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덧붙임

구룡 사이버펑크 96

웹소설 > 작가연재 > 판타지, 퓨전

덧붙임
작품등록일 :
2020.05.22 00:56
최근연재일 :
2023.07.01 23:23
연재수 :
50 회
조회수 :
124,899
추천수 :
6,228
글자수 :
274,884

작성
21.06.30 20:02
조회
792
추천
38
글자
11쪽

죽은 신을 위한 미사(6)

DUMMY

“끄아아악!”


화염방사기에서 뿜어져 나오는 강렬한 불꽃이 바이오로이드 하나를 집어삼켰다.


바이오로이드가 입고 있는 바이크 슈트는 전투 사양으로 개조된 것이고 당연히 내화성 시험을 통과한 물건이지만 압도적인 화력을 정면에서 이겨낼 수 있을 정도는 아니었다.


바이크 슈트의 곳곳이 열량을 이기지 못하고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고 더는 방호구의 보호를 받지 못하게 된 바이오로이드가 찢어지는 듯한 비명을 질렀다.


“휘유, 이거 성능 한 번 확실하네.”


토마스는 마치 생일 케이크의 촛불을 끄듯이 화염방사기의 노즐에 후 하고 바람을 불었다.


“······영감님, 사람 좀 죽여보셨나 봐? 눈 하나 깜짝 안 하네.”


사람이 불에 타서 죽을 때의 고통은 아주 끔찍하다고 한다. 젠킨스는 화상을 입어본 적이 없지만 지금 바닥을 구르고 있는 바이오로이드만 봐도 얼마나 몸이 불타는 게 얼마나 끔찍한 고통인지 쉽사리 짐작할 수 있었다.


그리고 남에게 끔찍한 일을 하려는 사람에게는 끔찍할 정도의 용기가 요구된다. 사람을 불태우려면 그만큼의 용기가 있어야 한다는 소리다.


사람을 그냥 죽이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인데, 불태워서 죽인다니. 보통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토마스는 그런 것 따위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듯 바이오로이드를 태워죽였다. 강심장이거나 타인의 고통에 대한 공감 능력이 없거나.


아무래도 토마스는 전자 쪽이 아닐까 하고 젠킨스는 가만히 생각했다.


“사람? 내가 사람을 언제 죽였다는 거냐? 여기 사람이 어디 있어?”


토마스가 흥 하고 콧방귀를 뀌며 화염방사기의 호스를 움직여 바이오로이드를 겨누었다.


“저런 건 사람이 아니야. 사람은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태어나는 거다.”


화르륵! 다시 한 번 화염방사기가 불을 뿜었다. 또 하나의 바이오로이드가 화염 속에 삼켜져 고통스런 비명을 지르는 것을 보며 젠킨스는 굳게 입을 다물었다.


‘사람은 태어나는 거라고······.’


생물인간과 합성인간의 차이. 완전히 똑같아도 태생이 다르면 결국 다르다는 것인가.


요즘 시대에는 극히 드물어진 논리다. 이 세상에는 이제 순수한 의미의 인간보다 만들어진 존재, 다른 세상에서 온 존재들이 더 많으니까.


“이 멍청한 놈들. 뭣들 하고 있는 거야? 멍청하게 있지 말고 저 빌어먹을 노인네와 구룡제일검을 죽여.”


베를로트가 나직이 명령하자 바이오로이드들이 그제야 움직이기 시작했다.


열여덟 명의 바이오로이드의 키와 체격 등이 모두 자로 잰 듯 똑같은 걸 보면 아마 하나의 원본을 가지고 대량 생산한 듯 했다.


‘실전 경험이 있는 타입은 아니군.’


젠킨스는 택티컬 카타나의 손잡이를 만지작거리면서 바이오로이드의 움직임을 관찰했다.


‘움직임이 전부 똑같은 걸 보면 실전을 통해서 전투 데이터를 얻은 게 아니야. 생산 과정에서 머릿속에 직접 전투 데이터를 주입한 거지. 그쪽이 좀 더 경제적이고 일관적인 생산물을 얻기 쉬울 테니까.’


“죽어라, 죽어! 이 더러운 놈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뒈져라!”


토마스가 화염방사기를 거칠게 휘두르며 바이오로이드를 혼자 상대하고 있었다. 아까 전에는 베를로트의 명령이 없어서 두 명의 바이오로이드가 허망하게 당했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랐다.


기동특무대의 타격대에 인원 보충을 위해 생산된 개체들인만큼 그들의 전투 센스는 탁월했다. 일부러 화염방사기의 사거리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상황을 지켜보며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이 노리는 기회가 무엇인지는 누가 봐도 명백했다.


틱틱. 토마스가 화염방사기의 방아쇠를 당기지만 맥 빠지는 소리만 날 뿐, 불꽃은 더이상 나오지 않았다. 마구잡이로 화염방사기를 갈겨댄 탓에 압축가스가 바닥난 탓이다.


“어? 씨발, 이거 왜 이래?”


토마스가 당황한 얼굴로 방아쇠를 연신 당겼지만 그런다고 불꽃이 나오지는 않았다. 바이오로이드들은 그때를 노려 먹잇감을 향해 달려드는 승냥이처럼 토마스를 향해 달렸다.


무기도 없고 제대로 된 싸움 능력도 없는 토마스가 열여덟 명이나 되는 전투 바이오로이드를 상대로 1초라도 버틸 수 있을 리가 없다.


베를로트도 그 사실을 알기에 저 성가신 노인네가 죽는 모습을 즐겁게 상상하고 있었지만.


탁!


“대충 보니까 견적은 나왔고.”


이름은 스턴 블레이드지만 실상은 일격에 상대를 감전시켜 죽음에 이르게 할 수 있는 강력한 무기를 막아낸 것은 한 자루의 카타나였다.


요즘 같은 세상에 저런 구시대적인 물건을 사용하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냉병기의 몰락과 열병기 시대의 도래. 그 이유가 무엇 때문인지 모르는 사람은 세상에 없다.


하지만 있다. 이 세상에는 시대착오적인 삶을 살고 있는 사람이.


에너지 블래스터는 물론이고 그에 못지 않게 강력한 마법까지 날아다니는 세상에서 칼 한 자루만 들고 설치는 미친놈이.


“5분이면 떡을 치겠군. 덤벼, 새끼들아.”


서걱! 택티컬 카타나가 스턴 블레이드를 베어냈다. 본래 스턴 블레이드에 물체가 접촉하면 그대로 전류가 타고 흘러 감전의 위험이 있지만 젠킨스의 택티컬 카타나는 그런 문제에 있어서도 미리 방지 대책을 세워둔 물건이었다.


아무리 젠킨스가 미친놈이어도 이런 세상에서 칼 한 자루만 들고 싸우려면 무언가 대책이 있기는 해야 했으니까.


“······젠킨스.”


베를로트는 젠킨스가 싸우는 모습을 보며 작게 이를 갈았다. 열여덟 명의 바이오로이드와 한 명의 칼잡이의 싸움.


술자리에서 센 척을 할 때나 나오는 그런 이야기가 아니다. 젠킨스는 허세 따위가 아니라 정말로 열여덟 명의 전투 바이오로이드와 싸우고 있었다.


“······구룡제일검 젠킨스.”


그 이름에 대해서는 베를로트도 익히 들었다. 공중도시 구룡에 사는 무법자들이라면, 암흑가에 사는 자들이라면 그 이름을 모를 수가 없다.


하지만 보통 그런 명성들은 눈송이가 구르고 굴러 거대한 눈덩이가 되는 것처럼, 진의를 알 수 없는 헛소문들이 달라붙어 비대해지는 법이다. 혼자서 용을 죽인 용살자가 있다고 해서 가보니 실제로는 거대한 도마뱀을 죽인 것에 불과한 것처럼.


“과연, 구룡에서 칼밥 먹고 살 만한 실력이군. 테이오의 강화육체도 훌륭하지만 결국 중요한 건 본인의 실력.”


아무리 강력한 무기가 있어도 다루는 건 사용자의 몫이다. 테이오의 강화육체가 훌륭한 건 맞지만 결국 육체 주인의 전투 센스가 없으면 그냥 무식하게 힘만 센 육체가 될 뿐이다.


그런 점에서 젠킨스는 훌륭하다. 생전 가지고 있던 전투 능력과 부활 후 얻은 강화육체의 조합은 뛰어난 결과를 만들어 내고 있다.


“타격대 공급용 바이오로이드로는 결국 이 정도일 뿐인가. 개선점이 많군.”


젠킨스가 택티컬 카타나를 한 번 휘두를 때마다 바이오로이드가 서걱 소리를 내며 죽어 나간다. 저건 분명 수없이 많이 사람을 죽여본 자만이 할 수 있는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동작이다.


“일단 기본 전투 능력은 합격점이지만 전투 응용 능력이 전혀 없어. 아무래도 실전을 통한 전투 데이터를 축적한 게 아니니 유연성이 부족한 건 어쩔 수 없는 부분인가.”


베를로트는 자신의 바이오로이드들이 하나씩 죽어 나가고 있는 상황 속에서도 그리 당황한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그는 그저 일련의 싸움 속에서 자신의 물건들이 가진 결함을 알아내는 데 집중했을 뿐이었다. 그건 얼음 같은 침착함과는 분명히 다른 것이었다.


굳이 설명하자면 해야 하는 일을 하는 사무적인 태도와 같았다. 생산자로서 자신의 물건의 상태를 확인하는 그런 행동.


“하지만 이 이상으로 성능을 올리면 생산 단가가 맞지 않아. 애초에 기동특무대의 요구 사항은 이미 충족했고. 하지만 다음 개체를 생산할 때 참고할 만한 부분이 있겠군.”


이제 바이오로이드가 다섯도 남지 않았을 때, 베를로트는 여유롭게 자신의 PEN에 접속하여 개선점을 차근차근 적어나가기 시작했다.


다섯, 넷, 셋, 둘, 그리고 마지막 하나.


서걱 소리를 내며 바이오로이드가 젠킨스의 택티컬 카타나에 의해 세로로 갈라졌다. 왼쪽 몸이 먼저 쓰러지고 한 박자 늦게 오른쪽 몸이 쿵 소리를 내며 바닥으로 떨어졌다.


가짜 요람 안은 화염방사기에서 나온 불꽃의 뜨거운 열기와 바이오로이드의 시체에서 나온 혈향으로 가득 찼다.


한참 PEN에 이것저것을 기록하던 베를로트는 자신과 한 걸음 거리를 남겨두고 선 젠킨스를 보며 두 손을 천천히 움직였다.


짝, 짝짝, 짝짝짝.


“대단해.”


짝짝짝 박수 소리가 이어졌다. 베를로트는 마치 조롱이라도 하는 것처럼 입을 오므려 휘유 소리를 냈다.


그 소리를 들은 젠킨스는 손으로 가스마스크에 달라붙은 핏자국을 닦아냈다. 붉은색 자국이 길게 남았지만 그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덥다. 열기 때문에 덥고 한참 날뛴 탓에 더 덥다. 젠킨스는 가스마스크 안에서 땀을 주륵 흘리며 택티컬 카타나로 베를로트를 겨누었다.


“더 있냐? 있으면 빨리 데려오고. 나 바쁘다.”


“아니, 더 없다. 이 가짜 요람 안에 있는 바이오로이드는 이게 끝이야.”


“이 가짜 요람?”


베를로트가 어깨를 으쓱였다.


“그럼 내 사업장이 여기 하나뿐일 거라고 생각했어? 이봐, 나 요정 사냥꾼 베를로트야.”


“아, 그래. 잘나셨어. 그런데 어쩌냐. 넌 오늘 여기서 죽을 건데. 그 많은 사업장도 이제는 아무 의미도 없게 됐네.”


“크큭······. 뭐··· 그럴지도 모르지. 그럴지도.”


“뭐라는 거야, 씹새가.”


젠킨스가 휙 하고 카타나를 휘둘러 칼날에 묻은 오물을 털어냈다. 그는 다시 날카롭게 빛나는 택티컬 카타나로 베를로트의 목을 겨누었다.


“마지막으로 할 말 있으면 해. 나도 그 정도 아량은 있다.”


“음, 마지막 말이라. 생각해 본 적 없는데. 애초에 할 이유도 없고. 하지만 뭐 기회는 기회니까. 그럼 무슨 말을 할까.”


베를로트가 잠깐 고민하는 듯 관자놀이를 손가락으로 툭툭 두드렸다. 잠시의 시간이 지나고 그가 입을 열었다.


“어째······.”


서걱!


“아, 빨리 말해야지, 씹새야.”


그 잠깐의 새를 참지 못하고 젠킨스가 택티컬 카타나를 휘둘렀다. 베를로트의 목이 날카로운 칼날에 의해 잘렸다.


하지만 격렬한 전투 때문에 칼날의 날카로움이 조금 무뎌진 탓인지, 아니면 베를로트의 목뼈가 굵었던 탓인지, 젠킨스가 기대했던 것처럼 깔끔하게 목이 잘리지 않고 머리가 목에 붙어 덜렁거렸다.


“어······. 꼭 저딴 식으로 잘랐어야 했냐?”


“잘 안 잘려서 그래요. 일부러 그런 게 아니라.”


젠킨스가 쯧 하고 혀를 차는 순간 덜렁거리던 베를로트의 머리가 바닥으로 쿵 하고 떨어졌다.


허공에서 바닥까지의 추락, 짧디 짧은 그 시간 동안 베를로트의 머리가 소리도 없이 입술만 움직여 말했다.


그리고 젠킨스는 입술의 움직임을 정확하게 읽어냈다.


······서 알브니스트들이 널 원하는 지 알겠군.


“뭐?”


무슨 소리야? 하지만 대답해 줄 사람은 이제 없었다.


작가의말

쉽지가 않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7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구룡 사이버펑크 96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연재주기 안내 +9 20.08.17 3,893 0 -
공지 팬아트 목록 +7 20.08.14 2,154 0 -
공지 후원금 보내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4 20.08.13 1,613 0 -
50 좋은 요정들(8) +18 23.07.01 640 28 13쪽
49 좋은 요정들(7) +9 22.07.10 716 24 16쪽
48 좋은 요정들(6) +5 22.04.28 418 25 13쪽
47 좋은 요정들(5) +8 22.04.26 390 16 11쪽
46 좋은 요정들(4) +4 22.03.19 494 23 13쪽
45 좋은 요정들(3) +11 21.12.30 648 28 11쪽
44 좋은 요정들(2) +7 21.11.16 675 36 12쪽
43 좋은 요정들(1) +8 21.09.08 742 34 11쪽
42 죽은 신을 위한 미사(7) +11 21.08.21 702 43 13쪽
» 죽은 신을 위한 미사(6) +7 21.06.30 793 38 11쪽
40 죽은 신을 위한 미사(5) +16 21.04.17 930 43 13쪽
39 죽은 신을 위한 미사(4) +12 21.04.15 836 39 12쪽
38 죽은 신을 위한 미사(3) +24 21.02.16 1,156 59 12쪽
37 죽은 신을 위한 미사(2) +30 20.11.13 1,590 62 12쪽
36 죽은 신을 위한 미사(1) +20 20.11.06 1,398 77 12쪽
35 구룡성(13) +12 20.10.30 1,183 57 13쪽
34 구룡성(12) +11 20.10.25 1,177 71 13쪽
33 구룡성(11) +30 20.09.28 1,590 86 11쪽
32 구룡성(10) +13 20.09.20 1,497 78 11쪽
31 구룡성(9) +13 20.09.17 1,368 74 12쪽
30 구룡성(8) +23 20.09.11 1,498 87 12쪽
29 구룡성(7) +17 20.09.04 1,477 85 11쪽
28 구룡성(6) +20 20.08.31 1,564 87 12쪽
27 구룡성(5) +11 20.08.30 1,518 82 12쪽
26 구룡성(4) +8 20.08.28 1,592 76 12쪽
25 구룡성(3) +14 20.08.27 1,653 86 12쪽
24 구룡성(2) +19 20.08.24 1,734 99 13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