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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안. 님의 서재입니다.

빌런이 지은 아카데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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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J.
작품등록일 :
2022.05.12 21:49
최근연재일 :
2022.05.30 21:00
연재수 :
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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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27,973

작성
22.05.23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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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빌런에 빙의했다

DUMMY

- 시간의 사도, 리카르도를 죽이시겠습니까?

- YES / NO


핸드폰 액정의 가운데에 떠오른 메시지 창.

흔들리는 지하철 속에서 혹시나 실수로 터치가 되지는 않을까 조심하며 나는 길지 않은 고민 끝에 ‘NO’를 눌렀다.


- 시간의 사도, 리카르도를 살리시겠습니까?

- YES

- 시간의 사도 리카르도를 죽이지 않았습니다. 리카르도가 당신의 판단에 의아해 합니다.


메시지 창이 사라지고 화면에 검은색 머리에 차갑게 생긴 남자가 나를 똑바로 노려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가 하는 말은, 화면 하단의 메시지 창에 텍스트로 출력되었다.


- 리카르도: 죽여라! 왜 나를 살려두는 거냐!

- 김진한: 이제 너를 죽일 수 있는 완벽한 공략을 찾았거든.

- 리카르도: ···공략?


리카르도의 표정이 매섭게 일그러진다. 저 표정. 항상 무표정한 가면을 쓰고 있는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데, 드디어 가면에 금을 가게 만들었다.


- 김진한: 왜 스페슨과 그라비스가 너를 견제했을까? 에스페라는 왜 너를 후방 경계 및 지원으로 빼놨을까? 어떻게 10가문과 7성, 7주선 그리고 7죄종의 연합이 가능했을까?

- 리카르도: 세뇌를 걸었나?

- 김진한: 그랬으면 네가 눈치 챘겠지.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스페슨과 그라비스, 에스페라의 상태가 이상했다면 몰랐을 거 같아?

- 리카르도: ···.


내 말에 리카르도가 고민하기 시작했다. 정확하게는 고민하는 모습으로 삽화가 바뀌었다.


“···꽤 오래 걸리네.”


나는 지하철에서 내려 출구로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고민하고 있는 리카르도의 삽화를 봤다.


프로그마 루이네.

내가 장장 7년에 걸쳐 클리어한 게임의 이름이다. AI를 기반으로 한 텍스트 시뮬레이션 게임으로, 유저의 행동에 따라 NPC들의 행동이 매번 달라지는 엄청난 자유도를 자랑한다.


처음에는 중간마다 나오는 중요 인물들의 삽화 퀄리티와 게임 기준으로 10년 안에 반드시 엔딩에 도달한다는 점이 현대인들의 흥미를 샀으나, 마지막에 등장하는 흑막 ‘일식’의 존재로 인해 망해버렸다.


일식의 핵심 전력은 시간, 공간, 중력을 다루는 세 사도와 그 위에 공허를 다루는 교주다. 이 넷을 빼면 상대할 만하지만, 이 네 명의 파워 밸런스가 터무니없이 잡혀 있어 유저들의 원성을 샀다.


특히 시간을 다루는 리카르도.

접은 유저의 40%는 이놈 때문에 접었다. ‘시간이 정지됐다.’, ‘시간이 느려졌다.’ 등 갑자기 이상한 메시지와 함께 등장하더니 ‘죽어라.’라는 말을 남기고 화면에 ‘END’를 뜨게 하는 미친놈.


거기에 공간을 다루는 스페슨과 중력을 다루는 그라비스, 마무리로 교주 에스페라까지 얹어 준다면 미친 자유도의 갓겜이 한순간에 똥겜이 되어버리는 마법이 일어난다.


- 리카르도: 너도 시간을 다룰 수 있는 건가?


리카르도가 장고 끝에 던진 물음. 그의 질문에 순간 등골이 오싹해졌다.


게임의 유저로서 당연히 가지고 있는 권리인 세이브, 로드 그리고 재시작. 이것들은 그의 입장에서 충분히 시간을 다루는 힘으로 느껴질 터였다.


뱀에게 홀려 타락했던 이브처럼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은 건 아닐까.

순간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어차피 오늘이 지나면 하지도 않을 게임. 선을 조금 넘으면 뭐 어떻겠냐는 마음에 나는 리카르도에게 답을 주었다.


- 김진한: 그래.

- 리카르도: 그렇군. 그렇단 말이지.


과연 그가 어떤 질문을 던질까, 혹시라도 다른 표정의 삽화가 나오지는 않을까 기대하며 화면을 보고 있을 찰나, 옆에서 비명이 터졌다.


“안 돼애애!!!!”


고개를 옆으로 돌리니 중년 아주머니가 횡단보도를 보며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그녀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리니 웬 꼬마아이가 빨간불인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었고 저 멀리서는 트럭이 달려오고 있었다.


나는 꼬마를 향해 달렸다. 아직 꼬마가 그렇게 멀리 가지 않았고 꼬마를 발견한 트럭 기사 역시 브레이크를 밟을 테니 어떻게든 가능할 것이다.


나는 이어폰을 낀 채 핸드폰으로 유튜브를 보고 있는 꼬마를 두 손으로 잡아 그대로 어머니로 추정되는 여자에게 던졌다. 그리고 나도 탈출하기 위해 몸을 막 던지려는 그때, 굉음이 들렸다.


빠아아아아아앙!!


···어?


시선을 옆으로 돌리자 환한 빛이 들이닥쳤고 곧이어 충격이 날 강타했다. 그 뒤로는 짧은 무중력이 찾아왔고 시야가 엉망진창으로 뒤섞이기를 몇 번, 파란 하늘이 눈에 들어왔다.


“꺄아아아아악!”

“사, 사람이 치였다!”


주변 사람들의 비명과 고함이 머리를 울렸다. 꼬마는 괜찮은가 싶어 그쪽으로 고개를 돌리니 꼬마는 엄마의 품에 안겨 엉엉 울고 있었다. 아이의 엄마는 연신 꼬마의 상태를 살피며 어디 다친 곳은 없는지 확인하고 있었고.


···생명의 은인에게 119라도 좀 불러주면 안 되나?


순간 짜증이 났지만, 관뒀다. 이미 불렀을 수도 있고. 어차피 곧 죽는데 119가 무슨 의미인가 싶기도 하다. 이건 직감이자 본능이었다. 살 수 있는 가능성은 없다고 몸과 머리가 동시에 내게 메시지를 보냈다.


나는 고개를 돌렸다.

최소한 저 아이의 엄마에게만큼은 흉한 모습을 보여주지 말아야지. 그래야 저 아이가 컸을 때 어떤 이름 모를 영웅이 너를 구해줬다고 동화처럼 이야기를 해줄 테니까.


···아님 말고.


딱히 볼 데가 없었던 내가 시선을 돌릴 만한 곳은 내 핸드폰이었다. 아이를 던지는 와중에도 잡고 있었는지 액정이 깨지고 피로 붉게 물든 핸드폰은 여전히 내 왼손에 쥐어져 있었다.


- 리카르도: 나도 공략을 찾았다.


공략? 그게 뭔데, 라고 묻고 싶었으나 왼손에 감각이 없었다. 음성인식 기능을 이용해 질문을 던지려고 해봤으나, 나오는 것은 미약한 숨소리뿐이었다. 하지만 나는 계속 물어보려 노력했다.


“ㅁ··· 뭔··· ㄷ, 데···?”


사람을 살리고 가는 길에 내가 좋아하는 게임의 빌런이 내놓은 공략 정도는 알고 가도 괜찮잖아? 그런 마음으로 핸드폰을 보고 있으니 리카르도가 나를 보며 씩 웃었다.


- 리카르도: 궁금한가?


그래, 이 개X끼야. 미치도록 궁금하니까 빨리 말해 봐. 눈이 서서히 감기고 있으니까.


내 마음을 읽기라도 했는지 리카르도가 손으로 나를 가리키며 말했다.


- 리카르도: 다 죽이는 거다. 스페슨, 그라비스, 에스페라를 비롯해 10가문의 가주와 7성의 마탑주들, 7주선의 교주들까지 다. 그런 후에 그들의 시간을 추출해 검은 손가락의 강림을 앞당길 거다.


이 새끼가 맛이 간 상태였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내 생각보다 더 미친놈이었다. 기껏 찾아낸 공략이 다 죽여 버리는 거라니.


- 리카르도: 은밀하게 숨어 있어야 하는 일식의 규율에 맞춰줄 필요도 없지. 어차피 검은 손가락이 강림하는 데는 나 혼자만 있어도 되니까. 그래. 눈에 거슬리는 놈들을 다 죽이는 것이 검은 손가락의 강림에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었어. 자, 시간을 돌려라. 모두를 살려 내 앞길을 막은 네 공략과 모두 다 죽이는 내 공략, 둘 중 어느 것이 이기는지 시험해 보자.


···진심으로 이놈이 게임 속 캐릭터임에 감사한다. 만약 이놈이 현실에 존재했다면 지구는 3차 세계대전으로 핵피엔딩을 맞이했을 게 분명하다. 왜냐고? 지구를 멸망시키는 데 핵만큼 효율적인 게 없기 때문이다.

효율에 미친 또라이 같으니.


- 리카르도: 뭐 하나? 시간을 되돌리지 않고. 설마 겁을 먹은 것은 아니겠지?


“보채지 마라, 이 싸이코 새끼야.”


이게 그 회광반조인가 뭔가 그건가? 갑자기 말이 유창하게 나오고 몸에 기력도 돌아오는 기분이었다. 나는 마지막으로 기세등등한 표정을 짓고 있는 리카르도를 보며 웃었다.


“저승가면 질리도록 해줄 테니까.”


*


내가 다시 눈을 떴을 때, 내 눈에 들어온 것은 석상이었다. 붕대로 눈을 가리고 손목을 결박하고 있는 여인의 것이었는데, 등에는 두 쌍의 날개가 달려 있었다.


아, 나는 죽어서 천사마저 돌이 되고 마는 지옥에 떨어졌구나.


그래도 아이를 살리고 죽었는데 천국은 안 돼도 지옥은 안 보내줄 수 있지 않았나 싶다가도, 내가 살면서 선행을 몇 번이나 했는지 생각해본 후에는 덤덤하게 내게 내려진 저승 판결문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이보게. 자네 거기서 뭐 하고 있는 겐가?”


어딘지 낯이 익은 여인의 석상을 계속 보고 있자니 웬 주름이 자글한 노인이 내 시야에 불쑥 끼어들었다.


“누구십니까?”

“그러는 자네는 누군데?”

“저는···.”


“26살, 대한민국에 사는 김진한입니다.” 라고 말하려던 나는 입을 다물고 노인을 쳐다봤다. 그가 입고 있는 복식은 아무리 봐도 현대인의 것이 아니었다.


노인은 전형적인 중세 판타지풍 영화의 촌장이 입을 법한 추레한 옷을 입고 있었고 손에는 굵은 나뭇가지를 깎아 만든 듯한 지팡이를 쥐고 있었다. 또한 석상처럼 두 손목을 붕대로 결박하고 있었다.


그제야 나는 이 낯익은 석상의 주인이 누구인지 깨달았다.


“···파센티아?”


파센티아는 프로그마 루이네에 존재하는 7명의 신 중 인내를 맡고 있는 여신의 이름이다. 21세기 지구 어딘가에 존재하는 사이비나 이단이 아니라 ‘게임’ 속 여신이란 말이다.


맙소사, 내가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건가?


“우리 마을이 그분을 모시고 있긴 하지.”


나를 보는 노인의 눈빛이 한층 차가워졌다. 이대로 계속 누워 있다가는 지팡이로 머리가 찍혀 죽을 수도 있겠다는 직감에 누워 있던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다시 한 번 파센티아의 석상을 봤다.


“파센티아. 인내를 담당하고 있으며 그녀를 광신하고 있는 신도들은 그녀가 두르고 있는 것처럼 흰 붕대로 자신의 신체 일부를 결박한다. 그 이유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참을 수 있는 인내심을 기르기 위함이다.”


파센티아의 석상을 마주했을 때 나타났던 메시지의 내용이 떠올랐다.


“···광신? 지금 우리 보고 한 말인가? 파센티아 님을 믿는 우리를 광신도 취급한다고?”


노인이 미간을 찌푸리며 자신의 감정을 그대로 드러냈다. 어느새 그의 뒤에는 그처럼 붕대로 신체 일부를 가리거나 결박하고 있는 사람들이 도열해 있었다.


“파센티아의 광신도들은 신을 섬기는 그 날부터 감정을 억누른다. 하지만 인간은 지극히 감정적인 동물이기에, 파센티아와 인간은 공존할 수 없다.”


이곳이 현실인지 꿈인지 뭔지 알 수 없는 내 입에서는 게임을 플레이하며 봤던 파센티아와 그녀의 추종자들에 대한 정보가 술술 흘러나오고 있었다. 저 사람들의 눈빛에서는 이제 분노를 넘어 살기가 나오고 있었지만, 내 입은 멈추지 않았다.


“수 년, 수십 년에 걸쳐 쌓아온 감정은 변질되고 오염된다. 인내심의 한계에 봉착한 이들은 여태껏 참은 감정을 분출하는데, 자신의 인내심을 깨트린 ‘적’을 향해 덤벼드는 모습이 마치 상처를 두려워하지 않는 광전사와 같다. 이것이 파센티아의 신도들 앞에 광(狂) 자가 붙는 이유다.”

“···감히 그분과 우리를 모욕하다니!”


노인이 지팡이로 땅을 세게 내리찍자 그의 지팡이 밑부분이 깨지더니 안에 숨어 있던 날카로운 칼날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지팡이를 역으로 쥐며 자신의 손목을 구속하고 있던 붕대를 잘라냈다. 다른 사람들도 붕대를 풀고 품에 고이 간직하고 있던 날붙이를 꺼냈다.


“흉기는 내려놓고 평화롭게 대화로 해결하시죠.”

“평화는 네가 파센티아 님의 앞에서 30분이나 드러눕고 있을 때 이미 깨졌다.”


그렇게 말한 노인이 기합을 내지르며 내게 덤벼들었고 그 뒤를 마을 사람들이 따랐다. 이 광기의 좀비 떼들을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을 때, 갑자기 현기증이 찾아왔다.


“아, 안 돼-.”


도망쳐야 하는데···.

게임 속으로 들어오자마자 또 죽는구나.


노인의 서슬 퍼런 칼날을 코앞에 두고 나는 의식을 잃었다.


.

.

.


“윽···.”


지끈거리는 두통과 함께 정신을 차린 나는 코를 자극하는 비릿한 냄새에 눈을 떴다.


“피···?”


내 옷, 파센티아 석상, 땅, 마을 건물들이 피로 물들어 있었다. 피는 내 주위에 널부러져 있는 사람들에게서 나왔고.


“이게 대체 무슨-.”


나도 모르게 뒷걸음질을 치던 나는 무언가에 걸려 넘어지고 말았다. 칼을 들고 내 머리를 꿰뚫으려던 그 노인이었다. 노인은 깔끔하게 목이 잘려 죽어 있었는데, 왜 죽었는지도 모르는 듯 눈동자는 아직도 나를 향한 살기로 가득 차 있었다.


“내, 내가 한 건가?”


내 왼손에 검이 한 자루가 들려 있었다. 피 한 방울 묻어 있지 않았고 내 옷도 말끔했다. 나는 무언가에 홀린 듯 검을 가까이 가져와 날에 얼굴을 비쳐봤다. 그곳에는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의 얼굴이 비치고 있었다.


“···리카르도?”


게임 속 최악의 빌런이 무표정한 얼굴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작가의말

다시 시작해보겠습니다. 공모전 기간 동안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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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빌런에 빙의했다 22.05.23 40 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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