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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랑괴행 님의 서재입니다.

우주해병으로 살아남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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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랑괴행
작품등록일 :
2024.09.09 1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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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9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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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9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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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1. Start.

DUMMY

1. Start.


치직!


정전기 같은 소음이 허공 저편으로 흩어졌다.


곁에 벗어놓은 헬멧에서 울려 퍼진 소음.


<이상 현상 감지. 외부 병력 전원. 기지로 복귀할 것.>


심연처럼 가라앉은 보랏빛 눈동자.


비현실적으로 잘생긴 외모.


어두운 하늘을 연상시키는 잿빛 머리칼.


‘제논’이란 이름의 우주해병이 되어버렸다.


잿빛 머리칼을 뒤로 쓸어 넘기고 착용 중인 강철 갑주를 내려다봤다.


온갖 기괴한 환경과 괴물들로부터 생존할 수 있도록 첨단기술로 설계된 장비들.


합금으로 두껍게 보강된 가슴판 중앙에 내장된 초소형 핵융합로는 갑옷 전체에 필요한 에너지를 공급했고 어깨와 팔 부분 등에 장착된 보조 동력 장치는 움직임을 증폭시켜 무거운 무기나 장비를 쉽게 조작할 수 있도록 도왔다.


손목 부분에 내장된 소형 컴퓨터와 통신 장비는 실시간으로 정보를 수신하고 분석했다.


다리 부분은 유압 시스템으로 강화되어 높은 점프와 빠른 속도로 이동할 수 있게 했고 갑옷의 발바닥에는 충격 흡수 장치가 있어 높은 곳에서의 착지 시 발생하는 충격을 최소화했다.


갑주에 내장된 여타 각종 센서는 화학적, 생물학적 위험을 감지하고 사용자에게 즉시 경고했고 생체 신호와 완벽하게 동기화되어 최적의 생존 루트를 제공했다.


이런 장비들을 기본으로 착용하고 있는 게 우주해병.


고로 절대 약하지 않다.


도적단 정도는 혼자서도 쓸어버릴 수 있을 정도니까.


단지 전장에서 맞서 싸우는 적들이 더욱더 무지막지할 뿐.


한 가지 위안거리라면 일반 병사들과 달리 불가사의한 능력을 지녔다는 점.


눈을 뜨자마자 비스트란 괴물의 습격으로 전신이 찢겼다.


끔찍한 고통에 차라리 죽어버렸으면 좋겠는데 죽지도 못하더라.


그런 지경인데도 정신이 흐려지지 않아서 그 고통을 전부 겪어야 했지만 결국 엄청난 속도로 회복되기는 했다.


강철 갑주와 전신이 찢긴 상처 사이로 터져 나온 핏물에 잠겨 있던 나를 발견한 다른 병사들은 운이 좋았다고 말했지만.


운?


저들은 이미 거의 회복된 모습을 봤을 뿐.


전신이 찢어진 모습을 봤다면 그딴 소리를 감히 입 밖으로 내지 못했을 터.


무엇보다 정말 운이 좋았다면 제논이 되지도 않았을 테고 비스트의 공격 몇 번이면 핏물이 되어버릴 우주해병이 되지도 않았겠지.


치명상을 입어도 죽을 수 없다는 건 확실하나 그 외에 어떤 능력이 있는지는 딱히 알고 싶지도 않다.


무사안일하게 살아갈 수만 있다면.


문제는 우주해병이란 신분.


복무기간을 채우지 못했으니 제대신청도 불가.


탈영은 이곳에서 자살과 동의어.


기본 원칙이 추격 후 사살이기 때문.


별수 없었다.


그나마 복무기간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어떻게든 버텨보는 수밖에.


치이익! 철컥!


잠시 벗어놓았던 헬멧과 여타 장비들을 다시 착용했다.


이곳 운타는 숨 쉴 수 있는 대기가 형성되긴 했으나 사람이 살아가기엔 너무나 척박하고 위험한 행성.


답답한 심정에 벗어놓았던 헬멧을 다시 쓰자 내부 시스템과 디스플레이가 활성화되며 주변의 이미지를 바이저에 그려냈다.


각종 데이터가 새겨졌고 현재 위치, 대기 조건, 생체 신호, 남은 탄약 수와 에너지 레벨 등이 화면에 우선 표시되었다.


헬멧의 측면에는 작은 터치패널이 있어 손끝의 간단한 접촉만으로도 다양한 기능을 조정할 수 있었다.


대우주시대.


그 시작은 공간도약을 가능하게 만드는 기적의 물질 ‘실라리온’을 비롯한 불가사의한 희귀 자원의 발견.


덕분에 인류는 수천 항성계가 넘는 지역을 탐사했고 거느렸다.


온갖 자원이 넘쳐나는 시대.


더 이상의 탐사도 투쟁도 불필요했으나 아이러니하게도 역으로 이 ‘실라리온’ 때문에 상상을 초월한 대전쟁, 천년 전쟁이 발발했다.


그 엄청난 풍요로움에도 이익과 탐욕을 이기지 못한 인류는 무려 천년 간 격돌한 것.


무수한 세력이 난립했고 크게는 드라코니스 제국, 아스트라 연방, 펜토스 연합 이렇게 3강으로 나뉘었다.


그 외에 주목할만한 세력이라면 아르고스 조합, 테라디온 클랜, 엑시오니카 연맹, 큐리언 동맹, 누베라 길드, 그라비톤 길드, 컨티스트 정도일 테지만 전부 합쳐도 3강 중 가장 약하다고 평가받는 펜토스 연합에도 비할 수 없었다.


운타 행성에 자리한 에르 전초기지 역시 바로 이 ‘실라리온’을 탐사하고 채집하기 위해 건설된 기지.


다만 앞서 언급한 세력의 언저리에도 미치지 못하는 무수한 소규모 세력 중 하나인 ‘리덴’에서 건설한 기지였다.


제논은 그 리덴의 우주해병이었다.


주 임무는 자원 탐사와 정보 수집이지만 목숨을 걸어야 할 정도로 위험한 일.


헬멧 옆에 거치해두었던 라이플을 움켜쥐었다.


외딴 행성에서의 자원 탐사와 정보 수집이 위험한 이유?


환경적인 요인보다는 인류 스스로 초래한 재앙 때문.


천년 전쟁은 인류 스스로 멈춘 게 아니다.


서로를 죽이고자 끔찍한 실험과 전쟁 병기를 끝없이 만들어냈고 그 결과 두 재앙을 잉태했다.


온갖 유전자 실험 등으로 조합된 끔찍한 괴수들. ‘비스트’


초인공지능을 대두로 한 기계 병단. ‘그림 워커’


심히 강력한 두 재앙을 앞에 두고 서로 싸운다면 자멸이라는 결과밖에 없기에 끝없는 전쟁을 멈출 수밖에 없었던 것.


비스트는 모든 환경에서 생존할 수 있도록 유전자 변형을 가한 괴수로 응당 강력한 생존력과 공격성을 지녔으며 그 크기와 모습도 매우 다양했다.


무엇보다 비스트의 엄청난 번식력은 대우주 시대를 연 인류 전체를 말살하고도 남을 정도로 무지막지했다.


초인공지능 ‘카이넥스’를 필두로 한 기계 병단 ‘그림 워커’는 각 개체 하나하나가 심히 강력한 살인 병기 그 자체.


게다가 초인공지능의 간섭과 조작으로 인공지능을 활용하는 기술은 전부 폐기 처분될 수밖에 없었다.


인류는 수천 항성계를 탐사하며 자신들을 위협할 외계 종족은커녕 이렇다 할 외계 생명체 하나 조우 하지 못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정작 자기 손으로 멸망을 초래할 재앙을 만들어버린 셈.


실라리온은 더 이상 인류의 전유물이 아니었다.


실라리온이 있는 곳에는 거의 무조건 비스트나 그림 워커가 존재했기에.


그건 이곳 운타 행성 역시 마찬가지.


다만 실라리온이 원체 극소량 존재하는 행성이라 기지 전체를 전복시킬 정도로 강대한 비스트는 존재하지 않겠지만 제아무리 약한 비스트도 스틸아머를 종이짝처럼 찢어발길 수 있는 괴물들.


그래. 경험담이다.


극심한 환경 조건도 극복할 수 있게 만드는 스틸아머도 놈들 앞에서는 무용지물이나 다름없었다.


철컥!


움켜쥔 X7 라이플의 상태를 확인했다.


티타늄 카본 합금과 부식 방지 코팅이 되어 있어서 외부 환경에서의 손상을 최소화했고 전통적인 화약 대신 전자기 펄스를 사용하여 발사체를 초고속으로 발사할 수 있었다.


헬멧의 HUD와 완벽하게 동기화되어서 탄약 상태와 에너지 수준까지 표시되는 X7이지만 인류를 겨냥해 완성된 무기인지라 정작 비스트의 강력한 외피를 뚫기엔 버거웠다.


그래도 스틸아머보다는 훨씬 유용한 도구였다.


무용지물이나 다름없는 갑주와 달리 어쨌든 공격이 먹히긴 하니까.


덕분에 내 전신을 찢어놓은 비스트를 결국 죽여버릴 순 있었다.


놈의 마지막 숨통을 끊은 건 X7 라이플이 아니라 허리춤에 자리한 초진동검이었지만.


절삭력 자체는 비스트의 외피도 단숨에 가르고도 남을 물건.


근접 거리에서 끔찍한 괴물들과 싸우는 것이 문제였을 뿐.


‘복귀하라니 해야지.’


여하튼 놈들과 만나지 않는 것이 최선이다.


전초기지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저벅저벅!


콰드득!


육중한 갑주의 무게에 얼어붙은 돌이 으스러졌다.


“후우.”


한숨이 절로 새어 나왔다.


강력한 괴수와 살인 로봇까지 존재하며 초고속 총탄은 물론 상상을 초월한 위력의 폭탄이 운용되는 전쟁이 수시로 발발하는 세계.


저 멀리 흩어지는 검은 연기 뒤로 우뚝 솟은 거대한 강철 기지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냉기를 잔뜩 머금은 바람이 거센소리를 내며 강철 벽을 때리고 있었다.


그 위에 덕지덕지 달라붙은 썩은 살점과 혈흔.


바로 비스트의 흔적들.


광활한 돌밭과 얼어붙은 토양 위에 자리 잡은 에르 전초기지는 수백 미터에 걸친 높은 방벽으로 둘러싸여 있었으며 강력한 방어 포탑과 감시 장비가 존재했다.


자동화된 목표 추적 시스템과 고출력 레이저 무기 등을 탑재하고 있어 침입자를 자동으로 감지하고 제압할 수 있었고 외곽에는 육중한 장갑차들이 정렬되어 있었다.


기지의 중앙에는 커다란 지휘 센터가 자리하고 있었는데 견고한 강철 구조로 된 각 층은 방사능 및 화학 물질 공격에 견딜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었다.


그래서 안전한가?


아니.


그럴 리가···.


기지로 복귀하는 와중에도 한숨이 터져 나오는 이유였다.


*


푸른빛이 미세하게 깜박였다.


첨단과 고물의 경계선에서 깜박이는 듯한 네온사인.


벽면은 거친 금속 판재로 덮여 있었고 큰 패널들 사이사이에는 행성의 지도, 우주선의 사진, 노후화된 광고 포스터 등이 자리 잡고 있었다.


에르 전초기지 내 유일한 펍이었다.


금속과 목재가 어우러진 바는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담고 있었고 그 위에는 유리병과 장식용 구리 잔들이 불규칙하게 배열되어 있었다.


뒤편의 선반들은 술병으로 가득 차 있었고 그중 몇몇은 독특한 모양과 색상을 띄고 있었다.


허름한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낮고 우울한 톤의 전자음악.


바텐더 취향에 따른 선택일 테지만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안 그래도 고립된 곳인데 더욱 고독하게 느껴져서.


“퍼거슨.”


깊게 파인 주름과 회색 수염을 지닌 사내가 탁한 청색 눈동자로 나를 바라봤다.


“왔나?”


“음악 취향은 정말 한결같군.”


눈매를 좁힌 퍼거슨이 묵직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위스키?”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퍼거슨은 닦던 잔을 바 위에 내려놓고 위스키를 따랐다.


은은한 호박색 빛이 네온 불빛 아래에서 반짝였다.


액체가 잔의 벽을 타고 흘러내리면서 풍부하고 짙은 향이 공기 중으로 서서히 퍼져나갔다.


퍼거슨이 잔을 앞으로 밀었다.


묵직한 오크 향과 함께 흙, 가죽, 달콤한 바닐라 향도 얼마간 뒤섞인 듯한 냄새.


술잔을 들어 천천히 한 모금 들이켰다.


입안에서 부드럽게 퍼져나가며 강렬한 뒷맛을 남겼다.


제논으로 눈을 뜬 지 3주.


모든 게 새로웠고 험난했다.


단지 묵묵히 받아들였을 뿐.


“퍼거슨.”


“왜?”


“술맛이 떫군.”


퍼거슨은 입꼬리를 비틀었다.


“무사 복귀했으면 들어가 쉬어라.”


“그건 경험자로서의 조언인가?”


직접 말한 적은 없으나 퍼거슨 역시 군인이었으리라.


그의 몸 곳곳에 새겨진 상처는 전투의 흔적이 분명했으니.


“아니 축객령이다.”


피식 웃음을 터트린 후 자리에서 일어나자 퍼거슨이 진중한 어조로 다시 말했다.


“그간 너무 잠잠했다. 한 번쯤 터질 때가 되긴 했어.”


퍼거슨의 탁한 눈동자를 마주하자 쓴웃음이 절로 나왔다.


“···. 그렇군.”


그래서였나보다.


유난히 떫었던 이유 말이다.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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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6. 폭발. +1 24.09.12 447 19 12쪽
5 5. 추격자. +1 24.09.11 508 22 12쪽
4 4. 고라스. +1 24.09.10 519 21 12쪽
3 3. 임무. +4 24.09.09 570 22 12쪽
2 2. 리덴. +1 24.09.09 618 22 12쪽
» 1. Start. +3 24.09.09 849 2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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