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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태한 대(對) 마법학과 교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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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혼문
작품등록일 :
2021.05.12 10:59
최근연재일 :
2021.05.31 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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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7,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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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5.18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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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폭풍전야(2)

DUMMY

“수업을 시작하겠다.”


오늘도 마찬가지로 대 마법의 실습이다. 어제 펼쳐놓은 마법진을 그대로 두고 학생들에게 풀어보라고 할 뿐인 간단한 수업.


덕분에··· 생각할 시간은 많아졌다.


인류연합 회의. 종의 명운을 건 대전쟁 당시에는 하루가 멀다 하고 열린 회의였다. 전장의 사령관들과 개인의 힘으로 전략 병기급 힘을 가진 이들만이 참여 가능한, 말 그대로 인류의 향방을 논하는 회의.


청함 받은 이상, 안 갈 수는 없다.


“아아으으, 처음부터 다시 계산해야 해!”

“어으아아아으으으으으!”


원작을 초월한 재앙이, 분명 임할 테니까.


“저기, 선생님.”


근데, 누가 침대 옆에 서 있었다. 올리비아라고 하기에는 중후한 남자 목소리.


“발터.”


상반신을 일으키자, 발터가 우물쭈물하는 게 보였다.

차라리 잘 됐다. 복잡하고 어두운 생각보다, 이 어린 새싹들 돌보는 쪽이 더 마음이 놓인다.


“시원하게 말해라. 나는 교수고, 너는 학생이다. 네가 내게 무언가를 숨긴다면, 우리는 각자가 맡은 자리에 불명예를 안길 뿐이다.”

“대 마법을 더 잘 하고 싶습니다.”

“무슨 소리지? 구체적으로 말해라.”

“저는, 재능이 없습니다.”


아, 이건 좀.


“내가 어떻게 해주기 어려운 부분이군.”

“···도와주세요, 선생님. 제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지금이라도 자퇴하고 다른 일을 배울까요?”

“그런 소리 마라.”


만류한 것은 발터의 표정 때문이었다. 몇날며칠, 몇 년을 고민한 끝에 누군가에게 처음으로 털어놓는 이의 표정이었으니까.


“확실히, 너에게는 샤를로트나 올리비아 같은 재능이 없다.”


샤를로트와 올리비아가 움찔했다. 저것들, 남의 상담이나 엿듣다니.

조금 늦었지만 마법으로 소리가 안팎으로 소리의 출입을 막는 막을 펼쳤다.


“역시, 그렇죠···?”


발터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네가 원하는 건, 나 정도로 강해지는 일인가?”

“네!? 아, 저, 저!”


발터는 고개를 도리도리, 양손으로 휘휘 내저었다.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아, 아닙니다! 어떻게 제가 감히···! 저, 저는 그저, 선생님의 반만이라도 따라가면 만족합니다.”

“B+.”


발터가 고개를 푹 숙였다.


“네가 이번 수행평가 때 받은 성적이지.”


10명 중 10등. 그러나 알고 있다. 발터의 성적은, 칼리지 1학년들 중에서도 꼴등에 가까움을. 그런 그가 B라는 성적을 받아온 것이다. 내 암기 과제 지옥속에서 용케 그만큼 노력한 것이다.


“더욱 정진해라. 인생은 불공평하니까.”

“네?”

“샤를로트와 올리비아를 보며 비교하지 마라. 그런 재능은 내게도 없다.”


천천히 고개를 들어올리는 발터의 두 눈동자에, 주오 교수가 비췄다.


“그들의 가문을 비교하지 마라. 내게도 그런 환경은 없다. 현재의 경지를 비교하지도 마라. 네게 도움 될 일이 없을 것이다.”


그리고 발터의 오른손을 붙잡았다. 마나를 흘려보내자, 발터가 오만상 찡그리며 고통에 겨워 했다.


“인체의 타고남도 탓하지 마라.”

“저는, 저는 오른손에 마나를 담을 수 없습니다.”


마나거부증. 사실, 마나가 거부하는 건지는 확실하지 않다. 그저, 마나가 깃들지 않기에 그렇게 붙었을 뿐.


“옛날부터, 저는, 저는! 외팔이었습니다! 오른손잡이가 오른손으로 마법을 못 쓰다니요! 그걸 탓하지 말라니요!”

“정신 차려라.”

“저는! 저는! 재능이 없습니다! 가문도 한미합니다! 병도 앓고 있습니다!”

“정신 차려라.”

“저는, 이 세상이 너무 불공평해서···!!!”

“정신 차려라!!!”


말로 얻어맞은 사람처럼, 발터가 비틀거렸다. 나는 그의 왼손을 잡고 내 심장에 얹었다.


“똑바로 봐라.”


강제로 마나를 연결해서, 나의 서클로 발터의 의식을 유도했다.


“내 경지를.”


발터는 거대한 흐름에 몸을 맡긴 사람처럼 허우적거리다가, 이내··· 그게 바다가 아닌 강줄기임을 깨달았다.


마법사는 서클을 형성한다. 그때가 되면 초보 마법사로 인정받으며 서클러 등위를 획득할 수 있다.

하이브 칼리지의 학생들은 2서클에서 4서클까지 다양했다. 샤를로트와 올리비아가 4서클이었다.

서클은, 마법사의 경지다. 많은 서클은, 많은 마나량을 뜻하니까.


“3.”


발터가 충격받은 사람처럼 중얼거렸다.


“나는 3서클 마법사다. 나 또한 너와 같은 마나거부증 환자였으니까. 심지어 오른손이 아니라, 전신이었다.”

“어, 어, 어떻게···!”


그것은 마치 물에 불이 붙는 현상이었다. 물리 법칙에 위배되는 괴현상.


“체질을 바꾸는 건 보통 노력으로는 할 수 없다. 그저 열심히 해야 한다. 너는 더 노력하고 노력하고 노력하고 노력해라. 게임도 끊고, 취미도 끊고, 너를 죽여라. 오로지 마법에 대한 열망에 스스로를 집어던지고 서클을 연마해라. 마나를 주입시켜라. 아프다고 물러서면, 마나는 더욱 완강하게 너를 거부할 뿐이다.”


마나거부증의 아이러니한 치료법은 단 하나. 고통을 인내하며 끝없이 마나를 주입할 것.


“나는 어릴 때부터 평생을 시도했고, 3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3서클에 불과하다.”

“······.”

“넌 대체 얼마나 노력했기에, 그렇게 불평할 수 있는 거지?”

“아······.”

“자리로 돌아가라, 발터. 지름길은 존재하지 않는다. 네가 저 낭떠러지 아래에서 시작했다면, 아득바득 기어오르는 수밖에 없다. 그게 현실이다. 싫다면, 네가 원하는 대로 하면 될 일이다. 나는 너의 교육자이지, 너의 책임자는 아니다. 네가 도와달라고 청한다면 나는 도와줄 수 있다. 하지만 단순한 불평을 하러 온 것이라면 더 할 말이 없다. 너는 먼저 스스로를 책임질 수 있는 어른이 되어라.”


발터는 말을 이을 수 없었다. 주오 교수의 표정은, 이전의 수행 평가 때보다도 더 진지하고 화가 나 보였으니까.

이윽고 방음 마법이 해제되었다. 발터는 대화의 끝임을 직감하고 자리로 돌아갔다.


나는 조금 심했나, 라는 감정도 들었다. 서클은, 재능은 나의 역린이었기 때문이다. 너무 감정이 격해졌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언젠가는 발터가 마주해야 할 진실이니까.

나는 쉬지 않고 샤를로트와 올리비아 둘에게 고했다.


“교수의 방음 마법을 뚫어보려고 시도한 행위, 벌점 2점이다.”


둘의 표정이 울상이 됐다.



********



데울로는 바쁘게 짐을 꾸리고 있었다. 인류연합 회의 때문이었다. 아, 물론 샤를로트에게 줄 곰인형도 잊지 않고 준비했다.


“저기 아빠.”


그날 집으로 돌아온 샤를로트를 보며 데울로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아니, 우리 귀염둥이가 아빠를 먼저 부르다니!”

“주오 교수님이랑 아는 사이었어?”

“아~ 주오 교수 말이구나.”


데울로는 딸에게 주려고 산 예쁜 핑크빛 곰인형을 잠시 내려놓으며 회상했다. 샤를로트가 눈짓하자 곰인형이 슈웅 날아서 데울로의 방으로 들어갔다.


“주오 교수는···”

“3서클 마법사를 왜 보증해준 거야?”

“······.”


데울로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지금껏 그의 그런 표정을 본적 없었던 샤를로트였기에 겉으로 티내지 않을 뿐 크게 긴장했다.


“···마법사의 강함이 서클로 정해지지는 않는단다, 샤를로트.”


귀염둥이가 사라졌다.


“주오 교수님을 폄하하려는 건 아니야. 궁금해서 그래. 그가 누구인지. 왜 아빠가 그랬는지.”


그제야 데울로의 표정이 조금 펴졌다. 그러나.


“그건 비밀.”


원하는 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왜?”

“그건 비밀이기 때문이란다.”

“아빠가 나한테 비밀도 있었어?”

“흠, 사실 내 비밀은 아니지. 정확하게 말하면······.”


데울로는 크게 고민했다. 하지만, 흠······. 괜찮지 않나? 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보증서까지 써줬으니 말이다.


“인류 전체의 비밀이지.”


이게 뭔 소리야, 라는 표정의 샤를로트를 두며 데울로는 뒤돌아 아까 둔 곰인형을 찾았다.


“자, 딸! 그보다 선물···, 어라?”


그동안 샤를로트는 도망치듯 방 안으로 들어갔다.


“이런.”


타이밍을 놓쳤다. 인류연합 회의에, 참관인으로서 너도 가야한다는 말을 하려고 했었는데.



********



그리고 다음 날. 약속이라도 한 듯 대륙 전역에서 한 가지 소식이 태양이 떠올라 빛을 비추듯 순식간에 퍼져나갔다.


“호외요! 호외!”


어린 소년들이 신문을 들고 거리로 뛰어나갔다.


“인류연합 회의?”

“인류연합 회의를 진행한다고.”


주점에서, 상점가에서, 일터에서 어디에서도 심각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엄마, 그게 뭐에요?”

“인류연합 회의?”


아직 열 살도 안 된 아이들은 모르는 이야기. 어른들은 겪었던 참혹했던 종의 명운을 건 전쟁에 대하여서 대를 이어서 전한다.


하이브 칼리지의 오전 회의도 같은 주제였다.


“오늘 회의는, 다들 아시다시피.”


하인리히는 고급스러운 두루마리를 단상 위에 올려놓았다. 인류연합 회의 초대장이다.


“페리 교수, 카운티 교수 등 학부장님들은 젊은 교수님 중에 훌륭한 이들을 대리로 뽑아놓으셔야 합니다.”


하이브 칼리지의 교수들은 모두가 각 분야 최고의 실력자들이다. 당연하지만 전원이 10년 전 대전쟁의 참전용사들이다.물론 그때는 새내기 마법사였던 이들도 있겠지만, 10년이 지난 지금은 번듯한 교수가 되었다.


“예상 일정은 짐작할 수 없지만, 못해도 닷새 이상은 걸릴 겁니다. 우선 필참자의 명단부터 호명하겠습니다.”


모두가 귀를 활짝 열었다. 기본적으로 호명될 때의 순번은 중요도에 따른다.


“교장 하인리히.”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황녀 엘리.”


이 또한 맞다. 교수로서 신임이라 그렇지, 대전쟁 당시 마왕을 상대했던 별동대의 일원인 전쟁영웅이니까.


“대 마법학과 교수 주오.”

“네?”

“어, 음?”


교수 무리 사이에서 술렁임이 퍼진 순간, 하인리히가 손으로 테이블을 내리쳤다.


“모두 정숙!!!”


소란이 뚝 멎었다. 인류연합 회의에서 나온 명령서는, 항렬상 듀로만트 황제의 칙령서와 동급이거나 위다.

교수들이 학부장들을 보았다. 그들은 어떠한 긍정도 부정도 보이지 않은 채 무표정을 고수했다.


“무술학부장 카운티, 마법학부장 페리, 초능력학부장 조엘.”


그리해야 한다고 명령이라도 받은 사람들처럼.


수십 명이 더 불린 뒤에야 호명이 끝났다.


“이상 인원들은 회의 참석자이니, 그 외 교수들에게 인수인계를 미리 해두셔야 합니다. 아시다시피 참관인을 동행시킬 수 있으니, 의향이 있다면 미리 물어두시기 바랍니다.”


엘리 황녀가 거수하고 질문했다.


“교수님, 이동은 어떻게 합니까?”

“다 바쁜 사람들이니 개별로 이동하는 게 좋겠습니다.”

“이동 시기는요?”


하인리히가 진중한 눈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인류연합의 소집령은 지고한 명령이니. 당장 준비를 마치는 대로 이동하시면 됩니다. 그러나 아무리 늦어도 본격적인 회의 시작일인 다음 주 월요일까지는 꼭 도착하시기 바랍니다. 회의는 이것으로 파하도록 하겠습니다.”


교수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모든 교수가 한자리에 모인 김에 모든 일을 처리하려는 것이다.


“주오~!”


엘리 황녀가 총총 달려왔다.


“언제 출발할 거예요?”

“가능한 수업을 길게 하고 싶습니다.”


어제 발터와의 일도 있었다. 어쩐지 지도욕구가 올랐다.


“으음···, 알겠어요. 나는 오늘 당장 출발할 거예요.”


원래 같았으면 함께 가자던 엘리 황녀도, 이번만큼은 공무에서 빠질 수 없었다. 그녀가 황녀로서 또 인류연합군 별동대 사령관으로서 할 일도 있었기 때문이다.


“혹시라도 마음 바뀌면 연락줘요.”

“알겠습니다.”


나는 엘리와 헤어진 후, 곧바로 강의실로 이동했다. 사실 조금 늦었다. 원래라면 정각 시작인데, 회의도 길어지는 바람에 20분을 초과해버렸다.

단번에 문을 열고 들어갔다.

뚜벅뚜벅 걸어서 단상 위에 올랐다. 강의실을 올려다보니, 학생들이 긴장한 얼굴로 나를 보고 있었다. 귀가 있으면 들었겠지. 인류연합 회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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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샤를로트(1) 21.05.16 212 4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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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태양과 달의 소녀(4) 21.05.14 230 5 17쪽
7 태양과 달의 소녀(3) +2 21.05.13 240 5 14쪽
6 태양과 달의 소녀(2) 21.05.13 255 4 13쪽
5 태양과 달의 소녀(1) 21.05.12 268 6 14쪽
4 신설 대 마법학과 교수(2) +1 21.05.12 300 6 11쪽
3 신설 대 마법학과 교수(1) +2 21.05.12 333 11 13쪽
2 프롤로그 - 전쟁영웅 +1 21.05.12 394 12 17쪽
1 프롤로그 - 날백수 +3 21.05.12 544 26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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