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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수재수 님의 서재입니다.

공주님 탱 좀 서주세요

웹소설 > 작가연재 > 현대판타지, 판타지

재수재수
작품등록일 :
2023.12.15 17:19
최근연재일 :
2024.01.03 01:00
연재수 :
19 회
조회수 :
883
추천수 :
6
글자수 :
88,185

작성
23.12.24 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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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9화

DUMMY

무더운 여름.

구청 본관의 지하 1층 구내 식당에서 게안부가 있는 서쪽 3관까지는 걸어서 15분이나 걸린다. 덕분에 점심 식사를 마치고 돌아왔을 때, 원우의 등은 땀으로 축 젖었다.

‘후아. 여긴 어째 날이 갈수록 더워지냐.’

게안부에 도착한 원우가 에어컨 앞에서 작은 행복감을 맛보고 있을 때. 단아도 마침 회의실에서 나오는 참이었다.

“휴, 힘들었다.”

“계약 조정은 잘 끝나셨어요?”

생각지도 못한 연계 던전의 등장과 그에 따른 던전 난이도 조정으로 인해 계약에도 변수가 생겨버렸다.

“응, 연계던전이라 보수 더 받기로 했어.”

그렇게 말하며 단아가 손으로 브이자를 그렸다. 그런 단아를 향해 원우는 엄지를 척 올려줬다.

“잘됐네요. 고생하세요.”

“오빠도 갈 건데 뭔 소리야?”

“네? 전 왜요?”

눈을 동그랗게 뜨는 원우를 향해서 단아가 무언가를 내밀었다.

원우의 임시 헌터 등록증이었다.

헌터증에는 아직 측정도 하지 않은 헌터 랭크까지 야무지게 박혀있다.

“······F급이네요.”

“당연하잖아? [이계 언어] 스킬은 전투 스킬도 아닌 데다 던전 클리어 실적도 없으니까.”

“아니, 그건 상관없는데요.”

“곧 정식 헌터증도 나올 거야. 일주일 정도 걸린대.”

“아니, 그게 아니라.”

“응? 그럼 뭔데?”

“······제가 왜 공주님과 같이 던전에 갑니까?”

“이번 던전 공략에 [이계 언어] 스킬이 필요하다던데?”

“왜, 왜요?”

원우의 물음에 단아가 말없이 다른 문서를 내밀었다.

표지에 1급 기밀이라 떡하니 적혀있는 검은 문서.

조심스럽게 내용을 확인한 원우는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몇 번이고 다시 읽어보다가 머리를 감싸 쥐었다.

“······미친, 이건 말도 안 돼.”

“아, 그리고 헌터 수습 기간 동안은 내가 책임지고 동행할 거야. 따로 헌터 교육받을 필요 없어서 좋지?”

단아가 생긋 웃으며 어깨를 으쓱했다.

“······뭔 짓 하셨죠?”

“아닌데?”

“그런 게 아니면 이런 게 정상적으로 나올 리가 없잖아요!”

“아닌데?”

그게 아니면 헌터증이 이렇게 빨리 나올 리가 없다.

원래라면 3개월간 헌터 교육과 훈련을 받고 나서 면밀한 능력 검사를 받은 후 자격시험을 통과해야 받을 수 있는 건데 그걸 모조리 건너뛰었으니까 말이다.

’하아, 내 평온했던 공무원 생활이 어쩌다 이렇게······.’

원우는 그냥 쥐죽은 듯이 살면서 적당히 일하고 적당히 벌어먹다가 천천히 급수를 올릴 생각이었다.

적당히 일하고 적당히 놀면서 적당히 버는 게 꿈이었는데 이렇게 돼버리다니······.

인생 설계가 한순간에 단단히 꼬여버렸지만, 9급 공무원 따위가 위에서 내린 결정을 뒤집을 순 없다.

‘월급쟁이가 까라면 까야지.’

원우는 눈물을 머금고 임시 헌터증을 주머니에 구겨넣었다.


***


그렇게 며칠 후.

다음 공략 목표 던전에 대한 이야기를 듣자마자 단아가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설마 그 크툴루 던전?”

“네. 모르셨어요?”

“난 그냥 보수만 이야기하고 나왔으니까 몰랐지.”

단아의 무책임한 대답에 원우는 아까보다 더욱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냥 사표 쓸 걸 그랬나······.’

세계에서 가장 공략이 어려운 던전 중 한 곳으로 손꼽히는 악명 높은 던전. 함정이나 미로가 있다거나 까다로운 공략법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그저 순수하게 너무 어려워서 클리어할 수 없는 던전이었다.

우리나라에는 던전 브레이크를 막기 위해 모든 던전은 원칙적으로 클리어해야 한다는 법이 있다. 하지만 이곳은 쉽사리 클리어할 수가 없어서 그동안은 던전 내 세력을 줄이는 방법으로 조금씩 늦춰왔다.

그래서 붙여진 이 던전의 별명은 [공략 불가 난이도 SSS급 던전.]

“게이트 한 번 엄청 크네. 이거 대형 덤프트럭도 들어갈 수 있는 거 아니야?”

“가능할 것 같은데요. 마침 문명 레벨도 넉넉하고.”

“문명 레벨도 높아?”

“네. 제가 기억하기론 미사일도 반입이 가능한 걸로 알아요.”

원우의 말에 단아가 조금 다른 의미로 게이트를 올려다 봤다.

국가에서 그런 것까지 썼는데도 지금까지 클리어할 수 없었던 던전이라는 뜻이기 때문.

“······어라? 오빠 분명 F급이지? 그런데 이 던전을 배정받았다고?”

“모르고 데려오신 거였어요?”

“난 그냥 적당히 A~B쯤 되는 던전이나 끌고 다닐 줄 알았지.”

“그것도 상당히 높은 편이긴 합니다만.”

“아무튼, 왜? 왜 이런 곳에 가래?”

“제 스킬이 필요하다면서요? 진짜 아무것도 못 들으셨어요?”

“아니, 당연히 못 들었지. 상식적으로 이런 곳에 F급을 보낼 리가 없잖아?”

“하아······.”

이유는 바로 원우가 가진 [이계 언어] 때문이었다.

지구상의 언어가 아니라면 그것이 무엇이 되었든 전부 해석이 가능한, 말 그대로 언어 능력에서는 가히 사기적인 스킬.

이론적으로는 던전 내에서 나오는 마법서든 무공서든 초고도 문명에서 만든 설계도든 전부 읽을 수 있다.

물론 읽는 것과 해석하는 건 전혀 다른 문제다.

이를테면 초등학생한테 미적분 책을 쥐여줘도 글자와 숫자는 읽을 수 있겠지만 미적분 자체를 이해할 수는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러므로 원우의 [이계 언어] 능력은 사실상 원우가 가진 배경지식에 굉장한 부분을 의존하고 있는 셈.

그렇다고 하더라도 사기적인 스킬임은 분명했다. 번역만 해주면 나머지는 그 분야의 전문가들이 하면 되니까.

어쨌거나 원우는 이번 던전 공략 일정의 원흉이 된 한 권의 책을 떠올렸다.

[차원 균형자 메뉴얼]

제목만 보면 설명서 같은 이 책은 구조된 탐사팀과 함께 <숫자 던전>의 숨겨진 방에서 가져온 물건이었다.

“자세한 건 기밀이라 말할 수 없지만, 이 던전 깊숙한 곳에 제가 읽어야 할 문자가 있는 모양이에요.”

“문자? 그런 게 있었나?”

“뭐, 읽어야 하는 게 문자인지 벽화인지 표지판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빨리 그걸 확인하지 못하면 앞으로 큰일 나는 건 확실해요.”

원우의 설명에 단아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말인진 모르겠지만 목표는 알겠다는 표정.

“흐음. 알았어. 뭐, 그건 어쩔 수 없다 치는데 내가 이해가 안 가는 건 F급 헌터를 왜 S급 던전에 직접 보내냐는 거야. 그냥 필요한 걸 사진이나 뭔가로 찍어오면 되잖아? 위엣 놈들은 머리가 안 돌아가나?”

“아, 그거 말인데요. 사실······.”

“사실?”

“제 스킬은 원본이 아니면 발동을 안 하더라고요.”

그에 대해 단아가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말했다.

“개 쓰레기 스킬이네.”

그러자 원우가 어설프게 웃었다.

“스킬 자체가 안 좋은 건 아니에요. 다만 쓸 곳이 너무 한정적이라 문제지.”

“그래서 오빠는 그 스킬이 마음에 들어?”

“아뇨?”

“그럼 그게 쓰레기 스킬이지 뭐야?”

단아가 딱 잘라 말했다.

뭐, 마음에 드냐 안 드냐로 따지면 10점 만점에 3점짜리 스킬이라 생각하지만 그렇다고 쓰레기까진······.

곧 게이트 근처로 45인승 대형 버스들과 이삿날에나 볼 법한 커다란 탑차가 속속들이 도착했다.

이번 던전 공략에 참여하는 대형 길드의 헌터들과 던전 공략에 필요한 장비들이었다.

“게안부에서 아주 작정했나 보네.”

"그만큼 중요한 일이니까요. 아마 우리 출발하고 나면 언론에서도 크게 떠들기 시작할 거예요.”

그때 버스에서 내린 누군가가 원우와 단아 곁으로 다가왔다.

원우와 단아가 고개를 바짝 올려다보아야 눈이 마주칠 정도로 커다란 덩치의 남성.

“우리보다 먼저 오신 분이 있었군요. 이번 원정대 리더를 맏게 된 전용준이라고 합니다.”

헌터 마켓에서 사용하는 그의 헌터명은 나이트, 대형 전투 길드인 기사단이라는 길드의 길드장이기도 했다.

그런 용준이 단아에게 먼저 손을 내밀었다.

“안녕하세요. 서단아라고 합니다.”

악수하는 두 사람의 손 크기가 굉장히 차이가 나서 단아가 어린애로 보일 정도였다.

떡 벌어진 어깨 아래로 해가 완전히 가려졌다. 한낮의 햇빛 때문에 잔뜩 찌푸려져 있던 단아의 얼굴이 그늘 밑에 들어가면서 눈이 시원하게 뜨여질 정도.

덩치도 덩치인데 던전에 들어가기 위해 두꺼운 판금 갑옷에 커다란 방패까지 짊어진 상태라 더욱 몸집이 커 보였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단아 양. <숫자 던전> 실종자들을 구조하신 뉴스 봤습니다. 실질적 한국 랭킹 1위이신 단아 양과 던전을 공략하게 되다니 영광이군요.”

“엄밀히 따지면 2위예요.”

단아가 멋쩍게 웃으며 오류를 정정했다.

“누군지도 모를 공식 1위가 활동하지 않은 것이 벌써 수년째인데 실질적으론 단아 양이 1위라고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용준이 아무렴 어떠냐는 듯 눈썹을 찡긋하며 원우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럼 이분이 게안부의 장원우씨 되시겠군요.”

"어라? 절 아시네요?"

“이번 임무의 핵심 인물이라고 들었습니다. 유사시 우리가 가장 우선적으로 보호해야 할 대상이라고.”

“······.”

벌써부터 부담스러워 숨이 막힐 지경이다. 원우는 경직된 얼굴을 숨기려고 애써 웃음을 지었다.

“헌터로 각성한 건 최근이라고 들었습니다. F급 신인 헌터를 S급 던전에 밀어 넣는 걸 보면 어지간히 중요한 스킬을 발현하신 모양이군요.”

“그렇게 대단한 건 아닙니다.”

정말로 대단한 건 아니다.

그냥 걸어 다니는 번역기 정도로 생각하면 된다.

지금이야 원우 혼자만 그 번역기를 가지고 있기에 가치가 있지만, 나중에 진짜 번역기 같은 게 만들어지면 아무짝에도 쓸모없어지는 스킬이다.

이어서 또다른 차량이 들어오더니 다른 길드의 사람들이 우르르 내렸다. 국내 최대 힐러 길드라고 알려진 나이팅게일 길드였다. 헌터 전원이 의료 관련 스킬을 보유한 특수 길드다.

그들의 주 활동 목적은 ‘돈 받고’ 치료하는 것.

나이팅게일의 길드장이 내리는 것을 본 단아가 원우의 귓가에 속삭였다.

“저 돈독 오른 길드도 움직였네.”

그들이 천사 같은 대외적 이미지 뒤에서 어마어마하게 돈을 밝히고 있다는 사실을 알 만한 사람들은 알음알음 알고 있다.

“돈독이요?”

원우가 고개를 갸웃하자 단아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무심하게 대답했다.

“그냥 저 돈 귀신들이 무상으로 움직인 게 신기해서.”

“뭐, 정부의 공식적인 요청이니까 거절하기 힘들었겠죠. 물론 지원금도 많이 받았을 테고.”

그밖에 장인 길드, SNS에서 유명한 헌터. 단아처럼 혼자서 주로 활동하는 헌터들까지, 어디에서 말하면 알아줄 만한 사람들도 속속 등장했다.

다만, 그렇게 사람이 모이다 보면 몇몇. 개성 넘치는 헌터들도 모이기 마련이다.

“윽? 저건 뭐야? 쟤들도 헌터야?”

“아, 저 군필여고생짱들 말씀이시죠? 이 바닥에선 유명한 헌터들이에요.”

주차장까지 진입한 탱크에서 누가 봐도 중고생인 여자애들이 각자 총을 들고 내렸다.

총기가 불법인 한국에서 이래도 되나 싶은 구성.

“저래 봬도 헌터 랭크는 A급이에요.”

“으으.”

“공주님은 저런 거 싫어하세요?”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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