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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과검 님의 서재입니다.

자서전까지 썼는데 회귀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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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혼문
작품등록일 :
2020.11.14 21:02
최근연재일 :
2020.12.29 2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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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7,1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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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9 2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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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QP전자(2)

DUMMY

김용명의 너희가 '살인'했냐는 질문에 지하 식당의 공기가 납덩이처럼 무거워졌다.


반겨주었던 회사원들의 표정이 밀랍 인형처럼 굳어졌다.


그때 안에서 나온 사람이 양손을 들고 손바닥을 펴보였다.


"진정해. 갑작스런 사태라 급진적인 생각을 할 수도 있지. 일단 머리 좀 식혀."


홍보부 도 과장이다.


평소 유들유들하고 장난스러운 아재 개그로 다른 사원들이 가벼운 마음으로 상담이나 도움을 요청하는, 훌륭하신 상사.


그리고 이 부장이 실권을 장악하고 추방령을 내리기 전까지 생존자 무리를 이끌던 리더였다.


"도 과장님."


"응, 그래. 우리가 처음에 못 알아봐서 미안했어. 김 사원, 자네도..."


"저 사표냈습니다. 이제 회사원 아니에요."


"응? 아, 그래? 응, 그래. 아쉽네. 그래."


도 과장의 이마에 식은땀이 맺혔다.


미세한 잔떨림이 멈추지 않는 손으로 물이 넘칠듯 말듯 가득 찬 물컵을 건낸다.


"그보다 이거 물이라도 한 잔하지. 여기까지 내려오느라 힘들었을텐데 이야기는 그 후에 하자고. 물 한 잔 정도는 괜찮지, 김 사원? 아, 사원이 아니라 그랬지. 그러니까... 어... 이름이..."


"물은 괜찮고, 소매속에 숨겨둔 단검이라면 받아두겠습니다."


씨익 웃으며 잔을 받아 곧바로 입으로 가져갔다.


도 과장의 표정이 깜짝 놀랐다가 딱딱하게 굳었다가 악귀처럼 일그러졌다.


"죽어!"


도 과장의 소매에서 튀어나온 단검이 목을 향해 쏘아져온다.


딱 봐도 초범은 아니었다.


못해도 하나, 많으면 다섯은 죽여본 솜씨다.


그러나 단검이 도달할 지점에는 손이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마치 캐치볼을 하듯 쏘아진 단검을 잡았다.


"감사합니다."


"이, 이 새끼 뭐야!? 임 대리!!!"


임가현이 품에서 커터칼을 꺼내서 드르륵 날을 세웠다.


"용명 씨도, 눈치채고 계셨군요."


"임 대리! 내가 아니라 저 사람 말을 믿는다고!? 나 홍보부 과장이야! 밖에 시체들 봤으면서도 어떻게 그런 말을 해!"


"봐서 하는 말인데요."


도 과장은 자기에게 하는 말인줄 알고 대답하려다가, 임가현의 시선이 자신에게 향하지 않음을 깨달았다.


"용명 씨도 저랑 똑같이 생각하셨죠?"


김용명을 향하고 있었다.


"물론입니다. 상흔이 이상했죠."


"맞아요. 랫맨은 시체의 내장을 파먹는 습성을 가지고 있어요. 반면에 밖에 있는 시체들은 전부 찔리도 베이고... 딱 인간에게 죽은 티가 났잖아요."


임가현의 서릿발같은 설명에는 김용명이 놀랄 지경이었다.


회귀 전에는 그녀가 이렇게까지 냉막한 표정을 짓는 걸 본적이 없었다.


무엇보다 그런 지식들을 가지고 있어도 직장 동료였던 이들을 살인자로 의심하고 확정짓는 건... 도저히 대격변 초기에 가질 마인드가 아니었다.


물론, 좋은 뜻이다.


"임 대리! 나랑 대화하라고 나랑! 저 망할 녀석 말고! 내가 너 상급자야!!!"


"도 과장. 나한테 이래라 저래라 하지 말아요."


"뭐...?"


"무고한 사람들을 죽여놓고는."


"그건 지금 상황이 안 좋아서 그렇잖아."


"대체 어떤 상황이길레 그랬는데요? 이 상황에 아까부터 회사 조직이나 계급을 따지는 이유는 뭔데요?"


임가현의 쉴틈없이 몰아붙이는 솜씨가 일품이었다.


도 과장은 여유롭고 자신만만하게 등장했고 말 하나하나에 확신이 있었으나 점점 위태로워졌다.


"아니! 거기에는... 다 이유가 있었어! 진짜야! 정말이라고! 좀 들어줘봐!"


"뭘 더요?"


갈수록 변명과 핑계가 되어갔다.


"사람의 정신을 지배하는 몬스터가 있어!!!"


"...그런 게 있다고요?"


혹하는 표정의 임가현이 귀를 기울였다.


"그래, 좀 들어봐봐. 사람의 정신을 지배하고 선동하는 괴물이 저기 전무님 몸에 들어갔단 말이야. 갑자기 죽자고 달려들길레, 그래서 우리도 어쩔 수 없이 죽였다고."


도 과장의 눈이 스산한 빛을 발했다.


천년 묵은 여우가 홀리듯.


"내 말 믿지, 임 주임? 나 도 과장이야..."


그 순간, 임가현이 커터칼을 허공에 휘둘렀다.


아무것도 없던 허공에 긴 상흔이 그어진 흰색 유령이 나타나 울부짖었다.


[꺄아아아아아아!!!]


"그게 당신 능력이군요?"


임가현의 두 눈동자에 새하얀 빛이 감돌았다.


'각성을 시작했군.'


회귀 전에 봤던 임가현의 능력은 바로 '진리의 눈'이다.


불가시한 적을 간파하는 건 기본이고, 숨겨진 장소나 위치를 알아내고 말의 참과 거짓을 구별해내는 기가 막힌 능력.


...이지만 빛을 발하기도 전에 이 부장 때문에 죽고 말았지.


그러나 초기일지라도 저급한 유령 1마리 따위, 보고 반격하는 건 그녀에게는 일도 아니다.


"어떻게!!!"


도 과장이 비명을 질렀다.


'그래, 진즉 이렇게 되야 했다.'


회귀 전의 나는 한 달 동안 탕비실에 갇혀 있었고 구조대가 와서야 간신히 생존자 무리에 합류했었다.


그때 무리의 리더는 매일 나를 까내리던 이 부장이었다.


그 시점에서는 도과장은 이 부장과의 정치 게임에서 지고 쫓겨난 후였다.


그때는 별생각 없었지만 누가 알았을까.


도 과장이 인간의 일곱 배신자 중 하나로 돌아올줄이야.


유령왕 도병민.


지구를 침공한 침략자들과 손을 잡고 혼자서 일개 국가급 전력을 보유하게된 유령 군단의 지배자.


아시아를 무너뜨린 주범이자, 내 동료를 죽이고 그 육신과 영혼을 능욕하고 강간한 불구대천의 원수.


'여기서 죽인다.'


단검을 역수로 쥐었다.


그런 내 옆으로 임가현이 서서 커터칼로 도 과장을 겨냥했다.


"용명 씨, 조심하세요. 저 유령한테 사람을 조종하는 능력이 있어요."


그 사이 상처를 수복한 유령이 다시 비가시화 상태에 들어갔다.


"보통 저런 류는 술자를 죽이면 됩니다만, 유령이 제 눈에 보이지 않네요."


"제가 유령을 막을게요."


말하는 임가현의 칼끝에 흔들림이 없었다.


지금 하려는 것은 '살인'이다.


"다! 다들 뭐해! 나를 지켜!"


도 과장이 뒤로 물러나면서 생존자 무리의 등을 떠밀었다.


하지만 명분을 잃은 무리는, 움직이지 않는다.


"뭐, 뭐야. 일이 어떻게 된 건데?"


"내, 내 손으로 3명이나 죽였다고. 그런데, 그런데 이게 다 도 과장의 함정이었어...?"


"사람을 조종한다면, 그때 전무님이 미친 사람처럼 달려들었던 건...!"


틀려먹었음을 뒤늦게 알아버린 도 과장이 뒤로 달려보지만, 이미 김용명의 암습은 시작됐다.


"어, 어디야! 오지마!!!"


사람들 사이에 섞여서, 어디에서 오는지 알지 못하게 해서 먼저 혼란에 빠뜨린다.


은밀한 살의가 풍기는 공포의 내음으로 대상의 정신을 마모시키면 준비는 끝난다.


"아, 안 보여! 안 보여! 다 저리 꺼져! 다 비키라고!!!!!"


도 과장이 발악처럼 손을 내젓자 보이지 않는 물리력이 사람들을 밀쳐냈다.


공포는 사람의 이성을 마비시키고 감정을 자극해서 뒤틀린 판단을 내리도록 유도한다.


군중 사이에서 반짝이는 칼날을 도 과장이 캐치했다.


"거기냐!"


도 과장이 지목한 곳으로 유령이 달려들었다.


그리고 커터칼이 허공을 갈랐고, 유령이 상처입은채 비명을 질렀다.


일이 잘못됐다는 걸 느껴도 이미 늦었다.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고. 대체로 그 기회는 한 번 뿐이지."


도 과장의 귓가에 속삭였다.


"나처럼 두 번째가 주어지지 않는 이상."


악몽처럼 나는 뒤에 서 있었다.


단검이 도 과장의 목줄을 꿰뚫었다.


피가 분수처럼 솟구쳤다.


도 과장이 양손으로 목을 부여잡아봐도 핏줄기가 손틈 사이로 삐져나와서 식당 곳곳에 흩뿌려졌다.


"꺄악!"


"죽였어!"


QP전자의 생존자 사원들의 셔츠에 붉은 꽃이 수놓아졌다.


아름답다.


미래의 악을 척결했다.


기념할만한 기쁜 날이다.


'아아... 이것이 회귀의 맛.'


쾌감을 만끽하는 김용명에게 커터칼의 날을 교체한 임가현이 다가왔다.


"도 과장만으로 충분할까요?"


회귀 전에는 절벽 위에 핀 하얀 꽃처럼 멀었던 그녀가, 이제는 내게 의견을 구하고 있었다.


"다들 도 과장에게 속은 것뿐이니까요."


김용명은 보란듯이 배를 쓰다듬었다.


"한바탕 날뛰니까 배가 좀 고프네요. 이르지만 점심이라도 먹을까요?"


"네!"


김용명과 임가현은 나란히 식품창고 안으로 들어갔다.


다른 회사원들은 그걸 보면서 아무도 말리지 못했다.


그야, 단 2명에게 점령당한 것이나 다름없었으니까.



□□□□□□□□



냉장고를 열어서 얼굴을 들이밀어 보았다.


"으음."


"왜 그러세요?"


"다 원재료들 뿐이라서요. 냉동 만두나 돈까스 정도는 조리가 가능한데..."


"어머, 그럼! 맡겨주세요!"


"...네?"


주방에서 임가현은 그 진가를 발휘했다.


스테이크. 파스타. 샐러드.


얼마 안 걸린다면서 순식간에 만들어온 것이다.


"대, 대단하시네요."


"요리가 취미에요."


요리와 운동이 취미라니, 그야말로 완벽 그 자체다.


"요리를 대접하는 건 처음이라 입맛에 안 맞으실 수도 있어요."


"무슨, 정말 맛있습니다!"


임가현은 허겁지겁 음식을 먹는 김용명을 바라보았다.


'믿음직한 사람.'


8층에서 외눈박이 괴물을 처음 만났을 때부터 지금까지 받은 도움이 한둘이 아니었다.


김용명이 없었더라면 임가현도 여기 있을 수 있었을까?


'하지만 수상한.'


그는 마치 이때를 위해 오래 준비해온 것처럼 모든 움직임과 사고가 맞춰져 있었다.


대충 3m에 달하던 녹색 근육질의 식인괴물을 죽일 때도 많이 해본듯 일말의 망설임조차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좋은.'


여기까지 오면서 받은 도움, 짧지만 봐온 그의 행동과 말들.


때때로 잔혹하리만치 단호한 판단을 내릴 때도 있었지만 그 또한 맞는 일이었다.


'재밌는 사람.'


파스타를 물처럼 흡입하는 모습이 재미있다.


"내 음식을 누군가 맛있게 먹어준다는 건 정말 뿌듯하네요."


"맛있으니까 이렇게 먹는 거죠."


임가현은 제 앞에 차려진 스테이크보다 김용명이 먹는 스테이크가 더 맛있겠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가현 씨."


"네?"


"이제 가현 씨는 어떻게 하실 겁니까?"


임가현은 순간 갈피를 잡지 못했다.


"뭘요...?"


"저는 여길 떠날 겁니다."


그제서야 감을 잡았다.


"떠나신다고요? 아니, 어디로요? 괴물들이 저렇게나 많은데...."


"어떻게 된 건지 알아보려고 합니다. 정부는, 군은 어떻게 됐는지. 여기만 이런지 아니면 나라가, 세계 전체가 이 모양 이 꼴인지."


"...가시밭길을 생각하고 계셨군요."


가만히 있으면 정부가, 군이, 어쨌든 대단하신 누군가가 구하러 올지도 모른다.


아니라도 최소한의 식량과 생존자가 있는 이곳을 버리는 건 너무 아깝다.


그녀의 말마따나 가시밭길, 일지도 모른다.


회귀를 통해서 큰 흐름을 알게 됐다지만 모든 걸 다 아는 건 아니다.


'특히 나는 멍청하니까.'


어쩌면 허망하게 죽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시작하지 않으면 평생 아무것도 변하지 않을 거라는 걸 아니까요."


내 우유부단함과 유약함은 나의 소중한 모든 것들을 앗아갔다.


진즉 힘을 길렀으면 가족이, 친구들이, 연인이 그렇게 허망하게 죽지 않았겠지.


한 많은 인생을 깨닫고 운명을 겸허히 받아들이려는 찰나, 회귀했다.


김용명은 이제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려 했다.


"......그럼 저도 같이 갈래요."


임가현이 선언했다.


"가현 씨. 여기에 남아계셔도 괜찮아요."


"여기에 가만히 앉아서 기다리는 건 성미에 안 맞네요. 제 지인들이 어떻게 됐는지도 궁금하고... 무엇보다 용명 씨 곁이 제일 안전할 것 같아요."


"아까 가시밭길이라고 하셨죠? 말그대로, 마냥 안전하지는 않을 겁니다."


"괜찮아요. 어떻게든 따라갈테니까."


이렇게까지 결심이 굳으면 거절할 수도 없다.


"알겠습니다. 대신 언제든지 힘들면..."


"용명 씨, 너무 배려해주지 않으셔도 되요. 저 생각보다 강한 여자에요."


옅은 미소, 자신감에 찬 눈빛.


말릴 수도 없고, 걱정조차 실례겠지.


"네. 그럼... 짐부터 같이 싸볼까요?"


"그러죠."


아무래도 임가현의 동행은 피할 수 없을 것 같다.


원래는 회귀 전에 그녀에게 받은 은혜만 갚고 떠나려는 게 계획이었다.


마음만 먹으면 동행을 거절할 수도 있었지만, 사실 임가현의 능력은 도움이 된다.


"지금 바로 출발하실 건가요?"


그 사이 배낭을 빵빵하게 채운 임가현이 물었다.


"음... 아뇨. 누구 한 명만 기다려봅시다. 올지는 모르겠지만요."


"누군데요?"


"이 부장이요."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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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서전까지 썼는데 회귀해버렸다.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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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바텐더(1) 20.12.29 110 1 11쪽
23 신수도 대구(5) 20.12.25 97 1 14쪽
22 신수도 대구(4) 20.12.21 87 1 13쪽
21 신수도 대구(3) 20.12.20 102 1 13쪽
20 신수도 대구(2) 20.12.18 91 1 13쪽
19 신수도 대구(1) 20.12.17 90 1 11쪽
18 용명 길드(5) 20.12.16 89 1 11쪽
17 용명 길드(4) 20.12.15 107 1 12쪽
16 용명 길드(3) 20.12.14 99 1 13쪽
15 용명 길드(2) 20.12.13 99 1 11쪽
14 용명 길드(1) 20.12.13 100 1 10쪽
13 진 마에아시(3) 20.12.06 109 1 12쪽
12 진 마에아시(2) 20.12.05 108 2 11쪽
11 진 마에아시(1) 20.12.02 114 1 12쪽
10 레빗 앤 라이온(3) 20.11.29 121 2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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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레빗 앤 라이온(1) 20.11.24 129 3 11쪽
7 대형마트(3) 20.11.22 130 3 11쪽
6 대형마트(2) 20.11.21 139 2 12쪽
5 대형마트(1) 20.11.21 159 3 11쪽
4 QP전자(3) 20.11.21 170 3 11쪽
» QP전자(2) 20.11.19 201 4 12쪽
2 QP전자(1) 20.11.16 252 6 13쪽
1 [프롤로그]한 많은 인생이었다. +3 20.11.15 317 8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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