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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르주의 서재

왕가의 후계자가 마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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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르주
작품등록일 :
2021.01.31 19:29
최근연재일 :
2021.03.12 19:05
연재수 :
3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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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03
추천수 :
146
글자수 :
186,6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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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2.26 1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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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사냥꾼들(2)

DUMMY

길포드 후작이 수도에 올 때면 여자아이를 하나 꼭 데리고 왔었다.

처음 만났을 때 그 아이는 무표정한 얼굴을 하고는

말없이 내게 고개만 숙이며 인사했었다.


유바와 동갑이라고 했다.

처음에는 수줍음이 많거나 낯을 가리는 성격인 줄 알고 다가가기가 어려웠는데,

알고 보니 그냥 말수만 적은 아이였다.

말수만 적다 뿐이지 활동량은 나랑 조슈아를 합쳐도 당해낼 수 없을 정도였다.


우리는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재미있게 놀았다.

워낙에 당차고 씩씩해서 유바나 조슈아랑 노는 것보다 더 재미있었지.

그때의 그 아이가 이렇게 컸군.


“메그. 우리를 구하러 온 것인가?”

“예.”

“고맙군. 그런데 길포드 후작은 어디에 계신가?”

“성에 계십니다.”


무표정한 얼굴과 과묵함은 여전했다.


“거의 10년 만에 보는 건가? 메그 너는 몰라보게 아름다워졌구나.”

“고맙습니다.”


다른 사람은 우리가 매우 어색해한다고 생각하겠지만,

전혀 그렇지 않았다.

메그는 원래 저런 화법을 구사하는 녀석이고,

나는 그런 메그를 잘 알기 때문에 불편하거나 어색하지 않다.

그저 오랜만에 사촌을 만나 매우 편하고 반가울 뿐이었다.


메그는 말없이 내가 탈 말을 건네주었다.

그 말을 타고 길포드의 성으로 돌아갔다.


해가 떠오르고 있었다.

길포드의 성 입구에서는 낮게 비추는 햇빛을 받으며 무장한 기사와 병사들이 나오고 있었다.

그들의 표정은 모두 비장했다.


“남아있는 몬스터들을 처리하러 가는 건가?”


날이 밝으면 남은 몬스터들을 사냥하겠다던 길포드 후작의 말이 떠올랐다.

메그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인간의 시간이니까요.”

“이 많은 군대가 매번 움직이는 건가?”

“몬스터가 나타난 다음 날에만요.”

“그렇군.”

“왕자님. 저기.”


메그가 성벽 위를 가리켰다.

햇빛에 눈살을 찌푸리며 그녀가 가리키는 성벽 위를 바라봤다.

성벽 위에는 길포드 후작이 있었다.

그는 어젯밤 성문을 나설 때 나를 보던 그 모습 그대로 거기 서 있었다.


“밤새 저기에 서 있었던 건 아니겠지?”

“그럴 리가요.”


우리가 성안으로 들어서자 길포드 후작은 어느새 아래로 내려와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나를 보자마자 웃으며 말했다.


“무사하셨군요.”

“해가 뜨기 전에는 절대 성문을 열지 않을 것처럼 하더니 무슨 바람이 불어서 메그를 보냈소?”

“제 영지에서 로드리아 왕실의 후계자가 죽으면 안 되니까요.”


그럼 처음부터 같이 갔으면 좋았잖아.

라고 말하는 듯한 얼굴로 길포드 후작을 바라봤다.

하지만 입에서는 다른 말이 나왔다.


“뭐. 덕분에 살았소.”

“트롤을 만나셨다고 들었습니다.”

“메그와 타슈마르 가의 병사들이 처리했소. 실력이 뛰어나더군.”

“네. 그 짓만 평생을 해온 자들이니까요. 돌아가실 때 또 만날 수도 있으니 성수를 챙겨 드리겠습니다.”

“또 만난다니. 악담이 심하군.”


길포드 그 험악한 얼굴에 미소를 만들어냈다.

10년 전 어린 나를 대할 때 보였던 그 미소였다.


“일단 들어가서 좀 쉬시지요. 처음에 데리고 오신 그 기사는 완쾌하려면 며칠이 걸릴 것 같습니다.”

“빌튼 말고도 치료받아야 할 사람들이 더 있소.”


나는 내 뒤에서 걸어오는 험프리와 기사들을 가리켰다.

엘리나야 부상 입은 곳은 딱히 없어서 괜찮지만,

기사들은 여기저기 찢어지고 부러진 곳 천지였다.


“당분간 제 성에서 편히 쉬십시오.”


그렇게 길포드 후작의 성에서 지내는 두 번째 날이 밝았다.


*


*


*


“으하암.”


시끄러운 소리에 잠이 깨버렸다.

몸이 찌뿌둥해서 기지개를 켜려는데.


“윽!”


몸이 쑤신다.

이곳저곳 안 쑤신 곳이 없이 전부 다 쑤신다.

그 긴 밤 내내 생사를 걸고 싸워댔으니 당연하지 뭐.


그르렁. 그르렁


이상한 소리가 귀에 자꾸 거슬린다.

크고 규칙적인 소리.

대체 뭐야?

소리가 난 곳은 내가 자고 있던 침대 옆의 의자였다.


의자에 앉아 험프리가 자고 있다.

내가 자는 동안 나를 지키겠다고 앉아있었나 보군.

이렇게 곯아떨어질 거면 그냥 제대로 누워서 잠이나 자지.


험프리의 입가로 한 줄기 흐른 침 줄기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몸을 일으켜 조용히 창가로 갔다.


해는 중천을 지나 산자락으로 넘어가려 하고 있었다.

해가 뜨기 시작한 시간에 돌아와서 바로 쓰러져 자버렸으니 오전 내내 잔 셈이다.

내가 돌아올 때쯤 출발한 타슈마르 가의 사병들은 이제야 성으로 복귀하고 있었다.

그들의 무기와 갑옷은 몬스터의 피와 살점으로 뒤덮여 있었다.


“그나마 오늘은 일찍 돌아온 겁니다.”


웬 여인의 목소리가 돌려 고개를 돌렸다.

문 앞에는 메그가 서 있었다.


“평소에는 이보다 늦은 시간까지 몬스터를 사냥하는 건가?”

“네. 해가 뜰 때 나가서 해가 질 때 들어오는 경우가 많죠.”

“타슈마르 가문은 이런 곳을 지키고 있었던 건가. 정말 대단하군.”


메그가 무표정한 얼굴로 들고 온 것을 탁자에 내려놓았다.

그녀가 내려놓은 것은 새로운 갑옷과 투구 그리고 거울이었다.


“새로운 게 필요해 보여서요.”

“고마워. 그렇지 않아도 갑옷이 망가져서 새것이 필요했어.”


나는 거울부터 집었다.

내 꼴이 궁금했거든.


응?

머리 위에 감은 붕대가 새로운 것으로 바뀌어 있다.

분명 나는 붕대를 간 기억이 없는데 어떻게 된 거지?

피곤해서 돌아오자마자 갑옷만 벗어 놓고 침대에 누워버렸다.


만일 타슈마르 가의 하인들이 갈았다면 분명 내 머리 위의 뿔을 봤을 터.

하인들이 굳이 비밀을 지킬 리는 없고,

내 뿔을 봤다면 분명 길포드 후작에게 보고를 했겠지.


나는 메그의 눈치를 살폈다.

그녀는 항상 그렇듯 어떠한 감정도 느껴지지 않을 무표정한 얼굴을 하고 있다.


“내가 이 붕대를 언제 갈았지?”

“주무실 때요.”

“아... 누가 갈아 준 건지 알아?”

“저 곰 같은 기사요.”


메그가 코를 골고 있는 험프리를 보며 말했다.

험프리는 나와 메그의 말소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자고 있다.

저런 잠귀로 어떻게 호위 기사를 하고 있나 모르겠다.


“그렇군.”


그래도 다른 사람이 내 뿔을 보지 않았으니 다행이다.


“저 곰. 험프리 맞죠?”


메그가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물었다.


“그래. 길포드 후작이 예전부터 탐내던 기사지. 예전에 우리가 같이 놀 때면 항상 따라다녔잖아.”

“그때에 비해서 많이 삭았군요.”

“내 생각도 딱 그래.”


우리는 자고 있는 험프리의 얼굴을 한참 동안 살펴봤다.


“아. 안톤 공자는 잘 있나? 한 번도 보질 못했군.”

“아...”


안톤은 길포드 타슈마르의 유일한 아들이자, 메그의 오빠였다.

나보다 두 살이 많았던 그는 길포드를 닮아 어릴 때부터 용맹하고 사내다웠다.

다만, 길포드는 수도에 올 때 안톤에게 자신의 빈자리를 지키라며 데리고 오지 않았다.

덕분에 나는 그를 본 적이 거의 없었다.

이제는 내가 모로나에 왔으니, 안톤을 볼 수 있겠군.


“그는 어디에 있지? 다른 곳에 있는 건가?”

“죽었습니다.”

“뭐? 언제?”

“3년 전. 몬스터들과 싸우다가...”

“그랬군.”


메그를 보고 있던 시선을 거두었다.

좀처럼 변화가 없던 그녀의 표정이 어두워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식사를 가져오라 하겠습니다.”


메그는 조용히 방을 나갔다.

그리고 잠시 후 하인들이 음식을 가지고 들어왔다.

음식을 내려놓는 소리에 험프리가 잠에서 깨어났다.


“왕자님?”


험프리는 비어있는 침대를 보고는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어느새 검을 잡고 있었다.


“누구냐?”


그리고는 음식을 가지고 온 하인들을 보고 험악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하인들은 험프리를 보고 놀라서 비명을 질렀다.


“나 여기에 있으니까. 진정해.”


나는 창가에 기대앉아 험프리를 불렀다.

험프리는 민망한 듯 벌게진 얼굴을 하고 검을 내려놓았다.


“벌써 일어나신 겁니까?”

“식사 때는 귀신같이 알고 일어나는군.”

“그러고 보니 식사가 도착했군요.”


험프리가 함박웃음을 지었다.


“편히 가서 자면 될걸. 왜 굳이 내 옆에 앉아서 잔 거야. 일어나자마자 식겁할 내 입장도 생각을 해줘야지.”

“길포드 후작을 믿을 수가 있어야지요. 언제 왕자님께 해를 가할지 모르니...”

“걱정하지 마. 길포드 후작은 그럴 사람이 아니니까.”

“그렇긴 하지만 혹시 모르는 것 아니겠습니까.”


험프리가 자신의 투핸드소드를 의자 바로 옆으로 가져와 기대 놓았다.


나는 험프리가 앉은 의자 맞은편에에 가서 앉았다.

음식들은 이제 막 탁자에 놓이고 있었다.


“몸은 어떠십니까? 상처 부위가 아프지는 않으십니까?”

“전혀. 나보다 엘리나랑 다른 기사들이 더 심했던 것 같은데. 다들 어떻게 되었지?”

“전부 치료받고 있을 겁니다.”

“험프리 너도 여기저기 다치지 않았어?”

“저는 괜찮습니다. 그 정도 상처야 고양이가 할퀸 정도밖에 안 되지요.”


험프리가 활짝 웃었다.

나는 어이없는 얼굴로 그를 보다가 고깃덩어리 하나를 입에 가져다 넣었다.


“7중대 기사들이 많이 죽었군.”

“네. 빌튼이 완쾌한다고 해도 다섯밖에 안 됩니다. 돌아가는 길이 걱정입니다.”

“뭐. 별일이야 있겠어? 내가 왕자인 것만 밝히지 않으면 아무도 위협이 되지는 않을거야.”

“그렇군요.”


왕자라고 하면, 모두가 안전하게 보호해줄 것인데.

어떻게 된 게 로드리아 왕국은 왕자라고 밝히는 것이 가장 위험한 것이라니.


이게 다 미하일 때문이지 뭐.

왕국을 자신의 사람으로 채워 넣고 결국은 로드리아 왕국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려는 비열한 인간.


그자를 막으려면 내가 왕태자가 되는 수밖에.

천천히 그의 세력을 제거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피델의 말대로 든든한 지지 세력을 얻어야겠지.

이 고생을 하는 것도 다 그 때문이 아니던가.


“돌아가기 전에 길포드 후작에게 확답을 받아야겠어.”


길포드 타슈마르라는 든든한 우군을 얻기 위해서 이곳에 왔으니 목적은 달성하고 가야지. 아바마마에 대한 오해도 풀었으니, 조금만 더 설득하면 될 것이다.


“길포드 후작이 확답을 줄까요? 몰려오는 몬스터를 막기에도 벅차 보였습니다.”

“그게 문제군.”


늘어나는 몬스터들 그리고 붉은 눈의 오크들까지.

험프리의 말대로 이놈들을 막기에도 타슈마르 가는 정신이 없을 것이다.


“아무리 타슈마르 가의 군대가 강하다고 해도,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몬스터들의 습격을 계속해서 막아낸다는 것은 힘에 부칠 일입니다. 지난 전쟁에서 저도 그와 비슷한 일을 겪었었죠. 그때는 심지어 매일 같이 눈이 오고 칼바람이 불던 겨울이었는데...”


험프리는 또 전쟁 이야기를 꺼내고 있었다.


“험프리. 다 먹었으면 일어나.”

“네? 왕자님 어디 가실 곳이라도 있으십니까?”

“길포드 후작을 만나러 가야겠어.”

“갑자기 왜 그러십니까?”

“모로나가 어쩌다 몬스터들의 소굴이 되어버렸는지 알아야겠어.”


외출복을 챙겨입고 있었다.

엉거주춤한 자세로 있던 험프리는 아쉬움 가득한 눈으로 음식을 내려다보고는 입에 묻은 빵가루를 털었다.


“밖에 누가 있는가?”


내 말이 끝나자마자 문 앞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네. 왕자님. 부르셨습니까?”

“길포드 후작은 어디에 있는가?”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주말에 쉬어가겠습니다.

행복한 주말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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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잠 자는 숲속의 원장 +1 21.03.05 38 2 13쪽
29 마족과의 전투 +1 21.03.04 43 2 13쪽
28 호위 기사 험프리 +1 21.03.03 45 3 12쪽
27 사냥꾼들(3) +2 21.03.02 48 2 12쪽
» 사냥꾼들(2) +1 21.02.26 52 2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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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빛나는 검(2) +1 21.02.24 57 2 11쪽
23 빛나는 검(1) +1 21.02.23 53 2 12쪽
22 검은 숲의 습격 +1 21.02.22 52 2 12쪽
21 벤무스로 산다는 것 +3 21.02.19 65 3 12쪽
20 타슈마르 가의 가주 +2 21.02.18 69 3 13쪽
19 키로프 산의 오크 떼 +4 21.02.17 84 4 12쪽
18 배신자의 최후 +3 21.02.16 95 3 11쪽
17 조엔 가의 가주(3) +2 21.02.15 97 4 12쪽
16 조엔 가의 가주(2) +3 21.02.14 111 4 12쪽
15 조엔 가의 가주(1) +2 21.02.13 131 4 12쪽
14 왕자가 간다 +3 21.02.12 169 3 13쪽
13 왕자가 돌아왔다(2) +4 21.02.11 170 4 13쪽
12 왕자가 돌아왔다(1) +4 21.02.10 164 4 12쪽
11 돌아가는 길(2) +4 21.02.09 163 5 12쪽
10 돌아가는 길(1) +4 21.02.08 168 5 12쪽
9 못난 동생(3) +3 21.02.07 170 5 13쪽
8 못난 동생(2) +3 21.02.06 162 5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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