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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칼날 님의 서재입니다.

그림과 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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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검은칼날
작품등록일 :
2021.12.18 21:47
최근연재일 :
2022.07.05 16:00
연재수 :
11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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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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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58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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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5.25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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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낙찰

DUMMY

“저도 경매를 시작하기 전까지는 서명의 존재 여부를 밝힐지 말지 고민을 했었습니다. 소장자인 제 의부와 약속 때문이었죠.” 명희는 일부러 말을 끊었다.

“아가씨, 무슨 약속이었는지 빨리 말해보쇼.” 마일환이 모두를 대신해 재촉했다.

“십년 전, 제 친구가 그것을 발견했고, 의부도 그것을 확인했습니다. 그리고 당신께서 그것을 비밀에 부치라고 하여 그 비밀은 십년 동안 봉인되어 있었습니다.” 명희는 또 다시 잠시 끊었다가 말을 이었다. “그런데 조금 전에, 다음에 소장하실 분에게 그 비밀을 알려드려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것을 지금 당장 확인시켜 주쇼.” 마일환이 다시 한 번 모두를 대신해 제안했다.

“아닙니다. 그건 다음에 〈계산행려도〉를 소장하실 분에게만 알려드리겠습니다. 서명의 공개 여부는 제가 아니라 그 분께서 결정하실 겁니다.” 명희가 선언이라도 하듯 말했다.

묵연당 안은 술렁였다.

“십년 동안 비밀로 간직해온 다른 〈계산행려도〉와의 차이를 처음으로 공개했습니다. 서명이 있다고 진품이라고 말씀드리지는 않겠습니다. 그런데 아까도 말씀 드렸다시피 서명의 먹은 송대 것이 확실합니다. 판단은 여러분들이 하십시오.” 명희는 술렁거리는 분위기를 가라앉히기 위해 말을 꺼냈다.

그러나 묵연당 안의 술렁거림은 가라앉지 않았다.

“그러면 칠천만 냥부터 다시 시작하겠습니다.” 명희는 경매 시작을 선포했다.

술렁거림은 가라앉고 침묵이 흘렀다.

“팔천만 냥!” 양원길의 귓속말을 들은 준이 다시 한 번 단번에 값을 높였다.

다들 그것을 확인해보고 싶은 마음에 고민이 깊어졌다.

“여기, 팔천이백만 냥 내겠소.” 마일환이 또 아버지와 상의한 후 값을 높였다.

마 총상의 호가를 시작으로 또 다시 본격적인 경쟁이 시작되었다. 입찰자들은 이제 이삼백만 냥 단위로 값을 높였고, 얼마 되지 않아 그림 값은 일억만 냥까지 치솟았다. 또 다시 이 가격을 분기점으로 침묵이 흐르기 시작했다.

“일억오백만 냥!” 준이 침묵을 깼다.

현실감 없이 값을 올리던 갑부들도 일억만 냥을 기점으로 현실로 돌아왔다. 살 수도 있고 사고 싶었지만, 후회하지 않은 거란 확신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명희가 초청장에 명기한 조건대로라면 그림 값과는 별도로 낙찰가의 일 할인 중개료만 일천오십만 냥이었다. 그리고 지금의 호가보다 더 무서운 건 돈은 신경 쓰지 않고 끝까지 가보겠다는 준, 아니 양원길의 태도였다.

“더 없으면 한 공께서 부른 일억오백만 냥에 낙찰하겠습니다.” 명희가 침묵을 깨고 말했다.

모두들 여기서 포기했다.


경매가 끝나고 난 후, 모두들 흩어졌다.

명희는 묵역당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안기의 하인에게 낙찰 소식을 전했다. 그는 그 소식을 전하기 위해 안기의 저택으로 뛰기 시작했다.

묵연당 안에는 명희, 준, 산과 양원길만 남았다.

“범관의 서명을 당장 확인시켜주쇼.” 양원길이 명희를 재촉했다.

“한 화원께 약속한 게 있다고 들었는데, 그것부터 해결해주셔야죠.”

“장승호는 오늘 저녁에라도 당장 석방하라고 부탁하겠소.”

“한 화원께서 〈계산행려도〉까지 낙찰 받도록 해드렸는데, 화원님께 아무런 성의를 안 보이셔?”

“잠깐만 기다리쇼.” 양원길이 말하고는 묵연당 밖에 있던 시종에게 명령한 후 돌아왔다.

“언제 석방될 것 같아요?” 명희가 물었다.

“조금만 기다리쇼. 지금 당장 여기로 데려오라고 했소.”

“예? 우리는 면회도 못 했는데, 지금 당장 석방한다고요? 양 공한테는 지부 따위는 아무것도 아닌가 보오?” 명희가 비꼬았다.

“어어? 그건 아니오. 그게 그러니까 말이지······” 양원길이 제대로 대꾸하지 못 하고 말을 끌었다.

“뭐 어쨌든, 승호의 석방을 힘 써주셨으니까 고마워요.” 명희가 얼버무리는 양원길을 위해 화제를 바꾸고 말을 이었다. “승호가 오는 것 기다리는 동안 한 화원께서 서명의 위치를 알려드릴 거예요. 십년 전 처음으로 그것을 발견한 분이 바로 한 화원이죠.”

준이 명희의 말을 받아 〈계산행려도〉 앞으로 향했다. 양원길이 준의 뒤를 따랐다.

명희는 그들의 뒤에서 준이 〈계산행려도〉 우측하단의 나무 그늘 아래를 가리키는 것을 보았다.

양원길은 처음에는 놀라며 여러 번 확인한 후 준의 손까지 잡으며 좋아했다. 그림을 사고도 몰랐을 비밀을 알게 되었다. 그림의 값어치에 비밀의 값어치가 차지하는 비중을 꽤 높게 잡았다. 더욱이 같은 이름의 그림이 동시에 존재하고 있으니까. 양원길은 공손하지만 거들먹거리며 황제에게 서명의 위치를 손으로 짚어줄 생각에 전율했다. 서명의 존재를 알면서도 그것을 보지 못 한 양주의 갑부들에게도 우월감을 느꼈다. 물론 자기 자금을 투여한 게 아니어서 아무 상관없었지만, 상상을 초월한 낙찰가도 적당한 것으로 보였다. 그래도 한 가지 아쉬운 건 이 때문에 안기의 다른 소장품을 입수할 기회를 잃었다는 것이다.

명희는 감격해서 어쩔 줄 모르는 양원길에게 낙찰 받은 금액을 정산하자고 했다. 양원길은 명의자와 액수만 비워진 어음을 꺼냈다. 그러고는 안기 명의로 일억오백만 냥짜리 어음을 끊었고, 명희의 중개료로 일천오십 냥짜리 어음도 끊었다. 명희는 양주 전장의 이름으로 끊은 양원길의 어음의 지불능력을 의심하지 않았다. 황제가 보증한 어음이었으니까.

〈계산행려도〉는 둘둘 말아서 당장 가져갈 수 있는 족자와는 달랐다. 그래서 양원길은 내일 일꾼들을 데려와 〈계산행려도〉를 가져가겠다고 했다. 명희는 그러라고 하면서 시간 약속을 잡았다.

그 때, 승호와 양원길의 시종이 묵연당으로 뛰어 들어왔다.

“아가씨, 도련님, 잘 지내셨어요?” 승호가 숨을 몰아쉬며 안부를 물었다.

“그래, 고생했어. 생각했던 것보다 안색은 괜찮네.” 준이 대꾸했다.

“양 공, 고마워요. 이젠 돌아가세요. 내일 약속 시간에 오시면 돼요.” 명희가 승호에게 별 말하지도 않고 양원길에게 말했다.

“〈계산행려도〉 좀 다시 한 번 보고 가겠소.”

“그럼 그러세요. 우린 먼저 갈게요.” 명희가 양원길에게 말하고 나서 산에게 말했다. “산아, 양 공 가시면 문 닫고 양고기 국숫집으로 와.”


“삼촌, 뭐 하셔? 나 왔어.” 명희가 국숫집에 들어서며 외쳤다.

“뭔 소리를 그렇게 질러? 너희 둘이 웬일로 같이 왔어? 그리고 승호는 어떻게 됐어?” 주인이 물었다.

“안녕하세요?” 승호가 뒤따라 들어오며 인사했다.

“야, 너 괜찮은 거야? 바둑대회 결승전 때 잡혀갔다고 소문이 다 났다고.”

“오늘 풀려났어요.”

“근데, 얼굴은 많이 안 상했네.”

“안에 있을 때, 먹는 것도 잘 나오고, 죄인이 아니라 손님 대하듯 하다라고요.”

“그래, 그래서 셋이 같이 온 거구먼. 근데 준아, 넌 왜 비단옷을 입고 있어?”

“오늘 〈계산행려도〉 경매했잖아요.”

“너도 참여했었어?”

“예, 근데 삼촌 말 들어보니 정말 그러네. 우리들 누구라도 같이 온 게 얼마만이야? 십년 전인가?” 준이 물었다.

“모르겠다. 너희들 혼자서는 자주 오는데, 같이 온 건 정말 십년 전인가? 어쨌든 한 달 전쯤 세현이 양주 떠난다며 들렸다 갔고, 준이 넌 두 달 전쯤인가? 승호는 바둑대회 할 때 왔다가 자리 없어서 그냥 갔고, 명희는 묵연당 개방하기 전 날 왔고.”

“우리들이 홍교에 사니까 그렇지.” 명희가 대꾸하고 준과 승호를 보며 물었다. “나만 그런 줄 알았는데, 다들 성 안에 올 일 있으면 여기 들러서 국수 한 그릇씩 먹고 가나봐?”

“영혼의 음식이랄까? 양주 와서 처음에 먹었던 평산어면관 해물국수랑 여기의 양고기 쌀국수가 그렇다고. 평산에 고상 아저씨 찾아가면 평산어면관을 꼭 찾아가고, 성에 오면 당연히 양고기 쌀국수를 먹어야지.”

“그래? 난 삼이 만들어주는 해물국수 먹으면서 요즘 평산어면관은 잘 안 가는데, 양고기 쌀국수는 꼭 먹으러 온다고.”

“야, 영풍루에서는 국수를 팔지 않잖아? 너한테만 특별히 만들어주는 거라고. 난 삼이 만든 국수 못 먹으니까 당연히 평산어면관 국수 생각이 나지.”

“그런가?”

국수가 나왔다. 국수그릇에는 엷게 썬 양고기가 펼쳐져 있었고 가운데는 양 내장은 얹어져 있었다. 그 위에는 산초가루, 잘게 썬 실파와 고수가 얹어져 있었다. 그 위에 빨간 고추기름이 점막을 이루며 육수 위에 떠 있었다. 고명 때문에 아래의 쌀국수는 보이지 않았고, 김이 모락모락 오르는 양고기 육수가 구수한 냄새를 풍겼다.

“고추기름 더 줘!” 명희가 소리쳤다.

“알았어. 야, 아가씨한테 고추기름 더 넣어드려!” 주인이 점원에게 소리치고 나서 명희에게 말했다. “명희야, 네 덕분에 이 골목 난리가 났었어. 장사는 자리도 없었고, 손님들은 국수를 먹으면서 다들 고관이나 부자들만 들어갈 수 있는 묵연당에도 들어가 보고, 그들만 볼 수 있는 〈계산행려도〉를 봤다며 감격해하더라고. 그리고 〈계산행려도〉를 보고 와서 안 총상을 칭송하더라. 그래서 내가 안 총상 아니라 그의 양녀가 결정한 거라고 말해줬지. 근데 다들 그게 누군지 관심이 없더라.”

“의부께서 칭송받았으면 됐지, 꼭 나일 필요는 없잖아?”

“그래, 그렇게 생각하는 게 너의 매력이지. 넌 성정이 협객 같다니까.”

“그런 말 그만 두셔.” 명희가 주인에게 대꾸하고 나서 말했다. “그리고 산이 오면 국수 한 그릇 먹이고 먼저 돌아가. 난 국수 먹고 나서 의부 찾아뵙고 갈게.”


“낙찰 소식은 이미 들으셨죠?” 명희는 안기에게 인사하고 나서 어음을 꺼내 건넸다.

“그래, 고맙구나.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많아서 놀랐다.” 안기가 어음을 받아들고 말했다.

“의부, 얼굴이 많이 상하셨어요. 이젠 권리금 독촉은 신경 쓰지 마시고 좀 쉬세요.” 명희는 늙고 아픈 듯 창백한 안기의 얼굴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래, 한동안은 아무 신경도 안 쓰고 쉬어야겠어. 그리고 낙찰금에서 일 할은 어음을 끊어 네게 보내줄게.”

“아니에요, 그건 됐어요. 이미 낙찰자에게 일 할을 받았어요.”

“아니, 그래도 네가 받아야 내가 마음이 편할 것 같아.”

“정말 아니에요. 그건 더 이상 아무 말씀하지 마시고, 이건 어떠세요?” 명희는 최근에 입수한 서위(徐謂)의 〈사시화훼권(四時花卉卷)〉이란 화첩을 내밀었다.

안기는 아무 말 없이 화첩을 펼쳤다. 안기의 창백한 얼굴이 흥분으로 붉게 달아올랐다.

안기는 평생 주색이나 음악은 즐기지 않았으며 오직 서화에 빠져 있었다. 감식안은 정평이 나서 감별을 청탁하는 사람들도 있었고 그림을 팔겠다고 찾아오는 사람들도 있었다.

명희가 어떠냐고 물었지만 안기는 그 물음도 듣지 못한 채 그림에만 빠져 있었다. 명희는 안기가 그림을 보도록 그냥 내버려두고 더 이상 말을 걸지 않았다. 안기의 눈빛은 지기를 만난 것처럼 반갑게 반짝였다.

“서문장(徐文長)의 화첩이라, 구하기 힘들지 않았니?” 안기는 화첩에서 눈을 떼지 않고 물었다.

“얼마 전에 운 좋게 구할 수 있었어요.” 명희가 짧게 대답하고 화제를 바꾸었다. “의부, 어떠세요? 자유분방하고, 불우한 화가의 광기도 느껴지고 저가 좋아하는 화풍이에요.”

“그래, 서문장의 그림은 고고하면서도 자유로운 게 매력이지.”

“의부께서 좋아하시니 저도 좋네요. 그 화첩은 의부께서 옆에 두고 보세요.”

“이걸 나에게 준다고? 그래, 고맙구나.” 안기는 사양하지 않고서, 화제를 바꾸어 물었다. “너 올해 스물두 살이지?”

“예.” 명희가 짧게 대답했다.

“좋은 데 시집을 보냈어야하는데. 그래야 내가 네 아버지한테 미안하지 않을 텐데. 그게 아쉽구나.”

“아니요, 꼭 결혼을 해야만 잘 사는 게 아니잖아요? 당신께서도 이해하실 거예요. 조선에서 당신께서 제 마음에 안 드는 곳에 시집보내려고 하셨으면 전 아마 도망쳤을 걸요.”

“그래서 사년 전에 도망쳤다가 토비들에게 납치당했던 것이니?”

“예?” 명희가 당황했다가 말을 이었다. “예, 그랬었죠. 그 때 걱정 끼쳐드려서 죄송해요.”

“아니야, 지금 네가 자유롭게 사는 걸 보니, 난 오히려 좋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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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과 칼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 낙찰 22.05.25 143 2 12쪽
80 〈계산행려도〉 경매 22.05.24 138 4 11쪽
79 초청장 22.05.21 153 3 10쪽
78 투옥 22.05.20 140 3 11쪽
77 바둑대회 22.05.19 143 3 12쪽
76 협객 22.05.18 141 3 12쪽
75 헤엄 22.05.17 150 3 11쪽
74 인계 22.05.14 152 3 13쪽
73 전수 22.05.13 152 3 11쪽
72 서동(書童) 22.05.12 156 3 11쪽
71 둔재 22.05.11 161 3 11쪽
70 경매 22.05.10 163 3 12쪽
69 또 사년이 흐르고 22.05.07 155 3 10쪽
68 화상(畫商) 22.05.06 157 4 12쪽
67 귀환 22.05.05 153 3 11쪽
66 몸값 22.05.04 154 3 12쪽
65 번개 22.05.03 152 3 12쪽
64 실종 22.04.30 161 4 11쪽
63 분배 22.04.29 159 3 11쪽
62 귀재(鬼才) 22.04.28 162 4 12쪽
61 옥패(玉佩) 22.04.27 178 4 13쪽
60 육년 후 22.04.26 165 4 11쪽
59 물난리 22.04.23 164 4 12쪽
58 잃어버린 편지 22.04.22 158 4 11쪽
57 거지 소녀 22.04.21 159 4 12쪽
56 또 다른 이별 22.04.20 161 4 12쪽
55 대리 매입 22.04.19 156 6 13쪽
54 누나 22.04.16 176 5 13쪽
53 이별 22.04.15 171 5 12쪽
52 해후 22.04.14 172 6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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