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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칼날 님의 서재입니다.

그림과 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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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검은칼날
작품등록일 :
2021.12.18 21:47
최근연재일 :
2022.07.05 16:00
연재수 :
110 회
조회수 :
25,821
추천수 :
565
글자수 :
581,056

작성
22.04.23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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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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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글자
12쪽

물난리

DUMMY

안기의 시큰둥한 반응에 쥐는 당황스러웠지만 말을 이었다.

“그렇습죠. 그깟 편지가 뭔 대숩니까? 그런데 얼마 전에 안공 댁에 아이 둘이 들어왔다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오늘 찾아온 건 그 아이들을 한 번 보려고 온 것입니다. 원래 구조한 아이들이 네 명인데, 여기 온 아이가 두 명이라니 확신은 없습니다만, 먼저 한 번 본 다음에 관아에 신고하겠습니다.”

“네가 감히 안공의 집에 들어와 마음대로 사람을 보겠다고?” 집사가 발끈했다.

“그럼 저희가 신고한 후 관아에서 수색을 나오면 보여주시겠습니까? 보든 안 보든, 나랏법이 중하니 저희도 신고를 안 할 수 없지 않습니까?” 쥐는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그래, 원하는 게 무엇이냐?” 안기는 이런 대화를 더 하는 것이 지겹다는 듯이 물었다.

“저희는 우선 그 애들을 찾아 훔쳐간 돈을 돌려받을 겁니다. 그 다음에는 관아에 신고를 할 것입니다. 물론 나랏법에 따른 처분은 그 아이들의 몫이겠지요. 저희가 먼저 확인한 후에 구조한 아이들이 아니면, 저희가 가진 편지는 그냥 드리겠습니다.”

“그 아이들이 훔쳐간 돈이 얼마냐?”

“은자 이백 냥입니다. 안공께서 물어주시려고 하십니까? 저희가 감히 어떻게 폐를 끼치겠습니까? 우선 아이들만 한 번 보여주십시오.”

“그 애들이 훔쳐갔다는 은자는 내가 물어주지.”

“아닙니다. 왜 안공께서 돈을 쓰십니까? 저희가 직접 잡아야지요.”

“여기를 함부로 뒤지기라도 하겠다는 건가? 그건 됐고, 아까부터 편지 얘길 하던데 그 편지부터 한 번 내놓아보게.”

“아, 그 편지 말입니까? 우선 아이들부터 보여주십시오.”

“무슨 아이들을 보여줘! 편지가 없다면 그만 나가게.”

“예?” 쥐가 당황했다.

“어서 내보내라.” 집사가 청년에게 말했다.

“예.” 청년이 대답하며 그들에게 다가갔다.

“아니요, 아닙니다.” 쥐가 다급하게 부정하다 선장에게 말했다. “선장님, 편지를 빨리 보여드리세요.”

“잠깐만요, 잠깐만 기다려주십시오. 그 편지는 여기 있습니다.” 선장이 다급하게 품에서 편지를 꺼냈다.

“이리 주게.” 그들에게 다가간 청년이 선장에게 말했다.

“예예.” 선장이 꺼낸 편지를 청년에게 건넸다.

청년은 편지를 들고 가서 안기에서 건넸다.

안기는 봉투에서 편지를 꺼내 읽었다. 다시는 못 볼 줄 알았던 지기의 필적을 보는 것이 지기를 대면하는 듯 했다. 자녀를 부탁하는 절절한 내용에 목이 메었다. 선장과 쥐가 앞에 있기에, 일부러 표정을 감추려고 했지만 쉽지 않았다.

“편지 값은 얼마를 원하나?” 집사가 안기의 표정을 읽고 주의를 돌리려고 그들에게 물었다.

“예? 일백 냥, 아니 이백 냥은 어떻습니까?” 선장이 당황하며 대충 값을 불렀다.

“그럼요, 이백 냥은 주셔야죠. 그리고 아이들···” 쥐가 한 마디 거들었다.

“야, 입 닥쳐!” 선장이 아이들 이야기를 또 꺼내자 목소리를 낮춰 쥐에게 으르렁거렸다.

“오백 냥 줘서 보내게.” 안기가 목소리를 낮춰 집사에게 말하고, 편지를 품에 넣고 돌아앉았다.

“오백 냥을 주겠네.” 집사가 안기 대신 말했다.

“예? 예, 고맙습니다.” 선장이 예상보다 훨씬 많은 액수에 놀랐다.

“저들에게 오백 냥을 내주고 돌려보내게.” 집사가 청년에게 말했다.

“예.” 청년이 대답하고 그들에게 다가갔다.

안기가 두통 때문에 손으로 머리를 짚으며 의자에게 기댔다.

“이젠 그 입 좀 닥치고 사라지게. 그리고 무슨 얘기가 여기로 들려오면 그땐 자네들 입놀림 값으로 목숨을 받아가겠네. 그리고 앞으로 양주에서 내 눈에 띄어도 그렇게 하겠네. 날 따라와! 밖에서 은자를 내줄 테니 다시는 양주에는 발 들여놓지 말게.” 청년이 웃으며 눈을 부라렸다.

선장은 담이라면 자신 있었지만, 화려한 옷을 입은 청년의 협박에 모골이 송연해졌다.

선장과 쥐는 청년을 따라 안기의 서재를 나왔다.


“올해는 여기에 물난리가 날 것 같아요.” 사동각 문 앞에 내리는 비를 바라보던 아영이 말했다.

“형, 뭐래?” 준이 물었고, 승호가 통역을 해주었다.

“비가 방금 내리기 시작했는데 벌써부터 뭔 물난리야.” 승호는 준의 말을 통역하지 않았다.

아영은 준의 말을 알아듣지는 못했지만 미소를 지었다. 그녀는 사동각에 온지 사흘 만에 이런 식의 대화에 익숙해졌다.

“저 어렸을 때 오늘 날씨와 똑같았던 적이 있어요. 그러고 그 해에 물난리가 났어요. 습한 냄새가 너무 진하지 않아요?”

승호는 이번에도 통역하지 않았다. 예쁜 구석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그녀의 얼굴에서 반짝이는 눈을 바라보았다. 세상의 슬픔을 모두 떠안은 듯 했지만 또 어떻게 보면 슬퍼보이지 않았다. 준과 같은 천진함이 있었지만 알 수 없이 복잡한 것 같은 눈빛이었다. 승호는 고개를 흔들고 그녀의 눈빛에서 고개를 돌렸다.

모두들 문 앞에 듣는 비를 바라보았다.

아영은 한어를 잘 하는 승호와 얼마 전부터 배운 간단한 한어만 하는 준이 조선에서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지 궁금했다. 하지만 묻지 않았다. 노비에겐 주인에 대해 물을 자격이 없었으니까. 하지만 그들은 자신을 노비처럼 대하지 않았다. 어떻게 이곳에 왔건 마음씨 좋은 사람들임은 분명했다.

비단옷을 벗어주고 낡은 옷을 입고 있는 준을 보면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들에게 옷을 지어주겠다고 해도 옷감도 안 사다주고, 밥을 해주겠다고 해도 쌀은커녕 땔감조차 사오지 않았다. 청소라도 할라치면 빗자루를 뺐고 쉬라고 했다. 또 다시 기절하면 귀찮으니까 그냥 쉬라고만 했다.

그들은 옆집에서 가져오는 음식도 같이 먹자고 했다.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처음 와서 죽을 먹을 때는 사양하지 않았지만, 여기 있기로 한 이상 그럴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들은 같이 안 먹으면 자신들도 안 먹겠다고 젓가락도 들지 않았다. 노비가 먼저 젓가락을 들어야 밥을 먹는 주인이라니. 이해할 수 없는 주인들이었다. 둘 다 지금까지 한 번도 노비를 소유하지 않았던 사람임은 확실했다.

준은 하루 종일 만불루의 불상을 그렸고, 승호는 빈둥거리며 책을 읽었다. 이런 사람들이 어떻게 이런 가게를 소유했는지도 알 수 없었다.


“선장님, 우선 여기서 비라도 피합시다.”

아영은 그 말소리에 생각을 떨쳐내고 문 앞을 보았다. 비에 젖은 두 남자가 가게로 들어왔다. 손님을 맞으러 달려 나갔다.

“여기 과홍각(跨虹閣)이 어디요?” 쥐가 비를 털어내며 물었다.

“모르겠네요. 과홍각이 술집이라면 여긴 아닙니다. 여긴 그림가게예요. 우선 앉아서 비라도 피하십시오.” 아영이 상냥하게 대꾸했다.

쥐는 못생긴 아영의 상냥함에 눈살을 찌푸렸다.

아영은 신경 쓰지 않고 탁자로 자리를 권했다. 그러다 탁자에 앉아 있던 승호와 준이 얼음처럼 굳어 있는 것을 보았다.

“이 새끼들 여기 있었네.” 쥐가 준에게 다가가 대뜸 준의 뺨을 후려쳤다.

준의 얼굴이 돌아갔다. 아영은 그 둔탁한 충격음에 치를 떨었다. 침묵이 흘렀다. 모두들 그 상태로 멈춰 있었다.

“야, 그냥 가자.” 선장이 문제를 일으키기 싫어 쥐의 팔을 끌었다.

“잠깐만요. 이 새끼가 내 팔을 물어뜯었다고요.” 쥐가 팔을 뿌리치며 말하곤 노려보았다.

준도 그를 노려보았다. 아영은 한 번도 본 적 없는 준의 분노한 눈빛에 경악했다. 쥐는 그 눈빛을 더 이상 받을 수 없어서 고개를 돌리고 헛기침을 했다.

“야 이 새끼야, 뭘 그렇게 노려봐!” 쥐가 눈싸움에 진 것이 짜증난 듯 준의 뺨을 후려갈기기 시작했다.

준은 맞을 때마다 돌아가는 고개를 바로 세워 그의 눈을 노려보았다.

“제발, 그만 해요.” 아영이 그의 팔을 잡아끌며 말했다.

쥐는 그녀를 뿌리쳤고 그녀는 엎어졌다. 그리고 다시 준의 뺨을 후려갈겼다.

“이 새끼야, 그만 하라잖아!” 승호가 탁자를 후려치며 일어섰다.

“넌 뭐야, 새끼야.” 쥐가 손을 멈추고 일어선 승호를 노려보았다.

쥐는 잠시 머뭇거리다 손을 뻗어 승호의 뺨을 때렸다. 승호는 아무 말 없이 맞았다. 그러나 자신보다 키가 한 뼘이나 더 큰 승호를 때리는 건 불편했다. 그러자 손을 멈추고 옆에 엎어져 있던 아영을 발로 찼다.

“그만 해!” 준이 한어로 소리쳤다. 그러면서 자신의 몸으로 아영을 감싸 안으며 그의 발길질을 막았다.

“이 새끼 그새 한어 배웠어. 지랄한다. 또 한 번 물어보지. 왜?” 쥐가 씩씩거리며 준에게 발길질을 해댔다.

“그만 하라고 했잖아!” 승호가 그의 멱살을 움켜쥐고 주먹질을 시작했다.

“조선의 도둑놈의 새끼가 사람 패네. 선장님, 말려주세요.”

“야, 너 같은 쥐새끼는 조선 도둑놈이 아니라 청나라 도둑놈이라도 가만 두지 않아.” 승호는 쥐를 닮은 사내에게 주먹을 날리며 악에 받쳐 소리를 질렀다. 그러면서 쥐의 얼굴에 계속 주먹을 먹였다.

선장은 수수방관했다.

욕을 하며 꽥꽥대던 쥐의 목소리가 잦아들었다.

승호는 여전히 주먹을 날렸다. 준은 눈이 풀려가는 쥐를 노려보았다. 준의 아래 숨어있던 아영도 승호의 주먹질을 바라보았다. 광기였다. 승호는 이미 늘어진 쥐를 계속 패고 있었다.

“그만 하지. 이미 죽은 것 같은데.” 수수방관하던 선장이 승호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승호는 그제야 잡았던 멱살을 놓았고, 쥐는 바닥에 힘없이 퍼졌다.

쥐의 얼굴은 뼈와 살이 뒤엉킨 채 피범벅이 되어 있었다. 쥐의 돌아간 아래턱뼈는 깨져서 살을 뚫고 나와 있었다. 승호의 주먹도 뭉개져 온통 피범벅이었다.

승호는 피범벅이 된 자신의 주먹과 쥐의 시체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그 눈은 공허했다. 상황도 이해하지 못했다. 번개가 잠시 사동각 안을 밝혔다. 승호는 피 묻은 손으로 머리를 감싸 안으며 공포에 치를 떨었다. 아영이 얼이 빠진 승호를 위층의 방으로 데리고 올라갔다.

선장은 남아 있는 준을 보며 무언가 말을 하려다 한숨을 쉬었다. 잠시 후 아영이 위층에서 내려왔다.

“이건 난 모르는 일이다. 너희가 알아서 해라.” 선장이 아영에게 말을 꺼냈다.

아영은 말뜻을 알아듣지 못해 시체를 보며 눈살을 찌푸렸고, 선장은 얼이 빠진 아이들을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시체는 너희가 처리하란 말이다. 함부로 버리면 안 된다는 건 알고 있겠지? 뭔 말인지 아냐?” 선장은 아영을 보며 물었다.

아영은 멍하니 시체를 바라보다 고개를 끄떡였다.

“난 모르는 일이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을 테니, 시체만 잘 처리해라. 그럼 아무도 모를 것이야. 이제 알아들었냐?”

아영은 고개를 끄떡였다.

선장은 시체로 다가가 그가 메고 있던 봇짐을 빼냈다. 그러고는 묵직해 보이는 봇짐을 짊어지고 사동각을 떠났다.

아영은 비를 맞으며 떠나는 그와 남아 있는 시체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물난리가 날 것 같다고 했잖아요? 어서 위층으로 올라가세요.” 아영은 홍교의 제방까지 넘어선 물길을 보며 외쳤다.

승호가 살인을 저지르고 이틀 뒤, 사동각 아래층이 빗물에 잠겼다.

온갖 것들이 빗물에 떠내려 왔다. 산 사람도 죽은 사람도 떠내려 왔다. 산 사람은 널빤지 같은 것들을 붙들고 있었지만 빠른 물살 때문에 구할 수가 없었다. 죽은 사람은 빠른 속도로 그냥 떠내려갔다.

이틀 동안 사동각에 숨겨져 있던 쥐의 시체도 그 물살에 휩쓸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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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 바둑대회 22.05.19 143 3 12쪽
76 협객 22.05.18 141 3 12쪽
75 헤엄 22.05.17 150 3 11쪽
74 인계 22.05.14 152 3 13쪽
73 전수 22.05.13 152 3 11쪽
72 서동(書童) 22.05.12 156 3 11쪽
71 둔재 22.05.11 161 3 11쪽
70 경매 22.05.10 163 3 12쪽
69 또 사년이 흐르고 22.05.07 155 3 10쪽
68 화상(畫商) 22.05.06 157 4 12쪽
67 귀환 22.05.05 153 3 11쪽
66 몸값 22.05.04 154 3 12쪽
65 번개 22.05.03 152 3 12쪽
64 실종 22.04.30 161 4 11쪽
63 분배 22.04.29 159 3 11쪽
62 귀재(鬼才) 22.04.28 162 4 12쪽
61 옥패(玉佩) 22.04.27 178 4 13쪽
60 육년 후 22.04.26 165 4 11쪽
» 물난리 22.04.23 163 4 12쪽
58 잃어버린 편지 22.04.22 158 4 11쪽
57 거지 소녀 22.04.21 159 4 12쪽
56 또 다른 이별 22.04.20 161 4 12쪽
55 대리 매입 22.04.19 156 6 13쪽
54 누나 22.04.16 176 5 13쪽
53 이별 22.04.15 171 5 12쪽
52 해후 22.04.14 172 6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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