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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안. 님의 서재입니다.

로키 : 밤의 황제

웹소설 > 일반연재 > 게임, 판타지

N.J.
작품등록일 :
2019.04.01 10:13
최근연재일 :
2021.06.22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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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3.03 2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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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빛과 어둠(7)

DUMMY

성훈은 정말 오랜만에 게임에서 나온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먼지가 쌓인 집을 청소하고, 밖으로 나가 쓰레기를 버린 그는 아주 오랜만에 산책하기로 했다.


“후······.”


늦은 새벽이었다. 게임에 푹 빠져 있으면 안 좋은 것 중 하나가 생활 패턴이 무너진다는 점이다. 캡슐이 신체를 가수면 상태로 만들어 수면 부족을 걱정할 필요는 없지만, 정상적인 삶을 사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생각보다 추웠기에 성훈은 입김으로 손을 녹이면서 걸었다. 달이 구름에 가려져 있었지만, 가로등 불빛 덕분에 그렇게 어둡지는 않았다.


적막한 밤길을 걸으며 성훈은 자신의 게임 플레이를 되돌아봤다. 짧은 복기 끝에 나온 결론은, 그답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지나치게 감정적이었어.”


시스템의 부재와 감각의 동기화가 가장 큰 원인이었다. 게임이라는 생각을 하게 해주는 시스템 자체가 그에게는 없는 거나 마찬가지고, 감각 또한 현실의 것과 차이가 없다 보니 어나더 월드를 게임으로 인식하는 게 힘들었다.


그러다 보니 생각을 하지 않게 된다. 분명 정보의 희소성을 생각하면 크로스 라인에 변장하고 들어갔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 그리고 그렇게 하겠다고 마음을 먹었음에도 – 그는 맨얼굴을 드러냈다. 범죄를 저지르지 않은 사람을 건드려서는 안 된다는 신성자치국의 법을 믿는다는 단순한 생각으로.


“이래서야 진짜 리드마 대륙에 사는 사람 같잖아.”


성훈은 뒷머리를 긁적이며 하늘을 올려다봤다. 어느새 달을 가리고 있던 구름은 사라진 상태였다. 그는 환하게 빛나는 반달을 보며 반성했다.


“블랑 님이 왜 고생을 하고 있는지 한 번이라도 생각했다면 그런 멍청한 짓은 하지 않았을 텐데.”


가볍게 세 번 뺨을 쳤다. 다시는 생각 없이 행동하지 않겠다는 의미에서. 한숨을 길게 내쉬고 있을 때 갑자기 주머니에서 진동이 느껴졌다.


“······이 시간에 전화?”


발신자를 확인해 보니 머니였다. 핸드폰 상단에 표시된 시간은 새벽 2시 50분. 사람에게 전화를 걸기에 적합한 시간대는 아니었다.


“뭐 하십니까? 이 늦은 새벽까지.”

- 그러는 너는 왜 안 자는데?

“잠깐 공기 쐬러 나왔습니다.”

- 나도 마찬가지야.


능청스러운 머니의 대답에 성훈은 피식 웃고 말았다.


- 너 크로스 라인에 있지?

“예.”

- 너 큰일 났어, 인마. 지금 카이저 길드 내에서 길드원들을 크로스 라인으로 집결시키고 있어.


변장을 안 하고 크로스 라인에 들어섰을 때부터 예정되어 있던 일이다. 자신의 관자놀이에 꿀밤을 한 대 먹인 성훈은 평온한 말투로 머니의 말을 받았다.


- 너무 태평한 거 아니냐? 어떻게 소우트에서 크로스 라인까지는 안 들켰다고 해도 앞으로 그러라는 보장은 없어. 게다가, 너 지금 이렇게 나와 있는 동안에도 카이저 길드원들은 계속해서 모이는 중이라고.

“······의도한 겁니다.”


이미 일은 벌어졌다. 후회하는 것보다는 앞으로 어떻게 할지를 생각하는 것이 그의 방식이었기에 그는 머리를 굴리며 말을 계속했다.


“한 번쯤은 제 모습을 보여줘야 사냥의 열기가 식지 않을 겁니다. 보상이 너무 좋아도 대상이 눈에 보이지 않으면 흥미가 떨어지기 마련이니까요.”

- 카이저 길드를 상대로 일부러 모습을 보였다고? 미쳤구나 진짜.

“게임은 재미있으라고 하는 거 아니었습니까?”

- 너······.


잠깐의 침묵 후에 머니는 한숨을 뱉었다. 머리를 벅벅 긁는 소리가 성훈의 귀에까지 들렸다.


- 이번에는 나도 간다.

“······레카 길드를 운영하지 않는 겁니까?”


머니의 사냥 참전은 의외였다. 하지만 이해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 나 이제 바지사장이다. 돈을 받은 이후로 사실상 운영은 카이저 길드에서 하고 있어. 대외적으로는 좋게 운영하니까 뭐, 길드원들도 나도 뭐라 말은 못하고 있다.

“그렇군요.”

- 아마 나보고 너를 죽이라 할 수도 있어. 아니, 개인적으로는 90퍼센트 확신하고 있다. 그 새끼 성격상, 나를 부를 이유가 없잖아? 알잖아, 나 게임 잘 못하는 거.

“누구보다 잘 알죠.”


성훈과 머니 단둘밖에 없었던 레카 길드의 초창기 시절. 게임을 추천한 사람답지 않게 절망적이었던 머니의 움직임에 남몰래 한숨을 쉬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런 실력을 가진 사람치고 어떻게든 레벨을 올리는 게 신기할 따름이었습니다.”

- 야. 그래도 내 와이프보다는 내가 낫다.

“비교 대상이 한참은 잘못된 거 같습니다만.”


헛웃음을 뱉으며 성훈은 집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슬슬 몸이 추워지는 데다가, 배가 고파졌기 때문이었다.


- 라면만 먹지 말고, 제대로 챙겨 먹어라.

“그러고 있습니다.”

- 너는 참, 거짓말을 잘하는 거 같다가도 못한다니까.

“······그렇게 티가 납니까?”


오늘만 벌써 두 번째다. 자신이 거짓말을 못한다는 소리를 들은 게. 그래도 남을 속이는 데는 제법 소질이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두 번이나 못한다는 말을 들으니 그렇지 않았던 모양이다.


- 너만큼 티가 나는 사람이 없다. 간혹 블랙리스트가 배정되면 눈살 찌푸리면서 하기 싫다는 티를 팍팍 내서 내가 얼마나 진땀을 뺐는데.


내가 그랬었나? 하고 생각하며 성훈은 집으로 들어갔다.


- 아무튼. 조심해라, 인마. 자러 간다.

“예.”

- 아, 혹시라도 나 만나면 죽이지만 마라.

“노력하겠습니다.”


머니가 먼저 통화를 끊었다. 통화한 시간을 보니 20분이 훌쩍 넘어 있었다. 몇 마디 안 나눈 것 같았는데 생각보다 시간이 빠르게 흘렀다.


“일단 자고 생각하자.”


캡슐 안에서 가수면 상태로 있는 것과 실제로 잠을 자는 것은 당연히 차이가 있다. 소파에 누워 얇은 이불을 덮은 성훈은 어떻게 니케를 구할지 고민하다가 잠이 들었다.



이른 아침, 라면으로 간단하게 한 끼를 해결한 성훈은 어나더 월드에 접속했다. 열 명을 상대했던 숲속이었고, 시체나 피는 없었다.


로키는 변장을 하기로 했다. 일곱 개의 보석이 걸린 목걸이 중의 첫 번째, 네브의 모습으로. 그는 붉은색 보석을 손으로 쥐고, 안에 담긴 마나를 몸속으로 흘려보냈다.


네브의 마나가 몸을 지배하는 과정에서 절반의 마나가 몸 밖으로 빠져나갔고, 입고 있던 옷과 장비를 바꿨다. 몸을 지배하는 데 성공한 나머지 절반은 로키의 외형을 자신의 주인과 똑같이 만들어 주었다.


“아, 아아.”


라나가 전해준 정보에는 어둠의 땅으로 가는 방법 외에 보석에 담긴 마나의 주인에 대한 것도 포함되어 있었다. 물론 정보의 비중을 가장 많이 차지한 사람은 멀린이었지만, 다른 여섯 명에 대한 기본적인 정보는 들어 있었다.


“좋아.”


네브는 기본적으로 방랑벽이 심한 모험가였다. 그렇기에 터전이나, 오랜 기간 사귄 친구도 전무했다. 그래서 라나의 정보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모아놓은 목격담에 가까웠다.


네브는 붉은 머리카락을 가지고 있다. 눈동자는 머리카락과 색이 동일하고, 피부는 구릿빛이었다. 머리카락과 눈동자 색이 레드 드래곤과 친해져서 나타난 변화라는 말이 있는데, 신빙성은 매우 낮다고 표시되어 있었다.


“크로스 라인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실례가 안 된다면 성함을 들을 수 있겠습니까?”

“······네브.”


로키는 목소리를 낮게 깔고 간신히 들릴 정도로 작게 말했다. 대인관계에 어려움을 겪었던 네브는 간단한 물건을 구입하는 데도 애를 먹었었다고 한다.


“신의 축복이 당신에게 깃들기를 빌겠습니다.”


로키는 신관에게 고개를 끄덕여 주고 안으로 들어갔다. 크로스 라인은 어제보다 몇 배는 더 붐볐다. 저들 중 대부분은 아마 자신을 잡기 위해 온 사냥꾼들일 것이다.


로키는 한적한 골목길로 들어갔다. 단검을 꺼내려고 손을 움직이던 그는, 지금 자신이 변장 중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한숨을 쉬었다.


“······이러면 단검을 살 수도 없는데.”


네브의 복장은 갈색과 검은색이 혼합된 천으로 만든 옷이었다. 신발은 두꺼운 가죽에 철을 덧댄 장화였고, 손에는 손가락이 드러나는 특이한 형태의 장갑을 끼고 있었다.


“꽤 난처한 모양이다?”

“······블랑 님.”


블랑이 로키의 어깨에 팔을 두르며 씩 웃었다.


“변장 가능한 인물에 대해 들은 게 있어서 다행이야. 네브라고 부르면 되지?”

“예.”

“마음 같아서는 정보 길드에 들어가서 이야기를 하고 싶지만, 그러기 쉽지가 않아. 이름 꽤 날린다는 놈들이 너무 많아.”


로키는 블랑에게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자신이 변장을 안 하고 크로스 라인에 들어왔던 탓에 벌어진 일이기에 불평할 처지가 아니었다.


“혹시 데오스 니케 안드로포스라는 이름을 가진 사제에 대한 정보를 아십니까?”

“어제 이그니 교단에 강제로 연행되었던 여사제지? 교단의 이름은 아포드네스코.”

“예.”


뛰어난 정보 길드의 도움을 받는다는 것은 정말 편리한 일이다. 로키는 새삼 럴러바이의 능력에 감탄했다.


“그 교단이 조금 특이하더라고.”


블랑은 머리 뒤쪽에서 두 손을 깍지 끼며 시선을 살짝 위로 향하게 했다.


“사제 혼자 운영되는 교단인 데다가, 사제들이 죽을 만큼 싫어하던데? 주민들도 대놓고 티를 내지는 않았지만, 사제들을 따라가는 분위기였고. 자신을 신이라고 칭한다며? 그 여자.”

“예.”


로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를 돕고 싶습니다.”

“어떻게?”

“그녀에게 걸린 죄목은 크게 뇌물수수와 신성모독이었습니다. 다른 죄목들이 있다고 했지만, 거짓말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애초에 혼자 지내고, 남들에게 무시를 받으며 살았으니까. 미치광이에게 뇌물을 주는 더한 미친놈은 없다고 보는 게 맞겠지.”

“보물은 자신들이 가지고 있던 것을 몰래 그녀의 집에 가져다 놓으면 그만입니다. 저와 같이 자리를 비웠기에 집에 아무도 없었고-.”

“아무도 그녀에게 관심을 가지지 않으니 누가 들어갔다가 나오더라도 무시하거나 모른 척했겠지.”


블랑은 입가에 미소를 띠우며 말했다.


“애초에 명분도 지어낼 수 있으니까 이런 애들도 안 쓸 일차원적인 방법으로 누명을 씌웠겠지. 이그니 교단의 행동에 다들 가만히 있는 거로 봐서는 신성자치국의 교단 전체를 상대로 싸워야 해.”


블랑은 길에 널려 있는 조그마한 돌을 걷어찼다. 돌은 몇 번 튕기더니 누가 사는지도 모르는 집의 문 앞 계단에 부딪혀 멈췄다.


“뇌물수수는 조금만 뒤를 캐면 해결할 수 있어. 하지만 신성모독은 어떻게 하지 못해. 누가 말한 것도 아니고, 자신을 스스로 신이라고 말했어 로키, 아니 네브.”


블랑은 걸음을 멈추고 로키의 눈을 응시했다.


“신성모독을 없던 일로 만들기 위해서는 그녀가 정말 신이어야 하고, 그게 아니라면 그녀를 신처럼 보이게 만들어야 해.”


블랑은 눈빛으로 과연 그렇게 할 수 있는지를 묻고 있었다.


“······네브의 능력을 이용한다면 가능할지도 모릅니다.”


종이에 적혀 있던 네브의 능력에 대한 추리와 신성자치국의 지리적 위치, 유저들이 한껏 몰린 크로스 라인의 현재 상황을 이용한다면 그녀를 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니, 가능하게 만들 겁니다.”

“왜 그렇게까지 하는 거야? 너와 그녀는 여기서 처음 만났잖아.”


블랑은 팔짱을 끼며 고개를 삐딱하게 기울였다.


“크로스 라인의 결계가 어떻게 유지되는지 아십니까, 블랑 님?”

“그야 고위 사제들이 신성력을 모아서-.”


로키는 고개를 저어 블랑의 말을 끊었다.


“크로스 라인의 결계는 단 한 사람에 의해 유지되고 있습니다.”


로키는 이그니, 에르데, 이카스, 마르의 신전 지하에 놓여 있던 족쇄와 수갑들을 떠올렸다.


“너 설마······.”


신성력을 볼 수 있는 그의 눈으로 그것들을 살펴봤을 때, 그는 선을 봤다. 에메랄드색의 빛을 내는 신성력 덩어리와 이어진 똑같은 색의 신성력으로 이루어진 얇은 선을.


선은 총 네 개였다. 신성력 덩어리에서 시작되는 선의 종착지는 한 여성의 손목과 발목이었다.


“니케 여사제 혼자서 크로스 라인의 결계를 유지하고 있다고 말하려는 거야?”


로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어제는 말하지 못했던 문장을 입 밖으로 꺼냈다.


“니케 님은 신입니다.”


작가의말

너무 늦어서 죄송합니다. 아무리 늦어도 오후 8시까지는 올릴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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