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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랑괴행 님의 서재입니다.

우주해병으로 살아남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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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랑괴행
작품등록일 :
2024.09.09 15:35
최근연재일 :
2024.09.19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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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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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3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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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9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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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13. 구사일생.

DUMMY

13. 구사일생.


횃불의 불빛이 약간씩 흔들릴 때마다 방 안의 그림자가 더 길어지고 깊어지는 듯했다.


“후우우.”


숨을 길게 내쉬며 담담하게 받아들였다.


그래.


이름 모를 누군가의 백골이 다가올 내 미래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금 내가 집중해야 할 사실은.


고라스의 습격과 초계함이 파괴되는 그 모든 역경에도 불구하고 결국 살아남았다는 것.


멀리 바라보는 게 때론 필요하나 미리 염려할 필요는 없다.


어차피 사람은 그토록 많은 변수를 헤아리지도 못하고 통제하지도 못하니까.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면 될 일.


그렇게 하나씩 해결하다가 천운이 닿으면 더 살아갈 수도 있겠지.


초계함의 폭발과 공간도약의 실패에도 살아남은 것 역시 내 노력 여하에 따라 결정된 것이 아니듯.


그런 거다.


그 순간.


드드드득!


방 전체가 미미하게 요동쳤다.


이 장소를 찾기 전 느꼈던 진동이 바로 이 진동이리라.


미세한 소리는 바닥 아래에서 더욱 분명해지고 있었다.


녹슨 환기구 아래 이어진 통로가 다시금 눈에 들어왔다.


여하튼 최악은 아니다.


적어도 침입자를 격퇴하기 위한 함정 같은 건 없었다.


다만 도움이 될 그 어떤 것도 찾아내지 못한다면 정말로 이 행성이 내 무덤이 되고 말 테지.


횃불을 들고 다가섰다.


일렁이는 불빛 아래.


길게 이어진 통로.


한눈에 보기에도 불길했다.


다만 원시림이라고 다를까?


전에 만난 맹수보다 더 강력한 맹수가 없으리란 보장이 있나?


위험하긴 피차 매한가지.


묵묵히 걸음을 옮겼다.


*


벽에 이끼가 가득한 통로는 좁았고 습기로 가득했다.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금속판 위에 울리는 발소리가 메아리처럼 되돌아왔다.


갑자기 공간의 울림이 더욱 강해졌다.


드르르륵!


통로 아래에서 들려오는 미세한 진동이 전보다 훨씬 더 명확하게 느껴졌다.


마치 무엇인가가 움직이고 있는 것 같았다.


잠시 걸음을 멈추고 주변을 둘러봤다.


하지만 그 소리의 정체를 확인할 수는 없었다.


‘대체 뭐가 있는 거지?’


오감을 넘어선 초감각을 활용한다면 더 세밀하게 파악할 수는 있겠지만 회복력과 감지력은 사용될 때마다 막대한 체력과 심력을 소모하기에 꼭 필요한 것이 아니라면 최대한 자제하는 게 좋았다.


더욱이 뭐가 튀어나올지 알 수 없는 불확실한 장소라면 더더욱.


사실 오감 역시 탁월할 정도로 강화되었기에 어차피 이 좁은 장소에서 초감각을 활용해봤자 새로 얻을 정보는 그리 많지도 않을 터.


다시 걸음을 옮겼다.


한참을 더 걷자 통로가 다시 넓어지기 시작했다.


바닥은 여전히 미끄럽고 불규칙했지만, 통로의 끝에는 좁게 트인 공간이 보였다.


조심스럽게 횃불을 들고 안으로 들어섰다.


또다시 작은 방이었다.


벽은 고풍스러운 문양이 새겨진 금속으로 덮여 있었고 그 사이로 빛나는 무언가가 자리 잡고 있었다.


빛나는 물체에 다가가 보니 그곳엔 무언가 규칙적으로 맥동하는 장치가 있었다.


쿠웅! 쿠웅! 쿠웅!


마치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미세한 파동을 내뿜고 있었다.


벽에 연결된 관들이 장치와 이어져 있었고 그 관 속을 무언가가 흘러가는 소리가 들렸다.


‘뭐지 이건?’


그 순간.


드드드드득!


다시금 진동이 발생했다.


지하로 내려왔기 때문일까?


이번에는 좀 더 강하게 울렸다.


직감적으로 이 장치와 무언가가 연결되어 있음을 깨달았다.


이 감각이 지금껏 내게 활로를 열어주었기에 절대 무시할 계제가 아니었다.


‘설마···. 단순하게 버려진 쉘터가 아니라 어떤 거대한 시스템의 일부였나?’


아니 중요한 건 이런 게 아니었다.


문제는 이 장치가 매우 불안정해 보인다는 것.


작금의 진동과 불안한 맥동은 고장이 나기 전의 마지막 신호처럼 느껴졌다.


마치 무언가가 제어되지 않은 채 폭주하려는 듯한 느낌이랄까?


눈매를 좁히고 장치 주변을 빠르게 탐색했다.


장치의 주위에는 오래된 금속판과 연결된 전선들이 엉켜 있었고 일부는 이미 끊어지거나 녹슬어 있었다.


관 속에서 흐르는 액체는 특유의 금속성 냄새를 풍기며 찰랑거렸고 벽에 새겨진 문양들은 오래되어 불분명했지만, 어딘가 낯설고 기괴한 느낌을 주었다.


손을 뻗어 장치를 살피던 중 한쪽 구석에서 작은 패널이 눈에 들어왔다.


패널은 거의 닫혀 있었지만 손가락 하나가 들어갈 정도로 미세한 틈이 있었다.


신중하게 패널을 열어보니 그 안에는 낡고 바스러질 듯한 수첩 같은 것이 들어 있었다.


수첩을 꺼내어 펼치자 오래된 글씨가 희미하게 보였다.


몇 페이지는 이미 세월의 흔적에 의해 완전히 지워졌지만, 몇몇 구절은 여전히 읽을 수 있었다.


<···실험은 실패했다. 예상보다 더 복잡한 문제가 발생했다··· 통제할 수 없을 만큼··· 이 시스템은 너무···>

<···외부에서 도움을 받을 방법은 없다. 이 행성에서 생존할 가능성은 없다. 모든 것이 끝났고 이 장치도 곧 멈출 것이다.>


어떤 실험이었는지는 나와 있지 않았으나 뭔가 위험한 실험을 했던 것이 분명했다.


각설하고 수첩의 마지막 페이지에 적힌 짧은 문장.


<···누군가 이 수첩을 읽고 있다면 기회가 있을 때 도망쳐라. 이 행성과 함께 먼지가 되고 싶지 않다면···>


행성과 함께 먼지?


당연히 그만한 폭발이 일어난다는 뜻이 아니겠는가?


자연히 입매가 비틀렸다.


그 순간 다시금 거세게 요동치는 공간.


드드드득!


바닥에서 느껴지는 떨림은 이제 뚜렷한 경고처럼 울려 퍼졌다.


행성이 완파되다 못해 먼지가 되어버릴 폭발이라면.


행성 어디로 도망친들 안전하겠는가?


“후우우···.”


흡사 무저갱으로 내려가는 것처럼 보이는 다른 통로가 눈에 들어왔다.


“내게···. 다른 수가 있던가?”


여전히 메마른 음성이 귀를 울렸다.


쉘터가 거대한 시스템의 일부라는 추측은 이미 확정된 것과 다름없는 내용.


이토록 거대한 시스템이라면.


최소한 구명정 정도는 존재할 터.


이를테면 소형 우주선 같은 것 말이다.


물론 오래되어 작동하지 않을 수도, 아예 없을 수도 있지만 멍하니 죽을 때를 기다리는 것보다는 훨씬 나은 선택.


꺼지려는 횃불을 챙겨온 다른 횃불로 바꾸고 다시 걸음을 옮겼다.


*


통로의 끄트머리.


다시 나타난 방에서 잘못된 실험의 흔적을 뚜렷하게 느낄 수 있었다.


방 안에 설치된 거대한 금속 장치.


복잡하게 얽힌 관들과 전선들.


그리고 이리저리 널브러진 백골들까지.


모든 것이 무엇인가를 시도했으나 실패했고 그 대가로 이곳에 고립되어 버렸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었다.


한 백골이 쥐고 있는 <최종 전력 차단장치>라는 문구는 그 실험이 실패로 끝났음을 나타내는 증거처럼 보였다.


이들은 이곳에서 엄청난 에너지를 사용하는 실험을 했던 것으로 추정되었다.


다시금 몰아치는 진동.


드드드드득!


그 간격이 점점 더 짧아지고 있었다.


또 조금씩 거세지고 있었다.


‘왜 하필!’ 이런 불평을 품을 여유도 없었다.


드드드득!


진동으로 인해 벽면에 있던 오래된 자료들이 우수수 떨어졌다.


무시하고 지나치려다가 한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차원 간 에너지 변환 실패··· 불안정한 소스··· 파괴적 결과···>


차원 간 에너지 변환 실패?


여전히 어떤 실험인지는 알 수 없었으나 한 가지만큼은 명확해졌다.


행성이 먼지가 될 거라고 적혀 있던 수첩의 내용이 거짓이 아니라는 것.


‘차원’이라는 표현이 그 단서.


일례로 대기권에서의 공간도약은 행성 자체를 반파 내지 완파할 수 있다고 하지 않았던가?


더욱이 이들은 불법적인 실험을 자행하던 중에 실패했으니 그 여파가 그보다 크면 컸지 절대 적지는 않을 터.


“후우우우.”


한숨이 절로 나왔다.


최소한 이들은 백골로나마 남았지만.


나는 그 백골조차도 남기지 못할 판국.


드드드득!


진동이 점점 더 강해지며 방 전체가 불안정하게 흔들렸다.


오래된 금속판들이 벽에서 떨어져 나가고 천장에서 먼지가 우수수 떨어졌다.


발밑의 바닥이 미세하게 갈라지며 금이 가기 시작했다.


작은 조각들이 떨어져 나가며 진동과 함께 메아리쳤다.


쿠구궁!


돌연 천장 위에서 커다란 조각이 떨어졌다.


급히 몸을 피하며 뒤로 물러났다.


진동은 점점 더 커졌고 이제는 작은 조각들이 아니라 벽과 천장이 조금씩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헛웃음이 터져 나왔다.


‘결국 이렇게 죽는 건가?’


더는 탐사할 통로도 없었다.


다시 역으로 올라가자니 행성 전체가 파괴될 판인데 그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쾅!


그 순간.


벽의 한 부분이 크게 무너져내리며 자욱한 먼지와 함께 통로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강한 진동으로 금속들이 떨어져 나가면서 통로가 드러난 듯했다.


금속판의 두께를 보아하니 본디 차단벽인 듯도 싶었고.


딱히 중요하지 않았다.


통로 너머에서 희미한 빛이 새어 나왔다.


그 빛은 불안정해 보였지만, 진동과 파괴 속에서 유일하게 유의미한 길이었다.


어차피 다른 선택지는 없었다.


금속 조각들을 넘어 통로 안으로 들어섰다.


통로는 생각보다 길었다.


낡고 오래된 전선들이 벽에 얽혀 있었고 곳곳에서 삐걱거리는 소리와 함께 불안정한 전류가 흐르는 듯했다.


머릿속에서는 아까 본 차원 간 에너지 변환 실패라는 문구가 계속 맴돌았다.


그 실험이 바로 이 진동의 원인일 것이다.


갑자기 행성 전체가 먼지로 변해도 이상하지 않을···.


마침내 조금 더 넓은 방이 나타났다.


방 중앙에는 거대한 금속 구조물과 연결된 몇 개의 큰 배관들이 보였고 무엇보다.


“우주선···.”


눈에 들어온 것은 바로 소형 우주선이었다.


완전히 낡았지만, 여전히 그 형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소형 구명선.


아마도 이곳을 떠나기 위한 마지막 수단이었을 것이다.


왜 차단벽이 내려가 있었는지 등은 알고 싶지도 않다.


그런 걸 헤아릴 여유가 있는 것도 아니고.


급히 다가가 우주선을 살펴보았다.


구조는 비교적 간단했고 내부는 작은 조종석과 소형 엔진실이 있었다.


우주선을 발견했을 때 일순간 안도의 한숨이 나왔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이 소형 우주선은 너무 낡아 보였다.


금속 외벽은 녹이 슬었고 엔진부는 당장에라도 바닥에 내려앉을 듯 허술했다.


어쨌든 여기서 벗어날 유일한 방법은 이 우주선을 작동시키는 것뿐이었다.


문제는 내가 기계를 다루는 능력이 별로라는 것이었다.


정비 기술은커녕 이런 장비를 고쳐 본 적도 없었다.


그래도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 우주선의 구조가 꽤 단순해 보였다는 점.


고로 대다수 시스템은 간단한 제어 패널로 작동할 수 있을 터.


주요한 문제는 역시나 에너지원이었다.


먼저 조종석에 앉아 우주선의 상태를 점검하기 위해 패널을 살폈다.


당연히 조작 레버는 꿈쩍도 하지 않았고 스크린은 어둠 속에서 희미한 잔상을 띠고 있었다.


나는 손을 뻗어 근처에 놓여 있던 낡은 수리키트를 집어 들었다.


키트 안에는 몇 개의 도구와 오래된 배터리팩, 낡은 전선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나마 수리키트라도 있어서 다행이군···.’


일단 구명선이었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겠으나 없으려 하면 한없이 없을 수도 있는 노릇.


다만 배터리들이 제 기능을 발휘할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어차피 내게 다른 선택지는 없었다.


조종석 패널 밑에 있는 연결부를 찾아 열고 낡은 전선을 제거한 후 배터리팩을 연결해 보았다.


‘설마 이걸로 해결되겠어?’라며 회의감이 들었지만, 배터리를 연결한 순간 패널에 희미한 빛이 스르륵 들어왔다.


‘이게 된다고?’


조종석의 화면이 깜빡이더니 우주선 내부 시스템이 서서히 살아나기 시작했다.


엔진 상태를 확인하는 디스플레이가 깜박이며 상태를 점검했다.


물론 상태는 '경고'로 가득 차 있었지만, 일단은 우주선을 작동부터 시킬 일.


“이제 남은 건···.”


역시나 엔진이 문제였다.


낡은 배터리팩만으로는 이 행성을 벗어나기엔 역부족이었다.


서둘러 엔진실로 향했다.


엔진실 내부는 녹슨 금속들과 얽힌 배선으로 가득 차 있었고 이미 몇몇 부분은 부서져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장 중요한 주요 에너지원이 아직 남아 있었다.


“에너지 코어만 손상되지 않았다면···.”


기계를 다룰 줄은 모르지만, 에너지원이 어느 부분에 있는지 정도는 알 수 있었다.


나는 수리키트에서 전선을 꺼내어 부서진 배선들을 연결하기 시작했다.


실패하면 지금까지의 모든 노력의 무의미해지는 상황.


자연히 손끝이 떨렸고 불안정한 상황 속에서 집중하는 것도 어려웠지만, 어떻게든 각종 도구를 이용해 전선들을 연결했다.


시간이 없었다.


저 불길한 진동은 멈추지 않을 테고 결국 행성 전체를 날려버릴 테니까.


아닐 수도 있겠지.


대략 0.1% 확률쯤으로.


이마저도 많이 쳐준 거다.


고작 이만한 확률에 목숨을 걸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다시 조종석으로 돌아와 엔진 부팅을 시도했다.


잠깐의 정적이 흐른 뒤 작은 진동이 느껴졌다.


드드드드륵!


엔진이 천천히 살아나기 시작한 것.


조종석 패널에 '에너지 코어 활성화'라는 문구가 뜨더니 엔진 가동 소리가 들렸다.


“후우우우.”


동시에 한숨이 절로 터져 나왔다.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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