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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가린 님의 서재입니다.

소도외전

웹소설 > 자유연재 > 무협

용가린
작품등록일 :
2018.11.28 15:30
최근연재일 :
2023.05.10 22:33
연재수 :
10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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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3
글자수 :
706,311

작성
18.12.07 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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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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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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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조선 창업의 상징, 천부인과 비급

DUMMY

준왕이 삼한을 발전시키면서 조선에 대한 수복 의지를 강하게 불태우고 있을 즈음, 대륙에서부터 그토록 갈망했던 조선의 왕에 오른 위만도 대내외적으로 품질 좋은 철제 병장기나 농기구를 널리 보급하여 국정을 안정시키고 있었다.


체감도 높은 정책들은 백성들의 호감(好感)을 높이고 있었다. 민심을 얻는 것이 곧 왕실의 위상을 안정화시키는 방안임을 대륙에서의 경험으로 알고 있던 위만은 또한 백성들에게 부정적인 자극이 가지 않도록 세심하게 노력했다. 이민족 출신인 그가 조선의 토착민들을 통치하는데 따른 정당성을 얻기 위해서는 조용히 흐르는 시간이 필요함도 아는 위만이었다.


한편, 한(漢)나라와 북방(北方)의 군소 주변국들 사이에 있는 지리적 여건을 이용한 ¹ 중계무역(中繼貿易)을 통하여 대외적인 경제 활성화도 꾀했다. 활발한 상업활동은 곧바로 나라의 부를 구축하는 좋은 계기로 작동되었다.


내부에 대한 통제도 강화를 하였는데, 반란의 성공 직후에 수하의 일부 장군들이 공헌에 대한 보상의 크기 때문에 표나지 않게 불만을 나타낸 것을 알고 공개석상에서 개개인의 농공행상(論功行賞)을 논하여 불만을 잠재웠다. 또한 당시 준왕을 보위(保衛)하며 반대편에 서 있었으나 이제는 함께 국정을 운영하도록 회유한 신료와 장군들 중에서도 반감을 표시하는 경우가 가끔 있었는데 그들의 의사도 적극 포용하겠다는 의지를 천명함으로써 준왕 시절의 정권과도 무리 없이 화해를 이루었다.


위만은 수시로 당근과 채찍의 원리를 응용하여 신하들을 관리했는데 가끔씩 지나친 권한 남용이나 왕권에 대한 도전으로 보일만한 행위를 하는 경우 및 과하게 오만무례한 행동을 하는 경우에는 지체 없이 제거되었다. 주로 사고를 빌미로 해서 나타나는 그것은 충분히 응징적 징벌이란 것을 남은 신하들이 느낄 수 있는 것이어서 충분한 효과를 보았다.

어느 순간 자신도 그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막연한 공포는 오히려 드러내 놓고 위협하는 공포보다 훨씬 큰 위압감을 주기에 충분했다. 그렇게 조선은 준왕이 재위하던 때와 별반 다름없이 위만에 의하여 빠르게 안정을 찾으며 정립되고 있었다.


다만, 특별한 사유 없이 토착민인 준왕의 왕위를 찬탈한 사건에서 이방인인 그가 반란을 실행한 명분을 납득시킬 근거가 많이 부족했다. 다행히 그가 군사를 일으키기 전 백성들에게 전파한 거짓말인 `하늘이 준왕을 버리려고 한다`는 소문이 왕검성에 거주하는 백성들을 중심으로 제법 넓게 퍼져있어서 미약하나마 명분으로써의 단초(端初)는 제공하고 있었다.

위만은 보다 더 그럴싸하고 일리 있는 내용을 추가하여 자신이 왕위를 찬탈한 것에 대한 정당성을 구할 목적으로 새로운 소문을 흘리며 민심을 살폈다. 만약 그것도 여의치 않다면 추가적인 방안을 강구할 셈이었다.


그러나 그의 걱정은 애초부터 부질없는 것이었다.

백성들은 잠시 웅성거렸을 뿐 혼란이 잠잠해지자 언제 그랬느냐는 듯 생업으로 돌아갔다. 아무런 뒷말도 생기지 않았을뿐더러 일부 백성들은 살기 좋은 세월이라며 웃고 다녔다. 시대를 막론하고 역시 백성들은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되고 대외적인 안정이 유지된다면 과거의 일은 금세 잊어버리는 듯했다. 당시의 조선은 융성한 시기를 구가하고 있었다. 민생고 걱정 없이 안정적인 생활을 향유할 여건만 보장된다면 누가 통치를 하던 상관이 없는 듯했다.

피난을 가지 못하고 남은 왕실 쪽 인사들과 관료 등 명예를 먹고사는 사람들도 그 명예가 훼손되지 않을 정도의 복종만 강요하면 기꺼이 자신들의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하여 위만이 원하는 방향으로 따라왔다. 역시 위만은 혼란했던 넓은 대륙인 중국에서 낮과 밤의 정치를 다 보고 들으며 느낀바를 직접 실행해온 노련한 지도자다웠다.


“² 전하, 조선을 창업할 때 하늘로부터 받은 보물이 우리가 알고 있던 ³ 천부인(天符印) 세 종류 외에도 수련을 하면 신선이 되는 비급(秘笈)도 있었다고 하옵니다.”

“무어라, 그런 것을 어찌 지금에야 말을 하느냐, 자세히 설명하라”


위만왕 칠 년,

위만이 천신제(天神祭)를 주관한 후 며칠이 지난 늦가을 말미(末尾)였다.

제사와 농사 업무를 관장하는 고위 관료인 중대신(重大臣) 구리달(具鯉妲)이 위만에게 황급한 보고를 올렸다.


왕이 된 이후 위만은 그동안의 준왕처럼 자신이 직접 천신제를 지냈다. 다만, 백두산에 설치된 제단에 올리는 물건들인 천부인을 준왕이 그 바쁜 와중에도 챙겨서 피난을 가버려서 부득이 제사 준비를 주관하는 구리달의 기억에 의존하여 비슷한 모양의 청동검, 청동거울, 청동방울을 만들어 진짜 천부인인 양 속이고 제단에 올려서 제사를 지내고 있었다.


천부인은 하늘로부터 정통성을 부여받았음을 인정받는 상징물이었다.

기실(其實), 천부인의 존재는 대륙에서 온 위만에게는 아무런 의미 없는 허상(虛像)의 껍데기에 불과했다. 그러나 백성들은 천신제를 통해 천부인을 보는 것만으로도 자신들이 하늘의 선택을 받은 자손이라는 선민의식(選民意識)을 느끼고 싶어했다.


백성들의 마음을 얻는 방법을 잘 아는 위만은 자신이 하늘의 아들을 정당하게 계승하였음을 보여주는 증표인 천부인을 온전히 보여주고자 했다. 실체(實體)적 형상인 가짜 천부인을 보여줌으로써 자신의 권위는 극대화될 것이었다. 그 생각은 그대로 적중했다. 백성들은 보여지는 천부인을 멀리서 대충 보는 것으로 만족해했다. 관심 있게 보려고도 하지 않았고 세세하게 관찰할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것은 천신제와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경제적 상황에 따른 것이었다. 대내외 전반의 호황으로 돈이 넘쳐 흘렀고 농사도 몇 년째 풍년을 지속하고 있었다. 몇 년이 지나자 위만은 정통성 있는, 온전한 하늘의 아들이었고 대부분의 백성들도 그렇게 믿으며 살아가고 있었다.


천신제는 그렇게 위만에게 왕위를 공고히 지탱하는 효과적인 수단의 하나로 운영되고 있었다. 여전히 위만에게 천신제는 정치에 활용하는 방법의 하나인 제사에 불과했다. 조선에서의 천신제의 의미와 천부인의 역사 등에 대해서는 여전히 관심과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 이를 간과하더라도 제사의 형식은 달라지지 않을 것이며, 준비 또한 담당하는 신하들이 적절하게 처리하는 일상적인 직무만 챙긴다면 무난하게 처리될 것이었다.


그런데, 신선이 될 수 있는 비급이 같이 있었다니,

새삼 위만은 준왕의 왕실 내부 재산들을 꼼꼼하게 챙기지 못한 아쉬움이 무척이나 깊게 남았다.

“왕실 창고의 특별한 장소에 천부인 세 종류를 보관한 청동함이 있었는데, 당초 누구에게도 알려지지 않았던 비급은 ⁴촬피(䈟皮)한 가죽책의 형태로 같이 보관되어 있었다고 하옵니다. <천경보전(天經寶典)>이라는 책자이온데, 이를 수련하면 신선이 될 수 있다고 하옵니다.”

염소 수염을 닮은 특유의 가느다란 턱수염으로 인해 언뜻 보기에도 가벼워 보이는 인상의 중대신 구리달이 무언가 신임을 더 받을 구실을 찾았다는 듯 다급하게 말했다.


위만은 준왕이 피난을 갈 즈음 승리했다는 기쁨과 앞으로의 할 일을 생각하느라 끝까지 추격하지 않았었다. 일생일대의 소원을 이루었다는 감격에 겨운 만족감도 있었지만 왕검성에 남은 자들에게 자신이 포악하지 않다는 인상을 보여주는 본보기가 될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무엇보다도 병사들을 출동시켜 피난하는 준왕 일행을 쫓아가서 추포(追捕)하거나 전멸시킨다 하더라도 발악하는 준왕 측 군사들의 저항을 받을 것이 명확하므로 굳이 눈에 보이는 아군의 희생을 감수해가면서까지 쫓을 실익은 없었다. 더구나 준왕은 언제 준비했는지 많은 배들을 이용하여 남쪽 바다로 피난을 가는 바람에 육로를 통한 추적보다 많은 어려움이 있었던 것 또한 부인할 수 없는 추적 포기의 이유였다.


“만약, 피난 가던 준왕이 그것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면 내 기어이 뒤따라가서 반드시 그것을 회수했을 터인데, 안타깝도다... 그나저나, 신선이 되는 길이라... 흐~음 ...”

위만은 갑자기 <천경보전>이라는 책자를 보고 싶은 강렬한 욕구가 일어났다.


==============================

¹ 물품을 수입하되 이를 가공하지 않은 원형 그대로 직접 제3국으로 수출하는 형태의 무역거래 방식으로, 싸게 수입해온 물자를 그대로 다른 제3국에 비싸게 수출하여 매매 차액을 취득하는 무역방식.

※ 중개무역 : 간접무역의 한 형태로 수출국과 수입국의 중간에서 중개수수료 이득을 얻는 무역

² 위만 집권 이후 고조선의 임금을 높여 부르는 말, 준왕 집권 시기의 제(帝)와 같은 의미

³ 단군신화에 나오는 신물((神物)로써, 환인이 그의 아들 환웅을 땅으로 보내면서 제왕의 지위를 나타내는 표지로 주었다는 세 개의 귀한 물건. 고대 사회에서 지배 계층의 권위를 상징하는 증표로 청동검, 청동방울, 청동거울의 세 가지를 말함.

⁴손질하지 않은 짐승 가죽에서, 털과 기름을 뽑고 가죽을 부드럽게 다루는 일, 무두질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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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2

  • 작성자
    Lv.4 ko******..
    작성일
    18.12.11 17:35
    No. 1

    드디어 드디어!!
    모습을 드러낸 《천경보전》
    기대 만땅안고 다음편으로 쑝~~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14 용가린
    작성일
    18.12.12 13:54
    No. 2

    <천경보전>이 이소설의 가장 중요한 소재인 것을 아시다니...
    대단하십니다. 허접한 작품 자세히 탐독해 주시니 그저 감사할 따름 입니다. 꾸벅 ~~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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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천경보전 18.12.10 494 4 15쪽
» 조선 창업의 상징, 천부인과 비급 +2 18.12.07 518 4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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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마리산 영봉의 칼바위 평야를 만나다 18.12.06 546 4 12쪽
11 소도의 태동 18.12.05 565 4 10쪽
10 삼한의 탄생 18.12.05 622 4 20쪽
9 반추하는 패망의 원인 18.12.04 597 5 16쪽
8 굳어지는 입지 18.12.04 621 4 6쪽
7 월지국 신지 +1 18.12.04 647 4 11쪽
6 남부소국연맹 18.12.03 725 4 11쪽
5 뱃머리를 남으로 +3 18.12.02 733 5 10쪽
4 위만 18.12.01 826 4 17쪽
3 반란의 개요 18.11.30 960 6 7쪽
2 회상 +2 18.11.29 1,298 8 17쪽
1 악몽 +6 18.11.28 4,488 10 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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