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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수재수 님의 서재입니다.

영주님의 신병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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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수재수
작품등록일 :
2023.01.09 16:38
최근연재일 :
2023.03.29 19:00
연재수 :
36 회
조회수 :
14,954
추천수 :
179
글자수 :
183,276

작성
23.01.20 19:00
조회
528
추천
4
글자
12쪽

9화 탈영

DUMMY

기사들의 추태는 그대로 가문의 명예와 직결된다.

그런데 다른 사람도 아니고 그 가문의 외동아들을 욕보인다고?!

지금 당장 쳐 죽여도 할 말 없다.

아마 이번만큼은 아버지도 잘했다고 칭찬하시겠지.


“으헝헝! 고우자니임~ 제 말 좀 들어주세요~”

“사주겠다면서 돈이 없대요~ 흑흑.”

“먼저 사주겠다고 말 꺼낸 건 너였잖아!”

“네가 먼저 말 꺼냈잖아!”

“아침부터 퍼마신 건 너잖아!”


하지만 지금 당장 처벌하지 않는 건 가문의 명예를 쓸데없이 더럽히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솔직히 이대로 무시할 수 있으면 무시하고 싶었다.


“흐어엉!!! 어디가쉽니까 고우자님!!!”


그렇게 울거나 화내거나 징징거리며 점점 달라붙는 기사들 때문에 속이 타들어 갈 지경이었다.

제발 달라붙지 좀 마라!

마음속에선 이미 전원 해고했으니 다 꺼지라고!

밀려오는 짜증과 화를 참기 위해 입을 꾹 다물고 주정뱅이들을 지나치려 했다.

그런데 그때.

내 앞을 술집 주인장으로 보이는 아주머니가 가로막았다.


“아는 사람이슈?”

“모르는 사람이다만?”

“고우자님~”

“저쪽은 아는 눈치인뎁슈?”

“아뇨, 전혀 모르는 사람입니다.”


이런 놈들과 아는 사이가 되고 싶지 않아서 연신 부정했는데 그럴수록 주정뱅이들은 더욱 들러붙었다.

이것들 그냥 이 자리에서 참살해버릴까?!


“고우자니이이이임~ 흑흑··· 옛날로 돌아와 주세요오오···.”

“저희! 이렇겐 못 삽니다! 대우 개선을 요구합니다!”

“올소! 올소!”


녀석들의 과해지는 술주정에 창피함이 분노로 변하여 인내의 한계에 도달하려던 바로 그 순간.

문뜩 뒤따라오던 우리 가문 호위기사와 눈이 마주쳤다.


‘야?! 이것들 네 동료잖아? 어떻게든 해봐!’

‘죄송합니다. 제발 떠넘기지 말아 주세요. 전 아무 도움도 안 됩니다.’

‘니 똥은 니가 치워야지!’

‘제 똥이 아닙니다!’


둘이 눈으로 대화를 주고받았지만 해결되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젠장. 이걸 어쩌면 좋냐.


“쓰읍~? 분명 어디선가 본 얼굴인디?”

“착각이십니다.”


여길 어떻게 빠져나갈지 고민하고 있는데 술집 아주머니가 내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보더니 무릎을 탁 쳤다.


“아! 우리 영주님 어릴 때 모습과 똑같구먼!”

“잘못보셨습니다.”

“똑같구먼 뭘! 그렇다는 말은 설마 이 주정뱅이들이?”

“···.”


우리 아버지의 어릴 때 모습을 알고 있다니.

그 말은 즉, 이 술집은 아버지가 다니는 단골집이란 말이다.

그런 곳에서 가문의 기사들이 이런 추태를 보였다고?


“하아. 환장하겠네.”

“대충 알겠구먼. 혹시 이 젊은이들이 술집에서 뭐라 떠들었는지 들었슈?”

“···나야 모르지.”

“그, 뭐라 카더라? 공자님에게 악마가 들린 것 같다고 켔던가?”

“뭐?!”

“아! 분명 백작님 아들만 아니었어도 똥통에 머리부터 담가버린다고 했었제?”


주인장의 말에 이를 갈며 (전)기사들을 노려봤다.

이 잡것들이 집안에서뿐만 아니라 밖에 나와서까지 망언을 퍼트려?!

이건 이미 사형으로 끝날 일이 아니다.

그들에게 내려야 할 형벌은 극형 중 하나.

단두대에 거꾸로 매달아서 톱으로 고간부터 머리끝까지 천천히 썰어버려야 할 수준!


“그, 고, 공자님?”

“지금 너도 나보고 고자라고 불렀냐?”


사태의 심각성을 느낀 호위기사가 상황을 말리려 했지만 내가 험악한 눈초리로 노려보자 본능적으로 움찔거렸다.


“그···.”

“말을 골라서 잘해라. 지금 능지처참이 좋을까 3대 말살이 좋을까 진지하게 고민 중이니까.”

“그, 그들도 술이 깨면 반성할 것입니다.”

“그래서?”

“그게··· 그.”

“내가 이들을 봐줘야 할 이유를 대봐라. 어쭙잖은 변호를 할 생각이면.”

“공짜 노동력 아닙니까?”

“응?”


호위기사의 기발한 아이디어에 순식간에 화가 수그러들었다.

공짜 노동력?

그러고 보니 지금 노동력이 필요해서 노예시장으로 향하던 중이었다.

하지만 노예 대신 기사들을 노예처럼 부려 먹는다?

즉, 노예기사?


“호오. 너 이름이 뭐라고 했지?”

“넵! 아이언 라이트라고 합니다!”

“너 부대장으로 승격.”

“예? 지금 뭐라고 하셨습니까?”

“너 부대장 하라고. 왜? 부대장 하고 싶지 않아?”

“아, 아닙니다! 감사합니다!”

“그럼 부대장에게 첫 번째 임무를 내리지. 이 주정뱅이들을 수습해서 다시 기사로 만들도록.”

“알겠습니다!”


내 명령에 부대장이 큰 소리로 대답했다.

그래. 죽일 때 죽이더라도 일은 시키고 죽여야지.

실수로 너무 편하게 죽일 뻔했었네.

그렇게 마음을 추스르고 돌아가려 했는데 갑자기 주인장이 내 어깨를 잡았다.


“으딜 도망가시려 그러나?”

“도망? 내가?”

“이야기를 들어보니 거기 널브러진 젊은이들은 백작님 기사들이 맞제?”


주인장의 말에 일단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 전엔 해고하겠다고 마음먹었지만, 지금은 다시 기사···.

아니, 노예로 부려 먹기로 정했기 때문이다.


“그럼 그 젊은이들이 떼먹은 돈을 내셔야지. 천 골드쯤 되는데 지금 낼 수 있슈?”

“천?!”


바로 조금 전 거금을 들여 귀족 연회비를 지출한 참이다.

그걸 겨우 하루 만에 술값으로 탕진했다고?!


“이미 예전부터 밀린 술값이 있었단 말이제? 오늘까지 안 갚으면 채무 노예로 팔아버릴 생각이었디만.”

“이런 씨···?!”


차라리 그 돈으로 노예를 빌렸으면 얼마나 빌릴 수 있었을까?

적어도 지금보다 비싸진 않았을 거다.


‘참자 참아! 장기적으로 보면 이쪽이 더 이득이야!’


“쓰읍~ 후우!”


깊게 심호흡을 하며 분노를 진정시킨 나는 끼고 있던 반지를 빼서 불 마법으로 반지 끝을 지졌다.


“종이 있나?”

“없는데 걍 앞치마에 찍어주소.”

“하아. 줘 봐라.”


가문의 인장은 개당 100골드 가치를 나타내는 일종의 어음이다.

이번에 낼 돈이 1천 골드니까 이 문장을 10개 찍어주면 나중에 우리 가문에서 골드로 교환할 수 있다.


“이 문장은 복제할 수도 없고 해서도 안 된다. 맹세할 수 있나?”

“예~ 물론이쥬~ 그럼 살펴 가십쇼~”


도장을 찍어주자 주인장의 얼굴에 함박웃음이 피었다.

젠장. 젠장! 젠장!!!



***



그렇게 다음날(?)

내가 눈을 뜬 곳은 바로 비데 위였다.

전날 화장실에서 잠들었는데 역시 똑같은 장소에서 일어나는구나.

창 밖에 아직 해가 떠있는 걸 보니 하루도 지나지 않은 것 같네.


‘하아. 씨발. 생각해보니 다 이쪽 세계 때문이잖아!’


애당초 여기 오지 않았으면 기사들에게 심술부릴 일도 없었을 테고 오늘 기사들의 추태를 책임지지 않아도 됐을 거다.

게다가 이리스에게 상담하려고 전화를 걸지도 않았을 테고 손님을 맞이하느라 돈을 쓰지 않아도 됐다.

그 모든 일이 다 이곳에 온 탓!


‘젠장. 생각할수록 열 받네.’


이런 경험도 한 두 번이지 며칠째 이러니까 지치고 힘들었다.

도대체 얼마나 더 이 짓을 해야 하지?

왜 나에게만 이런 시련을 주는 것인가?

등등.

수많은 의문이 떠올랐지만 해결되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확 그냥 도망칠까?’


주위를 둘러보던 나는 슬쩍 창밖을 내다보며 눈치를 살폈다.

마침 아무도 없잖아?

도망치려면 감시가 느슨한 바로 지금뿐이다.

조용히 화장실 문을 열고 나온 나는 천천히 밖으로 걸었는데 생각보다 어이없을 정도로 허무하게 도시까지 나올 수 있었다.

순식간에 벌어진 탈영 사건.


‘허, 별것도 아니네.’


설마 이렇게까지 쉬울 거라곤 예상도 못했다.


‘그런데 여긴 어디지?’


아무튼.

성공적으로 탈영한 것까진 좋은데 여기가 어디인지 모르겠네?

높은 유리건물. 시끄러운 소음. 알수 없는 구조물. 검은 매연. 처음 보는 사람들.

군대 밖의 세상은 처음 보는 것들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그야말로 미지의 세계!


“총각. 길 잃었어? 정류장 찾아?”


그때 어떤 아주머니가 다가와서 묻는 바람에 무심코 고개를 끄덕였다.

정류장이 뭔진 모르겠지만 찾으면 적어도 이정표론 쓸 수 있겠지.


“어디 보자. 정류장이 어디 있더라?”


그렇게 말하며 아주머니가 네모난 손바닥 크기의 무언가를 꺼내 손가락으로 스크린 화면을 조작했다.


“이건 뭡니까?”

“음? 아. 이 핸드폰 기종? 글씨다? 우리 아들내미가 최신형으로 사줘서 잘 모르겠는디.”

“아. 예. 괜찮습니다.”


‘이런 걸 핸드폰이라고 하는구나.’


주위를 둘러보니 사람들이 이것과 비슷한 것을 하나씩 들고 다녔다.

유행인가?

아니면 이 세상에선 핸드폰이 생활필수품인가?


“아무튼, 저~기 저쪽으로 가 봐.”

“감사합니다.”


여긴 아직 아무것도 모르는 미지의 세계다.

쓸데없는 문제를 피하기 위해 가볍게 고개를 숙여준 나는 아주머니가 알려주신 방향으로 향했다.


‘아. 그런데 정류장이 뭔지 물어보는 걸 깜빡했네.’


뭐, 가다보면 뭐라도 나오겠지.

그렇게 조금 걷기 시작했는데 얼마 안 가 문뜩 맛있는 냄새가 코를 자극했다.


‘뭐지? 아, 저건가? 맥··· 도날드?’


주위를 둘러보니 맥 가문의 도달드라는 인물이 차린 가게에서 고기 굽는 모습이 보였다.

빵 위에 고기를 올리고 치즈와 각종 채소까지 올려 다시 빵으로 덮은 신기한 요리.

그 옆에는 도 가문의 미노네 집도 있었다.

넓은 빵에 붉은 소스와 치즈를 올려 가마에 굽는 요리.

그리고 좀 먼 곳에는 켄 가문의 터키식당도 있었다.

닭을 튀기는 요리를 만들고 있는 것 같은데 음식점이 한 곳에 서너 군데나 모여있다니?


‘음식점이 이렇게 한곳에 모여있으면 후각이 뛰어난 몬스터에게 습격받기 딱 좋을 텐데 여긴 그런 걱정 없는 건가?’


상상했던 것과 전혀 다른 세상.

건축물과 시설 하나하나가 다 신기해서 구경하느라 시간 가는 줄도 몰랐다.

이렇게 한눈팔고 있을 틈 없는데 큰일 났네.

아직 충분히 멀리 도망친 게 아니라서 이러고 있다간 병사들에게 들킬지도 모른다.


‘어디 무기점은 없으려나?’


우선 주위를 둘러보며 무기점부터 찾아봤다.

도망치든 모험을 떠나든 몬스터가 넘치는 이 세계에서 자기 몸을 지키려면 장비가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다만, 문제는 지금 무기 살 돈이 없다는 것인데···.


‘뭐, 망가진 무기 같은 걸 주워다 쓰면 되겠지.’


무기점엔 항상 날이 심하게 망가져서 버려지는 무기가 있기 마련이다.

그걸 싼값에 사들이거나 옷 같은 것과 교환하면 어떻게든 되겠지.


***


한편.

반 춘식 이병이 없어졌다는 충격적인 보고를 받은 행정보급관은 놀라서 입에 거품을 물었다.


“아이고 이 문디들아! 와 그걸 이제 말하노!”

“아니, 춘식이녀석 화장실이 이상하게 길어서 확인까지 했는데 분명 좀 전까지 안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저희도 소변을 보려고 잠~깐 눈을 뗀 사이에 없어졌지 뭡니까?”

“진짜 다 걸고 문 열고 나가는 소리 하나도 못 들었습니다. 저 귀 좋은 거 아시지 않습니까?”

“아. 그래도 방탄이랑 단독군장은 화장실에 남아있었습니다.”

“창문으로 탈출하려고 다 벗은 건가?”

“계획적이네.”


최병장과 김병장의 말에 행보관은 듣기도 싫다는 듯 목소리를 높혔다.


“마! 됐고! 찾아오기나 해라!”

“예!”


그렇게 분대원들을 해산시킨 행보관은 똥 씹은 표정으로 중대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통신보안? 1중대 중대장 박상호입니다. 누구십니까?>

“중대장님. 저 행보관인데예. 큰일났십니더.”

<무슨 일입니까?>

“아 글쎄 춘식이가 보이지 않십니다.”

<예?! 춘식이가 탈영했다는 말입니까?!>

“그것까진 아직 잘 모르겠십니더. 잠시 화장실 갔는데 복귀하다가 길을 잃은 걸지도 모릅니더.”

<···알겠습니다. 저희 쪽에서도 조치를 취할 테니까 그쪽에서도 찾아보세요.>

“알겠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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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30화 술 파티 23.03.10 202 2 11쪽
29 29화 성인용품 23.03.08 238 1 11쪽
28 28화 파티편성 23.03.06 245 3 11쪽
27 27화 카악! 퉤! +1 23.03.03 270 2 11쪽
26 26화 오러 블레이드 23.03.01 294 6 11쪽
25 25화 멧돼지 +1 23.02.27 272 6 11쪽
24 24화 대신관 23.02.24 277 5 12쪽
23 23화 누구나 계획은 있다. +1 23.02.22 310 6 11쪽
22 22화 악마 +1 23.02.20 310 4 11쪽
21 21화 사랑해? +1 23.02.17 340 7 11쪽
20 20화 혹한기(하) 23.02.15 350 5 11쪽
19 19화 좋은 분위기? +1 23.02.13 351 5 11쪽
18 18화 응디네 +1 23.02.10 415 6 11쪽
17 17화 화장실 +2 23.02.08 362 4 11쪽
16 16화 혹한기(중) +1 23.02.06 383 3 11쪽
15 15화 변기 조각 +1 23.02.03 398 4 11쪽
14 14화 혹한기 (상) +1 23.02.01 435 4 11쪽
13 13화 배신자들! +1 23.01.30 448 4 11쪽
12 12화 현대요리 +1 23.01.27 483 4 12쪽
11 11화 최후의 만찬 +2 23.01.25 460 5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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