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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둘기의 서재

모험이 떠나고 싶었기에 떠나보았습니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라이트노벨

완결

B둘기
작품등록일 :
2020.05.10 03:18
최근연재일 :
2020.07.23 00:47
연재수 :
38 회
조회수 :
1,152
추천수 :
7
글자수 :
224,703

작성
20.06.06 16:36
조회
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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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사람은 사람을 만남으로서 변화한다.

DUMMY

“여기까지 오면 괜찮을 거예요.”

으쌰. 하고 추임새를 넣으며 아루아는 나를 내려주었다.


“있지, 왜 나를 들고 온 건지 물어봐도 돼?”


음 하고 아루아는 잠시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르페할 숲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결계를 지나가야 해요. 하지만 엘프가 아니라면 들어올 수 없어요.”


“그래서 나를 짐짝취급 했구나.”

농담을 해봤다.


“네, 짐짝은 생물로 취급 안하니까요.”

어이. 부정하지 않는 거냐. 농담이었는데.

나 상처 입는다?!


언짢은 표정으로 항의했다.


물론 가볍게 무시당했다.


“저기 보이시나요?”

“뭐가?”

“저 나무요.”


아루아는 손끝으로 높은 곳을 가리켰다.

그녀의 손끝을 따라 시선을 옮기자,

“오···”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세계수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자라난 거대한 세계수.


잎사귀들이 멀리서보니 마치 구름과도 같았다. 구름보다도 높이 솟아오른 올곧지 못한 줄기는 거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의 바로 옆에 자란 나무들보다도 두꺼웠다. 그곳에서 뻗어 나온 가지들은 줄기만큼이나 구불구불하게 자라있었다.


“가까이서 보면 더 굉장하실 거예요.”

“벌써부터 기대되는 걸.”


...


세계수가 보인다.

하지만 감상을 품는 건 잠깐 뒤에 하자.


“이걸 걸쳐주세요.”

아루아가 누더기 후드를 던져주었다.


일단은 걸치면서 이유를 물었다.

“왜?”


“엘프들은 인간을 꺼려하니까요.”

“너는 예외인 거야?”

싫어하는데 같이 있는 거라면 미안해진다.


“저는 좋아하지도 싫어하지도 않아요.”

그렇군.


어중간한 바람으로는 벗겨지지 않도록 깊게 눌러쓴 뒤에야 세계수를 감상했다.


세계수의 잎사귀와 가지가 하늘을 가린 탓에 낮인데도 어둡다.

하지만 빛이 없는 건 아니다. 세계수의 곳곳에 난 창문들로부터 은은하면서도 따스한 불빛이 새어나오고 있다.


엘프들은 세계수의 안에 집을 짓고 산다더니 진짜였구나.


“이건 뭐야?”

세계수의 밑에 다다르고, 커다란 나무상자 안에 들어왔다.


“승강기요. 처음 보시나요?”

“어, 그런데. 마법으로 움직이는 건가?”

“마법은 사용하지 않아요.”

아루아는 대답하며 나무상자 안에 놓인 줄 하나를 잡아당겼다.


덜컹.


“우왓?!”

상자가 흔들리더니 하늘 위로 천천히 상승하기 시작했다.


엘프가 기술의 대부분을 마법에 의지하고 있다는 건 편견이었구나.


승강기, 라고 하는 나무상자 덕분에 금새 세계수의 위에 도착할 수 있었다.


대단하도다. 엘프의 기술력.


“나중에 안내해드릴 테니, 따라와 주세요.”

그녀의 말에 따르지 않고 처음 보는 풍경에 심취해 두리번거리다가 무언가에 걸려 넘어졌다.


“아야···!”

“정말이지, 버리기 전에 얌전히 계세요.”

대가로 협박에 가까운 꾸지람을 듣고 깊이 반성하며 얌전히 따라갔다.


“볼 건 없지만 들어오세요.”


응, 그러네, 정말 눈에 띠는 거라곤 하나도 없구나. 기대하기 전에 말해줘서 고마워.


는 아니지. 인간적으로.

내 인성은 언제부터 은혜도 모르는 미천한 경지에 이르렀는가.


그러므로 생각을 고쳐서···

와! 정말 평범한 집인 걸! 안심된다!


이정도면 되겠지.

“편한 곳에 앉아주세요.”

평범한 집, 이라고는 하나 세계수의 안에 집이 있다는 것 자체로도 인간인 나에게는 신선한 자극이다.

가구의 대부분이 나무로 만들어져 있다. 이 가구들은 모두 세계수의 내부를 깎아서 만든 것 같다.


창밖으로 보이는 세상은 들판의 풀처럼 끝없이 내리깔린 나무들과 수평선 너머로 떨어져가는 태양.

노을이 지고 있기에 그 풍경에는 황혼의 눈부심이 더해졌다.


“크···”

이런 곳에서는 고기안주에다가 와인을 그냥···!


해보고 싶다. 평범한 서민이었기에 고기안주에 와인을 마시는 사치스러운 경험은 일절 없었으니까.


짐을 다 정리한 아루아가 거실로 돌아왔다.


“식사부터 하실래요? 아니면 목욕? 그것도 아니라면···”


답은 정해져있다.

“그래, 너부터 할게.”


“···헛소리 지껄이지 마세요.”

“미안.”

솔직히 오해할만도 하고, 장난인데 그렇게 정색할 필욘 없잖아!


“알면 됐어요. 식사는 시간이 걸릴 테니 먼저 목욕부터 하세요.”

답은 정해져있었고 나는 그저 대답만 하면 되는 상황이었구나.

줄여서 답정나.


“그럼 씻고 올게. 욕실은 어디야?”

“뒤로 도시면 바로 보이죠?”


...


“와···”

나는 감탄했다. 내가 이렇게까지 더러웠나.


흐르는 물에 몸을 씻자, 그 물이 시커멓게 변했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에 한 번도 안 씻었었지.

나를 업고 온 아루아에게 미안해지는 걸.


수도꼭지를 돌리면 천장에 작은 구멍이 열리며 그곳에서부터 물이 떨어지는 구조의 욕실.

그곳에서 세계수의 물로 샤워를 하고 있자니 뭐랄까.

정화되어가고 있다는 느낌이랄까.


근데 그와 반대로 발밑을 내려다보면 더러운 내 몸을 씻은 대가로 구정물이 되어있어서 죄책감이 느껴진다.

죄송합니다. 세계수님.


...


아루아가 준비해준 옷은 나에게는 맞지 않았다.

몸의 크기는 얼추 맞지만 팔이라던가 다리의 소매가 너무 길어서 서너 번은 접어야 했다.


수건으로 머리를 말리며 욕실을 나왔다.

“욕실 잘 썼어. 고마워.”

“별 말씀을요. 곧 식사도 준비가 끝나니 앉아계세요.”


지시대로 목재원형식탁에 턱을 괴고 앉아, 머리를 뒤로 묶고 분홍색의 앞치마를 찬 그녀를 바라보았다.


이러고 있자니 신혼부부 같네.


보통 이런 상황에 놓이게 되면 평범한 인간 남성의 경우 이미 애를 몇 명이나 나을지에 대한 가족계획까지 설계를 마쳐둔다.


나 또한 일반 남성이기에 그러하다.

딸 하나에 아들 하나. 그리고 그녀가 원한다면 더 만들자.


내가 그녀와 결혼하게 될 가능성은 희박하겠지만.

이런 미래는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


“있지, 실례되는 질문이지만 너는 혹시···”

요리를 하면서도 눈을 감고 있는 아루아에게 질문을 던지려고 했다.

그러나 던지기도 전에 답이 돌아왔다.

“네, 시각장애인이에요.”


“아···.”


“놀라셨나요?”

여러모로 놀랐다.


“응, 눈이 보이지 않는데 일반인과 다를 바 없는 생활이 가능하다니. 엘프가 인간보다 감각이 뛰어나서 그런가?”

엘프는 마법의 원소인 마나를 이용해서 감각을 예리하게 한다던가.


“···그것도 있겠지만, 제법 노력했거든요. 그 덕분에 소리로 주위의 사물을 파악할 수 있게 됐죠.”

“대단하네.”

“헤헤, 칭찬 받는 건 오랜만이네요.”


대화가 끊기고 잠시 지나자, 아루아가 접시에 담긴 음식들을 들고 왔다.

주로 사용된 재료는 나무열매나 허브와 같은 엘프라면 이런 걸 먹을 거라는 예상을 크게 벗어나지 않은 것들.


“어라? 이건 무슨 고기야?”

“토끼요.”

숲속의 동물들과 룰루랄라 할 거라고 생각했던 엘프가 토끼고기라니.


“엘프는 고기 안 먹지 않아?”

“그건 엘프들 사이에서 채식주의자들이 많은 탓에 생겨난 편견이랍니다.”

“그렇구나.”

지식이 하나 늘었다.


““잘 먹겠습니다.””

매섭게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맛있다.


나무열매로 만든 독특한 소스가 상큼하고 산뜻하게 입맛을 돋궈준다. 향기롭고 이색적인 허브의 향기가 입안을 가득 채우고, 그 뒤로 얇게 썰린 고기가 부드럽게 들어와 육즙을 터트린다.


아··· 울 것 같다.


제대로 된 음식이다.

사악하게 맛없는 캠스타도, 고무보다 고무 같은 푸른가시엄니의 고기도 아니다.

맛있고 정상적인 고기다.

한 번 씹을 때마다 온몸이 맛에 전율한다.

결코 과장이 아니다.


“맛은 어떠신가요?”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생긴다면 그 사람에게도 먹여주고 싶은 맛이야.”

“우와, 닭살···”

아루아는 덜덜 떠는 시늉을 했다.


“로맨틱하다고 말해줘.”

“그것도 정도가 있죠.”


아니, 그 정도라고 생각하는데요.

엘프랑 인간은 로맨틱함에 대한 내성이 다른 건가?

그럴지도 모른다며 납득했다.


“아무튼 무진장 맛있어.”

“참 다행이네요.”


그렇게 다시 이야기가 끊기고, 식사를 마칠 때까지 이어지는 일은 없었다.

설거지는 내가 도맡아 했다. 맛있는 식사를 대접해준 것에 대한 보답이다.


“더 도와줄 건 없어?”

“네.”

아루아는 하나의 불빛만을 남겨두고 침대에 누워있었다.


나도 그녀가 바닥에 깔아준 이불 위로 몸을 눕혔다.

피곤함이 밀려왔다.


“슬슬 이야기해주세요.”

내 모험담 말인가.

졸리기는 하지만 여력은 남아있다.


으음,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될까.

잠시 고민한 뒤에 입을 열었다.


좋아. 여기서부터 시작하자.


“평범하게 살아가다가, 한순간의 변덕으로 모험을 떠나자고 결심했어.

그래서 그동안 모아둔 돈을 몽땅 써서 준비를 하고 모험을 떠났지.

목적지를 이곳으로 정한 이유는 그저 가장 가까워서였어······”


그렇게 밤이 깊어갔다.

아루아는 웃기도 하고, 감탄하기도 하고, 부러워하기도 했다.

그럴 만한 이야기는 아니라고 여겼던 나의 생각을 부정했다.


모험을 좋아한다고 했었지.

정말 많이 좋아하는 모양이다.


그런 그녀 덕분에 나는 약간의 자긍심을 지닐 수 있었다.

캠스타에게 물렸던 일, 모기에게 시달렸던 일, 곰한테서 몰래 도망쳤던 일, 푸른가시엄니와 싸웠다던가, 늑대에게 쫓겼다던가. 등등.


이야기를 하고 있자니, 즐거웠다.


매순간 목숨이 위험했지만, 후회는 남아있지 않았다.


나는 지금 행복하다.


“······그렇게 너를 만났지.”

어느덧 이야기가 끝을 맞이했다.


“근사하네요.”

“그런가?”

“네, 특히 늑대들한테서 도망칠 때 멋있었어요.”

여자한테서 멋있다는 말을 들은 건 상당히 오랜만이군.


그 탓인지 부끄럽다.

화제를 돌리기로 했다.

“아루아 너는 하고 싶은 거라던가 있어?”

“···저요?”

“나라도 괜찮다면 들어줄게. ···라고는 해도 그저 내 호기심이지만.”


정적이 흘렀다.


그것이 흐른 시간이 살짝 길어서.

나는 아루아가 잠든 것이 아닐지 의심했다.

하지만 그건 쓸데없는 걱정이었다.


그녀는 나의 물음에 제대로 답해주었다.


“···저도, 하고 싶어요.”

“무엇을?”

되돌아오는 물음에 아루아는 이불을 입까지 덮었다.


“모험이요.”

“그럼 하면 되잖아.”

“···저는 보기보다 겁쟁이랍니다. 헤헤··· 우습죠?”


나는 즉시 부정했다. 그리고 내가 생각하는대로 말했다.

“우습지 않아. 나도 겁쟁이니까. 그 마음을 잘 알고 있어. 어딘가로 돌려버리지 않고는 무너져버릴 무거운 감정을 떠안지 않았더라면, 언제까지고 일상만을 보내고 있었겠지.”


“그런가요···.”


“그러니까, 그때부터라도 늦지 않는다고 생각해. 겁쟁이인 네가 어떠한 계기를 얻고서, 스스로의 의지로 발을 내딛는 그 순간부터. 너의 모험이 시작되는 거니까.”

뭐,

“엘프의 수명은 인간보다 훨씬 기니까. 기회는 반드시 찾아올 거야.”


아루아가 키득키득 웃었다.

뭐가 웃긴 걸까.


“리시스 씨는 역시 좋은 사람이네요.”

“고작 하루 지낸 거 가지고 판단하기엔 이르지 않아?”

“그걸 묻는 데에서 이미 좋은 사람이지 않나요?”


이러한 답이 돌아오면 나는 말을 잃는다.

어쩌면 나는 내 생각보다 좋은 사람일지도 모른다고, 무심코 믿게 된다.


그래도 나는 좋은 사람으로 있고 싶지는 않다. 그저 그런 사람으로 있고 싶다.

그저 그런 사람으로 있을 수 없다면 나쁜 사람으로 보이고 싶다.

만일 나쁜 사람인 나를 사랑해주는 누군가가 온다면, 그 사람은 진심으로 나를 사랑하고 있다는 거니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자니, 불이 꺼졌다.


“내일은 이곳은 찬찬히 안내해드릴게요. 안녕히 주무세요.”

“응, 잘 자.”

눈을 감았다.


오늘은 편히 잠들 수 있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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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카페 '마카롱' 20.06.20 24 0 13쪽
11 미궁도시 제카플론 20.06.14 20 0 13쪽
10 깊고 깊은 안포니아 숲에서 +2 20.06.13 33 1 16쪽
9 마법을 배우자. +2 20.06.07 41 1 17쪽
» 사람은 사람을 만남으로서 변화한다. 20.06.06 39 0 12쪽
7 물의 용과 아루아 20.05.31 39 0 16쪽
6 돌연히 찾아온 물의 시련 20.05.30 26 0 19쪽
5 이것은 미궁인 거시여 20.05.24 32 0 19쪽
4 모기 그리고 곰 그리고 멧돼지 20.05.18 30 0 21쪽
3 이제는 지긋지긋한 초원과 작별이다. 20.05.18 51 0 7쪽
2 나약한 인간은 모험을 떠났습니다. 20.05.10 67 0 15쪽
1 프롤로그 20.05.10 101 0 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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