모두 죄송하다는 말이 들어있었다.


불안한 걸까. 그녀는 두 손을 다소곳이 모아 가슴으로 끌어안았다.



"죄송하지만··· 혹시, 보셨나요?"

"봤어. 방해해서 미안하다고 생각하고 있어. 미안해. 진심으로."

"아, 아뇨, 괜찮아요··· 저야말로 죄송해요."


죄송해요, 라는 말은 그녀의 말버릇인 것 같았다.


사과의 말은 많이 하면 많이 할 수록 가치가 떨어진다는 걸 모르고 있는 걸까.


그게 아니라면, 사과를 하지 않고서는 대화할 수 없을 정도로 떨고 있는 걸까.


두 가지의 가능성이 있지만. 확연하게 후자에 해당하는 것이라고 단정지었다.


한 번 떨어져버린 그녀의 고개가 다시 일어서질 못했으니까.


그녀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궁금했으나, 나는 묻지 않기로 했다.


주제넘은 짓이라는 걸 알고 있었으니까.


내가 그녀의 사정을 알게 된다고 하여도 바꿔낼 수 있는 거라곤 없다.


그저 곁에서 힘내라고 말을 해주는 게 고작이겠지.


그건 단순한 동정에 불과하고, 그것은 그녀를 괴롭게 만들지도 모른다.



"저어, 주제넘은 말일지도 모르지만요···"

"응."

"괜찮으신가요···? 얼굴이 엄청 뜨거우신데···."


전혀 괜찮지 않다.


최대한 잊어보려고 노력하고는 있지만 상처부위가 불로 지지는 것처럼 아프다.


흘러내리는 피의 양은 상당해서 가만히 서있기만 해도 정신이 아득해져간다.


하지만 애써 웃어보였다.


차라리 이대로 죽는다면. 편하게 죽을 수 있을 것 같으니까.



"괜찮아. 감기 기운이 조금 있을뿐이야."

"그런, 가요··· 죄송해요, 괜한 참견해서···."

"아니야, 괜찮아. 걱정해줘서 고마워."


고마워, 라는 말을 듣자 그녀의 얼굴에서는 모든 표정과 감정들이 빠져나갔다.


뻐끔 벌어진 분홍빛 입술은 어떤 말도 꺼내지 못했고, 어떤 표정도 짓지 못하고 있었다.


이윽고 그녀는 결정했다는듯이 살며시 미소 지었다.


부자연스러운 미소였다. 그러나 진심이 느껴졌다.


그런 부자연스러운 진심은 묘하게 나를 안심시켰다.


그래서일까.


방심해버렸다.


애써 붙잡고 있던 의식의 끈을 놓아버렸다.


이제 한계다.


그렇게 생각한 순간

그녀의 몸이 기울었다.


기울은 것은 나였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은 조금 뒤의 일이었다.



정신을 잃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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