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바람과검 님의 서재입니다.

나태한 대(對) 마법학과 교수님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연혼문
작품등록일 :
2021.05.12 10:59
최근연재일 :
2021.05.31 15:21
연재수 :
23 회
조회수 :
5,654
추천수 :
196
글자수 :
137,355

작성
21.05.12 11:20
조회
390
추천
12
글자
17쪽

프롤로그 - 전쟁영웅

DUMMY

나는 아···, 음···, 귀찮다. 지금 이럴 때가 아닌데. 자기소개 안 하면 안 되나. 안 할 수는 없겠지.


내 이름은 한주오, 날백수다. 정확하게는··· 음···, 실패한 날백수.

부끄러운걸. 그래도 끝까지 읽어주면 좋겠다.


우선 내 오두막을 소개하겠다. 작지만 생존에 필요한 모든 것들이 구비되어 있다. 아담한 주방, 내가 누운 침대, 까마귀는 내 반려동물이야. 그리고··· 어···, 여자는 들인 기억이 없는데.


“눈 떴으면 일어나시죠.”


희미한 시야 감각에 태양이 포착되었다. 아니, 태양을 닮은 황금같은 여인이.

눈을 깜박이자 곧 초점이 선명해졌다.

깔끔한 제복을 입은 여인의 얼굴이 무척 낯익었다.


“뭐야, 당신이 왜 여기에 있어요?”

“일어나시라고요, 한주오 대령.”

“···대령은 무슨 대령입니까. 탈영병한테.”


상반신만 일으킨 채 공주기사를 올려다보았다.


대륙의 절반을 지배하는 듀로만트 대제국에서 예쁨 받고 있어야 할 공주님께서 왜 여기에 계신 걸까.


“엘리 공주, 아니. 황녀님. 아무도 찾아오지 말라고 깊은 산골에 지어놓은 오두막인데, 어떻게 알고 찾아오신 겁니까?”

“한동안 고생했어요. 아무 말도 없이 탈영한 한주오 대령 때문에.”

“저 아직 대령입니까?”

“아뇨. 입에 붙어서 나온 말이에요. 그러니까 닥치고 얼른 일어나기나 해요. 진짜로 화내기 전에.”


나는 한숨을 쉬며 침대를 벗어났다.

목이 마르다. 물. 물이 어디에 있지?


“한주오 대령. 할 말이 참 많습니다.”


뒤따르는 '엘리 폰 갈리아 듀로만트' 황녀를 대동한 채 문밖으로 나섰다. 졸졸 흐르는 개울가에 앉아서 물을 퍼마셨다.


개울에 비췬 내 몰골은 말이 아니었다.


“···황녀님께서는 안 바쁘신가 봅니다? 산골에 쳐박힌 한량이나 찾아오시고.”

“당신 여기에 있을 사람 아니잖아요.”


엘리 황녀의 말끝에 잊고 있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걸 정하는 건 접니다.”


전쟁이 있었다. 종의 명맥을 건 치열한 전쟁이.

전쟁에 참전했던 엘리 황녀는 전쟁영웅이 되어서 개선문을 통과했었다. 온 대륙의 인정과 부와 영예가 그녀를 맞이했다.


나는 어땠냐고?


“왜 도망친 거에요?”


나는······


“만사가 귀찮더라고요.”


피식 웃으며 껄렁하게 중얼거렸다. 엘리 황녀가 눈살을 찌푸렸다.


“거짓말 말아요.”

“아니, 진짠데.”


나는 헛웃음 치며 대답했다.


엘리 황녀가 성큼성큼 다가와서는 내 양팔을 부여잡았다. 그녀에게는 애절함이 있었다.


“한주오 대령! 여기까지 찾아온 내 성의를 생각해서라도 진실을 말해주면 안 되나요!?”

“아, 진짜라니까요. 귀찮음 병이 도져가지고 그만.”

“자그마치 10년이에요! 난 당신을 10년 동안 찾았다고! 대륙 끝에서 끝까지 안 뒤져본 곳이 없어요! 금역은 물론 마경에 이르기까지!”


엘리 황녀의 눈빛에는 물러섬이 존재하지 않았다.

못 본 10년 새 그녀는 더욱 견고하고 굳건한 정신력으로 무장하고 있었다.


그러나 나도 짊어지지 않으면 안 될 원죄가 있다. 아주 깊고 어두운 원죄가.


“거··· 황녀님 사정은 알겠는데, 난 다 말씀드렸어요. 여기서 뭘 더···”

“올라오는 길에 무덤을 봤어요.”

“······.”


아···, 봤구나.


“홍예지 소장에 대해서······ 따로 말하지는 않을게요. 어느 누구도 당신 앞에서는 자격이 없으니까.”

“······”

“하지만 당신이 이렇게 사는 게, 그녀가 원한 건 아니잖아요. 당신이 더 잘 알잖아요.”


전쟁이 있었다. 종의 명맥을 건 치열한 전쟁이.

거기서 나는, 내 사랑하는 연인을 잃었다.

아무리 애쓰고 발버둥쳐도 과거가 바뀌는 일은 없었다.


등 뒤에서 무언가를 꺼낸 엘리는 내 가슴팍을 쳤다. 두툼한 서류 봉투였다.


“10년이면 참 길었다, 그렇죠? 이 생활도 청산할 때가 됐죠? 그렇죠?”


봉투 안의 내용물을 슬쩍 보았다. 다량의 돈, 신분증, 각종 서류와 초대장.


보드라운 양손이 내 손을 부여잡았다. 엘리는 침통한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한주오 대령,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데요.”

“영원히 불변하는 것도 있···.”


말문이 닫혔다. 이건 반칙이다.


뜨거운 눈물 방울이 그녀의 볼을 타고 흘러 내 손 위로 툭, 투둑 떨어진다.


“나는······ 못해도 당신이 화려하게 살고 있을 줄 알았어요. 차라리 그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당신은 그만한 자격이 있으니까. 그랬다면, 10년 동안 갖은 고생을 하면서까지 당신을 찾았어도, 내색 않고 지나다가 우연히 만난 지기처럼 안부나 묻고 끝냈을텐데. 앞으로 만나지 않을 사람처럼 사라져줬을텐데.”


속이 상할대로 상한 엘리 황녀가 나를 애처롭게 올려다 보았다.


“왜 이렇게 살고 있는 건데요···. 다른 사람은 몰라도 당신만큼은 이러면 안 되는 거잖아요.”


뜨겁다. 눈물도, 부여잡은 손도, 눈동자도.

황녀는 그 자세 그대로 한참을 울었다. 나는, 이 겁쟁이는 아무런 말도 못했다.


저 멀리 해가 저물기 시작했다.


“올지 안 올지는 당신 선택이에요. 난, 가볼게요.”


엘리 황녀가 뒤돌아서 산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산길을 터벅터벅 내려가는 발걸음이 처량하다. 연신 눈가를 닦는 모습이 애절하다.

내 탈영이, 10년 동안 엘리 황녀를 울렸겠구나. 한숨이 절로 나왔다.


“하아─.”


개울가에 다시 주저앉아 얼굴을 씻었다. 이도 닦고. 수염도 밀고. 그러고나서 사랑하는 그녀에게로 향했다.


그녀가 좋아하는 꽃을 심고, 나무를 가꾸고, 길을 놓았다. 하루가 멀다하고 깨끗이 닦은 묘비에는 그녀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예지야.”


무덤 앞에 앉아서, 그녀를 기린다.

함께 했던 모든 추억이 파라노마처럼 내 눈앞을 채운다. 나의 심상이 그녀로 가득 차오른다. 이대로 익사하고 싶다.


그러나 오늘은 안 된다. 어느 시점에서 감성을 절제했다.


“······미래가 나를 부르고 있어.”


내 시간은 네가 죽은 그날 멈춰버렸는데. 영원히 흐를 것 같지 않았는데.

10년 동안 대륙 끝에서 끝까지 나를 찾아다녔다는 엘리 황녀가 와서 내 시계의 초침을 앞으로 움직여 놓았어.


“안 갈 수는 없겠지?”


여길 떠날 생각만으로도 어깨가 무거워졌다.

산 한주오가 죽은 홍예지를 돌보았는가, 아니면 죽은 홍예지가 산 한주오를 돌보았는가.

후자라고 한주오는 생각했다.


너를 잃고 실의에 빠진 나를, 10년의 세월 동안 위로해주었지. 의지할 수 있는 그루터기가 되어주었지. 놓아주지 못하는 내가 한심하니? 불쌍하니?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너를 놓아줄 수가 없구나···.


“금방 돌아올게. 방치해뒀던 일만 다 끝내고. 금방 돌아올테니까. 조금만 기다려줘.”


다시 돌아오면 다시는 나가지 않으리라. 여기서 늙어 죽을 때까지 청산을 벗삼아 한 사람을 기리며 살리.


“다녀올게.”


그 길로 나는 10년을 허송세월 보내었던 그녀와의 보금자리를 뒤로 하고, 길을 떠났다.



□□□□□□□□



서류 봉투 안에는 약도가 있어서 오두막에서부터 '하이브'까지 가는 길이 어렵지 않았다. 약도는 엘리 황녀의 성격만큼이나 꼼꼼하게 기록되어 있었다.


덕분에 나는 길 잃을 걱정 없이 천천히 세상 구경이나 하면서 목적지까지 여행할 수 있었다.


“우와, 세상이 이렇게 변했어?”


10년 전에는 어딜 가도 전쟁의 상흔이 남아있었는데. 거리를 노다니는 사람들 얼굴 위로는 웃음꽃만 활짝 피었다.


“돌아가면 예지한테 해줄 말이 많겠구나.”


흐뭇하게 웃으며 나는 약도를 접었다.

세계에서 제일 크고 아름다운 번영의 도시가 눈앞에 펼쳐졌다.


“여기군.”


인류의 존망을 가르는 대전쟁에서 구심점 역할을 한 듀로만트 제국은 마침내 세계를 선도하기에 이르렀다.

내가 선 곳이 바로 듀로만트의 수도 갈리아. 가히 '세상의 중심'이라 할만한 장소였다.

10년의 세월 동안 별칭이 부끄럽지 않을 만큼의 거대한 번영을 이룬 모습이 참 새롭다.


환영처럼 10년 전이 겹쳐 보였다. 그때도 지금처럼 사람은 많았다. 작은 꼬마조차 돌멩이 하나라도 날라야 했던 처절함만 없었다면 좋았을 텐데.


눈을 깜박이자 현재로 돌아왔다. 우리의 노력으로 얻은 평화가 세계를 보듬고 있었다.

그때 반갑고도 낯선 걸 보게 되었다.


“오, 이것 참.”


대광장에 세워진 동상들이었다. 10년 전, 악마종을 상대로 인류가 펼쳤던 처절한 저항의 선두자들이 여기 모여 있었다.


'저기 엘리 황녀도 보이네.'


익숙한 면면들을 동상으로 먼저 보게 될 줄이야.


{듀로만트 제국 제2황녀, 엘리 폰 갈리아 듀로만트}


현황제, 옆나라 왕, 그 옆나라 왕, 어느 나라 고위 귀족 등. 왕족이나 귀족은 직분이 아래에 양각되어서 고귀함을 드러냈다.


반면 기사, 마법사, 떠돌이 낭인, 용병 등은 제법 시적인 표현이 많았다.


그것들은 마치 전우들이 내게 보낸 편지 같았다.


{복수를 끝마친 낭인, 故 트라우트}


그래. 여동생의 복수를 해냈구나. 축하한다.


{결혼까지 골인한 기사와 마법사, 그라함&제시}


절대로 안 한다더니 결국에는 했구나?


{가장 무거운 경비, 故 토라}


···미련한 것. 끝까지 지키기만 하다가 가다니.


{혜성처럼 나타난 두 용병, 故 홍&한}


“!”


나는 고개를 들어올려서 동상을 보았다. 온갖 멋지고 화려한 동상들 가운데에서, 유일하게 밋밋한 로브를 머리끝까지 뒤집어쓴 두 사람은 다른 세상에 동떨어져 있는 듯 보였다.


고개를 억지로 끌어당겼다.


“가자.”


내게 명령하듯 중얼거리고는 자리를 떴다. 홍예지의 흔적을 여기서 볼 줄이야. 내게 목적이 없었다면 여기서 오두막을 짓고 평생을 살았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내 미래는 여기가 아니다.


엘리 황녀가 울면서 쥐어준 약도를 꽉 쥐었다.


{엘프의 요람}


고귀한 성역의 이름을 똑같이 붙인 여관 안으로 들어가서 311번 방을 주문했다.


“여기에 있습니다. 300번대 호실은 아무도 없으니 조금 시끄럽게 구셔도 됩니다.”

“네, 감사합니다.”


열쇠를 받고 계단을 올라서 300번대 방을 둘러보았다. 301, 302, 303······, 310. 끝이다.

311번 방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나는 주위를 살피며 바닥의 카펫을 발로 밀었다. 조막만한 열쇠 구멍이 드러났다.

열쇠를 넣고 돌리자, 바닥이 열리며 금고가 나타났다.

비밀번호마저 입력하니 금고문이 열리며 금화 주머니가 나타났다.

금화 주머니를 챙긴 뒤, 금고 밑바닥을 두드렸다. 정해진 패턴, 정해진 마나량으로 두드리자 곧 바닥이 분리되며 종이 한 장이 튀어나왔다.


‘하, 꼼꼼하셔라.’


산골짝에서 살다 와서 그런가 이런 귀찮은 건 질색이다.


소득은 컸다. 한 장이 집 한 채보다 더 비싸다는 텔레포트 스크롤이었다.


‘부유섬 하이브 한 번 방문하기 어렵네.’


뒤적여진 자리를 복구한 다음 카운터에 열쇠를 반납하고 화장실로 들어왔다. 안에 아무도 없는 걸 확인하자마자 텔레포트 스크롤에 마나를 주입했다.


빛이 번쩍이며 눈을 떴을 때는 완전히 별세계··· 어라?


쿠당탕! 쿵탕!



□□□□□□□□



부유섬, 하이브 칼리지.

인류 최고의 교육 기관, 하이브였다.


오늘은 중대한 사안을 두고 교수들이 교장과 함께 선정을 진행하고 있었다.


“각자 추천 목록은 가져오셨겠지요?”


하이브에 이름 올리기를 바라는 희망자는 아득할 정도로 많다. 그러나 최종 합격자는 오로지 한 명. 선정은 엄격하게 진행됐다.


악독하기로 소문이 자자한 하이브 교수 선발 평가시험이 1차.

하이브 교수진이 평가시험에 합격한 후보들 중에 한 명씩 골라서 추천하는 게 2차.

마지막 3차로, 걸러진 명단을 받은 교장의 최종 선택으로 새 교수는 선발된다.


지금은 2차를 마감하는 중이었다.


“그럼 거둬가도록 하겠습니다.”


추천 후보가 적힌 용지가 저 혼자 둥실 떠올라서 교장의 앞에 차곡차곡 쌓인다. 회의실에 긴장감이 흐르고 있었다.


교수가 추천한 후보가 교장이 보기에 하이브의 교수 자격 미달이라 여겨질시, 추천한 교수에게도 불이익이 있는 만큼 엄격하다고 볼 수 있겠다.


“그럼···, 신설 대(對) 마법학과 교수직 추천은 여기서 마감하도록 하겠습니다. 제가 직접 명단을 검토해서 빠른 시일 내로 초빙할 교수를 발표하도록 하지요.”


{교장 하인리히 폰 하이브 베르디트 }


하인리히는 동화책을 뚫고 나온 듯 보이는 전형적인 노마법사였다.

실력도 동화처럼 황홀했다. 최고라는 수식어가 반드시 들어가는 살아있는 전설.

세계 각지의 내노라는 인재풀로 구성된 하이브의 교수들마저 인정하는 위대한 마법사.


“이견 있습니까?”


교장 하인리히가 올라선 단상을 기점으로 부채꼴로 넓게 형성된 자리에는 각 학부, 학과의 교수들이 앉아 있었다.


“아니요.”

“없습니다.”


“교장 선생님, 잠시만요.”


한 명이 손을 들었다.


“마법학부 화염마법학과의 올리버 교수. 무슨 일인가요?”


하인리히 교장의 허락에 올리버는 목을 가다듬으며 말했다.


“크흠, 다름아니라 제출된 명단에 거슬리는 결격 인원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올리버가 피어올린 불씨가 여기저기 옮겨붙는다.

교직원의 5%에 불과한 인원들은 가만히 있었으나, 95%에 달하는 교수들이 고개를 끄덕이거나 짧게 호응했다.


“맞습니다.”

“이상한 일이지요.”


하인리히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전쟁이 끝나고도 10년이 지났으나, 이것만은 도저히 달라지지 않으니.


“교수들의 의견이 모였군요. 올리버 교수, 말해보세요. 결격 사유가 무엇입니까?”


애초에 익명 추천제인데, 대체 어떻게 알아낸 걸까.

그러나 교장의 자리에 앉은 하인리히는 어디까지나 중립에 서야만 했다.


“후보의 출신 성분도 제대로 기재되지 않은 추천서가 있습니다. 말이나 됩니까? 부디 교장 선생님께서 살펴 봐주십시오.”

“흠, 출신 성분이요. 제가 얼핏 봤을 때는 딱히 문제 될 후보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올리버 선생이 말하는 결격 인원이란 누구지요?”

“명단 곳곳에 숨어 있습니다. 특히 무술학부 선생들이 추천한 후보 중에 그런 이들이 많습니다!”


출신 성분이 제대로 기재되어 있지 않다. 즉, 귀족이 아니라는 뜻이다. 그에 준하는 부와 권력을 가지지 못했거나.


올리버가 구석진 자리에 앉은 한 여인을 가리켰다.


“특히나 보십시오! 마검술학과의 엘리 교수가 추천한 사람은 국제법상으로 공인된 7개 마법사 등위에도 등록되지 않은 신원불명자 아닙니까!?”


하인리히 교장이 침을 삼켰다. 불씨가 튀었으니 저기도 폭발할 터.

아니나 다를까 엘리가 양손으로 테이블을 짚고 일어서서 올리버를 향해 반박했다.


“그 말씀은 옳지 않습니다, 올리버 교수님!”


황녀에 전쟁영웅 출신인 교수 엘리는 정의롭고 강직하며 불의를 그냥 넘기지 못하는 협의지사로 유명했다.

그러니 타깃이 된 거겠지만.


“마법사 등위는 물론 중요하지만, 그 제도가 안착된지는 얼마 안 되었습니다! 산골이나 오지에서 수련 중이던 마법사들은 모를 수도 있죠! 출신 성분도 마찬가지입니다!”


교장 하인리히가 보기에 이번만큼은 엘리의 패배였다.

그의 예상대로 올리버는 입꼬리를 비릿하게 끌어올리며 곧바로 반박했다.


“엘리 선생! 9년! 마법사 등위 제도가 제정된지 9년이나 됐네! 그런데도 얼마 안 되었다고!? 10년을 딱 채워야만 얼마 안 된 게 아닌 건가!?”

“그렇지만 속세와 떨어져 있던 마법사들을 배려해주는 것도···”

“그만하게! 무슨 말같지도 않은 소리인가! 애초에 무술학부에서 마법학부 선생을 추천하는 게 잘못됐다니까!”


올리버는 극단적 귀족주의자에 화가 많고 귀족 학생을 편애한다는 소문까지 도는 불온한 교수였으나··· 정론이었다.

마법사 등위제가 도입된지 9년. 이제는 마법 등위제 미등록자는 마법사가 아닌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올리버 교수님! 마법사 등위제만 믿고 판별하는 겁니까!? 좋은 교수가 오로지 그것만으로 결정되느냐는 겁니다!”

“이런 무지한···! 그래서 뭐, 하이브에 근본도 모르는 자를 교수로 취임시키자는 건가!? 대체 여기가 왜 부유섬인지도 망각한 건가!?”

“그, 그건 아니지만 기존 교수가 신원을 보증해준다면···!”


하인리히는 의아함을 느꼈다. 엘리 황녀가 평등주의에 강직한 성격이라는 건 사실이지만, 사리를 분별하지 못하는 건 아니었다.


전쟁영웅 출신이기에 더더욱.


평소라면 어느 정도 막히면 분을 삭히고서 물러나는데, 오늘은 거의 완패에 가까운데도 물러남이 없었다.

아니, 애초에 질 게 뻔한 싸움은 하지 않는다.


‘저 아이가 태어날 때부터 지금까지 30년을 봐왔지.’


분명히 뭔가 있다.


그 순간 요란한 경보음이 울렸다.


회의장의 교수진 전원이 약속이라도 한 듯 엘리를 쳐다보았다. 엘리도 당황한 채 제 손목의 아티펙트를 보았다. 경보음은 거기서 울려 퍼지고 있었으니까.


무단 침입자 경보였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1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나태한 대(對) 마법학과 교수님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이 아이는 리메가 확정인 아이입니다. +1 21.05.31 219 0 -
23 관심(4) +3 21.05.31 194 11 12쪽
22 관심(3) +3 21.05.26 190 10 12쪽
21 관심(2) +2 21.05.26 195 9 13쪽
20 관심(1) +2 21.05.25 210 11 13쪽
19 전설의 용병(2) +2 21.05.21 257 13 12쪽
18 전설의 용병(1) 21.05.20 204 9 14쪽
17 폭풍전야(3) +2 21.05.18 204 9 15쪽
16 폭풍전야(2) 21.05.18 188 6 12쪽
15 폭풍전야(1) +2 21.05.17 208 9 12쪽
14 샤를로트(3) +1 21.05.17 201 6 13쪽
13 샤를로트(2) 21.05.16 196 6 12쪽
12 샤를로트(1) 21.05.16 210 4 13쪽
11 올리비아(3) 21.05.15 222 5 12쪽
10 올리비아(2) 21.05.15 213 7 12쪽
9 올리비아(1) 21.05.14 222 6 14쪽
8 태양과 달의 소녀(4) 21.05.14 227 5 17쪽
7 태양과 달의 소녀(3) +2 21.05.13 237 5 14쪽
6 태양과 달의 소녀(2) 21.05.13 250 4 13쪽
5 태양과 달의 소녀(1) 21.05.12 266 6 14쪽
4 신설 대 마법학과 교수(2) +1 21.05.12 295 6 11쪽
3 신설 대 마법학과 교수(1) +2 21.05.12 328 11 13쪽
» 프롤로그 - 전쟁영웅 +1 21.05.12 391 12 17쪽
1 프롤로그 - 날백수 +3 21.05.12 538 26 15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