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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서로 님의 서재입니다.

평범한 모험가의 모험계 공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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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서로
작품등록일 :
2024.04.03 22:56
최근연재일 :
2024.06.02 22:27
연재수 :
1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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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글자수 :
124,532

작성
24.05.15 2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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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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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21쪽

어둠이 덮친 요새 (1)

DUMMY

“······방금 그건 뭐였죠?”


정도운은 떠름한 얼굴을 지었고 밀리오는 설명 대신 품에서 작은 거울을 비스듬히 비추어 밖을 간접적으로 내다보았다.

그러자 별다른 일 없이 거대한 해골의 진상을 볼 수 있었다.

현대식으로 치면 약 4, 5층 건물의 크기에, 상반신뿐인 거대한 해골이 이쪽을 향해 기어오는 자세로 멈추어 있었다.

밀리오가 턱수염을 만지작거렸다.


“안 그래도 가다가 말해주려고 했는데, 그렇게 빨리 보게 될 줄은 몰랐군. 저건 보다시피 죽어있는 괴물의 잔해라네.”

“죽어있는 괴물의 잔해요? 하지만 분명히 움직였는데요.”

“죽어있긴 해도 그런 류의 괴물이니까. 인간이, 특히 모험가가 쳐다보면 더욱 왕성하게 움직이기 시작하지.”

“그런 류의 괴물이라니···.”


그런 류가 뭔가. 죽어도 죽지 않는 건물 크기의 괴물?

정도운은 끔찍한 상상에 부르르 떨었다.


“쳐다볼 때 다가오는 건 인간을 죽이기 위해 다가온다는 설이 유력해. 다만 확실한 건 아무것도 없어. 예전부터 저것에 대해선 말이 많았거든. 고대의 어느 성숙기(成熟期) 모험가가 죽인 괴물이라든가, 아니면 모종의 저주를 받고 저렇게 됐다는 얘기라든가. 원래부터 저런 괴물이라는 얘기도 있지.”


이번에 대답한 건 그를 잡아당긴 매서운 눈매의 여자였다.

정도운이 주억거렸다.


“아, 좀 전엔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냐, 초행이라면 알려주지 않은 우리 잘못도 있으니까.”

“그렇담 저게 이번 정찰의 목적인가요? 저것의 동태를 살핀다든가···.”


밀리오가 다시 말을 받았다.


“아니, 저것도 정찰의 목적 중 하나지만 우리의 주된 임무는 그게 아닐세. 저 해골은 뭐랄까··· 그냥 영외 곳곳에서 볼 수 있는 거거든.”

“······저런 걸 곳곳에서 볼 수 있다고요?”

“영외 모험가들에겐 흔히 볼 수 있는 장애물 같은 거지. 뭐 저렇게까지 큰 건 드물긴 해도. 정찰할 구역들에 대해선 이따 내리면 가면서 알려주겠네.”

“알겠습니다.”


정도운은 조금 전에 느꼈던 소름 끼치는 기분을 떠올리며 검집을 만지작거렸다.

저 해골.

어쩐지 도시를 향해 다가오고 있는 것 같지 않나?

그런 생각을 하다가 문득 모험의 서에서 약간의 진동이 오는 걸 깨달았다.


‘방금 해골을 본 것만으로 모험기가 소량 차올랐다.’


말인즉 그만큼의 위험이 지나갔다고 모험의 서가 판정한 것이다. 보는 것만으로 모험이 되는 게 도처에 널려있다니, 영외란 도대체 어떤 곳인지 두려움이 몰려올 지경이었다.

얼마 후.

마차가 멈추고 정찰 임무를 치를 8명의 모험가가 목적지에서 내렸다.


“여기서부터는 걸어갈 걸세.”


밀리오가 이런 임무가 익숙한지 능숙하게 일행을 이끌었고, 정도운은 주변 풍경을 둘러보았다.


‘한적한 시골 풍경 같군.’


햇빛은 따듯하고, 곳곳에선 새들이 싱그럽게 지저귄다.

조금 전까지 그런 괴물을 목격했다는 게 실감이 안 날 정도로 평화롭다.

고즈넉한 시골길 같은 도로를 거쳐, 산지로 이어진 길이 보였다.


“이제부터 이 길을 따라 우리에게 정해진 루트를 정찰할 거야. 주변 경계는 하되 우리의 주요 임무는 전투가 아니니까 적당한 긴장만 유지하고 따라오도록 하게.”


이건 정찰이 처음인 정도운에게 일러두는 말이었다.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가는 동안, 밀리오가 설명했다.


“이 앞으로 정찰할 곳은 크게 세 군데로 나뉜다고 볼 수 있지.”

“세 군데나 되는군요.”

“구역이 정해진 걸 보면 알겠지만, 정찰이라고 해도 실상은 주기적으로 정해진 길을 도는 순찰 같은 걸세.”


중간중간 야생의 괴물을 만나면 처치 가능할 시 쓰러트리기도 한다고 그가 덧붙였다.


“먼저 도착할 곳은 무저갱의 골이라고 부르는 곳이네. 우리는 그냥 어두운 구멍 정도로도 부르지. 이곳에서 가장 가까워.”


얼마 후 일행이 걸음을 멈춘다.

분명히 평지를 걷고 있었는데, 갑자기 정면이 급격히 아래로 꺾이더니 가파른 낭떠러지처럼 떨어진다.


그 앞에 있는 것은 어지간한 운동장만 한 크기의 동공이 형성된 거대한 골짜기였다. 마치 암흑의 호수를 보는 것처럼 몇 미터만 들어가도 새까매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


정도운은 그 골짜기의 거대한 크기를 보자마자 일순 압도되었다. 그리고 낭떠러지처럼 어디까지 뚫려있는지 모를 그 끝없는 암흑의 구멍 속을 보며 헛숨을 들이켰다.


‘···건너편도 까마득하군.’


길 한복판에 안전바라든가, 울타리 같은 것도 없었다. 말 그대로 우연히 몇 걸음만 삐끗하면 바닥이 어딘지 모를 저 어두운 골짜기 밑으로 굴러떨어지는 것이었다.


일행에게 사주 경계를 지시한 밀리오가 가져온 지도에 슥슥 잉크로 표시했다.


“일단은 별 이상 없어 보이는군. 아, 너무 가까이 다가가진 말고. 확인해본 건 아니지만 모험가가 가까이 가면 안에서 무언가가 반응한다는 말이 있거든.”

“무언가요?”

“좀 전의 해골 같은 거지. 정체를 알 수 없는 위협··· 듣기로는 개척경 이상의 모험가들도 이곳에 떨어지면 종종 돌아오지 못한 경우도 있다더군.”

“······.”


정도운은 그 말에 뭔가 홀린 듯이 그 어두운 골짜기 밑을 바라보았다.

그러다 모험의 서에 반응이 오는 것을 느꼈다.

한 번.

두 번.

세 번.


‘···?’


이상했다. 왜 안 멈추지? 의문을 표하는 순간에도 모험기는 계속해서 차오르고 있었다. 마치 실시간으로 위협이 그를 향해 점점 다가오고 있는 것처럼.


“자, 다음 정찰 지역으로 이동하지.”


정도운은 밀리오의 목소리에 퍼뜩 정신이 들었다. 몇 걸음 물러서서 구멍의 어둠으로부터 시선을 떼자 모험의 서에 반응이 오던 것이 거짓말처럼 멈춘다.


그는 꿀꺽 목울대를 넘겼다.


‘······설마, 방금까지 내가 뭔가랑 마주하고 있기라도 했다는 건가?’


막대한 규모의 싱크홀을 연상케 하는 구멍 속의 어둠은 여전히 아무런 미동 없이 그 자리에 머물러 있을 뿐이었다.

정도운은 괜히 모골이 송연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


일행이 두 번째로 향한 곳은 첫 정찰 구역인 무저갱의 골과 달리 거리가 다소 있었다.

두 시간 정도를 걸었을까.

산속의 등산로 같은 완만한 평지길 끝자락에 무언가가 보인다. 밀리오가 멀리 내다보는 시늉을 했다.


“슬슬 보이는군.”

“저게 두 번째 정찰 지역입니까?”

“산림 유사(流沙) 지역이라고 하지. 다만 실제로는 모래만은 아니고 산지의 자갈돌들이 마치 일대에 유사 같은 환경을 조성하고 있는 모습을 통칭하는 거네.”


산속 한복판에 모래와 자갈돌로 이루어진 유사.

그것이 두 번째 정찰 지역이었다.


“위험한 곳이군요. 그런데 그게 정찰이랑 무슨 상관이···?”

“왜긴 왜겠나. 그 유사 안에 괴물들이 서식하고 있으니까 그렇지.”

“괴물들이요?”

“그래, 아까의 구멍도 그렇고, 애초에 정찰 임무는 기본적으로 영외 요새인 길가르에 위협이 될 만한 것들을 주기적으로 살펴보고 이상한 기미가 없는지 확인하고 오는 게 주된 임무라네.”

“아하···.”


영외 마을 이름이 길가르였군. 이제 알았다.


유사 지역이 가까워질 무렵, 정도운은 맞은편에서 오는 사람이 있는 것을 보았다.


‘여자?’


그것도 백금발의 눈에 띄는 머리칼을 가진 여자였다. 밀짚모자를 눌러썼지만 얼핏 보이는 이목구비만으로도 대단한 미인임을 알 수 있었다.

그걸 제외하면 평범한 모험가 복장이었다.


일행도 없이 다니다니, 이곳은 위험지역 근처가 아닌가?


의아한 마음이 들어 빤히 쳐다보고 있는데 그녀는 정도운의 시선을 느꼈는지 그를 보며 한 번 슥 웃고는 이윽고 일행을 지나쳤다.


“···원래 이런 곳을 모험가가 혼자 돌아다니기도 합니까?”

“무슨 소린가?”

“방금 지나간 분이요. 위험지역 근처인데 일행도 없이 다니시는군요.”


그 말에 일행들이 우뚝 멈춰 섰다. 몇몇이 길목을 돌아보더니 황당한 표정을 짓는다.


“지나간 분이라니? 여기 우리 말고 누가 있었나?”

“예? 아니 방금 한 명이···.”


그런데 뒤를 돌아보자 아무것도 없었다. 정도운은 일행들처럼 눈을 끔벅였다.


“어라?”

“후, 아무리 초행이라 긴장된다 해도 우리를 너무 놀리지 말게. 안 그래도 슬슬 긴장해야 하는 지역이니까 말이야.”


밀리오가 다른 일행들 눈치를 보며 그에게 주의를 주었다. 물론 이 상황이 가장 어이가 없는 건 정도운 본인이었다.


‘뭐지? 분명히 봤는데? 나랑 눈까지 마주쳤잖아.’


***


백금발의 여인은 자신이 왔던 길을 돌아보았다.


“···놀라운데. 그저 입문경의 모험가인 것 같은데 단순히 감이 예민한 것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일이야. ···설마 이것 또한 그 일의 징조 일부는 아니겠지.”


잠시 후 그녀가 중얼거린 자리에는 아무도 없었다.


***


그가 조금 전의 일로 당황하거나 말거나, 일행은 계속 발걸음을 재촉했다. 그리고 어느새 유사 지역의 어귀에 도착했다.

밀리오의 말대로 오솔길 옆으로, 어느 부분을 기점으로 대비되는 정갈한 자갈돌들이 울퉁불퉁하게 끝없이 펼쳐진 모습이 보였다.

밀리오가 옆으로 늘어진 오솔길 쪽을 보며 작게 말했다.


“지도에 나온 대로 바로 옆길을 선회할 테니 뭔가 움직임이 있으면 바로 보고하게. 유사시에는 그대로 길을 타고 달려 다음 구역까지 벗어날 계획일세.”


영외 마을에 머무르며 의뢰 경험이 풍부한 파랑새 모험단은 모두 숙지하고 있지만, 이 또한 초행인 정도운을 배려하여 상세하게 지시하는 말이었다.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고, 유사와 밀착한 길을 걸으며 자갈돌 지대를 경계하는 전진이 천천히 시작되었다.

그들이 지나갈 때마다 인근의 자갈돌들이 볼록볼록 올라왔다가 내려갔다.

마치 유사 속을 무언가가 헤엄치고 있는 듯했다.


“뭔가 유사 속에서 움직이는데요.”

“저 안에 서식하는 식인 아귀의 일종이야. 그 밖에도 여러 종들이 생태계를 이루고 있는데, 몇몇은 소리에 민감하니까 최대한 조용하고 신속하게 통과할 수 있도록 주의해.”


매서운 눈매의 여자가 대열의 후미에서 뒤따르며 작은 목소리로 설명해주었다. 처음엔 몰랐는데, 나름 단장인 밀리오 다음으로 발언권을 지닌 것처럼 보였다.

굳이 따지면 부단장 정도 되지 않을까.


“······괴물이 튀어나오면 잡습니까?”

“아니, 우리는 그저 이상 현상을 확인하고 보고하는 역할이다. 마을에 돌아가서 보고하면 정예 모험가들이 대응하거나 공략대를 꾸릴 거야. 불가피한 상황이 아니면 전투는 피하는 게 좋다.”


여자가 말한 그때였다.


크룩.


정도운 앞쪽의 자갈돌 무더기를 헤치며 붉은 눈알이 드러났다. 그리고 그걸 보는 순간, 돌무더기가 솟구치며 마치 모 게임의 드X군을 연상케 하는 네발 달린 괴물이 일어섰다.


[ Lv.6 지옥꽃밭 아귀종 ]


“!”


크기는 곰보다는 조금 작고, 다른 산짐승 정도일까.

넓적한 본체의 거대 눈알이 뒤룩거리며 모험가들을 쳐다보고, 마치 의자 받침대 같은 얄팍한 근육 다리들이 부르르 진동한다.


놈들은 인근 길을 지나가는 모험가들이 흥미로운지 유사 위로 올라와서 빤히 시선을 주었다.


‘이게··· 아귀종?’


훈련소에서 보았던 고블린을 닮은 작은 아귀들과는 완전히 다르다. 생김새도 그렇고, 자연스럽게 풍기는 위압감도 그랬다.


“쉿.”


일행이 움찔하자 밀리오가 조용히 하라고 시킨 후 걸음을 재촉했다.


콰르르.

콰르르르.


문제는 한 마리가 일어서자, 이곳저곳에서 똑같은 놈들이 자갈돌을 헤치며 올라온다는 것이었다.

그 수가 열 마리를 넘어가자 밀리오가 무기를 뽑으며 퇴각 명령을 내렸다.


“길을 타고 달려!”

“이익!”


우르르르.


8명의 모험가가 한쪽 면이 가파르게 막힌 오솔길을 타고 달리기 시작했다.


사방에서 지옥꽃밭 아귀종들이 유사를 타고 길목으로 올라왔다.


서걱!


밀리오가 선두에서 한 마리를 일검에 양단하며 소리쳤다.


“린지, 마커스. 배후를 맡아라!”

“네!”


마치 엘리처럼 마술 지팡이를 든 여자가 무언가 이적을 일으키자 그들이 지나온 뒷길 일부가 끈적끈적한 늪지대로 변했다.

그 위로 마커스라는 근육질 남성의 큼지막한 도끼가 힘차게 허공을 갈랐다.


후웅!

퍽―!


모종의 능력에 의해, 늪지대를 밟은 아귀종들이 묵직한 공격을 당하며 원형(圓形)으로 움푹 찌그러졌다.


“달려!”


급박한 상황.

단검으로 한 마리를 처리한 부단장 여자가 측면에서 들어오는 아귀종 한 마리를 놓쳤다.


팟!


그 순간 정도운이 섬전처럼 검을 휘둘러 그녀에게 달려드는 아귀종 한 마리를 두 동강 냈다.

그녀는 그 예상 이상의 솜씨에 제법 놀랐는지 눈을 크게 떴다.


“······고맙군.”

“뭘요, 돕고 사는 거죠.”


그사이 밀리오와 몇몇이 정면의 길을 열며 소리쳤다.


“서둘러! 큰 게 온다!”

“?”


달려드는 아귀종을 베어 넘기던 정도운은 그 소리에 뒤를 돌아보았다.


콰르르르르.


저 멀리 유사 중심부로부터, 집채만 한 무언가가 엄청난 규모로 돌무더기를 일으키며 유사 속을 가르고 이동해 오고 있었다.


놀랄 틈도 없었다.


8명의 모험가는 사력을 다해 길을 열었고 활로를 뚫었다.


그렇게 치열한 싸움을 벌이길 얼마나 지났을까.


“헉, 허억. 헉.”

“어떻게, 따돌렸습니까?”

“···다행히 그런 것 같군. 뭐 유사에서 아귀를 먹는 대형 포식종들은 대부분 유사를 벗어나진 못하는 놈들이니까.”


한참이 걸려 일행들 모두 아귀들의 피와 땀으로 범벅이 되었을 때 유사 지역도 끝이 났다.


“후아!”

“오늘도 무사통과했군.”


정도운은 이번에도 모험의 서가 웅웅 반응하는 것을 느끼며 이마에 송송한 땀방울을 훔쳤다.


“별 이상 없어서 다행이네요. 이제 정찰은 마지막 구역만 남은 건가요?”


밀리오가 숨을 고르며 말했다.


“마지막 구역도 여기서 멀지 않네. 그곳의 정찰만 마치면 이제 안전한 길로 우회하여 다시 마을로 돌아가면 되지.”

“그거 듣던 중 반가운 소식이군요.”


마지막 구역은 수풀이 우거진 어떤 숲이었다.


“어둠에 잡아먹히지 않도록 조심하게.”

“이곳의 숲은··· 어둡군요.”

“어둠의 숲이라고 하는 곳이지.”


단순히 숲은 이제까지 오면서 몇 번이고 본 배경이었으나, 이곳의 다른 점은 분명히 낮인데도 그 안에는 말도 안 될 정도로 짙은 어둠이 펼쳐져 있다는 것이었다.

마치 어느 경계선을 기점으로 살아있는 어둠이 숲을 잡아먹은 것만 같았다.


‘처음의 골짜기는 깊은 구멍이라서 그렇다는 느낌이라도 있지, 여긴 그냥 대낮에 펼쳐진 산지인데···.’


이쯤 되면 너무 노골적으로 수상해서 들어가기가 싫은 장소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숲의 어둠 안에서 기이한 울음소리 같기도 하고, 바람 소리 같기도 한 것이 희미하지만 계속해서 들려왔다.


휘이이잉.

스아아아아.


정도운은 슬며시 인상을 찡그렸다.


‘유령의 숲도 아니고, 기분 나쁜 소리군······.’


한시 빨리 자리를 벗어나고 싶게 만드는 불길한 소리가 끊임없이 귀를 자극한다.


“전원 경계 유지하고, 이대로 유사와 동일한 대형을 전개해서 주위의 길을 선회한다.”

“네.”


저벅, 저벅.

짙은 어둠이 내려앉은 저 숲 안쪽에 뭐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밀리오를 비롯한 일행도 이번에도 유사 못지않을 만큼 긴장한 기색이었다.

그들은 유사를 인접한 오솔길로 우회했던 것처럼 어둠의 숲을 경계하며 주변 길로 멀찍이 돌아갔다.

다행히 숲 입구의 전체를 둘러보려는 건 아닌지, 그렇게 오래 걸리지는 않았다.


“후, 이 정도면 보고할 만한 일은 없다고 봐도 무방할 것 같군. 이만 돌아가지.”

“휴우! 수고하셨습니다.”

“잔뜩 긴장했더니 뻐근하네요. 단장, 돌아가서 한 잔 걸치죠.”

“어제도 말했지만 내일도 의뢰가 있으니까 벌써부터 너무 달릴 생각은 하지 마라.”

“에이, 정당한 보수로 마시는 건데요. 죄송하지만 단장, 저는 이게 삶의 낙입니다. 이런 거라도 없으면 저는 이젠 못 버텨요.”


몇몇 일행은 정도운에게 다가와 솜씨를 칭찬했다.


“형씨, 오면서 봤는데 실력이 제법이던데?”

“고맙습니다. 그 정도는 아니에요.”


돌아가는 길은 긴장이 풀렸는지 분위기가 훈훈했다.


그들은 다시 마차와 합류하기로 한 지점으로 이동했고, 그곳에 약속대로 마차가 돌아와 있었다.

일행은 영외 마을, 정도운이 이번에 알게 된 길가르라는 이름의 마을로 돌아왔다.


그나마 별 탈 없이 정찰 의뢰를 마치고 돌아온 셈이었다.


“동문(東門) 정찰 8조 준2급 의뢰, 확실히 확인했습니다. 수고하셨어요.”


용병 길드로 돌아오자 안내 데스크 직원이 웃는 얼굴로 임무 완수의 직인을 찍어주었다. 그냥 도장이 아니라 일련의 의뢰를 제대로 완수했다는 마무리를 지어주는 공적인 효력의 증명이었다.


마무리를 지으면서 모험기가 차올랐다.


[ 모험의 서 장수가 20장으로 올랐습니다. ]


보상과 함께 의뢰 보수, 그리고 시스템적인 모험기 보상이 양쪽에서 촤르르 들어온다.


‘준2급 의뢰답게 모험기도 보상도 제법 두둑하군.’


요정이 모험의 서 속에서 공치사했다.


- 축하드려요, 드디어 입문경에서도 어느 정도 인정받기 시작하는 20장에 도달하셨네요.

“그러네. 드디어 왔어. 20장에.”


정도운도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런 그에게 나갈 채비를 하는 밀리오와 일행들이 다가왔다.


“그럼 고생했네. 다음에 기회가 되면 또 보지.”

“예, 고생하셨습니다.”

“형씨 또 보자고!”


정도운은 볼일을 마치고 파랑새 모험단과 헤어진 이후 여관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곧장 능력을 갈무리했다.

얼마 후.

눈을 뜬 정도운의 안광이 잠시 형형하게 물들었다가 사그라들었다. 어느새 밖은 어둑해지고 있었다.

날이 어두워졌지만 그는 나갈 채비를 했다. 수련의 성과를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그러고 보니······ 처음에 간 무저갱의 골짜기도 그렇고, 중간에 만난 그 백금발의 여자는 대체 뭐였을까?’


정찰 도중에는 신경 쓰지 못했지만,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면 영 찜찜함을 덜어낼 수 없었다.

밀리오를 비롯한 파랑새 모험단은 그 일이 별일이 아닌 것처럼 넘어갔어도 말이다.


‘내일 용병 길드에 문의하면서 물어봐야겠군.’


아무래도 불길한 예감이 가시질 않았다.


***


길가르의 목책 밖.

성루처럼 높은 곳에서 보초를 서는 초병들이 있었다. 길드에서 보초 의뢰를 받은 모험가들이었다.


“어이, 저거 뭐야?”

“응?”


저 멀리서, 그들을 향해 불길한 어둠이 꾸물꾸물 기어 오고 있었다.


***


정도운은 나와서 가볍게 몸을 풀었다.


“이제 20장이니까, 아공간 콘텐츠인가 뭔가 하는 개척급 맛보기 기능들이 모두 해금됐겠지?”

- 네, [입문 영역 답사]부터, 실력전과 방위, 탈환 임무까지, 그 외에 모든 기능들이 열렸어요. 바로 공략하시겠어요?

“바로 해야지. 지체할 이유가 있나.”


침상에 앉아서 뭐부터 할까 고민하고 있는데, 바깥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어지간하면 무시하고 진행하려 했는데, 그 술렁임이 점차 무시할 수 없게 커졌다.


“뭐야?”


결국 정도운은 상황을 알아보기 위해 거리로 나섰다.


“무슨 일이지?”


가로등처럼 곳곳의 높은 횃불이 거리를 밝히는 가운데, 마을의 중앙 공터에 인파가 몰려 있었다. 대부분이 모험가들이었다.


“심상치 않은 사태로군. 상주 중인 모험가들에게 모두 소집 공문은 보냈나?”

“촌장이 회관에 원주민들을 모으면서 요새 지휘부에도 들른다고 했으니 지금쯤 공문 요청이 전달됐을 거야.”


웅성웅성.

모험가들 사이로 얼핏 보니, 바닥에 잘린 팔뚝이 떨어져 있었다.


‘···뭐야?’


그들을 가르고 들어가니 공터 중앙에 놓인 건 팔뚝만이 아니었다.

누군가의 다리와, 팔이 각기 하나씩 널브러져 있었다.

그리고 그게 피가 뚝뚝 떨어진 채로 목책 밖으로부터 여기까지 이동한 흔적이 남겨져 있었다.


모험가들은 그걸 삿된 무언가처럼 접근하지 못하고 둘러싼 채 관찰하고 있었다.


그때 팔다리가 꾸물거린다.

아직 움직이고 있었다.


흠칫!


그리고 그럴 때마다 주변 모험가들이 움찔하며 물러섰다.


‘도대체 저게 뭐야?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야?’


아무래도 뭔가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지고 있는 듯했다.

정도운은 공터의 모험가 중 하나를 붙잡고 물었다.


“아직 소식을 못 들어서 그런데, 무슨 일입니까?”

“보초 임무를 나간 모험가들이 사라졌습니다. 저 괴상하게 움직이는 팔다리만 남기고요. 그래서 교대 임무를 받은 자들이 찾으러 나가려는데 지금 밖은 저 모양이고요.”

“으음.”

“심지어 금일 낮에 북문(北門) 정찰 의뢰를 맡은 조 중 하나가 돌아오지 않았다는 것도 지금 알려진 참이라 요새 분위기도 뒤숭숭해진 상황입니다.”

“그렇군요. 가만, 밖이 저 모양이라는 건···?”


정도운은 사내의 말에 서둘러 마을의 목책 밖을 유심히 보았다.


‘어둡다.’


그야 밤이니 당연했다.

그런데 유독 목책 쪽의 횃불만이 꺼질 듯이 미약하고 위태롭게 일렁이고 있었다. 마을 밖으로는 기분 나쁠 정도로 깜깜하고 고요한 어둠만이 내려앉았다.


그는 무언가 위화감을 느끼고 눈을 좁혔다.


‘뭔가가 이상한데?’


바깥 자체가 온통 깜깜해서 아무것도 식별되지 않았다. 위도 아래도, 사위가 전부 칠흑에 잠긴 모습이었다.

밤이라고 하지만, 분명히 비정상적인 어둠이었다.

내공을 동원해, 안력까지 돋워가며 그 너머를 뚫어지게 바라본다.

그리고 정도운은 보았다.


세상을 뒤덮은 어둠 너머로, 무언가가 실루엣처럼 움직이는 것을.


‘···!’


그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그 어떤 기척도 없이, 산이 움직이는 것처럼 거대한 배경이 움직이고 있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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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개척경으로 (2) 24.05.31 5 1 17쪽
12 개척경으로 (1) 24.05.28 10 1 20쪽
11 전화위복 24.05.26 9 1 22쪽
10 어둠을 물리치는 빛 24.05.22 11 1 19쪽
9 어둠이 덮친 요새 (2) 24.05.19 7 1 20쪽
» 어둠이 덮친 요새 (1) 24.05.15 15 1 21쪽
7 영외 마을 24.05.13 9 1 15쪽
6 성장 24.05.07 15 1 20쪽
5 늑대인간 술래잡기 (2) 24.05.04 16 1 20쪽
4 늑대인간 술래잡기 (1) 24.05.01 22 1 21쪽
3 남부 3구의 모험 24.04.16 39 1 21쪽
2 입문 모험가 정도운 24.04.04 54 1 23쪽
1 훈련소 24.04.03 93 1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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