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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과검 님의 서재입니다.

멸망전선의 성기사

웹소설 > 일반연재 > 퓨전, 판타지

연혼문
작품등록일 :
2021.06.30 15:10
최근연재일 :
2021.07.18 16:00
연재수 :
7 회
조회수 :
535
추천수 :
16
글자수 :
36,345

작성
21.07.15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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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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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내가 구함 받은 것처럼, 나도(2)

DUMMY

“오, 오오, 오오오오오오!!!”


말콤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한 번 쓰러져 죽음의 문턱까지 갔던 용사의 회생은 가히 기적이라 할만한 일이었다.

치유의 은사에 둘러싸인 채 말콤은 크게 울부짖었다.


“내 도끼! 도끼를 다오! 신께서 그분의 사도를 통해 내게 새생명을 주셨으니 그분을 위해 싸우리라!!! 웜홀의 괴물들을 처단하리라!!!”


말콤은 앞서 달려나가며 바닥에 떨어진 거대한 양날 도끼를 들어올렸다.


“우오오오오오오!!!”


그리고 크게 도약하여, 기괴하게 생긴 웜홀의 괴물을 단번에 내리찍었다.


“전장이여, 오라!!!”


호쾌하게 폭력적인 장면이었다.


“쯧, 저 친구가 진짜! 도라, 너는 사제님을 지켜라! 나도 전장으로 가겠다!”

“네, 아빠!”


볼튼이 그의 딸 도라에게 내 호위를 맡긴 채 앞으로 달려나갔다.

나는 쉴새 없이 다음 사람에게로 기어가 환부 위로 손을 얹었다.


〖동반자여, 아직입니다. 10초 더 기다리십시오.〗

‘어째서!? 내 염원이 부족한 거야?’

〖나의 힘이 완벽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자세한 설명은 나중에 하겠으나, 지금의 저는 매우 불완전한 존재입니다.〗


새삼 복잡한 기분이 들었다. 처음 보는 사람들을 위해 위험한 전장 위로 발을 딛은 주제에.

20년을 함께 살아온 천사에 대해서는 잘 모르고 있었다. 물론 천사가 사담을 허용하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혹시 무리하고 있는 건 아니지?’

〖괜찮습니다. 힘이 닿는 데까지만 최선을 다하고 있을 뿐입니다.〗


믿는 수밖에 없다.


“치유의 은사를 내려주십시오.”


환한 빛과 함께 영면 직전까지 갔던 전사도 벌떡 일어나서 무기를 꼬나쥐고 전선으로 뛰어들었다.


〖대신, 당신도 무리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난 멀쩡해. 힘도 너의 것을 빌려 쓰는 것에 불과하니까.’


이때는 천사의 말이 무슨 뜻인지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던 것이었다. 그 대가는 얼마 지나지 않아서 찾아왔다.

똑같은 방식으로 다섯 명을 치유했을 때였다.


핑, 도는 느낌과 함께 시야가 어질러졌다.


〖신성력을 대행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닙니다. 동반자여, 처음의 염원을 굳게 붙드십시오.〗


이들을 살리겠노라는 다짐과 함께 나는 비틀거리는 몸을 고정시켰다.

하지만 마음 한편으로는 현실을 직시해버리고 말았다. 그것은 거대한 벽이었다. 내 능력으로는 이곳 사람들 모두를 치유시킬 수는 없으리라는 현실의 벽.


‘불가능 해.’


한 사람이 한 사람을 살리는 것도 굉장히 큰 일이다. 나는 천사의 힘을 빌려서 다섯이나 되는 사람이 치료했으니 충분히 큰 일을 했다.


‘더는 할 수 없어.’


그러니, 이제 포기해도 상관없다.


‘그래도! 하지만!’


그럼에도 구하고 싶다. 5살 때, 천사에게 받은 구원을 기억하는 이상 서희건은 사람 살리는 일을 포기하지 않는다.


천사는 동반자를 보았다. 보석 보육원에서 이 아이는 훌륭하게 자라주었다. 아직 부족한 부분이 있는 건 어쩔 수 없다. 인간이기에. 앞으로 천천히 고쳐나가면 될 일이다.


〖현실을 보시면 안 됩니다.〗

‘뭐?’

〖신의 이적이 현실입니까? 당신은 현실에게서 눈을 돌리고 이상을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런 조언을 듣기는 처음이었다. 꿈을 키워라, 크게 가져라 같은 말과는 맥락이 달랐다. 현실을 보지 말고, 이상을 보라니.


〖진정한 불굴의 믿음은 현실의 벽을 부수고 이상을 향해 날아오를 수 있습니다.〗


천사의 말은 무척 아름다웠지만, 말 그대로 이상이었다.


〖물론, 그러한 믿음을 갖는 건 쉬운 일이 아니죠. 그러니 지혜롭게 일을 해내야 합니다.〗


천사는 미숙한 서희건의 손에 차선을 올려주었다.


〖여기 있는 모든 이들이 죽을 위기인 건 아닙니다. 가장 치명상인 세 명. 이들만 치료하면 나머지는 보류해도 됩니다.〗

“······.”


천사가 누굴 말하는지는 단번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힘없이 숨을 헐떡이는 중년. 배가 쭈욱 갈라져 내장이 나오려는 걸 막고 있는 청년. 가슴에 구멍이 뚫려 이미 의식을 잃은 듯 보이는 노인까지.

그 외에도 중상자가 없지는 않았으나, 목숨과 직결되어 보이지는 않았다.


천사의 말이 옳았다. 이것만이 유일한 방법. 능력이 부족하기에, 믿음이 부족하기에, 조금 더 지혜롭게.

나는 이를 악물고 일어나 환자에게로 향했다. 어지러움에 비틀거렸지만 중년인의 앞에 무릎을 꿇고 앉을 수 있었다.


“치유의 은사를 내려주시옵소서.”


신성력이 중년인의 몸에 깃들자 나는 곧바로 일어났다.

의식불명의 환자가 회복되는가는 확인하지 않았다. 그가 반드시 회복되었으리라는 ‘믿음’은 있었기 때문이다.


배가 갈라진 청년 앞으로 갔다. 죽음의 공포 앞에서 어떻게든 살아남으려고 제 손으로 쏟아지려는 내장을 막고 있는 손 위로 손을 얹었다.


“치유의 은사를 내려주시옵소서.”


그의 살가죽이 다시 붙으며 내장이 원래의 자리를 찾아간다. 이번에도 그 장면을 눈에 담지는 않았다. 그저 일어서서, 마지막을 향해···.


“사제님!”


바닥이 눈에 보였다. 쓰러지려던 것을, 궁수 도라가 잡아준 것이다.


“아, 안 되요! 얼굴이 창백하세요! 이제 쉬세요!”

“마지막, 한 명만 더······!”


도라의 부축을 걷고 나온 서희건이 마지막 환자 앞에 섰다. 그의 앞에서 무너져내리다시피 주저앉았다. 심장에 구멍이 뚫려 사경을 헤매는 노인의 위로는 죽음이 그림자를 드리운 지 한참이다. 그러나, 아직 살아는 있다.

서희건은 그의 손을 부여잡고 있는 힘을 다해 중얼거렸다.


“부디, 부디 치유의 은사를 내려주시옵소서······!”


마지막 빛이 노인에게로 스며든 순간 그의 구멍 난 심장이 재생하며 이내 편안하게 호흡을 고르기 시작했다.


‘해냈, 다······.’


그것을 끝으로 서희건의 몸은 앞으로 넘어갔다.


“사제님!”


도라가 달려와서 내 몸을 부축했지만, 거기까지는 느낄 수 없었다.

멀어지는 의식 속에서 나는, 20년 만에 처음으로 천사가 웃고 있다는 인상을 받을 수 있었다.


전쟁은 끝났다. 웜홀의 괴수들은 주민들의 분전으로 모두 퇴치되었다.

추정 사망자는 7명이었으나, 결과적으로는 0명. 전원 무사히 살아남고야 말았다.

그 생환이 누구의 덕인지는 분명했다.


“촌장님.”

“괜찮으십니까.”

“촌장.”


마을 주민들의 도움을 받아서 일어난 노인은 몸을 추스르는 대신 젊은 사제 앞으로 향했다. 의식의 끈이 끊어지기 직전, 어둡게 가라앉은 의식을 비춘 광명이 죽음의 그림자를 걷어냈다. 덕분에 늙은 목숨을 연명할 수 있게 되었다.


촌장과 마을 사람들은 누가 말하지 않았지만 젊은 사제를 둥글게 애워쌌다.


“이 사람은 우리 마을의 구성원도 아니며.”


구함받은 마을 주민의 목숨이 일곱. 그중에는 촌장의 목숨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 누구도 이분과 인연이 없었으니.”


연 없던 젊은 사제에게 받은 연고 없는 은혜가 너무도 크고 거대했다.


“모두······, 사제님을 극진히 모시도록 합시다.”


전투의 피로에도 주민들이 우르르 몰려와서 젊은 사제의 몸을 천천히 들어 올렸다.

향하는 곳은 이 마을에서 가장 아늑한 곳. 촌장의 집이었다.


***



정신을 차려보니, 무척 아늑했다. 마치 물탱크의 고인 물을 모두 비워내고 청정수로 새로 채워진 깨끗한 감각이었다.


‘마지막에 기절하듯 쓰러졌는데······.’


천천히 몸을 일으켜보았다. 몸이 아프기는커녕 컨디션이 더 좋아졌다.

주위를 둘러보니 평범한 목조 주택이었다.


그리고 내가 누운 침대 옆에는 여전히 천사가 서 있었다. 나를 내려다보며.


“몸이 개운해. 아침잠이 많아서 이런 적이 드물었는데.”

〖신성력을 받아들여서 생긴 이로운 효과입니다.〗

“신성력이라는 건 애초에 뭔데?”


당연하다는 듯 신성력을 사용했지만, 그러한 개념을 접한 건 오늘이 처음이었다.


〖전지전능한 존재의 권능을 받거나 빌리거나 사서 쓰는 힘이죠.〗


그렇기에 20년간 들었던 의문이 더욱 강하게 피어올랐다.


〖즉, 신의 힘입니다.〗

“그럼, 너는 누구를 모시는 천사야? 천사면, 그거지? 신이 부리는 사자.”

〖그렇습니다, 동반자여. 저 또한 한때는 신을 모셨습니다.〗


천사의 표정에는 변화가 없었으나, 서희건은 슬픈 기색이라는 걸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왜 과거형이야?”

〖그대에게 말하지 않았지만, 저는···. 실은 기억을 잃은 상태입니다.〗


깜짝 놀라서 뭔가 더 묻고 싶었으나, 발걸음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나중에 얘기해.’

〖알겠습니다, 동반자여.〗


오랜 경험 끝에 얻은 한 가지 사실은 이럴 때 정답은 보류라는 것이다. 갑작스러운 상황은 물릴 수도 없고 언젠가는 끝이 나겠지만, 천사는 영원히 곁에 있어 줬기 때문이다.


살며시 문을 열고 들어온 사람은 치유의 은사를 받았던 노인이었다. 그는 일어나 있는 서희건을 보며 반갑게 미소지었다.


“일어나셨군요, 사제님.”


가슴에 구멍이 뚫려 죽어가던 노인이 내 덕에 눈앞에서 멀쩡히 돌아다니고 있으니 기분이 묘하다.


“네. 좋은 자리 덕분에 일찍 일어날 수 있었나 봅니다.”

“사제님께서 베풀어주신 은총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이 자리를 빌어서 마을의 촌장인 제가 대표로 감사드리겠습니다.”


촌장이 허리 뒤춤에서 작지만 묵직한 돈주머니를 꺼내 공손히 건네주었다.


“네? 아, 대가를 바라고 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당황한 서희건은 사양하려고 했다.


〖받으십시오. 저것들은 깨끗합니다.〗


그러나 천사가 내게 권유했고.


“오오, 부디 받아주십시오. 약소하지만 주민들의 성의를 모은 헌금입니다. 산골 마을이라 동전이 별로 없어서 더 못 드리는 것이 아쉬울 따름입니다.”


촌장도 내게 거듭 권했다.


“그렇다면······.”

헌금을 받아든 순간, 천사도 손을 뻗어서 주머니 위로 손을 올렸다. 반짝이는 기류가 연기처럼 피어올라 천사의 몸에 흡수되었다.


“오오, 사제님! 그리고 전능하신 신이시여! 저희의 성의를 흡족히 받아주시니 감사드립니다!”


촌장이 내 앞에 엎드려 경배했다. 정확하게는, 나와 함께하는 신의 천사에게.


〖신앙인들의 믿음과 성의가 저의 불완전함을 해결하고 잃었던 힘과 기억을 복구시켜줄 겁니다.〗


천사에게 질문할 게 많았지만, 지금은 그보다 우선순위의 할 일이 있었다.


〖노인에게 물어서 이 세계가 어떤 상황인지 알아봐 주십시오. 저도 기억이 혼잡합니다.〗


서희건은 가만히 생각하다가 좋은 질문을 생각해냈다.


“그보다, 웜홀의 괴물들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촌장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답했다. 그 표정이 썩 좋아 보이지는 않았다.


“웜홀 괴물들은, 마을 주민들이 모두 퇴치했습니다. 웜홀도 급한 대로 신전의 성물을 이용해서 막았고요.”


돈 때문은 아닌 듯하고, 신전의 성물이 문제 같다.


“이곳에 신전이 있습니까?”

“네. 낡은 신전이지만요······. 마을에서 수십 년을 봉사해주신 아르반 신부님께서 3년 전에 돌아가신 후로 방치되어서 그렇습니다.”


신전이라는 단어에 천사가 반색했다.


〖주인 없는 신전이라, 좋네요. 그곳이라면 훌륭한 휴식처가 될 수 있겠군요. 그곳으로 가봅시다, 동반자여.〗

“신전으로 가보고 싶네요. 가능할까요?”


천사가 무언가를 이렇게 요구하기는 처음이었다. 계약도, 나의 바람도 아닌, 천사의 부탁. 들어주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그러나 어려운 부탁이었는지 촌장은 망설였다.


“신전의 위치가 마을과는 다소 떨어져 있습니다. 사제님께서 기력을 많이 소모하셔서 거기까지 가시는 게 힘들지 않으시련지······.”

“괜찮습니다. 하늘의 은총을 입어서 큰일을 해냈으니 꼭 그분의 당에서 감사 기도를 올려드리고 싶어서 그럽니다.”


매끄럽게 해야 할 말이 튀어나왔다. 보육원에서 교회와 신전도 다녀보고 책도 많이 읽어둔 게 빛을 발했다.


“그러시다면 알겠습니다. 제가 사제님을 모실 준비를 할 테니, 그동안만이라도 푹 쉬어두시기 바랍니다. 혹시 싫어하시는 음식은 있으십니까?”

“아니요. 뭐든 잘 먹습니다.”

“알겠습니다. 실례했습니다.”


노인이 나가자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커튼이 쳐진 창문 앞으로 갔다. 창문을 걷자, 거대한 세계가 보였다. 푸르른 녹음이 산맥을 따라서 끝도 없이 펼쳐진 세계였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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