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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안. 님의 서재입니다.

빌런이 지은 아카데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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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J.
작품등록일 :
2022.05.12 21:49
최근연재일 :
2022.05.30 21:00
연재수 :
5 회
조회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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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수 :
9
글자수 :
27,973

작성
22.05.25 21:00
조회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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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글자
12쪽

3. 여신 강림

DUMMY

멸망은 모든 존재에게 찾아온다.


프로그마 루이네의 메인 테마이자 광고 홍보하던 시절에 쓰인 캐치프라이즈인 문장이다.


말 그대로의 의미다. 길가에 있는 돌, 강에서 헤엄치는 물고기, 하늘에 떠다니는 구름, 인간, 천사와 악마 그리고 신까지. 모든 존재는 언젠가 멸망을 맞이한다.


어떻게 보면 ‘태어난 사람은 언젠가 죽는다’라는 뻔한 상식과 다를 게 뭐냐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이건 프로그마 루이네만의 고유한 특징이다.


예정된 멸망: ??? / 고독(孤獨)


내 상태창의 최하단에 있었던 이 예정된 멸망처럼 모든 존재에게는 각자에 걸맞는 멸망이 찾아온다. 왜 하나는 물음표 처리가 되어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조건이 맞춰지는 순간 드러날 것이다.


멸망이 두 가지가 있는 것으로 봤을 때, 확실히 이 몸에는 두 개의 인격이 공존하고 있다. 거기에 아까 의식을 잃기 전에 들렸던 리카르도의 목소리도 그렇고.


···잠깐 얘기가 샜지만, 어쨌든. 이 대륙에도 멸망은 예정되어 있다. 그리고 그게 바로 일식이 신봉하고 있는 잊혀진 고대의 신, 검은 손가락이다.


태양의 핵에 잠들어 있다고 알려진 이 신은 강림하기까지 수백만 년이라는 긴 시간이 필요하기에 사실상 강림이 불가능한 수준이었는데, 시간을 다룰 수 있는 리카르도라는 존재가 나타나며 상황이 바뀐다.


리카르도를 포섭한 일식의 교주 콘티누 에스페라는 내가 아까 했던 것처럼 사람들의 시간을 빼앗아 고스란히 검은 손가락에게 제물로 바쳤다. 그리고 그 결과, 앞으로 1년 후면 검은 손가락이 강림한다.


멸망은 극복할 수 있다. 인간이 시련을 맞닥뜨렸을 때, 그것에 굴복하거나 그것을 이겨내는 것처럼 멸망 역시 그대로 죽음을 맞이하거나 활로를 찾을 수 있다.


따라서 내가 고민하는 부분은 검은 손가락의 강림 자체가 아니라 1년이라는 기간에 있다. 어쨌든 검은 손가락은 프로그마 대륙의 멸망이기에 극복하는 조건이 매우 까다로운데, 그 조건을 과연 1년 안에 맞출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어쩌겠어.”


내가 지금 게임을 하고 있는 거라면 시원하게 던지고 다음 판으로 들어갔겠지만, 이곳의 주민이 되어버린 이상 멸망은 막아야지.

원래 게임에서도 본인이 싼 똥은 본인이 치워야 하는 법.


나는 검은 손가락의 강림에 대비해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일어섰다. 그리고 계단을 내려가 공동을 나왔다.


“···사도들은 피한 건가.”


신도들의 맨 앞에 서 있었던 공간, 중력의 사도가 입던 옷이 보이지 않았다. 나 못지않게 무표정한 얼굴로 있던 교주의 옷 역시.


신도들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그들이 다 죽어도 전력에 아무런 지장도 주지 못한다. 세 명의 사도와 한 명의 교주가 일식의 핵심. 핵심 전력이 다 살아 있고 리카르도가 몸의 통제권을 잡았을 때 어떤 일이 오갔는지 알 방법이 없으니 답답했다.


“이미 지나간 일을 생각해서 뭐 하겠어. 앞으로의 일만을 생각해야지.”


교단의 입구는 루이네 제국의 수도 근방의 이름 없는 야산에 위치해 있다. 등잔 밑이 어둡다는 말도 있고, 황제와 교주의 거래를 통해 황제의 사유지로 지정된 산이라 황제의 허락 없이는 누구도 들어올 수 없어 비밀기지를 짓기에는 안성맞춤이다.


“당신이 리카르도인가요?”


···분명 그랬어야 하는데.


“처음 뵙겠습니다. 대륙의 선을 주관하는 신들을 모시고 있는 케슬라라고 합니다.”


하늘을 상징하는 듯한 연파랑색 머리, 평신도가 입는 수수한 사제복에 두 눈은 감고 있다. 나이로는 30대 후반에서 40대 초반 정도 되어 보였다.


“···7주선의 사랑을 받는 인간.”

“제게는 과분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항상 그분들의 명성에 누가 되지 않게 노력하고 있죠.”


그녀가 가슴에 손을 얹고서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나도 그녀에게 고개를 숙여 주었다. 그녀가 혹시 나를 공격할지도 몰라 경계를 늦추지 않았지만, 그녀는 가만히 서서 나를 바라보고만 있었다.


···어떻게든 첫 번째 마을은 건드리지 말았어야 했나?


프로그마 루이네에서 인간은 한 명의 신밖에 믿지 않는다.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이다. 현대를 기준으로 생각해도 기독교인이 부처를 믿지 않듯이, 이곳 역시 그렇다.


하지만 그 규칙에 예외가 되는 유일한 사람이 바로 케슬라. 태어날 때부터 신들의 관심을 받으며 자란 그녀는 7명의 신을 전부 섬기고 있다. 겸손의 밀리티아부터 시작해 자선의 카르티아, 친절의 마니티아, 인내의 파센티아, 순결의 카스티아, 절제의 페란티아, 근면의 인트리아까지.


대외적으로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그녀를 한 번이라도 만난 사람들은 하나같이 그녀를 대륙의 진정한 성녀이자 성인이라 부른다. 그녀가 얼마나 고결한지를 말해주는 좋은 예시라고 생각한다.


“제가 일식의 사도 리카르도입니다. 실례가 안 된다면 무슨 이유로 저희를 찾아오셨는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일식의 신도들은 다 죽었고 사도와 교주는 어디로 갔는지 알 수가 없다. 그렇기에 굳이 리카르도의 딱딱한 말투를 쓸 이유가 없어서 나는 본래 내 말투로 질문을 던졌다.


“저는 당신을 보러 왔습니다, 리카르도.”


그녀는 눈을 감은 채 나를 쳐다봤다. 저 눈꺼풀 안에 담겨 있는 눈동자가 나를 똑바로 바라보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그 안에는 이미 아무도 없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그 안에서 나온 당신이 그걸 모를 리가 없지만, 제 능력을 시험해보기 위한 질문이었을 수도 있으니 넘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인간들에게 친절을 베풀고 계시는 마니티아께 감사하다고 전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교리를 어느 정도 알고 계시군요.”


깜짝 놀랐다는 듯한 제스처를 취한 그녀는 입가에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전해드리겠습니다. 그분께서도 기뻐하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친절하시군요.”

“전 그분도 모시고 있으니까요.”


친절의 마니티아.

타인에게 친절을 베풀라는 지극히 간단한 교리를 내세우고 있는 여신. 그녀의 친절은 거짓말을 일체 금지하고 있기 때문에 케슬라가 내 질문에 굳이 핑계를 만들어준 것이다.


교단 내부를 샅샅이 수색하고 나온 건 아니었기에 교단의 어딘가에 생존자가 있었을지도 모르는 일. 따라서 내 질문은 거짓이 아니다. 실제로 내가 본 건 공동에 있는 신도들의 옷가지가 전부였으니까.

하지만 굳이 그녀의 호의에서 나온 말을 정정해줄 필요는 없어 장단을 맞춰 주었다.


“리카르도.”


마치 오래 알고 지냈던 친구를 오랜만에 만난 듯, 나를 부르는 그녀의 목소리는 평화롭기 그지없었다.


“왜 두 번째 마을부터 사람들을 살려두었죠?”

“···.”

“두 번의 거짓은 용서될 수 없으니 솔직하게 답해 주세요.”


그녀가 눈을 떴다. 아무런 감정도 담기지 않은 텅 비어 있는 눈동자가 나를 직시했다.


“첫 번째 마을에서는 목을 베어 잔혹하게 죽인 후 시간을 강탈했지만, 두 번째부터는 방식이 바뀌더군요. 누군가의 도움을 받는다면 살 수 있을 정도의 시간만을 빼앗았어요. 주변 사람들은 알 수 없을 정도로 교묘하게.”

“···그들은 제가 죽였습니다. 제게 죄책감을 불러일으키기 위한 목적이었다면 실패했다고 말씀드리죠. 제 심장은 평온하거든요.”

“당신이 들렀던 마을 사람들을 제가 모두 되살렸다고 해도요?”


그녀는 입가에 미소를 띠며 말했다. 그녀의 미소는 부드러웠으나 눈빛은 여전히 공허했고 목소리는 무감정했다.


“사람을 죽이기 싫으셨죠. 하지만 당신에게 주어진 역할 혹은 상황에 떠밀려 어쩔 수 없으셨던 게 아닌가요? 그래서 누군가가 제발 나타나 그 사람들을 살려주길 원하며 최후의 희망을 심어놓으셨다고 생각하면 너무 나간 걸까요?”


그녀의 말대로다.


두 번째 마을부터 나는 사람들을 잉태된 지 삼 개월이 채 안 된 태아 상태로 살려놓았다. 10개월이 지난 상태로 돌려놓았다면 옷이 확연하게 부풀어 올라 죽이지 않았다는 게 들킬 수도 있었으니까.


하지만 내가 그렇게 한 이유는 그녀의 말처럼 누군가의 도움을 바랐던 게 아니다. 애초에 모두가 찾아오는 멸망을 버티지 못하고 미쳐 날뛰는 게임에서 그런 희망 찬 행운 따위를 바랄 리가.


나는 그저··· 내 손으로 죽이고 싶지 않았다.

내가 시간을 빼앗은 순간에도 저들은 살아 있었으니 내가 죽인 게 아니라는 얄팍한 핑계를 대고 싶었기 때문이다.


“할 말이 그것 뿐이면 이만 가주시겠습니까? 할 일이 있어서.”

“죄송하지만 그럴 수 없겠네요.”


그녀가 소매에서 단검 하나를 꺼냈다. 순금으로 만들어진 십자가가 역으로 붙어 있는 검집에서 단검을 꺼낸 그녀가 단검을 역으로 쥐었다. 그리고 나를 향해 웃었다.


“저는 이곳에 당신의 판결을 내리러 온 입장이라서요.”


그녀는 말을 끝내자마자 자신의 목에 단검을 찔러 넣었다.


푸화악!


그녀가 단검을 뽑아내자 피가 대번에 터져 나왔고 그녀는 땅에 쓰러졌다. 나는 허리춤에 달고 있던 검을 뽑아 그녀가 부활하기를 기다렸다.


그녀의 특성은 성흔(聖痕). 그녀의 몸에 성물로 상처를 내는 만큼 신성력이 증폭된다.


그녀가 목을 찌를 때 사용한 단검은 역십자가가 장식된 검집으로 봤을 때, 7주선이 그녀를 점찍었을 때 신들의 정원으로 초대해 선물한 성물, 기원의 검. 그녀의 기도에 신들이 답해 한 가지의 능력을 부여해주는 효과를 가지고 있다.


여기에 그녀의 특성이 더해지면···.


- 케슬라의 특성 ‘성흔(U)’이 최대치로 발동됩니다.


몸에 낸 상처에 비례해서 신성력이 증폭되는 특성을 최대치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자살이 답이다. 하지만 인간에게 목숨은 하나밖에 없으니 실질적으로 불가능, 여기에 기원이 더해지면 그 불가능은 가능으로 바뀐다.


- 겸손의 밀리티아가 기원의 검을 통해 케슬라에게 ‘부활’을 부여합니다.


구름이 좌우로 갈라지며 하늘 저 높은 곳에 있던 천계의 문이 열린다. 그리고 그 안에서 뿜어져 나오는 빛이 케슬라의 몸으로 들어갔다.


- 자선의 카르티아가 기원의 검을 통해 케슬라에게 ‘근력’을 부여합니다.

- 친절의 마니티아가 기원의 검을 통해 케슬라에게 ‘민첩’을 부여합니다.

- 인내의 파센티아가 기원의 검을 통해 케슬라에게 ‘체력’을 부여합니다.

- 순결의 카스티아가 기원의 검을 통해 케슬라에게 ‘동체시력’을 부여합니다.

- 절제의 페란티아가 기원의 검을 통해 케슬라에게 ‘물리방어력’을 부여합니다.

- 근면의 인트리아가 기원의 검을 통해 케슬라에게 ‘마스터급 검술’을 부여합니다.


자신의 몸에서 나온 피로 만들어진 호수에서 신이 몸을 일으켰다. 가볍게 단검을 몇 번 휘둘러 자신의 몸 상태를 확인한 여신은 나를 향해 단검을 겨눴다.


“상당한 검술 실력을 가지고 계시다고 해서 당신에게 어울릴 만한 능력으로 신들께 부탁했습니다.”

“그 오만함이 당신의 패인이 될 겁니다.”

“글쎄요?”


그녀가 이번에도 입만 웃으며 말했다.


“인간이 아무리 날고 기어도 신을 이길 수는 없는 법 아니겠어요?”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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