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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과검 님의 서재입니다.

나태한 대(對) 마법학과 교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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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혼문
작품등록일 :
2021.05.12 10:59
최근연재일 :
2021.05.31 15:21
연재수 :
2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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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7,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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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5.15 1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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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올리비아(3)

DUMMY

신임 교수 환영회. 매년 새로운 신입생들이 들어오고 한 달이 지나면 신입생 환영회를 하듯, 그 주의 주말에 맞춰 시행되는 교수들의 행사였다.

제법 오래 전부터 이어내려온 전통 있는 행사.


“···이니까 얼굴 좀 펴게나.”

“영감님 아니었으면 오지도 않았을 겁니다.”


나와 하인리히 교장, 엘리 교수는 나뭇가지 위에 올라 앉아 있었다.


숲속 작은 공터에 마련된 야외 연회장에서 신임 교수 환영회가 시작됐다. 하인리히의 축사 이후 곧바로 친목을 다지는 시간이 이어졌고, 나는 도망치듯 나무 위로 올라갔다.

엘리 황녀와 하인리히도 나를 찾아서 온 거고. 하인리히 영감은 내 등을 툭툭 치며 달랬고, 엘리 황녀는 내 옆에서 간식거리를 잔득 들고 하나씩 먹으며 내 눈치를 보고 있었다.


“으으, 제가 저런 자리를 왜 갑니까?”

“자네도 다른 교수들과 친분이라도 쌓아야지. 응? 커뮤니티가 넓어지면 보는 세상도 바뀌고 업무에 도움도 받고··· 응, 얼마나 좋은데?”

“여기도 영감님 아니었으면 안 왔다니까요. 영감님 보러 온 거에요, 영감님 보려고.”

“그래, 자네 마음 내가 제일 잘 알지.”


하인리히는 나를 능숙하게 달래다가 문득 내 눈치를 보는 엘리 황녀를 보았다. 노인의 얼굴 위로 환한 미소가 걸렸다.


“자네 둘이 설마 싸웠나?”


그러니까 저 표정은, 그거다. 화내기 직전 마지막 선고.


나는 엘리 황녀를 확 끌어당겼다. 눈이 커다래진 엘리가 끌려오며 품에 안겼다.


“아, 아뇨! 설마요! 우리가 얼마나 친한데요! 암요! 그렇죠! 오늘도 늦잠 자려던 걸 깨워준 것도 엘리 황녀님인걸요!”


그때 강한 반탄력이 느껴졌다. 몸이 붕 뜨는 게 2차로 느껴졌고, 아래로 떨어지는 게 3차로 느껴졌다. 그때마다 엘리의 표정이 달라졌다. 처음에는 깜짝 놀라서 얼굴이 빨갛게 물든 채였다가, 저가 밀쳐놓고는 저가 놀란 표정을 짓다가, 이내 울상이 되어서는 내게 달려들었다.


쿵! 그러나 그녀가 나를 받기보다 먼저 내가 땅에 쳐박혔다.


“어맛!”

“깜짝아!”

“오!”


연회를 즐기던 교수들이 놀라서 일제히 나를 쳐다보았다. 쿵하는 소리에 놀라고, 우스꽝스레 떨어진 모습에 놀라고, 내 정체에 놀랐다.


“······대 마법학과 교수가 아닌가? 왜 나무 위에서 떨어진 거지?”

“그, 주오 교수? 엘리 황녀 추천으로 들어왔다던?”

“마법사 등위에 적을 올리지도 못한 자가 아닌가.”

“···교수 망신은 혼자서 다 시키는군.”


이 사람들이 뭐라 떠들던, 그건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 어느 하나 신경쓰지 않는다.

내가 억울한 건, 나를 밀쳐낸 엘리 황녀다.


“어째서······.”


대충 이유를 알 것 같았지만, 억울한 건 억울한 거다.


“아아, 주오 교수! 미안해요! 그럴 의도는 아니었는데!”

“이보게, 주오 교수. 괜찮은가?”


엘리 황녀가 뒤늦게 하인리히 영감님과 왔지만, 늦었다. 나는 삐칠 것이다.


- 업적 달성! 신임 교사 환영회에 참석했습니다! 업적 포인트를 1 획득했습니다.


- 잔여 업적 포인트: 4



********



샤를로트는 터벅터벅 걸어서 강의실 문을 활짝 열었다. 9명의 학생이 고개를 돌려서 마지막으로 도착한 학생을 슬쩍 보았다. 그러다가, 다시 고개를 내려서 자기 할 일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대부분의 학생들이 내가 등장만 해도 좋다며 달려들었다. 이제 그런 쭉정이는 아무도 없다. 마음에 든다.

주오 교수의 수업 방침··· 나는 거르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그 교수는 진짜 대 마법을 배울 학생만 남기려고 그런 방법을 쓴 것이다.


배우는 건 없고 3시간 동안 유인물 나눠주면서 외우라고 시키고 못 외우면 벌점을 먹이는, 그런 수업을 누가 듣고 싶어하겠나. 정말로 대 마법에 관심이 있는 게 아니고서야.


“······.”

“······.”

“······.”


정적에 쌓인 교실. 각자 할 일에만 열중하는 공부의 장. 이 얼마나··· 오랜만에 보는 현장인가.

샤를로트는 근래에 느껴본 적이 드물던 만족감을 느꼈다.


그러나.


“다들 주말 잘 쉬었냐? 월요일이라 안타깝네.”


한주오 교수가 교실 앞문을 열고 터덜터덜 걸어들어왔다. 그가 단상에 서는 순간, 오전 9시 정각이 되었다.


“수업을 시작하지.”


만족과 동시에 짜증이 나기도 했다. 저 교수 말이다. 감히 내가 직접 인사하러 간 자리에서, 대놓고 나를 무시하고 저 은빛 살쾡이를 편애하다니.

수많은 교수가 나를 보면 아부하지 못해 안달이 나 있다. 그런데, 저 교수는 뭔데 나를 무시한단 말인가.


하지만 괜찮다. 신임 교수 환영회가 있었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교내 정보를 들었다면, 이제 내가 알아서 다가오겠지.


“흠!”


샤를로트는 말없이 교복을 단정히 했다.


뭘, 별거 없는 이야기다. 당연한 이야기. 나는 사랑받기 위해서 태어났으니까.


“오늘 수업은 대 마법의 가장 기초가 되는, 식견을 점검해볼 예정이다. 그래, 간단한 수행평가다. 우리 학과는 수업이 한 달 정도 미뤄졌으니까 좀 빡빡한 것도 이해해라.”


태양안을 들어서 당당하게 주오 교수를 마주보았다.


“상대의 준비 과정에서 마법의 정체를 꿰뚫어 보는 식견은 대 마법의 기초다. 어째서냐? 대 마법 자체가 상대의 마법을 보고 반응해야만 하는 시스템이기 때문이다. 필연적으로 상대보다 시작이 늦는 마법이지. 식견은 그 격차를 조금이나마 줄여주는 대 마법의 핵심 부품이다.”


그의 귀찮다는 듯 말하는 목소리는 귀에 쏙쏙 들어왔고 작은 손짓 하나에도 수업 이해를 위한 정수가 담겨 있었다.


“지금부터 너희는 내가 그리는 마법진의 정체가 무엇인지, 어떤 속성의 무슨 계통인지, 핵심 회로는 무엇인지 빠르게 파악해서 제출해야 한다.”


갑작스러운 수행 평가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이미 모든 준비물은 갖추어진 채였다.

그러한 생각을 들도록 수업을 이끌어가는 자가 훌륭한 교수였다.


“모두에게 매직 보드를 나눠주겠다. 그 안에 쓰는 답안은 즉시 내게로 전송될 것이다.”


문제 없다. 어떤 문제더라도 나는 잘 해낼 자신이 있다.

그러나 다른 반푼이들은 아닌 모양이라, 불안해 하는 표정이 잔득 드러나 있었다.


“선생님!”


한 학생이 손을 들었다. 이전 수업마다 질문을 한, 총대 매기를 좋아하는 학생인가 보다.


“수행 평가를 아무런 사전 공지도 없이 이렇게···”

“그게 불만이라면 나가라.”

“······.”

“일개 성적이나 잘 받자고 이 자리에 앉아 있다면 나가라.”


학생들은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다.


“적의 마법이, 언제 너희에게 준비할 시간을 주더냐? 대 마법은 그 중에서도 특별하다. 적과의 시간 싸움이지. 상대의 마법이 먼저 완성되느냐, 내가 상대의 마법을 먼저 파악하느냐.”


샤를로트는 손끝의 짜릿함을 느꼈다. 저 나태한 교수로부터, 제법 강렬한 기운이 흘러나오고 있었으니까. 터덜터덜 걸어와 단상에 서던 것과는 다른, 단호하고 엄숙한 모습이었다.


“나는 너희에게 진정한 ‘대 마법’을 알려줄 것이다. 수업에 불만이 있다면 나가라.”

“······.”

“대답.”

“···불만 없습니다.”


대답을 듣고서야 주오 교수는 고개를 끄덕이며 답을 내주었다.


“수행 평가의 내용은, 이미 너희의 손에 들려 있다. 내가 주었던 유인물, 내가 매일 말한대로 하나도 빠짐없이 잘 외웠다면. 못해도 A+는 맞을 수 있다.”


그는 이내 고개를 들어서 시계를 보더니.


“그래도 벼락치기 할 시간은 주마. 11시가 되면 예고 없이 시험을 시작하겠다.”


그러고는 교수용 의자에 앉아서 책을 얼굴에 덮고 숙면에 든다.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는 것도 잠깐, 학생들은 곧바로 유인물을 허겁지겁 꺼내들었다.


“······.”


샤를로트는 자신이 있었다. 그래서 유인물 대신 한주오라는 사람을 마력적으로 관찰해보기로 했다. 마나를 살짝 움직인 순간, 날 선 정글도로 마나가 끊기는 감각이 느껴졌다. 디스펠 당한 것이다.


책을 얼굴에 덮은 채 주오 교수가 경고했다.


“···수업 중 허가받지 않은 마법은 금지다.”


학생들 대부분이 갑자기 무슨 소리인가 하다가, 아무 일도 없자 다시 공부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샤를로트는 부끄러우면서도, 감탄을 금치 못했다. 그러니 어쩔 수 없이 눈으로만 나태한 대 마법학과 교수님을 관찰해보기로 했다. 마법을 쓰는 것도 아닌데 뭐 어쩌겠어.


그렇게 한참 후.


주오 교수가 손가락을 튕기자 강의실의 불이 꺼졌다.


“모두에게 매직보드를 나눠주겠다. 다시 말하지만 거기에 답안을 쓰는 거다. 문항당 제한 시간은 10초다.”


10개나 되는 매직 보드가 일제히 날아서 각자의 앞에 도착했다. 아름답고도 유려하게 새가 날아서 도착하듯 정교한 컨트롤이었다.


“지금부터 대 마법학과 정교수 주오의 감독 아래에서 1차 수행평가를 시작하겠다.”


그건, 순식간이었다. 눈 깜박하기도 전에 한 개의 마법진이 생성되어 있었으니까. 빠르다, 라는 말조차 부족한 초신속이었다. 마치 준비해둔 빔프로잭트를 쏜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그러나 느껴지는 마나는 분명 즉석에서 지어낸 마법이라 증명하고 있었다.


“10초. 다음 문항으로 넘어가겠다.”

“아···!”


누군가 탄식했으나 마법진이 촛불 꺼지듯 꺼져버렸다. 그리고, 다시 초신속으로 마법이 그려졌다.

······경이로운 속도였다. 대마법사의 자질이라 불리우는 자신조차 저 마법을 저렇게 신속하게 완성할 수는 없었다. 물론! 배우면 할 수 있겠지! 더 빨리도 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10초.”


마법이 또 불 꺼지듯 사라졌다. 다시 완전히 새로운 복잡한 마법이 펼쳐진다.


“10초.”


마법에는, 성격이 있다. 성향이 있다. 시전자의 성격과 성향을 똑 빼닮게 된다.


“10초.”


저 마법은, 참으로 투박하다. 거칠고 배려가 없다.


“10초.”


그러나 섬세하다. 틀린 구석은 찾아볼 수가 없는.


“10초.”

“완벽.”


말하고도 아차했다. 저도 모르게 육성으로 튀어나오고 말았다.

아니나 다를까 곧바로 지적이 들어왔다.


“샤를로트 폰 헥카일 힐데가르. 수업 중 발언은 금지다.”


그 어느 교수가 내게 지적을 한단 말인가. 내가 그 누구에게 사과라는 걸 한단 말인가.

······그러나, 좋다.


“죄송합니다.”


다른 학생들이 흠칫하며 고개 돌리려는 걸 억지로 참는 모습이 보였다.


“···수행 평가를 재개하겠다.”


나와 비견될 수는 없겠으나, 마법의 스펠과 디스펠에 한해서는 가히 맞먹는 재능을 가지고 꽃피운 저 남자라면, 인정할 수 있다.



********



“저, 교수님···!”


수행평가를 마치고 돌아가던 길, 누군가 나를 불러세웠다.

돌아보자, 달의 눈동자가 나를 보면서도 덜덜 떨리고 있었다. 그녀가 얼마나 긴장을 했는지 보였다. 오늘은 제법 엄한 모습을 보여줬으니, 더 그렇겠지.


“올리비아 학생. 무슨 일이지?”

“저, 저, 교수님, 그때는 정말······.”


그때? 아. 흑사 저주회의 암수에 당해서 나를 죽이러 왔던 때를 말하는 건가.


“저도! 왜, 왜 그랬는지 모르겠어서···! 죄송합니다!”


고개를 푹 숙인다. 저런, 허리 나갈라. 아직 젊으니 괜찮으려나?

나는 천진난만하게 웃어보였다.


“푸하하하하!”“······?”


올리비아가 고개를 들어서 나를 올려다보았다.


“아, 괜찮아! 뭐 그런 일 가지고! 사람이 그럴 수도 있지! 맛있는 밥도 먹고 같이 공부도 하다가 헤어졌으면 된 거니까, 너무 마음에 담아두지 말어!”

“네, 네, 감사합니다···!”


워낙 어둠게 그려진 캐릭터라 그렇지, 정말 착하고 순수한 아이다. 샤를로트 같은 애보다 훨씬 낫지! 암!


“그럼 이만···”

“아, 저······!”


가려던 나를 다시 한번 붙잡은 올리비아가.


“···다음에, 다음에 또··· 찾아 뵈도 괜찮을까요?”


제법, 기특한 소리를 해주었다.


“칼만 뽑아들지 않는다면?”


올리비아의 얼굴이 잘 익은 토마토처럼 붉어졌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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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태양과 달의 소녀(3) +2 21.05.13 237 5 14쪽
6 태양과 달의 소녀(2) 21.05.13 250 4 13쪽
5 태양과 달의 소녀(1) 21.05.12 266 6 14쪽
4 신설 대 마법학과 교수(2) +1 21.05.12 295 6 11쪽
3 신설 대 마법학과 교수(1) +2 21.05.12 327 11 13쪽
2 프롤로그 - 전쟁영웅 +1 21.05.12 390 12 17쪽
1 프롤로그 - 날백수 +3 21.05.12 538 26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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