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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둘기의 서재

모험따윈 하고 싶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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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둘기
작품등록일 :
2020.07.27 19:58
최근연재일 :
2021.05.31 01:01
연재수 :
12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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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120
추천수 :
264
글자수 :
658,374

작성
20.08.01 2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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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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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글자
17쪽

거짓된 행복

DUMMY

아버지의 죽음은 충격적이었다.


언젠가 일어날 일이었다고는 해도, 나를 보살피고 키워준 가족의 죽음은 누구에게나 슬프게 다가왔다.



"몸조리 잘 하고. 너무 무리하진 말고."

"네, 안녕히계세요. 아주머니."


인사를 하고 짐꾸러미를 어깨에 걸친 뒤에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재잘재잘 시끄럽던 꼬맹이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마지막인데 얼굴도 못보고 떠나가자니 지난 시간들이 떠올라서 입안이 씁쓸했다.


주말마다 찾아와서 놀아달라고 찡얼대던 천진난만 꼬맹이도 이별에는 서투른 거겠지.



"쩝···."


입맛을 다셨다.


불가피하게 나는 고향으로 돌아가야만 했다.


아버지의 장례식을 치뤄야 한다는 것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병약해지신 어머니를 돌봐야만 했다.


고향까지의 거리는 상당했고, 어머니가 살아계신 한은 이곳에 돌아올 수 없기에 카페를 헐값에 팔아치웠다.


헐값이라고는 해도 건물을 판 것이어서, 당분간은 일하지 않고 먹고 살 돈이 마련되었다.


이 돈으로 어머니를 간병하면서 일자리를 알아봐야겠다.



"후우···."


꽃피우지 못하고 끝나버린 나의 청춘에 대한 미련을 한숨으로 흘려보냈다.


이제 자유로운 생활은 끝. 별일 없이 지나간 3년이란 세월이 그럭저럭 즐거웠다고 느껴졌다.


어깨가 무거워지는 건 한명의 사람으로서 어쩔 수 없는 거겠지.


마음의 정리까지 대강 마치고나니 해가 중천에 떠있었다.


주변에 적당히 보이는 식당으로 들어가서 끼니를 해결하고, 느긋하게 거리의 풍경을 눈에 새기면서 상인연합을 찾아갔다.


"사르티아 전초기지로 가는 마차가 있습니까?"

"네, 있어요. 곧 출발할 예정이니, 서두르시는 편이 좋겠네요."


말을 마치며, 직원은 표 한장을 건네주었다.


나는 돈주머니에서 1실버를 꺼내어 건네주었다.



"식사도 제공받겠습니다."

"약 8일 정도 걸릴 테니··· 어디보자···."


쓱. 쓱쓱.



깃펜이 종이 위를 빠르게 오고갔다.


그 다음, 직원은 카운터의 건너편으로 보이는 문으로 나갔다가 커다란 자루를 품에 안고 돌아왔다.



"34쿠퍼 더 주셔야해요."

"네? 그렇게나요?"


예상했던 것보다 돈이 훨씬 많이 요구되었다.


"요즘 식재료 값이 올랐거든요."


아아, 그런 거라면 납득이 가긴 한다.


최근 들어서 농가가 마수나 강도들에게 습격을 받는 일이 늘어나고 있다고 들었으니까.


왕실에서 사태가 심각해지기 전에 기사단을 파병했다고 하니, 조만간 원래대로 돌아가겠지.


이번에는 운이 좋지 않았다고 생각하자.



"알겠습니다."


순순히 돈을 추가로 지불했다.


건네받은 포대를 껴안았다.


묵직하고 무거워서 오랫동안 들지는 못하겠다.


평소에 내가 얼마나 운동을 안했는지 직접적으로 체감됐다.



"마차는 어디로 가면 됩니까?"

"저쪽으로 나가셔서 오른쪽으로 꺾으시면 마구간이 보일 거에요."


직원의 손가락을 눈으로 따라서 나가는 문을 확인했다.


그리고 원래대로 돌아와서 가볍게 목례했다.



"다음에 또 이용해주세요."


...



마차를 바로 구할 수 있다는 점에서는 운이 좋았다.


때가 맞지 않으면 일주일이 넘게 기다려야 하는 경우도 있지만, 도착하자마자 탈 수 있었으니까.


또 하나 운이 좋은 점이 있다면, 마차를 경호하는 모험가들의 성격이 좋다는 거.



"있지있지, 몇 살이야?"


쿡.



보기 드문 붉은 머리카락의 여성이 내 옆구리를 찔렀다.


남자의 행동이었다면 무덤덤하게 입안에 든 사과를 씹고 있었겠지만, 내 지나온 삶에서 여성이 이토록 관심을 보였던 적은 드물기에 적잖이 당황했다.



"쿨럭···! 쿨럭···!"


두꺼운 사과 조각이 식도를 긁으며 위장으로 떨어졌다.



"어머, 미안."

"아, 괜찮습니다. 나이 말씀이시죠? 스물하나입니다."


몸속에서 씹히지 않은 사과의 위치가 느껴졌다. 이 느낌이 사라지려면 조금 오래 걸릴 것 같다.



"생각보다 젊네."


여성은 실망한듯이 고개를 푹 떨구었다.


그녀의 머리 위에 놓여있던 챙이 넓은 모자가 스르륵 흘러내렸다.


내가 그렇게까지 노안인 건가.


하하. 그 모습을 보고 있던 남자가 닦고 있던 갑옷을 내려놓으며 쓴웃음을 지었다.



"죄송해요. 세리스가 지금 결혼하기 아슬아슬한 나이인데 연상이 좋다는 고집만은 버리질 않더라고요."


끄덕끄덕. 이번에는 단검을 만지작거리던 남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아까부터 말이 없어서 그런지 주의해서 보지 않으면 금새 잊혀져버렸다.


그래서 끄덕끄덕 이후로는 내 인식에서 벗어났다.



"리시스 씨, 라고 했던가요? 저와 동갑이시네요."

"엇, 생각보다 적으시군요."


나랑 같은 나이인데도 모험가를 하다니.


심지어는 전사다.


나하고 체격도 비슷하고 키도 비슷하다.


하지만 노력의 산물로 보이는 근육들이 엿보인다.


꿈을 위해서 노력한 건가.


이름이 뭐였더라. 처음에 만나서 악수를 할 때에 교환했을 텐데.


분명···


"소루스 씨."

"네, 뭔가요?"


잠깐의 정적을 흘려보내며, 먹다 만 사과를 내려놓았다.


무릎을 끌어안고, 그 위로 턱을 얹었다.



"왜 모험가가 되신 건가요?"

"어릴 적부터 꿈이었거든요. 남들이 보지 못한 세계를 보고, 좋은 동료들과 하나뿐인 모험을 하는 게."


'아아, 역시.'


납득을 하자, 열등감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약간의 질투도 떠올랐고, 나도 스스로를 평범한 사람이라 치부하지 말았으면 하고 후회도 했다.


차라리 물어보지 말 걸 그랬다.



"리시스 씨는 평소에 무얼 하시나요?"


꿈을 포기하고 살아온 인간에게 앞으로 나아가는 인간이 질문을 던져왔다.


그건 예상밖의 일이어서, 대답하기까지 조금 시간이 걸렸다.


나의 삶이, 뭐랄까.


하찮게 느껴졌다.



"카페를 운영했습니다. 커피를 볶고, 갈고, 내려서 손님들께 대접하죠."

"헤에, 멋지네요."


멋지기는 개뿔.


입을 틀어막아서 튀어나오려던 자기혐오를 끊었다.


나는 스스로를 멋지다고 생각할 만큼 자존감 높은 사람이 아니다.


둘 중 하나에 속하라고 명령하면 오히려 그 반대에 들어갈 사람.


하지만 그런 명령조차 없다면 가운데의 선에 서서 들락날락하며 어중간하게 있을 거다.


꿈을 쫓고 싶다.


하지만 위험을 감수하고 싶지는 않다.


그런 생각으로 살아오다가 결국에는 꿈을 포기했다.


어머니가 갑작스런 병에 걸리셔서 카페를 물려주시지 않았더라면 나는 지금 어떤 삶을 살아가고 있었을까.


이후 날아오는 질문이라던가 대화를 적당히 받아치며 곰곰이 고민했다. "그렇군요." 라던가, "헤에." 같은 감탄사가 대부분.


이제는 물어보기가 무서웠다.


조금 지나자, 지나간 과거에서 일어나지 않을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는 것도 지쳤다.


그냥 솔직하게 부러워하자.


결국에는 그렇게 결론을 내리며, 꿈을 향해 나아가기에는 너무 늦어버린 나를 타일렀다.



...



"흐아아암··· !"


하품이 나왔다. 어느샌가 잠들어있었다.


일어난 지금은 밤이었고, 타닥타닥 타오르는 모닥불 소리와 모험가들의 대화소리가 두런두런 들려왔다.


몸을 일으키고, 짐칸에서 나왔다.


그러자 시선이 우르르 쏠렸다.



"아, 일어나셨군요."

"푹 자라고 안 깨우고 있었어."


그리고 여전히 말없는 한 사람.


이름도 모르겠고, 목소리도 모르겠다.


로브의 후드를 깊게 눌러쓰고 있는 탓에 얼굴도 모르겠다.


모험가인 것과 직업이 도적이라는 걸 제외하곤 하나도 모르겠다.


뭘까, 이 사람.


평범한 인간인 나의 관점에서는 이해하기 힘든 개성이었다.



"와서 먹을래?"


붉은 머리카락을 가진 마법사. 그러니까, 세리카, 라고 했던가.


세리카가 그릇에 담긴 스튜를 보여주며 손짓했다.


배가 고팠기에 일단은 받아들기로 했다.



"하지만 이건 여러분의 식량이잖습니까. 이렇게 받아먹어도 되나요?"

"괜찮아! 괜찮아!"


퍽퍽.



세리카의 손이 매섭게 나의 등을 두드렸다.



"나눔은 좋은 거잖아요."


소루스가 살갑게 웃어보였다.


"그럼 사양않고 먹겠습니다."

"넵, 사양말고 드셔주세요!"


스튜에는 여러 야채들이 들어있었다.


큼직하게 잘린 야채들의 사이로는 내가 먹어왔던 스튜에서는 보지 못했던 것이 하나 들어있었다.


그것은 진한 노란색을 띠고 있었고, 두꺼운 진녹색의 껍질을 가지고 있었다.



"단호박···?"


그렇다. 단호박이다.


스튜에 단호박이라니, 이게 무슨 말인가. 단호박이 들어간다는 건 듣도보도 못했다.



"그거 꽤나 맛있어."

"그렇게 말하는 세리카 너는 맨날 안 먹잖아."


세리카와 소루스의 대화를 듣게되자, 먹을지 말지 본격적으로 고민하게 되었다.


기본적으로 단호박은 달달하다. 그래서 이름도 단호박이다.


하지만 문제는 바로 그거다.


스튜는 단 음식과 짠 음식 중에서 짠 음식에 해당하는 음식.


그곳에 단 음식이 들어간다면.


대체 어떤 맛이 나올까. 이상하지는 않을까.


아니, 정말로 그 맛이 이상했다면 스튜에 단호박을 넣을 이유는 없지 않은가.


이 스튜를 만든 누군가가 어지간히 이상한 미각을 지닌 게 아니라면.


맛있으니까 들어간 거겠지.


그래, 먹자. 먹는 거다.


단호박을 입속으로 가져갔다.


간이 과하게 되어서 짭짤한 스튜의 국물과 달달한 단호박이 입속에서 조화를 이뤘다.


달다. 그리고 짜다.


달고, 짜다.


이것이 단짠이란 건가.


배가 고팠던 탓인지 허겁지겁 먹게 되었다.



"입에 맞으시는 것 같아서 다행입니다."

"천천히 먹어, 그러다 체한다."


고개를 끄덕이며, 스푼을 열심히 움직였다.


맛에 대해 평가하자면 지친 모험가들의 대충 만들고 싶다는 욕구와 그럼에도 맛있는 음식을 먹고 싶다는 욕망이 담겨있다는 느낌.


조미료와 향신료가 자극적이지만 그래서인지 중독성이 강하다.


그래서 먹는 걸 관두기가 힘들다.

먹고, 먹고, 또 먹었다.


저녁을 먹지 않았다고는 해도 이렇게나 들어가는구나, 싶을 만큼 먹었다.


두 사람은 흐뭇하게 지켜보고 있었다.


허기가 사라진 다음에야, 대화할 여유가 생겨났다.



"그러고 보니···"


그러나 대화 하지 못했다.



털썩.



쓰러지는 소리가 났다.


그때가 되어서야 비로소 나는 말없던 그 사람의 이름을 처음으로 알 수 있었다.



"카리스?!"

"뭐야?! 무슨 일이야?!"


무슨 일일까.


나는 바로 앞에서 벌어진 상황을 직접 보고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받아들이지 못한 채로, 방금 먹었던 스튜를 땅바닥에 있는대로 쏟아내었다.



"우우욱···!"


징그러웠다. 카리스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었던 시체의 등에 붙은 생명체는 징그러웠다.


보고있는 것만으로 내장이 뒤틀리는 것 같았다.


검은 피부, 얼굴도 눈도 보이지 않는다. 사람의 머리를 집어삼킬 만큼 커다란 입과 삽처럼 생긴 발톱으로 시체의 등에 붙어서 꿈틀거리고 있다.


꿈틀거리며, 무언가를 먹어치우고 있다.



"이게 무슨···!"


내가 파악을 하지 못하고 있어도, 상황을 계속해서 돌아갔다.


우선, 시체의 등에 달라붙은 괴생명체를 떼어내기 위해 소루스가 검을 휘둘렀다.


검은 괴생명체의 등에 박혔고, 그것은 움직임을 멈추었다.


이윽고 검이 뽑히자, 갈라진 등에서는 인간의 것으로 추정되는 내장이 쏟아져나왔다.


그것을 본 나는 다시 한 번 고개를 숙이고, 눈을 감으며 토를 쏟아냈다.



"우웨에엑···!"


멈추지를 않았다. 나중에는 나올 것이 없어서 신물이 뚝뚝 흘러내렸다.


오로지 소리만으로 상황을 전달받을 수 있었으나, 그 어떤 소리도 전해들을 수가 없었다.


주위가 그저 한없이 소란스러웠다.



"끄아아아악!"

"소루스?!"

"도, 도망쳐···!"

"안 돼, 그럴 수는··· 꺄아아악!"


머지않아 주위는 조용해졌다. 사람의 목소리는 더이상 들려오지 않았다.


전부 죽어버린 건가.


나는, 어떻게 된 거지.


살아있다.


무언가가 덮쳐오지도 않았다.


이제 끝난 걸까.


고개를 들고, 천천힌 눈을 떴다.


괴생명체들이 몸을 꿈틀거리며 쓰러진 소루스와 세리카의 내장을 파먹는 소리가 들려온 건 그때부터였다.


그리고 곧 나를 덮칠 한 마리가 다가오는 것이 보인 것도.


눈을 뜬 직후였다.



'도망쳐.'


그 생각밖에 나지 않았다.


무릎이 펴지고, 등이 돌려지고, 소리를 지르며 달아나졌다.


이렇게 해야겠다는 생각도 의지도 없었는데.


내 몸이 알아서 도망치고 있었다.



"으, 으아아아아아악!"


도망쳐야한다. 도망치는 거다. 이대로 도망치자. 생각하지 말고 도망치자. 뒤도 돌아보지 말자. 그저 도망치는 거다. 도망쳐. 도망쳐. 도망쳐.



툭.



"어···?"


무언가에 걸려서 넘어졌다. 돌부리, 라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묵직했다.


사람의 다리였다.


입고 있는 옷은 본 기억이 있다.


이것은 마차를 몰던 마부의 거다.



"아아···!"


한줄기의 희망이 비추었다. 죽지 않은 사람을 만날 수 있다니.


괜찮다. 살 수 있다. 이 마부 아저씨와 함께 도망치는 거다.



"마부 아저씨! 일어나요!"


이런 들판에서 이불도 덮지 않고 잠들다니 이상한 아저씨다.


그래서 아무렴 어떠한가.


절망적인 상황에 홀로 놓여지는 것보다는 백배 낫다.



"빨리! 모험가들이 이상한 괴물들한테 당했다고요! 우리라도 도망칩시다! 예?!"


몸을 마구 흔들었다.


그러나 그는 깊이 잠든 걸까. 일어나지 않고 있었다.


하는 수 없다. 이렇게 된 이상은 내가 짊어지고 가야만 한다.



"하나, 둘···!"


기합을 넣으며 마부 아저씨의 팔을 어깨에 걸치고 일어섰다.


생각보다 무겁다. 발을 내딛기가 힘들다. 고작 세 발자국도 나아가지 못했는데도 숨이 찬다.


아니, 그럼에도 해야만 한다. 하는 거다. 이건 사람을 구하는 일이다.



"끄으으으···!"


한 발을 내딛었다.


그리고 다시 한 발.


또 한 발.


괜찮다. 제대로 나아가고 있다.


이대로라면.


그렇다. 이대로라면.


이대로만 간다면.



쿡.



"어···?"


마부 아저씨를 짊어진 팔에서 힘이 빠져나갔다.


끈적하고 뜨거운 무언가가 왼쪽 팔에 달라붙었다.



"아야···!"


아프다. 불에 타는 것만 같다.



"뭐··· 야···?"


그곳에는 작은 괴물이 붙어있었다. 검은 피부, 그리고 삽과도 같은 발톱. 큼지막한 입까지.


크기가 작을뿐이지, 모험가들의 내장을 파먹던 그것과 다름이 없었다.



"아, 아아아···?"


처음에는 당황했다.


그래서 그게 뭔지 몰랐다.



"아아."


이어서는 그게 뭔지 깨달았다.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아프다. 아프다. 아프다. 아프다. 아파. 아파. 아파. 아파. 그만해. 떨어져. 살려줘. 저리가. 부탁이야. 나한테 이러지 말아줘. 그만. 그만. 그만. 그만.



쿠구국.



두껍고 날카로운 이빨이 살을 파고들었다.



"끄아아아아악!"


바닥에 쓰러져서 몸부림 치고 있자, 꿈틀거리며 피를 빨아먹기 시작한다.



꿀럭꿀럭.



기괴한 소리가 울려퍼졌다.


손으로 잡아서 떼어내려해보지만, 힘을 줄 수록 이빨을 깊숙히 박는다.


그럼에도 떼어내려고 힘을 주었다.


살점이 뜯겨나가고 있다.



"아아아악!!!"


무리. 무리다. 이런 거, 떼어낼 수 없다. 아프다. 아프다. 아프다. 아프고 아파서 떼어내고 싶지 않다. 죽는 것만 아니라면 차라리 이대로 놔두는 게 좋다.


그렇게 생각하자, 시야가 흐릿해졌다.


이내 왼팔이 마비되었다. 고통이 느껴지지 않자, 무언가가 몸속에서 퍼지고 있음을 체감했다.


독이었다.



"그, 그만해!"


말로 부탁해도 알아들을 리가 없어서 아무 돌이나 주워서 찍었다.


마구 찍었다.


도망쳐야 한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찍는다. 죽인다. 내가 죽기 전에 죽여야만 한다. 죽이고서, 도망친다.


그러니까 찍는다.



퍽.


퍽.


퍽.



살갗이 벗겨졌다.



퍽.


퍽.


퍽.



피가 튀어오른다.



퍽.

퍽.


퍽.


퍽.


퍽.


퍽.


퍽.


퍽.



작은 괴물은 움직임을 멈추었다.


그것을 팔에서 떼어내자, 까맣게 물든 살점이 함께 떨어져나갔다.


그 살점은 엄연히 나의 것이었다.


왼팔을 보았다.


그곳에는 뜯겨나간 살점의 빈자리가 있었다. 피가 흐르고 있었다.



"하, 하하하하···!"


웃음이 나왔다.


원인은 모르겠다.


일단 웃었다.


괴물의 사체를 짓밝고, 짓이기며 웃었다.


이건 광기가 아니다. 이건 독이 일으키는 웃음이다. 위험하다는 증거다. 도망쳐야한다. 살아야 한다.


뒤늦게 깨닫고서, 달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미 늦은 것 같다.


세상이 보라색으로 물들다가 이내 무지개빛으로 보였다.


입가에서부터 웃음이 번지다가, 이내 행복하다고 느꼈다.


아아, 나는 행복하다. 이렇게 죽을 수 있어서 행복하다.


나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인간이다.


그러니 죽어도 괜찮다.


그래.


죽자.


행복하게 죽어버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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