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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안. 님의 서재입니다.

빌런이 지은 아카데미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N.J.
작품등록일 :
2022.05.12 21:49
최근연재일 :
2022.05.30 21:00
연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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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27,9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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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5.30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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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5. 아카데미 특례법(2)

DUMMY

케슬라가 정신을 다잡은 건 조금의 시간이 흐른 뒤였다.


“그분들과의 연결이 끊어졌어요.”

“케슬라 님이 끊으신 겁니까, 아니면-.”

“그분들이 끊으신 거죠. 당신의 아카데미로 들어가겠다고 한 순간부터 끊겼어요.”


신을 모시는 자가 신과의 연결이 끊어졌다고 말하는데, 그 표정은 지극히 밝아 보였다.


“제가 맡아야 할 학생들은 몇 명인가요?”

“···글쎄요. 저도 잘 모르겠네요.”

“네?”


환하게 웃고 있던 그녀가 처음 만났을 때의 표정으로 돌아갔다.


“죄송하지만 혹시 저희 아카데미는 어디에 있나요?”

“제국 아카데미 협회에서 배정해 주는 곳에 있겠죠?”

“교수진은 어떻게 되는데요?”

“음···.”


나는 잠깐 손가락을 꼽으며 내가 머릿속에 구상해둔 아카데미 교수진의 수를 셌다.


“케슬라 님 포함해서 네 명.”

“네 명?!”


케슬라가 기겁했다. 나는 태연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교수진의 수가 많다고 해서 그 아카데미가 좋은 아카데미는 아니니까요. 제가 구상하고 있는 아카데미는 소수 정예라서 많은 교수들은 필요 없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그녀가 몸을 부들부들대더니 이내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분들과 척을 지면서까지 들어갔더니 이게 뭐예요! 애초에 아카데미를 보유하고 있는 것도 아니었잖아요!”

“전 애초에 지어진 아카데미의 교수를 맡아 달라고 한 적이 없습니다. 지을 아카데미의 교수가 되어 달라고 했지.”


머리 한 대를 맞은 듯 그녀가 멍한 표정을 짓더니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미쳤지, 내가 미쳤어. 순간 분위기에 휩쓸려가지고···.”


끝없이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발을 동동 구르는 케슬라. 첫인상과는 완전 달라졌지만, 그동안 신들의 감시와 구속으로 인해 억눌려 있던 진정한 그녀의 모습이 순간 넘쳐흐르는 것뿐이다. 시간이 어느 정도 흐르면 알아서 중간지점을 찾을 것이다.


“자. 궁상 다 떨었으면 가시죠.”

“···어딜 가는데요?”


케슬라가 검지와 중지를 벌려 그사이로 나를 노려봤다.


“아직 신성력은 쓸 수 있죠?”

“예전만큼은 아니지만, 애초에 신성력은 개인의 믿음에서 기반하는 것이니 어느 정도는-.”

“그 정도면 됐습니다.”


나는 산을 내려갔고 그녀가 내 뒤를 따라왔다.


“그래서 어디로 가는 거냐니까요?”

“아직 아카데미를 짓지 않았으니 아카데미를 지어야죠.”

“지을 돈은 있으세요?”


그녀가 내 옆으로 와 빠른 걸음으로 내 보폭에 맞추며 물었다. 눈을 가늘게 뜨는 것이 나를 무슨 사짜 취급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아카데미를 지으려면 웬만한 상단주도 무리를 해야 하는데···.”

“저희는 아카데미를 짓는 데 돈을 쓰지 않을 겁니다.”

“그게 가능한가요?”


가능하고말고.


“케슬라 님도 잘 아시지 않나요? 개인의 역량은 뛰어나나 기타 조건이 충족되지 못해 아카데미를 짓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한 제도가 있지 않습니까.”

“아, 설마···.”


기억 났다는 얼굴을 하는 그녀에게 나는 살짝 미소를 지어 주었다.


“그 설마입니다.”


나는 바람을 타고 허공을 떠다니는 나뭇잎을 낚아채며 말을 덧붙였다.


“저희는 아카데미 특례법을 이용할 겁니다.”


*


루이제 제국의 수도 루인.

순백의 성채로 보호받고 있는 화려한 황궁의 위엄을 어디서나 느낄 수 있는 곳.


“···사람들이 많군요.”

“황제의 즉위식이니 많을 수밖에요. 조심해서 따라오세요.”


14대 황제였던 카이사르 엘 루이네가 물러나고 15대 황제 브루투스 엘 루이네가 즉위하는 영광스러운 날. 길에는 황제와 제국의 번영과 안녕을 바라는 이들이 행진을 하고 있고, 길가에는 이 특수를 놓치지 않기 위해 온갖 먹을거리들을 파는 노점상들로 가득하다.


저 행진의 종착지는 황궁의 앞. 새로이 즉위한 황제가 할 연설을 듣기 위해 가는 것이었고 우리가 가려는 곳은 정반대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우리는 잠깐 연어의 고단함을 체험해야만 했다.


“여기는···.”


흰색 2층짜리 건물. 용도를 알 수 있는 명패도 달려 있지 않고 구석에는 잔금이 가 있는 낡은 이 건축물이 내 목적지였다.


“제국 아카데미 협회입니다.”

“이 허름한 건물이?”

“협회의 청렴결백함을 증명하기 위해 일부러 이 건물을 쓰고 있죠. 들어가실까요?”


내부는 외관에 비하면 깔끔한 편이었다. 전체적으로 목재를 주로 한 인테리어였고 시골의 여관에 들어간 듯한 친숙함을 느낄 수 있는 디자인이었다.


“···어서 오세요.”


협회 안쪽에 마련된 카운터 아래에서 젊은 남자 한 명이 눈을 비비며 일어났다. 얼굴 한쪽이 붉어져 있고 머리가 부스스한 것으로 보아 바닥에서 잠을 자고 있었던 모양이다.


“죄송하지만 저희 제국 아카데미 협회는 15대 황제 폐하의 즉위를 축하드리기 위해 잠깐 업무를 중단하고 있습니다. 용건이 있으시다면 내일 방문해주시겠습니까?”


남자는 기지개를 켜며 하품을 뱉었다. 그리고 카운터에 왼팔을 올리며 왜 아직도 안 가냐는 듯한 눈빛으로 우리를 쳐다봤다.


“무릇 사람은 자신이 맡은 일에 항상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그대가 맡은 일의 숭고함을 깨닫고 저희와의 시간을 소중히 여겨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케슬라가 한 발자국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근면의 인트리아가 가장 경멸하는 부류가 자신이 맡은 일을 게을리하는 것이다. 그리고 저 만사가 귀찮아 죽겠다는 표정의 남자는 딱 그 부류에 속하고.


인트리아만 모시는 상황이었다면 저자의 근무태도가 교정될 때까지 계속 일장연설을 했겠지만, 친절의 마니티아도 섬기는 상황에서 그녀가 할 수 있는 거라곤 웃는 얼굴로 조언을 해주는 것뿐이다.


그리고 그녀의 조언은, 대륙 최고의 권력 기관 중 한곳의 직원에게는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너 뭐 돼?”


케슬라의 말을 들은 직후 남자가 표정을 갈아엎더니 대놓고 짜증을 부려댔다. 그는 귀를 후비며 못 들을 걸 들었다는 듯 굴며 말했다.


“아까 내가 말했잖아. 오늘 황제 폐하의 즉위식이니까 쉰다고. 쉴 때 찾아와서 행패를 부린 게 누군데 지금 설교를 하려 드는 거야? 어? 너네 어디 아카데미 소속이야? 이번 분기 평가 자신 있어서 지금 나한테 그러는 거지? 맞지? 아니면 내가 어려 보여서 막 우습고 그랬던 건가? 어?”

“그건-.”


제국 아카데미 협회.


프로그마 대륙의 주인을 가리기 위해 벌어진 정복 전쟁의 끝으로 루이네 제국이 탄생한 직후, 전쟁으로 인해 만들어진 각지의 강자들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는 중대한 문제로 떠올랐다.


제국은 아카데미를 그 문제의 해답으로 내놓았다. 제국 곳곳에 아카데미를 세워 그곳의 교수로 강자들을 임명하는 것이다. 아카데미의 강사로 임명된 강자들은 다른 아카데미를 견제하며 학생들을 육성하는 데 심혈을 기울였고 이는 귀족 사회의 균형과 제국의 미래를 책임질 인재를 양성하는 것으로 이어졌으니, 제국은 그들이 낸 답에 만족해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교수의 수준에 따라 귀족들이 아카데미를 골라 가는 현상이 벌어졌고 이는 아카데미와 귀족 사회의 양극화로 이어졌다.


더 잘 가르치는 교수, 더 강한 교수에게 내 자식을 맡기고 싶은 게 모든 부모의 마음. 그 마음을 현실로 바꿀 힘이 있는 귀족, 황족들은 뛰어난 아카데미에 자식을 보내기 위해 로비를 시작했고 한 번 시작된 로비는 금세 덩치를 불렸다.


그 광경을 목격한 4대 황제의 명령에 의해 세워진 기관이 바로 제국 아카데미 협회. 아카데미로 쏠리는 권력을 억제하고 잘 가르치는 교수임에도 불구하고 인맥이 없어 평가절하 당하거나 심사에 불이익을 얻는 경우를 방치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하지만 이 역시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본래 목적과는 다른 기관으로 변모하게 된다.


“복장이랑 말하는 걸 보아 하니 인트리아를 섬기는 것 같은데, 본인이나 잘하쇼. 신을 안 믿는 사람에게 억지로 신의 사상을 강요하다니, 교단은 다 그런 식으로 포교합니까? 제국의 수도에서도 이렇게 나오는데, 시골에 있는 교단 지부는 어느 정도일지 감이 안 잡히는구만.”

“그렇지 않습니다. 다들 충직하게 신을 섬기고-.”

“케슬라. 저 자도 알면서 일부러 저러는 겁니다.”


당황해하며 말을 늘어놓는 케슬라를 제지한 뒤, 남직원을 보며 입을 열었다.


“아카데미 특례법에 따른 아카데미 설립 절차를 밟고 싶습니다.”

“···특례법?”


남자의 눈이 돌연 진지해졌다가, 금세 원래대로 돌아왔다. 그는 나와 케슬라를 번갈아 쳐다보더니 크게 웃었다. 그리고는 손을 저으며 축객령을 내렸다.


“돌아가. 당신들로는 1단계 시험도 통과 못해.”

“그건 해봐야 아는 거 아니겠습니까?”

“1단계 시험이 뭔지는 알고는 말하는 거야?”

“아카데미의 담당자가 될 제국 아카데미 협회 직원이 말하는 것을 이행할 것.”


내 말을 들은 남자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걸 아는 양반이, 내 기분이 최악일 때 굳이 특례법 절차를 밟겠다고 하는 거야? 차라리 나 말고 다른 사람이 있을 때 도전하지 그래?”

“아뇨. 전 당신으로 괜찮습니다.”


남자는 내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보더니 한숨을 한 번 뱉었다. 그런 후에 카운터를 손가락으로 탁탁 건드리며 어떤 과제를 내줘야 나를 효과적으로 엿 먹일 수 있을지를 고민하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입을 열었다.


“드래곤의 비늘.”

“···드래곤?”


케슬라가 눈을 크게 뜨며 되물었다. 보통 드래곤이 입에 오르면 저런 반응을 보이고는 한다. 단단한 비늘과 입에서 내뿜는 화염은 소드 마스터조차 쉬이 감당할 수 없으니까.


“그래, 드래곤.”


케슬라의 반응이 썩 만족스러웠는지 남자가 웃으며 말을 덧붙였다.


“근무하면서 비늘을 몇 번 본 적이 있거든? 사기 칠 생각하지 말고 진짜 드래곤의 비늘을 가져와. 그러면 2단계로 넘어갈 테니까.”

“그러죠.”


나는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드래곤의 서식지도 알고 있고 내 능력을 사용하면 비늘 한 장 떼는 것 정도는 어렵지 않으니까.


“오래 걸리지 않을 테니까 여기 잠깐만 계세요.”

“···괜찮으시겠어요?”

“드래곤을 잡는 것도 아니고 비늘 한 장을 떼 오는 게 어렵겠습니까.”

“잘들 논다. 잘들 놀아.”


남자가 비웃음을 터트리더니 내가 파리라도 되는 것처럼 손을 휘둘렀다.


“얼른 가기나 하지?”

“조금 있다가 뵙죠.”


협회를 나온 나는 인파의 흐름에 섞여 들어갔다. 목적지는 저 멀리 보이는 휘황찬란한 황궁.


“잘하면 황제도 볼 수 있겠는데?”


각 개체가 마음에 드는 곳에 자리를 잡기 때문에 드래곤은 서식지가 일정하지 않다. 그들은 해저에서 살며, 화산에서 살며, 빙하에서 살며, 구름에서 산다.


따라서 드래곤 한 마리가 황궁에서 사는 것은, 그렇게 이상한 일이 아니다.


작가의말

현생 때문에 많이 늦어졌네요.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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