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지안. 님의 서재입니다.

로키 : 밤의 황제

웹소설 > 일반연재 > 게임, 판타지

N.J.
작품등록일 :
2019.04.01 10:13
최근연재일 :
2021.06.22 19:00
연재수 :
164 회
조회수 :
9,327
추천수 :
72
글자수 :
953,438

작성
19.04.01 10:28
조회
205
추천
2
글자
12쪽

1. 커튼 콜 명단(1)

DUMMY

화장실과 방 하나 있는 것이 전부인 작은 집. 다행스럽게도 창문을 통해 햇빛은 잘 들어오는 편이다. 빚쟁이 생활을 청산하고 얻은 첫 번째 집이라서 성훈은 하루에 두 번씩 청소를 하고 있었다. 성훈은 1인용 소파에 앉아 어나더 월드 소식을 전해주는 프로그램을 보고 있었다.


“다음 소식을 전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TV 속에서 말하고 있는 여성이 목소리의 톤을 높였다. 그녀의 이름은 유리, 아이돌 생활을 은퇴하고 어나더 월드와 관련된 소식을 전해주는 앵커로서 일하고 있다.


“이번 소식은 아마 어나더 월드를 플레이하고 계시는 유저 분들이라면 모두 좋아하실 소식일 텐데요. 바로 불카누스의 저주가 드디어 끝이 났습니다!”


유리와 함께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진훈이라는 이름을 가진 남자는 과장된 몸짓으로 기쁨을 표현했고, 유리도 연신 박수를 쳤다.


성훈은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불카누스의 저주를 퍼트린 원인이 바로 자신이니 그럴 수밖에 없다.


“저주를 끝낸 사람이 누구인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고 하네요.”


유리의 말에 진훈은 깜짝 놀라는 제스처를 취했다. 성훈도 놀라며 TV의 볼륨을 올리고 몸을 앞쪽으로 기울였다.


“아니, 카이저 길드에서 없앤 것이 아니었나요? 저는 영락없이 카이저 길드가 없앤 줄 알고 있었는데요.”


“저도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녀가 그에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런데 저희 방송국에 들어온 정보에 의하면 카이저 길드보다 한 발 앞서서 저주를 없앤 인물이 있다고 합니다. 그 인물이 누구인지에 대한 정보가 들어오는 대로 시청자 여러분들에게 알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정말 궁금하네요. 그보다 유리 씨, 이번에는 불카누스의 저주에 대한 총 정리를 해 주신다고 들었는데요.”


“네. 저주가 사라진 기념으로 저희 프로그램에서는 저주가 시작된 원인과 저주의 효력과 범위, 그리고 해소되기까지 리드마 대륙의 변화를 짧게 다뤄볼 계획입니다.”


그가 고개를 살짝 기울이며 그녀에게 물었다.


“사건의 시작은 지금은 캐릭터를 삭제하신, 대륙 1위의 버스 기사였던 성훈 님으로부터죠?”


“네. 대륙에 있는 신전들과 마탑들의 척살령, 그리고 왕국들과 거대 길드들의 수배령까지 내려진 상황이었기 때문에 제가 성훈 님이었어도 캐릭터를 삭제했을 거예요.”


그녀가 성훈의 심정을 이해한다는 듯이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그도 침통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던전 공략에 자신이 없는 초보들이라면 모두 성훈 님의 이름을 한 번쯤은 들어봤을 겁니다. 그 정도로 유명하고 인기 있는 분이셨는데······ 한 번의 잘못된 행동이 모든 것을 망쳐놓고 말았네요.”


“하지만 누가 좋은 무기를 얻을 수 있다는 정보를 듣고서 움직이지 않을 수가 있을까요?”


그녀는 자신이 마치 성훈의 변호사라도 되는 것처럼 말했다.


“그렇죠.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좋은 무기를 얻기 위해 모험을 하고, 사냥을 하고 있죠. 그러나 이번에는··· 성훈 님의 운이 나빴다고 말할 수밖에는 없겠네요.”


“정말 안타까워요. 좋은 무기를 얻을 수 있다는 정보가 실은, 대륙 전체의 온도를 올려버리는 저주였을 줄 누가 알았겠어요.”


“성훈 님의 직업이었던 ‘수호자’가 불카누스의 저주를 강화시키는 매개체였기에 저주의 범위가 대륙 전체로 넓어지게 된 것이었죠. 만약 성훈 님의 직업이 수호자만 아니었어도 캐릭터를 삭제하는 것까지는 하지 않았어도 됐을 겁니다.”


그의 말을 들은 그녀가 고개를 숙이더니 한숨을 푹 내쉬었다. 누가 봐도 진심으로 성훈의 처지에 안타까워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는 그런 그녀를 감싸려는 듯 쾌활한 어조로 말했다.


“그래도 저주가 완전히 나쁜 영향만을 미친 것은 아닙니다. 불의 속성을 다루는 직업들에게 어드밴티지가 주어졌고, 아직 개척이 덜 되어 있었던 강과 바다 지역들이 대거 개발되었죠. 아마 그 지역의 상인들은 성훈 님에게 진심으로 감사하고 있을 겁니다.”


그의 말에 그녀가 퍼뜩 고개를 들며 눈을 빛냈다.


“아, 저도 최근에 르와르 강에 한 번 갔다 왔어요. 예전에는 아무것도 없었는데, 물놀이를 즐기는 사람들로 북적이던 걸요?”


“네. 그게 어나더 월드의 재미있는 점이죠. 한 가지 사건이 한 가지 효과만을 가지고 오는 것이 아니라, 관점에 따라 여러 방면으로 해석될 수 있는 게임. 그래서 대한민국을 넘어 전 세계가 이 게임에 열광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어머, 진훈 씨. 그 멘트 설마 미리 준비해 온 건 아니겠죠?”


“왜요? 별로 인가요?”


“네, 조금······.”


그녀의 말에 그는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고선 둘이 한바탕 웃은 다음에 다음 주제로 진행을 이어갔다. 불카누스의 저주 초창기에는 성훈에 관한 이야기로만 2시간을 채웠었는데 저주가 끝난 지금 성훈의 존재감은 딱 저 정도다. 더 볼 것이 없다고 판단한 성훈은 TV를 껐다.


이제는 무덤덤했다. TV에서 말하는 것들이 모두 사실은 아니지만 어찌 됐든 그가 제 발로 불카누스의 제단에 걸어간 것은 사실이다. 그 덕분에 빚쟁이 생활을 청산할 수 있었고 몸을 담고 있던 길드와의 인연을 부정하는 대가로 1억을 받아 이 집을 살 수 있었다. 이제 다른 사람들처럼 평범한 삶을 살 수 있게 되었고 그 출발을 알리는 신호탄으로 대륙의 공적이 되어 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았다.


다만 한 가지 의문스러운 점이 있었다.


‘누가 카이저 길드보다 먼저 불카누스의 저주를 풀 수 있었던 거지?’


카이저 길드의 수장이자 오성 그룹의 후계자인 이재명. 게임 속에서 길드 이름과 같은 카이저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는 그가 성훈을 불카누스의 제단으로 데리고 갔었다. 대륙에 저주를 퍼트리고, 그 저주를 없애는 것으로 유명세를 얻어 단숨에 세를 불리는 것. 그것이 그의 원래 목적이었다. 그런데 분명히 TV에서는 카이저 길드가 아닌 다른 누군가가 저주를 없앴다고 했었다.


잠시 저주를 없앤 사람의 정체에 대해 생각해 보던 그는 고개를 저으며 캡슐에 들어가 어나더 월드에 접속했다. 눈을 감은 채 감정을 추스르고 마음을 다잡았다. 다른 유저들의 집요할 정도의 추격과 정도를 모르는 비난에 진절머리가 나고 정이 떨어져 한동안 게임을 하지 않았지만, 그는 원래 혼자였다. 사람들의 본성을 잘 알고 있었기에 누구와도 일정 이상의 친분을 쌓지 않았었는데 한동안 게임을 하지 않은 것은 그가 생각해도 어리석은 짓이었다. 게다가 그는 게임에서 반드시 해야 할 일이 있지 않은가?


- 홍채를 인식하는 중입니다······ 생성된 캐릭터가 없습니다. 캐릭터를 생성하시겠습니까?


“예.”


- 외형을 선택해 주십시오.


“지금 이대로.”


한 가지 다행이라고 할 수 있는 점은 수호자로 키웠던 캐릭터 ‘성훈’은 외형에 많은 수정을 가했다는 것이다. 버스 기사로 일하면서 많은 고객들을 유치하기 위해서는 외형적인 부분에서도 점수를 딸 필요가 있었다.


- 원하시는 장소를 선택해 주십시오.


“브렌트 왕국, 카디르.”


성훈이 소속되어 있었던 길드의 본부가 있는 곳이기도 하고 주 무대이기도 했던 곳이다. 빠른 레벨 업을 위해서는 카디르를 고르는 것이 가장 현명한 선택이다. 척살령이 떨어졌을 때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수도 없이 죽은 곳이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쉽게 성장할 수 있는 길을 포기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 설정이 완료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리드마 대륙에서 살아갈 이름을 정해 주십시오.


“로키.”


불을 다루는 북유럽 신화의 신이자, 신이면서도 같은 신들에게 배척 받는 존재. 다른 신들에 의해 세상이 멸망할 때까지 동굴에 갇혀 살면서 복수할 기회를 노리는 신으로 알려져 있다.


그의 처지에 더할 나위 없이 잘 어울리기에 그는 로키로 이름을 정했다.


- 생성이 완료되었습니다. 리드마 대륙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주변이 환한 빛에 휩싸였다. 눈부심을 참지 못하고 눈을 질끈 감았다 뜬 그 순간, 로키는 익숙한 곳에 서 있었다.


“자네, 혹시 이곳은 처음인가?”


초반 진행을 위한 도움을 주는 NPC인 하메스의 말에 로키는 웃으며 답했다.


“예. 처음입니다.”

 

 

 

오성 그룹 사장의 차남이자 오성 그룹 본사의 부사장인 이재명. 대한민국에서 그를 혼낼 수 있는 사람은 손가락에 꼽을 정도일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지금 이재명의 앞에는 그를 혼낼 수 있는 자격을 갖추고 있는 사람이었다.


“내게 호언장담을 했던 것 치고는 결과가 미미한 것 같구나.”


그의 할아버지이자 오성 그룹의 회장인 이재성. 그는 입가에 엷은 미소를 띤 채로 이재명을 바라봤다.


“죄송합니다.”


허리를 숙인 이재명의 사과에 이재성은 미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너는 분명 내가 가르친 대로 했을 게다. 그럼에도 실패한 이유가 궁금하구나.”


“죄송합니다. 저도 잘······”


“모른다?”


“예.”


이재명은 도저히 그의 할아버지의 눈과 시선을 맞댈 수가 없었다. 리드마 대륙의 패권을 손에 쥐겠다고 큰소리를 쳤던 기억이 떠올라 그를 괴롭게 했다. 그와 동시에 분했다.


‘내가 얼마나 공들인 일인데!’


그는 속마음과 달리 죄송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숙였다.


“어떠한 벌이라도 달게 받겠습니다.”


“됐다.”


이재성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세상을 살다 보면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있는 법이야. 하지만 말이다.” 이재성이 잠깐 뜸을 들인 뒤 입을 열었다. “어떤 일을 당했을 때 곧바로 원인을 찾지 못하는 사람은 절대 성공할 수 없는 법이다. 내 말을 이해하겠느냐?”


“······얼마 걸리지 않을 겁니다.”


“그래.”


이재성은 각오에 찬 눈빛을 보내는 이재명을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첫째 손자와 셋째 손녀는 그의 기대에 충족하지 못했다. 오성 그룹의 뒤를 이을 진정한 후계자는 이재명 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그였기에 한 번 더 기회를 주기로 했다. 만약 이재명이 아닌 다른 손자, 혹은 손녀가 실패했다면 가차없이 엄벌을 내렸을 것이다.


“그럼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그래라.”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한 이재명이 방을 나가는 모습을 지켜본 그는 얼마 간을 가만히 이재명이 나간 문을 바라보더니 핸드폰을 켜 연락처를 뒤적거리기 시작했다. 그러다 어느 한 연락처에서 화면을 멈추고 번호를 누른 다음 전화를 걸었다.


두 번째에서 세 번째로 신호음이 넘어갈 때 상대방이 전화를 받았다.


“어, 오랜만일세. 잘 지내나?”


책상에 있는 버튼을 눌러 비서를 호출하며 이재성은 말을 이었다.


“다름이 아니라 그 어나더 월드라는 게임 있잖나. 그거 자네 회사에서 관리하고 있다며? 응. 듣자 하니 꽤 잘 나가는 것 같던데······.”


노크하고 들어온 비서에게 손짓으로 마실 것을 주문한 이재성은, 의자에서 일어나 풍경을 감상하기 위해 창가로 걸어갔다.


“우리 손자가 이번에 그 게임 관련해서 일을 하나 벌였는데 잘 안 됐어. 이익을 보기는 봤지만, 어디 가서 자랑하기 부끄러울 정도지. 그래서 말인데, 내가 원하는 것 좀 알아봐 줄 수 있겠나? 만약 잘 되기만 한다면 우리 그룹에서 전폭적으로 자네를 밀어주지. 무슨 수를 써서든 말이야. 허허, 사람 참. 내가 언제 한 입으로 두 말 하는 것 봤나? 응? 봤다고? 하하하. 이 사람 최근 들어 농이 늘었군.”


창문 너머에는 유리창으로 햇빛을 반사시키는 고층 빌딩들이 줄을 지어 서 있었다. 고개를 거의 수직으로 내리면 사람들이 손가락 마디 하나보다 작게 보인다. 비서가 가져온 커피를 한 모금 들이킨 그는 득의에 가득 찬 미소를 지으며 하늘을 올려다봤다.


이곳은 오성 그룹 본사의 꼭대기 층. 그리고 그는 대한민국의 대기업, 오성 그룹의 회장이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로키 : 밤의 황제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19 2. 극악단 럴러바이(8) 19.04.08 70 0 8쪽
18 2. 극악단 럴러바이(7) 19.04.08 76 1 18쪽
17 2. 극악단 럴러바이(6) 19.04.07 87 1 17쪽
16 2. 극악단 럴러바이(5) 19.04.07 87 1 13쪽
15 2. 극악단 럴러바이(4) 19.04.06 108 1 16쪽
14 2. 극악단 럴러바이(3) 19.04.06 93 0 13쪽
13 2. 극악단 럴러바이(2) 19.04.05 97 0 13쪽
12 2. 극악단 럴러바이(1) 19.04.05 108 1 17쪽
11 1. 커튼 콜 명단(8) 19.04.04 130 1 20쪽
10 1. 커튼 콜 명단(7) 19.04.04 143 0 14쪽
9 1. 커튼 콜 명단(6) 19.04.03 129 2 14쪽
8 1. 커튼 콜 명단(5) 19.04.03 129 1 12쪽
7 1. 커튼 콜 명단(4) 19.04.02 131 0 11쪽
6 1. 커튼 콜 명단(3) 19.04.02 167 1 11쪽
5 1. 커튼 콜 명단(2) 19.04.01 179 1 14쪽
» 1. 커튼 콜 명단(1) 19.04.01 206 2 12쪽
3 0. 프롤로그(3) 19.04.01 218 1 12쪽
2 0. 프롤로그(2) 19.04.01 281 3 14쪽
1 0. 프롤로그 +4 19.04.01 519 3 13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