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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안. 님의 서재입니다.

빌런이 지은 아카데미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N.J.
작품등록일 :
2022.05.12 21:49
최근연재일 :
2022.05.30 21:00
연재수 :
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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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27,9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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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5.26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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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4. 너, 내 교수가 돼라

DUMMY

- 자선의 카르티아: 케슬라. 상대는 대륙에 멸망을 몰고 온 자입니다. 절대 방심해선 안 돼요.

- 인내의 파센티아: 케슬라. 저 씹어 죽여도 시원찮을 놈을 당장 도륙 내! 저 빌어먹을 놈이 죽인 내 신도들의 수만큼 놈의 몸을 잘라 주라고.

- 절제의 페란티아: 파센티아. 당신의 광신도들은 몰라도 당신만은 인내심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요? 조금은 감정을 조절하시죠.


그녀에게 축복을 내려준 신들의 대화를 들으며 케슬라는 기원의 검을 휘둘렀다.


카르티아의 말이 없었더라도 방심할 생각은 없었다. 신들의 축복을 통해 신체적인 밸런스는 맞췄다 해도, 경험적인 면은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저 눈.’


7명의 신을 뒤에 두고 있는 그녀를 상대로 한 치의 흔들림도 없는 리카르도의 눈동자. 그는 여유롭게 그녀가 휘두르는 검의 궤적을 읽고 한끝 차이로 피한 후에 반격을 가하고 있었다.


십여 합 정도 겨룬 후에 케슬라는 뭔가 찜찜한 느낌이 들어 공격을 멈췄다. 그러자 리카르도도 검을 늘어트렸다.


“벌써 판결을 내리려는 건가요?”

“···인정하겠어요. 전투에서는 경험의 차이도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그게 무슨 소리십니까?”


그가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저는 전투 경험이 거의 없습니다.”


그의 말을 믿을 수가 없어 그녀는 신들에게 그의 말이 거짓인지 판별을 부탁했다.


- 친절의 마니티아: 그의 말은 진실입니다.


“말도 안 돼. 어떻게···.”

“신들을 등에 업었다고 세상 모든 것을 알고 있다고 생각하시는 건 아니겠죠.”


리카르도의 비웃음에 그녀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입술을 살짝 깨무는 것 정도였다.


“제가 아까 말씀드렸죠. 당신의 패인은 그 오만함에서 비롯될 거라고.”

“···제 방식대로 가겠습니다.”


그녀의 진정한 힘은 신성력. 한 번 죽은 후라 전신에 신성력이 충만한 상태였고 신들이 리카르도에게 적의를 드러내고 있으니 적당히 하라는 말을 들을 걱정도 안 해도 된다.


“신이시여! 저 자에게 성스러운 심판을···.”


그녀가 막 합장을 하며 목표를 지정하고 자신의 신성력을 끌어내 강력한 무기로 바꾸려고 하는 때였다.


‘어디 갔지?’


리카르도가 사라졌다. 그녀의 동체시력에 잡히지 않았다면 엄청난 속도였을 것이 분명하다. 속도를 내기 위해서 힘이 필요한 것은 당연한 상식, 하지만 그가 서 있던 곳은 어떠한 힘의 작용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듯이 평온했다.


- 근면의 인트리아: 케슬라! 뒤입니다!


‘뒤?!’


케슬라는 기원의 검에 최대한의 신성력을 불어넣으며 몸을 돌렸다. 정말 인트리아의 말대로 리카르도가 그녀의 뒤를 점하고 있었고 그 사실에 수치심을 느낀 그녀는 이를 악물고 검을 휘둘렀다.


“느려도 너무 느린 거 아닙니까?”


이번에는 확실히 보였다. 리카르도가 검을 쥔 팔을 움직이는 모습이. 하지만 그런 그녀를 비웃기라도 하듯 리카르도의 팔이 그녀의 눈을 벗어나는 속도로 움직였다. 동시에 날카로운 바람이 휘몰아쳤다.


철컥.


리카르도가 검을 검집에 집어넣었다.


그의 목을 향해 나아가던 기원의 검에는 아무런 힘도 담겨 있지 않았다. 길이가 단검에 불과한 기원의 검이 그에게 닿을 리 없었다.


‘신성력을··· 검으로 벴다고? 이게 가능한 일인가?’


기원의 검을 겨누고 있는 자세 그대로 굳어 버린 그녀의 귀에 신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절제의 페란티아: 케슬라. 당신의 패배입니다.

- 순결의 카스티아: 강하네요. 당신이 인지할 수 없는 찰나의 순간에 검을 100번 넘게 휘둘렀어요.


‘100번? 내가 기원의 검을 휘두르고 있는 그 찰나에 100번을 휘둘렀다고?’


이해할 수 없었다. 신들의 축복을 받아 강화된 그녀의 육체가 저 남자의 것보다 뒤떨어질 리가 없다. 검술 역시 마찬가지다.


그런데 어떻게 그는 그녀의 인지 가능 범위를 벗어난 속도로 움직일 수 있단 말인가. 그리고 시종일관 여유로운 저 태도는 또 뭐란 말인가!


“케슬라. 제 정체가 궁금하십니까?”


리카르도가 한쪽 입꼬리를 올린 채 말했다. 분했지만, 그녀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7명의 신들도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교단 일식의 사도.


- 인내의 파센티아: 저 개X끼는 밥 처먹고 수련만 했나. 뭐 저렇게 강해?

- 절제의 페란티아: 파센티아. 제발 그런 저급한 단어는 속으로만 생각해 주시겠어요?

- 근면의 인트리아: 저 강함은 오랜 노력이 있지 않으면 불가능한 류의 것. 그가 마음에 들기 시작했다.

- 순결의 카스티아: 인트리아. 그는 잊힌 신을 깨워 대륙을 혼돈으로 몰고 간 존재에요.

- 근면의 인트리아: 그렇다면 왜 케슬라를 죽이지 않지? 우리가 케슬라를 이용해 그를 귀찮게 할 거라는 건 이미 짐작하고도 남지 않나?


심지어 몇몇은 그에게 호기심까지 보이기 시작했다. 그녀는 꼭두각시에 불과한데, 그는 한 인격체로서 제대로 존중을 받는 듯한 신들의 대화를 들으며 케슬라는 정체 모를 불쾌한 감정을 느꼈다.


“제안을 하나 드리겠습니다.”

“제안이요?”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신의 사랑을 받는 인간, 케슬라.”


그가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제가 지을 아카데미의 교수가 되어 주시겠습니까?”


*


케슬라의 특성과 그녀가 가진 성물의 효과를 다 알고 있었음에도 그녀의 행동을 제지하지 않은 것은 시험해볼 것이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시간을 조작한다는 걸 과연 신들이 알아채는가?


이것을 시험해 보기 위해 나는 일부러 그녀가 신성력을 쓸 때까지 기다렸다. 신성력은 신과 가장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 힘. 그녀가 기원의 검에 신성력을 담는 순간부터 나는 주변 일대의 시간을 느리게 만들고 내 시간은 가속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그녀는 물론, 그녀를 통해 나를 관찰하고 있는 7명의 신들도 내 능력을 눈치 채지 못했다. 만약 눈치 챘다면 그녀가 저렇게까지 놀란 표정을 짓지는 않았을 테니까.


“케슬라.”


다시 한 번 시간을 조작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사기적인 힘인지를 실감한 나는 얼어 있는 케슬라를 보며 입을 열었다.


“지금 당장 저에 대한 판결을 내릴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당신의 길을 인도해주는 건 당신 자신이 아니라 당신의 뒤에 있는 일곱 명의 신이니까요.”


그녀가 침묵했다. 전투할 때 잠깐씩 드러났던 감정들은 다시 저 눈동자 깊숙한 곳으로 숨었다.


“저는 당신에게 기회를 드리는 겁니다. 저를 가장 가까운 곳에서 관찰, 보고할 수 있는 기회를.”

“···당신은 태양 속에 잠들어 있던 고대의 존재를 일깨워 대륙을 파멸로 몰고 가려고 했습니다. 그런 당신이 아카데미를 세운다는 말을, 제가 어떻게 믿을 수 있겠습니까?”


대륙에서 가장 성스러운 여인.

그녀에게 예정된 멸망의 단어를 나는 알고 있다.


위선(僞善).


모두가 입을 모아 대륙 최고의 성인으로 떠받들기 바쁜 그녀의 실체는 한 명의 인간이다. 부모가 없이 태어난 그녀에게 부모의 역할을 해준 신들에게 사랑을 받고 싶어 하는 지극히 평범한 인간.


그녀가 행하는 선은 진정으로 타인을 위한 것이 아닌 그녀 자신의 이익을 위한 선이다. 그렇기에 위선이다. 그녀의 이익이 곧 신의 이익이기 때문에 타인들의 눈에는 신을 향한 흔들리지 않는 신념이 고귀하게 느껴지는 것뿐.


“케슬라. 하나만 묻겠습니다. 신들이 제게 관심을 보이는 게 불편하지는 않으신가요?”

“···전혀요. 당신의 행적을 보면 누구라도 관심을 안 보일 수 없을 텐데요.”

“과연 그럴까요? 두 번째 마을의 인간들을 살려둔 탓에 자선의 카르티아, 방금 제가 보여준 무위 때문에 근면의 인트리아가 확실히 제게 관심을 표하고 있을 텐데요.”


나는 애써 공허한 척을 유지하려 하는 그녀의 눈동자를 똑바로 바라보며 말을 덧붙였다.


“당신이 태어나는 순간에 보여줬던 것보다 더.”

“아니야!!!”


그녀의 눈빛에 맹렬한 질투와 분노가 깃들었다. 꽉 쥔 그녀의 두 손은 하얗게 질려가고 있었고 깨문 입술에서는 피가 흘러내렸다.


“그렇게 쉽게 흥분해서야 인내의 파센티아 역시 제 쪽에 더 관심을 표하겠군요. 아, 절제의 페란티아도.”


나는 손가락을 네 개 펼치며 말했다.


“이러면 4대3. 저를 지지하는 신이 더 많군요.”

“신들이시여! 제게 축복을-.”

“이번에는 안 됩니다.”


나는 시간을 가속해 기원의 검에 모이려는 그녀의 신성력을 베어냈다. 그러자 그녀가 첫 번째 마을의 파센티아를 믿는 광신도들처럼 달려들었다. 기원의 검을 무분별하게 휘두르며 전진하는 그녀의 공격은 허점투성이였으나 나는 그녀의 검에 자잘한 생채기 정도는 내주었다.


“죽어, 죽어. 죽어!!!”


핏줄이 터져 충혈된 눈. 입술에서 계속 흐르는 피. 검을 꽉 쥔 탓에 창백해진 손. 헝클어진 머리.

누군가 그녀를 처음 본다면 성녀 케슬라가 아니라 뱀파이어 케슬라라고 불렀을 정도로 그녀의 꼴은 엉망이 되고 있었다.


“오직 나만이 신들의 사랑을 받을 자격이 있어! 태어날 때부터 그분들은 나만을 사랑하셨다고!”


케슬라의 눈에서는 이제 눈물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점점 격해지는 그녀의 감정을 따라 눈동자에 생기가 맴돌기 시작했다.


그래.

더, 더 쏟아내라.


나는 때때로 그녀를 거칠게 밀어내거나 넘어트려 오기를 자극시켰고 검에 일부러 베여 그녀가 피의 마력에 취해 이성을 잃도록 했다. 그래야 그녀가 사람다워질 테니까.

···조금 극단적이긴 하지만, 실제로 그녀는 사람다워지는 중이었다.


“꼭두각시 인형인 줄 알았던 첫인상보다는 지금이 훨씬 낫군요.”

“닥쳐! 죽어! 말하지 마! 죽어!!”

“그래서 죽일 수 있겠습니까? 신들에게 축복을 받았는데도 그 정도면 신들이 애초에 그 정도밖에 안 됐던 겁니까, 아니면 당신의 재능이 형편없는 겁니까?”

“닥쳐어어어!!!”


7주선.

일곱 가지의 선을 관장하는 신들은 얼핏 봤을 때 좋아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과유불급이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닌 것처럼, 각자 한 가지의 선을 권장하는 이들은 선을 행하기 위해 불필요한 것들을 너무 심하게 제한한다. 인내의 파센티아를 믿으려면 어떠한 상황에서도 감정을 드러내지 않아야 하는 것처럼.


한 명의 신이 이 정도인데, 일곱 명의 신을 동시에 섬기고 있는 그녀는 어떻겠는가. 살아도 사는 게 아니고, 죽어도 죽는 게 아니다. 그렇게 벼랑 끝으로 몰린 그녀에게 멸망이 도래했을 때, 그녀는 타락하게 된다.


타락한 그녀는 신들을 모조리 죽이고 7죄종을 수하로 삼아 마계의 마신으로 군림하게 된다. 그리고 7주선이 그토록 사랑했던 대륙을 멸망시킨다.


“내 아카데미의 교수가 되십시오, 케슬라.”

“내가 왜!”

“다른 사람들이 당신과 같은 일을 겪지 않도록 가르치십시오.”

“···뭐?”


게임을 수도 없이 플레이하며 그녀의 사연을 누구보다도, 그녀를 보살펴주는 7주선보다 더 잘 이해하고 있는 나로서는 이 기회를 놓칠 생각이 없었다. 그녀가 타락하는 것도 막고, 그녀를 내 편으로 삼아 검은 손가락에 맞설 것이다.


“7주선을 똑바로 섬기는 법을 사람들에게 알려주십시오. 그로 인해 당신과 같은 사람이 태어나지 않도록 하십시오.”

“···.”


그녀가 멍하니 나를 쳐다봤다. 그러다 갑자기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 쥐며 비명을 질렀다. 7주선이 나를 죽이라고 명령을 내리는 모양이었다.


“그들은 전지하지 않으며, 전능하지도 않습니다. 그들은 신도를 통해 보며, 신도를 통해 듣고, 신도를 통해 세상을 알아갑니다.”

“그만, 그만해! 나를 좀 내버려 두란 말이야!”


애처롭게 고개를 저으며 비명을 지르는 그녀에게 가까이 다가간 나는 일곱 명의 신들에게 뒤처지지 않을 정도로 크게 말했다.


“케슬라! 그들은 신이 아닙니다!”

“···뭐?”


나는 그녀가 듣지 않고도 내가 하는 말을 알 수 있게 천천히 다시 한 번 말해 주었다.


“그들은 신이 아닙니다, 케슬라.”

“그분들이 신이 아니면 대체 누가 신이라는 건데?!”

“그건 지금부터 당신이 찾아야 할 숙제입니다.”


나는 그녀에게 손을 내밀며 말했다.


“당신의 학생들과 함께. 제 아카데미에서.”


잠깐의 침묵 끝에, 그녀가 내 손을 잡았다.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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